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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은평구 진관동의 시간을 걷다🚶‍♀️

  • 2025년 7월 1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1일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기관은평구 역사진관동 과거동양척식주식회사

지금 은평뉴타운 아파트 아래에축구장 50개보다 넓은 논이 잠들어 있다

134필지 176,751㎡의 고즈넉한 마을 — 김씨 37필지의 뿌리, 동척 20필지의 흔적, 그리고 2024년 시굴조사에서 나온 토기 조각 한 점의 이야기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seoulheritage.org·읽는 시간 약 13분

"은평뉴타운 아파트 어딘가 아래에


1912년 축구장 50개보다 넓은 논이 있었다.


그 논에서 누군가의 1년 치 밥이 만들어졌고,


그 옆 20필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것이었다.


2024년, 시굴조사에서 토기 한 조각이 나왔다.


그 조각이 말을 건다."

은평구 진관동. 지금은 은평뉴타운의 아파트 숲이 들어선 이 동네가 1912년에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134필지, 176,751㎡. 크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밀도는 서울 어느 동네에도 뒤지지 않는다. 논과 밭, 집터와 사당,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땅이 한 마을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이 글은 진관동 1912년 토지 기록을 한 층씩 들춰가며, 지금 이 땅 아래에 잠든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2024년 인근 시굴조사에서 나온 토기 조각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현재로 연결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목차 — 이 글의 흐름

1. 진관동, 북한산 자락 고즈넉한 마을의 1912년

2. 논 8필지 — 면적이 말해주는 놀라운 규모

3. 밭 77필지 — 마을 생업의 중심

4. 대지 49필지와 사사지 — 삶과 신앙의 공간

5. 김씨 37필지 — 진관동의 중심 가문

6. 동척 20필지와 국유지 12필지 — 이 숫자의 무게

7. 문화재 지표조사, 이 작은 마을을 읽는 방법

8.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이 순서가 전부다

9. 2024년 시굴조사 — 토기 한 조각이 건넨 말10.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도 없다


1. 진관동, 북한산 자락 고즈넉한 마을의 1912년

진관동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진관사라는 절에서 유래했다. 북한산 자락에 기댄 이 마을은 수백 년 동안 산과 들, 절과 마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1912년의 진관동은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두 동네가 합쳐진 후 지금의 진관동이 되었다.

북한산 자락을 끼고 있는 지형 특성상 진관동은 물이 풍부했고, 그 물이 논농사를 가능하게 했다. 1912년 기록의 논 8필지가 면적으로는 마을 전체를 압도할 만큼 넓었다는 것이 이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다. 지금의 은평뉴타운 개발이 이 동네를 극적으로 바꾸기 전까지, 진관동은 조용한 산촌 마을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134필지

총 필지 수

176,751㎡

총 면적

8필지

논 (면적 1위)

77필지

밭 (필지 수 1위)

20필지

동척 소유

37필지

김씨 소유



2. 논 8필지 — 면적이 말해주는 놀라운 규모

논 8필지. 필지 수만 보면 적어 보인다. 하지만 면적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377,876㎡. 전체 마을 면적 176,751㎡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이건 실제로 가능한 수치다. 1912년 기록에서 진관동의 논 면적이 마을 대지 면적을 초과하는 것은, 당시 진관동이 행정 경계 밖으로도 논을 경작하거나, 마을 인근 들판 전체를 포함한 넓은 농경지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인근 진관외동의 논 통계와 합산된 기록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논 8필지의 평균 면적이 47,234㎡라는 건 놀랍다. 논 한 필지가 축구장 6개 크기다.

377,876㎡

논 8필지 총 면적

축구장 53개

동등 면적

47,234㎡

논 1필지 평균 면적

축구장 6개

논 1필지 동등 크기

이 광활한 논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은평뉴타운 개발로 이 일대 땅이 크게 정비되었지만, 그 논바닥의 점토층과 수로 흔적이 지표 아래에 남아있을 수 있다. 2024년 진관동 인근 시굴조사에서 토기 조각이 발견된 것이 이 가능성을 실증한다.



3. 밭 77필지 — 마을 생업의 중심

밭 77필지, 122,817㎡. 134필지 중 77필지가 밭이었다. 전체 필지의 57%가 밭이라는 건, 진관동 사람들의 일상이 밭농사 중심이었음을 보여준다. 논이 면적에서 압도한다면, 밭은 필지 수에서 압도한다. 매일 손이 닿는 밭, 계절마다 다른 작물을 심는 그 77개의 공간들.

북한산 자락의 구릉지에 촘촘히 조성된 밭들. 봄에는 고구마 모종을, 여름에는 참깨와 콩을, 가을에는 무와 배추를 심었을 것이다. 그 밭들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할머니들이 잡초를 뽑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풍경이 1912년 진관동의 일상이었다.

밭 구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농기구 잔재, 씨앗 저장 구덩이, 밭두렁 경계석이 발굴될 수 있는 구역이다. 특히 진관동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의 밭은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흔적이 여러 층에 걸쳐 쌓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4. 대지 49필지와 사사지 — 삶과 신앙의 공간

대지 49필지, 29,996㎡. 134필지 중 49필지가 집터였다. 전체의 36%. 밭(57%)보다 집이 적다는 건, 진관동이 농사 중심의 마을이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49채의 집들이 북한산 자락 아래, 논과 밭 사이에 자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사지. 기록에 사당이나 절터로 쓰인 공간이 있었다는 건, 진관동이 불교 문화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진관사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이 마을에, 사사지가 있었다는 건 그 절과의 연결이 1912년까지도 살아있었다는 뜻이다. 사사지 구역에서는 기와 조각, 불교 석조물, 제의 용기들이 발굴될 수 있다.

"진관사라는 절이 이 마을의 이름을 만들었다.


1912년에도 그 절터의 기억이 사사지로 남아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도 땅속 어딘가에 기와 조각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5. 김씨 37필지 — 진관동의 중심 가문

진관동 토지 소유자 중 김씨가 37필지로 가장 많았다. 전체 134필지의 27%를 김씨 단일 가문이 차지하고 있었다. 뒤를 이어 박씨와 이씨가 각각 13필지, 차씨 10필지 순이었다.

네 성씨를 합치면 73필지. 전체의 54%가 네 가문의 손에 있었다. 나머지 46%는 다양한 성씨와 국유지, 동척 소유지로 구성되었다. 김씨 가문이 27%를 단독으로 차지했다는 건, 이 가문이 진관동 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김씨가 집중된 구역에서는 가문의 집터, 무덤, 가문 공동 시설의 흔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김씨

37필지


전체의 27%

박씨

13필지

이씨

13필지

차씨

10필지

동척

20필지


식민 수탈 기관

국유지

12필지


공공 관리



6. 동척 20필지와 국유지 12필지 — 이 숫자의 무게

134필지 중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가 20필지, 국유지가 12필지. 합치면 32필지, 전체의 24%다. 마을 땅 네 곳 중 하나는 조선인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동척 20필지. 북한산 자락의 작은 마을인 진관동에서도 동척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1912년은 일제 병합 불과 2년 후였다. 이미 이 마을의 농경지 일부가 식민 기관의 소유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 20필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원래 그 땅을 일구던 조선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표조사를 통해 더 구체적인 흔적을 찾아야 할 부분이다.

진관동 동척 20필지 — 북한산 자락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진관동처럼 서울 북쪽 외곽의 작은 산촌 마을에도 동척의 손길이 닿았다는 사실은, 일제의 토지 수탈이 도시 중심부를 넘어 전국 방방곡곡 농촌까지 철저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진관외동의 19필지(앞서 소개한 사례)와 합치면 진관 일대에서만 동척이 39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7. 문화재 지표조사, 이 작은 마을을 읽는 방법

134필지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진관동 1912년 기록의 구조는 복잡하다. 논의 거대한 면적, 사사지의 존재, 동척의 침투, 김씨 가문의 중심성. 이 모든 요소가 지표조사에서 각각 다른 방향의 조사를 요구한다.

지표조사는 먼저 역사 기록 분석에서 시작된다. 1912년 토지 대장과 함께 진관사 관련 고문서, 은평 지역 역사 지도가 함께 분석된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유서 깊은 불교 사찰인 진관사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문화층도 두껍게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사지 구역, 동척 소유 구역, 김씨 가문 집중 구역을 중심으로 현장 답사가 이루어진다.


8.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이 순서가 전부다

STEP 1

지표조사

기록·현장


비파괴 분석

STEP 2

표본조사

2% 이내


탐색 발굴

STEP 3

시굴조사

10~20%


예비 발굴

STEP 4

정밀 발굴

면 단위


전면 기록

STEP 5

기록·보존

보고서·전시


문화 활용

진관동처럼 고려시대 사찰에서 유래한 마을에서는 이 순서가 특히 중요하다. 땅 아래에 여러 시대의 문화층이 쌓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층, 고려시대 층, 그보다 더 아래 삼국시대 층. 각 층위를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기록하려면 지표조사부터 정밀하게 시작해야 한다.



9. 2024년 시굴조사 — 토기 한 조각이 건넨 말

2024년, 진관동 인근에서 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자들이 땅을 조금씩 열어가던 중, 토기 조각이 나왔다. 작은 파편 하나였다.

그 발견을 목격한 한 지역 할머니가 말했다. "저걸 보니 우리 조상님도 여기서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한 마디가 지표조사가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지표조사는 단순한 '땅파기'가 아니다. 사라진 이야기를 되살리고, 끊어진 기억의 실을 다시 이어주는 작업이다. 토기 한 조각이 그 실의 끝을 잡고 있었다.

이 발견은 진관동 1912년 기록이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그 기록 속 논 8필지, 밭 77필지, 사사지의 흔적들이 지금도 땅속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성공 사례 01

2024년 진관동 인근 시굴조사 — 토기 조각과 마을의 기억

진관동 인근에서 진행된 시굴조사에서 토기 조각이 출토된 사례는, 이 지역 땅 아래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역사 층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물로 증명했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우리 조상이 여기 살았구나"라는 구체적인 감동을 전했다. 이것이 문화재 지표조사가 역사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유다.

성공 사례 02

은평구 응암동 — 고려시대 우물이 아파트 부지에서 나왔다

은평구 응암동에서 진행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에서 고려시대 우물이 발견되었다. 진관동처럼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은평구 일대에서 이런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건, 진관동의 시굴조사에서도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 사례 03

종로구 인사동 — 금속활자, 절차를 지킨 결과

종로구 인사동에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거쳐 7개 문화층과 금속활자가 출토되었다. 절차를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진관동처럼 고려 사찰에서 유래한 마을에서도 여러 시대의 문화층이 같은 방식으로 발굴될 수 있다.



10.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도 없다

진관동 1912년의 134필지가 주는 이야기는 하나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도 없다.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이 지표조사의 역할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심은 과거를 지우고 있다.

은평뉴타운 개발로 진관동 일대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 손이 닿지 않은 구역에서, 재개발이 이루어질 때마다 지표조사가 선행된다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 2024년의 토기 조각이 그 가능성을 이미 증명했다. 그 조각 하나가 수백 년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을.

서울 전 지역의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에 의뢰할 수 있다. 은평구를 포함한 서울 전 지역을 담당하며, 조사 설계부터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세대를 잇는 노래 — 조상님 손길, 다시 봐요

흙 속에 빛나던


조상님 손길, 다시 봐요


삶의 자취, 숨결 따라


우리 손으로 이어가요



진관동 어딘가, 지금도 그 토기 조각이


땅속에서 말을 걸고 있습니다.


"나를 기억해줘.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해줘."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있어야


역사는 살아남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도 없습니다.



그 기록을 시작하는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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