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타임머신 타고 1912년의 강남구 자곡동으로 떠나보자!
- 서울 HI
- 7월 13일
- 3분 분량
1. 자곡동, 논밭에서 강남의 중심으로
2. 1912년 자곡동의 진짜 모습
• 논이 가득했던 땅, 자곡동
• 집터와 삶의 흔적들
• 마을의 공동 자산, 무덤과 사사지
• 자곡동 사람들의 산과 밭 이야기
• 생활 필수시설 ‘지소’
3. 성씨로 살펴본 자곡동 주민들
• 이씨와 김씨, 자곡동의 큰손들
• 조씨, 임씨, 박씨의 땅 이야기
• 양씨와 방씨, 작지만 분명했던 존재감
4.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 국유지와 자곡동의 관계
• 마을의 공유지와 그 쓰임새
• 법인 소유지는 왜 생겼을까?
5. 자곡동의 과거에서 찾는 문화유적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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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곡동은 옛날에 그냥 허허벌판 논밭이었다고?
내가 지금 말하는 이 자곡동은, 1912년의 진짜 강남의 모습을 보여줄 거야. 한 세기 전의 강남,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번쩍이는 타워와 쇼핑몰 대신 넓디넓은 논과 밭, 사람들이 살았던 집과 마을이 있었던 곳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강남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지역이잖아? 하지만 자곡동은 100년 전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이 글을 끝까지 보면 강남의 옛 모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거야.
지금부터 타임머신 타고 1912년의 자곡동으로 떠나보자!

자곡동, 논밭에서 강남의 중심으로
강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뭘 떠올려? 아마 대부분 화려한 빌딩, 명품 브랜드 숍, 고급 아파트를 떠올릴 거야.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인 1912년 강남구 자곡동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그때 자곡동은 말 그대로 농사가 주업이었던 시골 동네였어. 지금의 강남과는 정반대였지. 그때의 자곡동을 보면 강남 개발 이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 중 하나야.
그럼, 한 번 제대로 살펴볼까?
1912년 자곡동의 진짜 모습
논이 가득했던 땅, 자곡동
당시 자곡동 면적은 약 795,177㎡였는데, 놀랍게도 논만 무려 803,501㎡나 있었어. 전체 면적을 뛰어넘는 이 숫자, 조금 이상하지? 하지만 이건 당시 토지대장 기록상 중복 표기가 있었기 때문이래.
그런데 중요한 건 그만큼 자곡동은 논농사를 짓는 데 최적화된 마을이었다는 거야. 광활한 논에서 벼가 흔들리는 풍경을 상상해봐. 지금의 자곡동과 너무 다르지 않아?
집터와 삶의 흔적들
그 시절 집은 60필지에 60,016㎡의 땅에 모여 있었어. 논밭이 많은 땅이지만 집터가 있었다는 건 그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증거지. 집이 있으면 뭐가 생기겠어?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시작되지.
마을의 공동 자산, 무덤과 사사지
사람이 사는 곳엔 당연히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묻히는 무덤도 있었지. 무덤은 6필지에 16,439㎡나 있었고, 절터 같은 사사지도 있었어. 1필지, 1,838㎡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의 신앙과 관련된 중요한 땅이었을 거야.
자곡동 사람들의 산과 밭 이야기
밭은 191필지, 344,394㎡로 꽤 넓었어. 농사를 지으려면 산도 중요하지. 산은 15필지 46,069㎡로 많지 않았지만, 주민들에게는 땔감과 임산물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지였지.
생활 필수시설 ‘지소’
지소는 당시 동네마다 있던 소규모 연못이었어. 자곡동에는 3필지 3,904㎡로 규모는 작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생활 자원이었지. 지금은 강남에서 찾기 힘든 풍경일 거야.
성씨로 살펴본 자곡동 주민들
이씨와 김씨, 자곡동의 큰손들
당시 자곡동은 이씨가 156필지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고, 김씨가 132필지로 그 뒤를 이었어. 이 두 가문이 자곡동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지 상상이 돼?
조씨, 임씨, 박씨의 땅 이야기
조씨는 56필지, 임씨는 27필지, 박씨는 17필지를 소유하며 자곡동의 중간층을 형성하고 있었어. 아마 이들은 자곡동에서 농사를 짓고, 마을의 일상적인 삶을 책임졌을 거야.
양씨와 방씨, 작지만 분명했던 존재감
양씨 15필지, 방씨 11필지 등 작은 규모지만 분명히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던 성씨들도 있어. 이들이 남긴 흔적이 지금까지 자곡동 어디엔가 남아있지 않을까?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국유지와 자곡동의 관계
자곡동에선 국가 소유 땅도 65필지나 있었어. 아마 당시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용 땅이나, 도로로 이용된 땅이 많았겠지?
마을의 공유지와 그 쓰임새
마을 소유 땅은 9필지 있었어. 이런 공유지는 주민들이 모여 마을 일을 결정하거나, 축제나 의식을 치르는 데 쓰였을 거야. 지금으로 따지면 마을회관 정도 되겠지?
법인 소유지는 왜 생겼을까?
자곡동에는 법인 소유 땅도 18필지 있었어. 법인이 소유한 땅은 대부분 사찰이나 서원 같은 종교적, 교육적 목적이 많았지. 이 역시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었던 거야.
자곡동의 과거에서 찾는 문화유적의 미래
자곡동이 이처럼 다양한 땅과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그 흔적을 찾는 일이 남았지.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도 아직 미발굴된 유적과 이야기가 남아있을 거야.
자곡동의 옛 모습을 살펴보면서 강남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길 바라.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면 좋겠어.
강남, 이제는 화려함 너머의 역사적 깊이도 함께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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