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강남구 압구정으로 시간 여행
- 2025년 5월 23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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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매장 자리에 논이 있었다,1912년 압구정동의 충격적인 민낯
1912년 강남구 압구정동 토지대장으로 읽는 잊혀진 풍경 |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 기초자료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 로데오거리, 한강변 고급 아파트.
지금 우리가 아는 압구정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딱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해.
1912년, 그 자리에는 논이 86필지,
밭이 222필지 펼쳐져 있었다는 것.
강남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그곳이,
한때 서울 사람들의 밥을 책임지던 농촌이었다.
목차
강남의 상징 압구정, 1912년으로 시간 여행
논이 펼쳐진 그 시절 압구정 — 86필지의 황금 들판
압구정 면적의 절반 이상 — 222필지 밭의 생명력
산이 품은 압구정의 숨겨진 이야기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옛 마을의 풍경
성씨로 읽는 압구정의 사람들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가 압구정에 주목하는 이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압구정의 진짜 이야기

01 — 강남의 상징 압구정, 1912년으로 시간 여행
압구정동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갤러리아 명품관, 로데오거리의 세련된 카페들, 한강을 굽어보는 고급 아파트. 서울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동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곳. 청담동과 함께 '강남'이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대변하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땅이, 100년 전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의 기록에 따르면, 1912년의 강남구 압구정동은 총 368필지, 1,063,676㎡의 규모를 가진 마을이었다. 100만 제곱미터가 넘는 이 광활한 땅의 대부분은 논과 밭이었다. 지금 갤러리아 백화점이 들어선 그 자리, 로데오거리의 카페가 늘어선 그 자리,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그 자리에 벼가 익어가고 고구마가 자랐다. 이 반전이 단순한 흥미거리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 기록이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핵심 기초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1912년의 압구정을 한 장 한 장 펼쳐보자. 명품관 대신 논밭이 있던 그 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총 필지
368필지
1912년 기준
총 면적
1,063,676㎡
약 32만 평 규모
밭(전)
222필지
597,282㎡
논(답)
86필지
235,948㎡
02 — 논이 펼쳐진 그 시절 압구정, 86필지의 황금 들판
1912년 압구정에는 86필지, 235,948㎡의 논이 있었다. 지금의 아파트 단지와 상업 지구 전체를 떠올리며 그 자리에 논이 가득 차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100년 전 압구정의 실제 모습이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압구정은 예로부터 수리 조건이 탁월한 지역이었다. 한강의 풍부한 물을 논으로 끌어들이기 좋았고, 강변의 충적토는 벼농사에 최적의 지력을 갖추고 있었다. 봄이면 물을 댄 논에 모를 심고, 여름이면 초록빛 벼가 한강 바람을 받으며 출렁였다. 가을이면 황금빛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은 낫을 들고 수확에 나섰다. 지금의 압구정 갤러리아 앞 도로가 한때는 논두렁이었을 수도 있다.

이 86필지의 논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 남쪽의 논은 도성 안 사람들의 쌀 공급을 책임지는 핵심 생산지였다. 압구정의 논에서 가을마다 수확된 벼가 한강을 통해 서울 도심으로 운반되었고, 그것이 수많은 가정의 밥상을 채웠다. 지금 명품 쇼핑백을 들고 걷는 그 거리가 한때 서울 시민의 밥을 책임지던 논이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묘하고 경이로운 역사의 반전이다.
1912년 압구정
벼가 익어가는 86필지 논, 한강 물을 끌어들인 충적 농토, 가을마다 황금빛 수확이 펼쳐지던 들판
2020년대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 로데오거리, 한강변 고급 아파트, 서울 최고 수준의 땅값을 자랑하는 상업 지구
03 — 압구정 면적의 절반 이상, 222필지 밭의 생명력
압구정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것은 밭이었다. 222필지, 597,282㎡. 전체 1,063,676㎡ 중 약 56%가 밭이었다. 논보다도 훨씬 많은 필지와 면적을 차지한 밭은, 그 시절 압구정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직접 책임지던 공간이었다. 쌀은 논에서 났지만, 반찬과 양식이 되는 채소와 곡물은 모두 이 밭에서 왔다.
봄이면 감자와 고구마 싹이 올라오고, 여름이면 콩과 참깨가 무성하게 자랐다. 가을이면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 준비에 들어갔고, 겨울에는 밭에 거름을 놓으며 다음 해를 준비했다. 지금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들이 들어선 그 자리에, 당시에는 주민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흙을 일구던 밭이 있었다. 흙냄새와 풀냄새가 가득하던 그 공간은 지금의 향수로운 공기와는 전혀 달랐지만, 그 땅에서 피어난 생명력이 오늘의 압구정을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뿌리다.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밭 지대는 매우 중요한 구역이다. 밭은 매년 경작하면서 지표를 뒤집기 때문에 지층이 교란되기 쉽지만, 그 아래 일정 깊이에는 이전 시대의 유물층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압구정처럼 한강 충적지에 위치한 밭 지대는 토기 파편, 청동 유물, 목재 유구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는 구역으로 분류된다.
04 — 산이 품은 압구정의 숨겨진 이야기
논과 밭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압구정이었지만, 29필지 188,850㎡의 임야도 있었다. 지금의 압구정에서 산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파트와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 지역에서 자연 지형의 흔적은 작은 공원이나 한강 공원 정도로만 간신히 남아 있다. 하지만 1912년에는 마을 주변에 크고 작은 야산이 있었고, 그 임야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9필지의 임야는 마을 사람들의 땔감을 공급하고, 약초를 캐는 장소였으며, 조상의 무덤을 조성하는 공간이었다. 풍수지리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 사람들은 마을 뒤편 야산의 형세를 보고 집을 짓고 무덤을 정했다. 압구정의 임야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숲이 아닌,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자 생활 기반이었다. 오늘날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어딘가에 그 옛 임야의 흔적이 지층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05 —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옛 마을의 풍경
논과 밭, 임야가 압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던 집터도 있었다. 31필지, 41,596㎡의 대지다. 지금처럼 수십 층짜리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있고 텃밭이 딸린 한옥들이 넓은 들판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웃집 굴뚝 연기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논두렁에서 안부를 묻고, 저녁이면 마루에 앉아 한강 쪽 하늘을 바라보던 그 풍경.
31필지의 집터는 지금의 압구정 면적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그 안에서 수십 가구의 삶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아이들이 좁은 골목에서 뛰어놀고, 어머니들이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농부들이 들판에서 돌아와 저녁밥을 먹던 그 일상이 지금의 화려한 압구정 아래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집터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가장 집중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는 구역이다. 온돌 흔적, 기와 조각, 도자기 파편, 우물 터 등이 집터 지층에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 일대의 발굴 현장에서도 아파트 건설 이전 집터 지대에서 조선 시대 유물이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압구정의 31필지 집터 또한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06 — 성씨로 읽는 압구정의 사람들
1912년의 토지대장에는 압구정에서 땅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의 성씨가 남아 있다. 그 기록을 통해 이 마을이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가장 많은 땅을 보유한 성씨는 이씨로, 무려 163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체 368필지 중 44%를 이씨가 차지했다는 것은, 이씨 가문이 압구정 마을의 실질적인 중심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를 이어 조씨 39필지, 김씨 36필지, 박씨 35필지, 임씨 14필지, 경씨 12필지, 고씨 11필지가 이름을 올렸다. 이씨의 압도적인 존재감 속에서도 다양한 성씨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조씨와 김씨, 박씨 등의 집안들이 논과 밭을 나누어 일구며 마을 공동체를 유지했다. 경씨라는 비교적 드문 성씨가 12필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1912년 압구정동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
이씨163필지 (전체의 44%)
조씨39필지
김씨36필지
박씨35필지
임씨14필지
경씨12필지
고씨11필지
이씨가 163필지를 소유했다는 것은 단순한 토지 기록이 아니다. 그 집안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깊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문중의 제사 공간, 사랑채, 창고가 이씨 소유지 안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압구정의 어느 빌딩 지하에, 그 이씨 집안의 기와 조각이나 생활 도구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163필지의 이씨가 일구던 그 논밭 위에, 지금 명품 매장이 들어서 있다. 역사의 레이어가 이토록 선명하게 쌓인 땅이 또 있을까.
07 —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가 압구정에 주목하는 이유
강남 일대는 1970년대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서 급속도로 변화했다. 논밭이 아파트로, 야산이 도로로 바뀌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화재 유존 구역이 개발 압력을 받았다. 다행히 지금은 국가유산청의 법령에 따라 건축이나 토지 형질 변경 전에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거쳐야 한다. 지표조사에서 매장 유산의 유존 가능성이 확인되면 표본조사 → 시굴조사 → 정밀발굴조사 순으로 단계가 진행된다.
압구정처럼 한강 충적지에 위치하고, 오랜 농경지와 집터, 임야가 복합적으로 분포한 지역은 문화재 유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으로 분류된다. 특히 86필지의 논 지대는 수분이 많은 환경 덕분에 목기, 씨앗류, 농기구 파편 등이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1912년 토지대장 기록은 이런 조사에서 첫 번째 참고 자료가 된다.

실제로 강남구 일대 재개발 현장에서는 조선 시대 기와 조각, 토기 파편, 생활 유물들이 발견된 사례들이 보고되어 있다. 압구정동의 경우 아직 대규모 발굴 성과가 공개된 사례는 많지 않지만, 1912년 기록이 보여주는 논과 밭의 규모, 그리고 이씨 가문 중심의 오랜 씨족 거주 역사를 감안하면 이 땅이 품고 있을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다. 문화재 지표조사 기관들이 이 자료를 꾸준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08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압구정의 진짜 이야기
이렇게 1912년의 압구정을 한 바퀴 돌아왔다. 368필지 1,063,676㎡의 땅 위에서 우리는 논에서 벼를 심던 이씨 가문을, 밭을 일구던 조씨와 김씨를, 임야에서 땔감을 하던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이름 없는 초가집들이 들판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마을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동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역설이 단순히 흥미로운 역사 상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 땅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도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것이다. 명품 쇼핑을 즐기는 압구정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뿌리에 수백 년 농부들의 땀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이 거리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압구정을 걸을 때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1912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누가 이 땅을 일구었고, 어떤 삶이 여기서 피어났을까.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우리를 1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다리가 된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있고, 현재를 제대로 사는 사람만이 이 도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
163필지의 이씨가 논을 갈고,
222필지의 밭에서 채소를 키우던 그 사람들.
그들의 삶이 지금의 압구정을 만들었다.
갤러리아 앞을 걷는 오늘의 당신에게,
그 논과 밭과 흙냄새의 기억이,
조용히 발밑에서 올라오기를 바란다.
화려한 거리 아래,
100년 전 사람들의 땀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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