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타임머신 타고 1912년의 강남구 자곡동으로 떠나보자!
- 2025년 7월 13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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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가장 오래된 땅의 이야기— 자곡동 1912년, 국유지 65필지가 숨긴 비밀
이씨 156필지·김씨 132필지의 이중 중심 마을 — 국유지가 전체의 10%를 차지하고, 사사지와 지소와 연못이 공존했던 강남의 진짜 옛 얼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seoulheritage.org·읽는 시간 약 13분
"강남역 인근, 지금 고급 아파트가 서있는 그 자리에
1912년 국유지가 65필지나 있었다.
이씨와 김씨가 전체의 46%를 나눠가졌고,
사사지와 지소와 연못이 공존했다.
이 강남의 진짜 옛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강남구 자곡동. 지금은 강남구의 조용한 주거 지역이지만, 1912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공간이 드러난다.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진 농촌 마을, 사당과 연못이 공존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땅이 전체의 10%를 차지하던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이 글은 자곡동 1912년 토지 기록이 말해주는 강남의 진짜 옛 얼굴을 들춰가며, 왜 지금 이 땅에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강남은 빌딩 이전부터 이미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었다.
목차 — 이 글의 흐름
1. 자곡동, 강남 개발 이전의 진짜 풍경
2. 논과 밭 — 자곡동 땅의 절대다수
3. 집터 60필지와 사사지 — 삶과 신앙의 공간
4. 무덤 6필지와 임야 15필지 — 자연과 삶의 끝자락
5. 지소 3필지와 연못 — 작은 물의 공간
6. 이씨 156필지, 김씨 132필지 — 자곡동의 이중 중심
7. 국유지 65필지 — 이 수치가 자곡동에서 의미하는 것
8. 마을 공유지 9필지와 법인 18필지
9. 문화재 지표조사, 강남 농촌의 층위를 읽는 방법
10. 강남, 화려함 너머의 역사적 깊이
1. 자곡동, 강남 개발 이전의 진짜 풍경
자곡동(慈谷洞)이라는 이름에는 '자비로운 골짜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탄천 지류가 흐르는 조용한 골짜기 마을이었다. 1912년의 자곡동은 지금의 강남구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외진 농촌 지역이었다. 논과 밭이 주를 이루고, 사당과 연못이 마을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남 개발은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그 전까지 자곡동을 포함한 강남구 일대는 논밭이 넓게 펼쳐진 서울 외곽의 농촌이었다. 청담동의 이씨 197필지, 자곡동의 이씨 156필지. 강남구 곳곳에 조선인 가문들의 오래된 뿌리가 있었다.
총 필지
기록 다수
156필지
이씨 소유
132필지
김씨 소유
65필지
국유지
60필지
대지(집터)
191필지
밭

2. 논과 밭 — 자곡동 땅의 절대다수
자곡동 1912년 기록에서 논과 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논은 803,501㎡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이었고(필지 기록의 중복 가능성을 포함), 밭은 191필지, 344,394㎡였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자곡동이 얼마나 농업 중심의 공간이었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자곡동은 탄천 지류가 흐르는 골짜기 지형이었다. 물이 풍부하고 골짜기 바닥의 토질이 비옥해 논농사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봄이면 물을 가득 채운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가을이면 황금빛 벼가 바람에 출렁이던 그 풍경이 지금은 도로와 아파트로 완전히 바뀌었다.
밭 191필지는 골짜기 양쪽 구릉지를 따라 조성된 소규모 경작지들이었을 것이다. 고구마, 참깨, 콩 같은 작물들이 계절마다 이 밭을 채웠다. 그 밭두렁 경계석과 수로 흔적이 지금도 자곡동 땅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수 있다.
밭
191필지 / 344,394㎡
대지
60필지 / 60,016㎡
임야
15필지 / 46,069㎡
분묘지
6필지 / 16,439㎡
지소
3필지
사사지
1필지

3. 집터 60필지와 사사지 — 삶과 신앙의 공간
집터 60필지, 60,016㎡. 자곡동에 60채의 집이 있었다. 골짜기 입구나 구릉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옥들. 논밭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이 집들 사이 골목에 새겨졌을 것이다. 60필지 집터가 남긴 온돌 구조물, 기단석, 공동 우물이 지금도 자곡동 땅속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사사지 1필지, 1,838㎡. 사당 또는 절터로 쓰인 작은 공간이지만, 이 1필지의 의미는 크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제를 올리고, 공동의 신앙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자곡동처럼 골짜기 마을에서는 사당이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사사지 구역에서는 불교 석조물, 기와 조각, 제의 용기 등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사사지 1필지, 1,838㎡.
이 작은 공간에서 자곡동 모든 가문이 함께 모였다.
이씨도, 김씨도, 조씨도, 임씨도.
그 공간의 흔적이 지금도 땅속에 있다."
4. 무덤 6필지와 임야 15필지 — 자연과 삶의 끝자락
분묘지 6필지, 16,439㎡. 자곡동 골짜기를 둘러싼 구릉 어딘가에 무덤들이 자리했다. 이씨와 김씨 두 가문이 각자의 선산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제사철마다 가족들이 선산을 찾아 조상에게 절을 올리던 그 풍경이 1912년 자곡동의 일부였다.
임야 15필지, 46,069㎡. 자곡동 이름처럼 골짜기를 감싸는 숲이 이 임야였다. 땔감을 구하고, 산나물을 채취하고, 가끔은 이 숲 속에서 마을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것이다. 임야 구역에서는 과거 사람이 다니던 숲길 흔적, 기와 조각, 토기 편이 지표 가까이 보존되어 있을 수 있다.
5. 지소 3필지와 연못 — 작은 물의 공간
지소 3필지, 3,904㎡. 지소(池沼)는 소규모 연못을 의미한다. 서교동 인근과 마찬가지로, 자곡동에도 마을 공동체가 관리하는 작은 물의 공간이 있었다. 골짜기 마을이어서 탄천 지류의 물을 끌어다 쓰는 소규모 용수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3필지의 지소가 마을 사람들에게 가진 의미는 작지 않았다. 가뭄이 들면 논에 물을 공급하고, 일상적으로는 빨래와 생활용수로 쓰이고,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지소 퇴적층에는 당시 생활 유물이 보존될 수 있어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중요한 조사 포인트가 된다.

6. 이씨 156필지, 김씨 132필지 — 자곡동의 이중 중심
자곡동 토지 소유자 분포에서 이씨 156필지와 김씨 132필지가 두드러진다. 이 두 가문이 자곡동의 중심이었다. 이어서 조씨 56필지, 임씨 27필지, 박씨 17필지, 양씨 15필지, 방씨 11필지 순이었다.
이씨와 김씨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156필지 대 132필지, 비율로는 이씨가 약간 우세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이건 자곡동이 이씨 단독 지배가 아니라 이씨와 김씨 두 가문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였음을 보여준다. 두 가문의 경계 구역, 그리고 그 경계에 세워진 경계석이 지표조사의 핵심 조사 포인트가 된다.
이씨
156필지
1위
김씨
132필지
2위
조씨
56필지
임씨
27필지
박씨
17필지
양씨
15필지
방씨
11필지
국유지
65필지
핵심 포인트
7. 국유지 65필지 — 이 수치가 자곡동에서 의미하는 것
자곡동 1912년 기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숫자 중 하나가 국유지 65필지다. 전체의 약 10%가 국가 소유였다. 이건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다른 동네들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오곡동(6필지), 창천동(국유지 없음), 천연동(소규모)과 달리 자곡동은 국유지 비중이 꽤 높다.
왜 자곡동에 국유지가 65필지나 있었을까. 조선 말기부터 자곡동 일대에 국가가 관리하는 토지가 있었다면, 왕실 관련 농장이나 관아 소유 전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1912년 당시 일제가 조선 왕실 소유지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편입된 토지일 수 있다. 이 65필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자곡동 지표조사에서 흥미로운 연구 과제다.
자곡동 공공·공유 토지 현황
65필지
국유지
9필지
마을 공유지
18필지
법인 소유지
국유지 65필지, 마을 공유지 9필지, 법인 소유지 18필지를 합치면 92필지. 전체의 상당 부분이 개인이 아닌 공공 또는 단체 소유였다. 특히 국유지 65필지는 자곡동이 단순한 농촌 마을을 넘어 국가 또는 왕실과 연결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8. 마을 공유지 9필지와 법인 18필지
마을 공유지 9필지. 개인이 아닌 마을 공동체가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던 땅이다. 마을 회의가 열리고, 공동 행사가 진행되고, 마을의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던 공간. 이 9필지에서 마을 공동체의 집단적 생활 유구가 발굴될 수 있다.
법인 소유지 18필지. 자곡동의 법인 소유지는 대부분 사찰이나 서원 같은 종교적·교육적 기관의 소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강남구 일대에는 조선시대 사찰 터나 서원이 있었던 기록들이 있다. 법인 소유 18필지가 어떤 기관과 연결된 땅이었는지를 파악하면, 자곡동의 종교·교육 역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9필지
마을 공유지
마을 회의, 공동 행사, 집단 생활 공간
18필지
법인 소유지
사찰·서원 등 종교·교육 기관 추정
65필지
국유지
왕실 농장 또는 관아 소유 전답 추정
9. 문화재 지표조사, 강남 농촌의 층위를 읽는 방법
자곡동처럼 이씨·김씨 이중 중심, 국유지 65필지, 사사지·지소·분묘가 공존하는 복합적 구조를 가진 마을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는 어떻게 접근할까.
첫 단계는 역사 기록 분석이다. 국유지 65필지가 어느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는지, 이씨와 김씨의 경계 구역이 어디인지, 사사지와 분묘지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한다. 각 구역마다 나올 수 있는 유물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 분석이 발굴의 방향을 결정한다. 현장 답사에서는 지금의 자곡동 지형에서 골짜기 지형의 흔적을 찾고, 지소가 있었던 구역의 습지성 지형 변화를 관찰한다.
STEP 1
지표조사
기록·현장
비파괴 분석
STEP 2
표본조사
2% 이내
탐색 발굴
STEP 3
시굴조사
10~20%
예비 발굴
STEP 4
정밀 발굴
면 단위
전면 기록
STEP 5
기록·보존
보고서·전시
역사 활용
성공 사례 01
청담동 인근 — 강남 논밭 아래 조선시대 도로 흔적
자곡동 인근 강남구 청담동 일대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일제강점기 이전의 도로 흔적과 주거지 터가 발굴된 사례가 있다. 1912년 논밭 지대였던 강남구에서 이런 발견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자곡동의 논밭 아래에도 조선시대 유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공 사례 02
장지동 청동기시대 집터 — 강남 농경지 아래 수천 년
같은 강남구권인 장지동에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거쳐 청동기시대 집터가 발굴된 사례는 강남구 일대 농경지 아래에 얼마나 오래된 시간이 잠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곡동의 논밭 아래에도 조선시대를 넘어 더 오래된 문화층이 있을 수 있다.
성공 사례 03
종로구 인사동 — 국유지 구역에서 관청 관련 유구 발굴
서울 도심 국유지 구역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관청 건물의 기단석과 관용 도기류가 출토된 사례가 있다. 자곡동의 65필지 국유지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왕실 관련 또는 관아 관련 유구가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10. 강남, 화려함 너머의 역사적 깊이
강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빌딩과 고급 아파트를 떠올린다. 하지만 자곡동 1912년 기록은 강남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 역사를 가진 땅인지를 보여준다. 이씨와 김씨가 나란히 논을 갈고, 사당에서 함께 제를 올리고, 골짜기 연못가에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공간이 지금의 강남이다.
강남의 개발은 이미 되었지만, 아직 손이 닿지 않은 구역에서, 또는 재건축이 이루어질 때마다 이 땅의 과거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국유지 65필지의 정체, 이씨와 김씨 두 가문이 경계를 이루던 구역, 사사지와 지소가 있었던 자리. 이 모든 곳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에 지표조사를 의뢰하는 것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첫 걸음이다. 강남구를 포함한 서울 전 지역의 조사를 담당하며, 조사 설계부터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자곡동 골짜기 어딘가에
이씨 가문이 선산을 돌보고,
김씨 가문이 사사지에서 제를 올리고,
마을 사람들이 지소에서 물을 긷던
그 시간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강남의 화려함 너머,
그 깊은 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이 도시는 진짜로 살아있는 공간이 됩니다.
그 기억을 시작하는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강남구를 포함한 서울 전 지역 — 지표조사부터 발굴,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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