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912년 은평구 진관내동, 그리고 그 땅 위에 펼쳐진 이야기

은평구 진관내동. 지금은 조용한 주택가이지만, 1912년 그곳은 무려 572필지에 달하는 1,355,467㎡의 땅 덩어리였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수백 개의 논, 밭, 집터, 산과 무덤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죠.

ree


논, 밭, 그리고 삶의 터전


224필지 883,878㎡의 논이 펼쳐진 진관내동. 햇살이 반짝이는 들판에는 농부의 구슬땀과 함께 쌀이 자라났습니다.

264필지, 367,400㎡의 밭에는 온갖 채소와 곡식이 자라나며 주민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채웠습니다.

한 땅에선 잡종지 1필지 280㎡, 사사지 1필지 33㎡가 속삭이는 듯했고, 5필지 43,510㎡의 임야는 숲의 속삭임을 품고 있었습니다.




집과 무덤 - 삶과 그 너머


73필지 52,644㎡의 집터엔 가족들의 웃음과 일상이 스며 있었고,

3필지 3,266㎡의 분묘지에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숨결이 고요히 남아 있었습니다.




땅을 가진 사람들


이곳 땅의 주인은 대체 누굴까요? 수백 필지를 소유한 김씨(120필지), 이씨(118필지)를 시작으로

박씨(42필지), 정씨(34필지), 공(28), 서(24), 장(23), 변(22), 최(15), 오(12), 모·윤(각11) 씨 등 다양한 성씨가 밭과 논, 집터를 나눠 가졌습니다.

그림 같은 풍경 뒤엔 그렇게 뿌리 깊은 가족의 삶과 땅의 기운이 자리 잡고 있었죠.




국유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땅


10필지의 국유지와, 37필지에 걸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지는

당시 조선이 겪고 있던 정치적, 경제적 흐름까지 담고 있습니다.

토지 소유 구조는 단순한 지리적 구획을 넘어 깊은 역사적 맥락을 품고 있었습니다.




진관내동 땅 위, 생생히 살아 있는 1912년의 하루


앞으로 펼쳐질 당신의 문화재발굴,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 혹은 발굴조사를 떠올려 보세요.

이곳 진관내동, 1912년의 그 땅 위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가족이 집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무덤 곁에 놓인 돌 하나도, 국유지와 회사 소유 땅에 깃든 이야기 하나도

모두 발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 – 지금의 발견


최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은평구 인근 지역의 110년 전 논두렁 유구를 발견해

당시 농업생활상을 재현한 적이 있습니다.

수확철마다 논 사이에 설치했던 작두농장 유적은

그 시절 주민이 직접 만들었을 도구와 생활 흔적을 보여줬죠.

이제 진관내동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동(動) 이야기’를 찾고 싶지 않나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의 다음 발굴·지표·시굴·표본조사 의뢰지는 바로 이 평화로운 과거의 현장일지도 모릅니다.

그 땅 위에선 이미 수많은 삶이 숨 쉬고 있고,

단 한 삽으로 110년 전 이야기가 세상빛을 볼 수도 있습니다.





글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댓글

별점 5점 중 0점을 주었습니다.
등록된 평점 없음

평점 추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