말목장이 있던 들판,187만㎡ 땅 속에 잠든 중랑구 면목동의 비밀
- 5월 27일
- 7분 분량
📜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초자료
말목장이 있던 들판,187만㎡ 땅 속에 잠든 면목동의 비밀
437필지 1,875,892㎡. 서울 전체 면적의 약 3.1%에 달하는 광대한 국유지. 그 72.6%인 1,362,320㎡가 단 6필지의 잡종지(雜種地)였습니다. 면목(面牧), '말목장 앞'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땅이 1912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왜 이 기록이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지금부터 함께 풀어드립니다.
437필지면목동 국유지 총 필지 수
1,875,892㎡국유지 총 면적 (서울 면적 3.1%)
72.6%잡종지 면적 비율 (6필지)
1,362,320㎡잡종지 1필지 평균 227,053㎡
219필지대지 (71,739㎡)
173필지밭 (280,054㎡)
1912년 중랑구 면목동 국유지 지목별 구성 (면적 기준)
1,875,892총 ㎡
72.6%잡종지 (6필지)1,362,320㎡
14.9%밭 (173필지)280,054㎡
5.1%임야 (12필지)96,641㎡
3.8%대지 (219필지)71,739㎡
1.5%논 (12필지)28,674㎡
1.9%분묘지 (15필지)36,462㎡
잡종지 (6필지)1,362,320㎡ · 72.6%
72.6%
밭 (173필지)280,054㎡ · 14.9%
14.9%
임야 (12필지)96,641㎡ · 5.1%
5.1%
대지 (219필지)71,739㎡ · 3.8%
3.8%
분묘지 (15필지)36,462㎡ · 1.9%
1.9%
논 (12필지)28,674㎡ · 1.5%
1.5%
지목 유형 | 필지 수 | 면적 (㎡) | 면적 비율 | 필지당 평균 | 문화재 조사 등급 |
잡종지 (雜種地) | 6필지 | 1,362,320 | 72.6% | 227,053㎡ | ★★★★★ 최최우선 |
밭 (田) | 173필지 | 280,054 | 14.9% | 1,619㎡ | ★★★★ 높음 |
임야 (林野) | 12필지 | 96,641 | 5.1% | 8,053㎡ | ★★★ 보통 |
대지 (垈地) | 219필지 | 71,739 | 3.8% | 327㎡ | ★★★★★ 최우선 |
분묘지 (墳墓地) | 15필지 | 36,462 | 1.9% | 2,431㎡ | ★★★★★ 최우선 |
논 (水田) | 12필지 | 28,674 | 1.5% | 2,389㎡ | ★★★★ 높음 |
합계 | 437필지 | 1,875,892 | 100% | 4,293㎡ | — |
📋 이 글의 목차
437필지 187만㎡ — 이 시리즈 최대 기록의 충격
면목동은 어떤 곳인가 — 말목장과 광활한 들판의 기억
잡종지 72.6% — 6필지가 187만㎡의 핵심인 이유
대지 219필지 + 분묘지 15필지 — 취락과 묘역의 흔적
밭 173필지 + 임야 12필지 — 농경지대의 문화재 가치
면목동 문화재 발굴조사의 절차와 중요성
마무리 — 말들이 뛰놀던 들판, 그 아래의 이야기
Section 01
437필지 187만㎡ — 이 시리즈 최대 기록의 충격
"서울 면적의 3%가 단 하나의 동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72%는 정체조차 불분명한 잡종지였습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팀이 서울 25개 자치구 국유지를 하나하나 조사해 온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필지는 구로구 개봉동의 26필지, 가장 넓은 면적은 서초구 양재동의 848,364㎡였습니다. 그런데 중랑구 면목동은 그 기록들을 단번에 넘어섭니다.
437필지, 1,875,892㎡. 서울 전체 면적(약 60,500만㎡)의 약 3.1%에 해당하는 광대한 국유지가 면목동 하나에 있었습니다. 비교해보면 여의도 면적의 약 65%, 경복궁의 약 66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이 숫자만으로도 이미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구성입니다. 1,875,892㎡ 중 무려 1,362,320㎡, 즉 72.6%가 단 6필지의 잡종지(雜種地)였습니다. 필지당 평균 면적이 22만7천㎡. 그 하나하나가 여의도 면적의 약 8%에 달합니다.
이 글에서는 면목동이라는 동네의 역사적 맥락과 함께, 이 6개 잡종지 필지가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에서 왜 가장 주목해야 할 대상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숫자들이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의 흔적임을 함께 확인해보겠습니다.

Section 02
면목동은 어떤 곳인가 — 말목장과 광활한 들판의 기억
면목(面牧)이라는 이름의 뜻은 단순합니다. 한자를 풀면 '목장 앞'입니다. 이름 그대로, 이 동네에는 실제로 말목장이 있었습니다. 원래 구문계, 고문계, 곰계, 문계 등으로 불리던 넓은 들판이었는데, 이곳에 말목장이 생기면서 '면목'이라는 지명이 붙었습니다.
조선시대 면목동 일대는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한 한양 외곽의 광활한 평야 지대였습니다. 갑오개혁 이후에는 한성부 두모방 면목리로 편입되었고, 1912년 토지조사 당시에는 뚝도면 면목리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시로 편입된 것은 1949년의 일입니다.
조선시대~1895년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
말목장이 있던 광활한 들판. 조선 왕실 군마를 키우는 목장 지대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면목'이라는 지명이 이 시기 정착됩니다.
1895~1914년
한성부 두모방 면목리
갑오개혁으로 한성부에 편입. 1912년 토지조사 당시 437필지 187만㎡의 국유지가 기록됩니다. 잡종지 6필지가 이 시기 거대 규모로 확인됩니다.
1914~1949년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로 분리. 이 시기 대규모 국유 잡종지의 용도 변화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49년~현재
서울시 편입·중랑구 분리
1949년 서울 편입, 1988년 중랑구 신설로 현재 위치가 됩니다. 중랑구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인구도 가장 많은 법정동입니다.
지금의 면목동은 중랑구에서 면적 6.03㎢로 가장 크고 인구도 가장 많은 법정동입니다. 동쪽으로는 용마산을 경계로 경기도 구리시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중랑천을 경계로 동대문구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광진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용마산이라는 거대한 자연 경계와 중랑천이라는 수계가 어우러진 이 넓은 들판이, 100년 전에는 국유지 187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잡종지였습니다.

Section 03
잡종지 72.6% — 6필지가 187만㎡의 핵심인 이유
이 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숫자가 바로 이것입니다. 잡종지(雜種地) 6필지, 1,362,320㎡, 비율 72.6%. 이 세 숫자의 충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잡종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잡종지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 당시 사용하던 지목 분류입니다. 논, 밭, 대지, 임야 등 명확한 용도로 분류하기 어려운 토지를 잡종지로 구분했습니다. 군용지, 연병장, 사격장, 공장 부지, 광산, 채석장, 염전, 특수 목적 시설 부지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단순히 '잡다한 땅'이 아니라, 특정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기존 지목으로는 분류할 수 없는 특수 용도 토지였습니다.
면목동 잡종지 1,362,320㎡의 고고학적 의미
6필지, 필지당 평균 22만 7천㎡의 이 거대한 잡종지는 1912년 기준으로도 이미 특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말목장의 후신이었을 가능성, 군사 목적의 훈련 공간이었을 가능성, 또는 대규모 국가 시설 부지였을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습니다.
어떤 용도였든 간에, 거대한 국유 잡종지 아래에는 그 이전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교란 없이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물이나 경작으로 인한 교란이 적은 대규모 지표 아래층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구역입니다.
특히 면목(面牧), 즉 '목장 앞'이라는 지명과 결합해 생각하면, 이 잡종지는 조선시대 국영 목장 시설과 직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국영 목장은 단순히 말을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말 사육을 관리하는 관청 건물, 울타리 시설, 물 공급 시설이 함께 조성되는 복합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시설의 흔적이 잡종지 하부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1,362,320㎡를 6개 필지가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땅이 세분화 없이 거대한 블록으로 관리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런 대규모 단일 용도 토지는 전통적으로 국가나 왕실이 관리하는 특수 공간이었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시 이 잡종지 구역에 대한 문헌 조사와 지형 분석을 가장 먼저, 가장 집중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Section 04
대지 219필지 + 분묘지 15필지 — 취락과 묘역의 흔적
잡종지의 압도적 규모에 가려져 있지만, 면목동 국유지에서 문화재 발굴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핵심 유형이 바로 대지와 분묘지입니다.
대지는 219필지, 71,739㎡입니다. 필지 수로는 전체 437필지의 절반을 넘는 50.1%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면적이 71,739㎡로 전체의 3.8%에 불과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필지당 평균 면적이 327㎡로 매우 작습니다. 이는 면목동 국유 대지가 소규모 주거 시설이나 부속 건물들로 촘촘하게 분포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말목장 관리를 위한 소규모 관사와 창고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19필지의 대지. 필지당 327㎡. 이 작고 촘촘한 대지들의 흔적이 지금도 면목동 땅 아래에 남아 있습니다. 수백 개의 건물터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묘지는 15필지, 36,462㎡입니다. 필지당 평균 2,431㎡로 개별 묘역이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면목동 일대는 조선시대 한양 외곽의 주요 장지 구역 중 하나였습니다. 용마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묘역들은 지금도 일부가 남아 있으며, 1912년 기록된 15필지의 분묘지는 그 이전부터 이 지역에 조성된 묘역들을 반영합니다.
⚠️
분묘지 15필지 36,462㎡ — 법적 의무 사항
공사 중 유골이나 묘역 구조물이 발견되면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국가유산청 또는 지자체에 신고해야 합니다. 특히 면목동처럼 역사적으로 묘역이 넓게 형성된 지역은 현재 지표에서 확인되지 않더라도 지하에 묘역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전에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통해 분묘지 위치와 범위를 확인하는 것이 법적 리스크와 공사 지연을 동시에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Section 05
밭 173필지 + 임야 12필지 — 농경지대의 문화재 가치
면목동 국유지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요 지목은 밭(173필지, 280,054㎡)과 임야(12필지, 96,641㎡)입니다. 두 유형을 합하면 376,695㎡로 전체의 20.1%에 달합니다.
밭 173필지는 필지당 평균 1,619㎡입니다. 중간 규모의 경작지들이 면목동 들판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목장이 있던 들판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농경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밭 아래층에는 수백 년에 걸친 경작 활동의 흔적과 함께, 경작 이전 시대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임야 12필지, 96,641㎡는 용마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산림 지대로 추정됩니다. 임야는 경작이나 건축으로 인한 교란이 없어 지하 유구의 보존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용마산 자락의 임야에서는 고대 산성이나 봉수대 관련 시설의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용마산에는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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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야와 밭에서 발굴되는 유구의 유형
임야에서는 산성, 봉수대, 고분, 기도처 관련 유구가 확인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밭에서는 경작 이전 시대의 주거지, 수혈유구(구덩이 유구), 각종 생활 유물이 출토됩니다. 면목동의 경우 조선시대 이전 삼국시대나 그 이전 시기의 유적이 임야 하부에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논 12필지, 28,674㎡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면목동에서 논의 비율(1.5%)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것은, 이 지역이 주로 밭농사 중심의 고지대 평야였음을 반영합니다. 중랑천 인근의 일부 저지대에서만 수전(水田)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논 지대의 하부에는 수리 시설과 관련된 유구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Section 06
면목동 문화재 발굴조사의 절차와 중요성
면목동처럼 437필지에 달하는 방대한 국유지를 대상으로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할 때는 일반적인 소규모 부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권역별 사전 분류입니다. 437필지를 지목 유형에 따라 권역으로 나눕니다. 잡종지 6필지는 최우선 집중 조사 구역, 대지 219필지와 분묘지 15필지는 1순위 표본 조사 구역, 밭·임야·논은 2순위 확인 조사 구역으로 분류합니다. 1,875,892㎡ 전체를 동일한 밀도로 조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문화재 매장 가능성이 높은 구역부터 집중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문헌 조사와 지표조사를 병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잡종지 6필지에 대해서는 1912년 이전 고지도, 조선시대 목장 관련 문헌, 일제강점기 토지 이용 기록 등을 종합 검토합니다. 면목동의 '말목장'이라는 지명 유래와 연결해 국영 목장 관련 기록을 집중 조사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표본조사입니다. 전체 부지에서 대표성 있는 지점을 선정해 트렌치 방식으로 시굴합니다. 면적이 방대하므로 드론 항공 촬영,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 등 비파괴 조사 기법을 병행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단계별 정밀 발굴조사입니다. 표본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된 지점부터 단계적으로 정밀 발굴조사를 확대해나갑니다. 437필지 전체를 한꺼번에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개발 순서와 발굴 성과를 연동해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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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관 및 참고 자료
국가유산청 (khs.go.kr) — 발굴허가 신청, 매장문화재 신고, 대규모 부지 발굴조사 지침
국립문화유산연구원 (nrich.go.kr) — 서울 동북권 발굴 성과 DB, 비파괴 탐사 기법 안내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서울 전역 국유지 기초조사, 발굴조사 비용·절차·FAQ 안내
서울역사박물관 (museum.seoul.go.kr) — 중랑구 면목동 일대 역사 자료 및 지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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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필지 중 어느 구역이든, 잡종지·대지·분묘지가 포함된 면목동 국유지는문화재 지표조사 최우선 대상 지역입니다.사전 조사 없이 착공하면 공사 중단과 법적 책임이 함께 따릅니다.

Section 07
마무리 — 말들이 뛰놀던 들판, 그 아래의 이야기
437필지. 1,875,892㎡. 잡종지 72.6%, 밭 14.9%, 임야 5.1%, 대지 3.8%, 분묘지 1.9%, 논 1.5%. 오늘 이 여섯 가지 숫자가 이 글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들 뒤에는 훨씬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면목(面牧). 말목장 앞. 조선시대 이 들판에서는 말들이 자유롭게 달렸습니다. 왕실의 군마를 키우기 위한 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주변으로 목동들의 작은 집들이 들어섰고, 논밭이 일궈졌으며, 용마산 자락에는 무덤이 조성됐습니다. 이 모든 흔적이 1912년 토지조사 기록에 137만㎡짜리 잡종지, 28만㎡의 밭, 7만㎡의 대지, 3만 6천㎡의 분묘지로 남았습니다.
지금 면목동을 걷는 사람들 중 이 땅 아래에 말목장의 흔적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는 그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기록한 면목동. 그 187만㎡의 땅 아래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답할 수 있습니다. 땅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어보면, 반드시 대답합니다. 삽 한 번, 붓 한 번씩 천천히, 그러나 절대 멈추지 않고.
이 글이 중랑구 면목동의 역사에 새로운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이 땅의 문화재 보전에 관심을 갖는 분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들이 달리던 그 들판,
187만㎡의 땅 아래에
조선의 기억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잡종지 6필지, 대지 219필지, 분묘지 15필지, 밭 173필지.면목동 국유지가 품은 437개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세요.문화재 발굴조사는 그 이야기들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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