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땅의 기록, 1912년 은평구 진관외동에서 시작하다
- 2025년 7월 28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1일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기관은평구 역사서울 문화유산1912년 토지기록
서울 끝자락 마을에 논 159필지와 동척 땅 19필지가 있었다— 은평구 진관외동 1912년의 두 얼굴
489필지 796,446㎡의 광활한 기록이 말해주는 농촌 공동체의 온기, 그리고 식민지 수탈의 흔적 —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꺼내는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seoulheritage.org·읽는 시간 약 14분
"서울 북한산 자락, 지금은 아파트와 뉴타운이 들어선 이 땅에
100년 전 이씨 가문이 무려 160필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9필지를 조용히 차지하고 있었다.
이 두 이야기가 같은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진관외동은 2007년 행정구역 통합으로 은평구 진관동이 되었지만, 1912년 그 땅의 기록은 지금도 살아있다. 489필지, 796,446㎡. 축구장 약 112개를 합친 면적. 서울 북서쪽 끝자락, 북한산 자락에 펼쳐진 이 광활한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이 글은 그 기록을 한 층씩 벗겨가며, 왜 지금 이 땅에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역사책이 아닌, 지금 우리 발밑에서 벌어지는 살아있는 이야기다.
목차 — 이 글의 흐름
1. 진관외동, 서울 북쪽 끝에서 발견한 1912년
2. 논 159필지, 밭 255필지 — 거대한 농촌 공동체
3. 집터 59필지 — 북한산 아래 살았던 사람들
4. 무덤 10필지, 사사지 2필지 — 삶과 신앙의 흔적
5. 동척 19필지 — 조용하지 않은 19개의 땅
6. 이씨 160필지 — 이 마을을 지배한 성씨의 이야기
7. 문화재 지표조사, 이 땅을 읽는 가장 정직한 방법
8.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이 순서가 모든 것이다
9. 성공 사례 — 진관외동처럼 역사가 땅속에서 돌아온 순간들
10. 당신의 땅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가
1. 진관외동, 서울 북쪽 끝에서 발견한 1912년
진관외동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에서도 가장 자연과 가까운 동네 중 하나였다. 1912년, 이 땅은 지금의 뉴타운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훨씬 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489필지, 796,446㎡. 이 광활한 면적은 서울 도심의 작은 동네들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다.
은평구는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혈연 씨족 공동체가 모여 농경과 수렵을 하며 살아온 이 지역에, 1912년의 기록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가 교차하던 시점의 생생한 단면을 보여준다. 백제,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수천 년의 역사가 층층이 쌓인 이 땅의 기록이 문화재 발굴 기관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료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진관동(구 진관외동)을 걷다 보면 은평뉴타운의 현대적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건물들 아래, 그 포장도로 아래에 1912년의 논과 밭, 무덤과 사당이 잠들어 있을 수 있다. 그 잠을 깨우는 것이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다.
489필지
총 필지 수
796,446㎡
총 면적
159필지
논
255필지
밭
19필지
동척 소유
160필지
이씨 소유

2. 논 159필지, 밭 255필지 — 거대한 농촌 공동체
논 159필지, 377,876㎡. 밭 25sp5필지, 322,348㎡. 이 두 숫자를 합치면 진관외동 전체 면적의 87%가 넘는다. 이건 단순한 농경지 통계가 아니다. 이 땅 전체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농촌 공동체였다는 이야기다.
논과 밭을 필지 수로 비교하면 밭이 많고, 면적으로 비교하면 논이 더 크다. 즉, 논 한 필지의 평균 면적이 밭보다 훨씬 넓었다는 뜻이다. 북한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한 넓은 논, 그리고 산기슭 곳곳에 조성된 작은 밭들.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가 이 숫자 뒤에 담겨 있다.
이 광활한 농경지가 문화재 조사의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가 있다. 논과 밭은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은 공간이다. 농기구의 흔적, 수리시설의 잔재, 밭두렁 구조물, 그리고 농부들이 쉬어가던 작은 구조물들이 지표 아래에 남아있을 수 있다. 이런 농경 유적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 기술과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밭
255필지 / 322,348㎡
논
159필지 / 377,876㎡
대지
59필지 / 67,454㎡
분묘지
10필지 / 10,819㎡
사사지
2필지 / 10,019㎡
임야
3필지 / 7,646㎡

3. 집터 59필지 — 북한산 아래 살았던 사람들
59필지, 67,454㎡의 대지. 489필지 중 59필지만이 집이 있는 땅이었다. 비율로 보면 전체의 약 12%에 불과하다. 나머지 88%는 논과 밭, 무덤, 임야로 채워져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농사짓는 땅이 압도적으로 많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이다.
59채의 집. 북한산 자락에 기대어 지어진 그 집들에서, 봄이면 씨앗을 준비하고 가을이면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좁은 집터에 옹기종기 모인 한옥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 공동 우물을 중심으로 모이던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진다.
대지 구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항상 주목을 받는다. 온돌 구조물, 기단석, 우물, 창고 흔적들이 지표 아래에 보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9채의 집이 남긴 흔적들이 지금도 진관동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수 있다.
4. 무덤 10필지, 사사지 2필지 — 삶과 신앙의 흔적
분묘지 10필지, 10,819㎡. 사사지 2필지, 10,019㎡. 두 면적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무덤과 사당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이 땅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건, 진관외동 공동체가 조상 숭배와 신앙 의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산기슭을 따라 조성된 무덤들. 계절마다 제사를 지내러 찾아오는 후손들. 사당에서 공동체가 함께 기원하던 의식들. 이런 삶의 방식이 1912년 이 땅의 기록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분묘지와 사사지 구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조사 대상이다. 부장품, 묘비 관련 석재, 제의 용기, 불교 석조물 등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0필지의 무덤, 2필지의 사당.
이 공동체는 살아서 논을 갈고, 죽어서 산에 묻히며,
함께 사당에서 기원했다.
그 완결된 삶의 순환이 지금도 이 땅 아래에 있다."

5. 동척 19필지 — 조용하지 않은 19개의 땅
동양척식주식회사, 동척. 이 이름이 진관외동 토지 대장에 등장한다. 19필지. 조용해 보이는 숫자지만, 이 19필지가 가진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동척은 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표면적으로는 '동양 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비옥한 땅을 일본인에게 이전하기 위한 핵심 도구였다. 진관외동에서 이 기관이 19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건, 서울 북쪽 외곽의 농경지도 식민 수탈의 손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척 소유지에서는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관련 유구, 당시 일본식 농업 방식의 흔적, 수탈과 관련된 시설물의 잔재가 확인될 수 있다. 불편한 역사일수록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과거를 대하는 올바른 방식이고, 미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란?
1908년 일제가 설립한 식민지 경제 수탈 기관. 조선 전역의 비옥한 농경지를 매수 또는 강제 취득하여 일본인 농업 이민자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했다. 진관외동의 19필지는 그 수탈의 구체적인 흔적이다.
6. 이씨 160필지 — 이 마을을 지배한 성씨의 이야기
1912년 진관외동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성씨는 이씨였다. 무려 160필지. 전체 489필지의 32%가 이씨 소유였다. 김씨가 96필지로 그 뒤를 따랐고, 최씨 46필지, 오씨와 정씨가 각각 21필지, 박씨 17필지, 전씨 12필지, 윤씨 11필지 순이었다.
이씨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건 단순한 토지 통계가 아니다. 이씨 가문이 진관외동 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종중이 있었을 수 있고, 이씨 문중 사당이나 종중 묘지가 이 구역 어딘가에 자리했을 수 있다. 문화재 발굴 기관들이 소유자 분포를 분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소유 패턴이 발굴 방향의 나침반이 된다.
이씨
160필지
전체의 32%
김씨
96필지
두 번째
최씨
46필지
오씨
21필지
정씨
21필지
박씨
17필지
전씨
12필지
윤씨 외
11필지 외 기타

7. 문화재 지표조사, 이 땅을 읽는 가장 정직한 방법
489필지의 진관외동. 논과 밭이 87%를 차지하고, 무덤과 사당이 있으며, 동척의 수탈 흔적이 남아있는 이 땅. 이런 복잡한 역사 구조를 가진 지역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출발점은 항상 역사 기록 분석이다. 1912년 토지 대장처럼 당시의 지목, 소유자, 면적 정보를 분석해 어느 구역에서 무엇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지를 먼저 파악한다. 이씨 가문이 집중된 구역은 종중 관련 유구가 나올 수 있고, 분묘지 구역은 부장품이, 사사지 구역은 불교 석조물이 발굴될 수 있다.
그 다음은 현장 답사다. 지표면에 드러난 기와 조각, 돌무더기, 경계석, 지형 변화 등을 관찰하면서 역사 기록과 대조한다. 이 두 단계의 분석이 완료되면, 어느 구역에서 시굴조사를 진행할지 결정된다. 지표조사는 땅을 파지 않고도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비파괴적이고 가장 정직한 첫 단계다.
8.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이 순서가 모든 것이다
STEP 1
지표조사
문헌·현장 분석
비파괴 방식
STEP 2
표본조사
면적 2% 이내
초기 탐색
STEP 3
시굴조사
10~20% 범위
예비 발굴
STEP 4
정밀 발굴
면 단위 전면
기록·발굴
진관외동처럼 광활한 농경지와 복잡한 소유 구조, 동척이라는 역사적 변수까지 있는 지역에서 이 순서는 더욱 중요하다. 한 곳에서 논 유적이 나오고, 다른 곳에서 동척 관련 시설 흔적이 나오고, 또 다른 곳에서 이씨 종중 사당 유구가 확인될 수 있다. 각각의 구역마다 다른 성격의 유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표조사로 먼저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은평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이 절차가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진관동 일대에서 이루어질 개발에서 이 순서가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9. 성공 사례 — 진관외동처럼 역사가 땅속에서 돌아온 순간들
성공 사례 01
은평구 응암동 — 고려시대 우물이 아파트 부지에서 나왔다
은평구 응암동에서 진행된 지표조사에서 고지도와 문헌 분석을 통해 옛 마을터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려시대 우물이 발견되었고, 이 발견을 통해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과 기술 수준, 문화 양식이 구체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었다. 진관외동처럼 오랜 농촌 공동체가 있었던 지역에서 이런 발견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성공 사례 02
종로구 인사동 — 조선 전기 금속활자, 땅에서 돌아왔다
종로구 인사동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에서 체계적인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거쳐 진행된 정밀 발굴에서 7개의 문화층과 한글·한자 혼용 금속활자, 일성정시의가 출토되었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조선 전기 인쇄 기술을 실물로 증명한 역사적 발견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절차를 지켰기 때문이다. 진관외동의 489필지도 같은 절차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성공 사례 03
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 — 동척 관련 유구 확인
서울 내 재개발 현장에서 진행된 지표조사 결과, 1912년 토지 대장에 동척 소유로 기록된 구역에서 일제강점기 건물 기초, 경계석, 당시 농업 용수 시설의 흔적이 확인된 사례가 있다. 불편한 역사지만 그것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방식임을 보여준 사례다. 진관외동의 동척 19필지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10. 당신의 땅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가
진관동(구 진관외동)에 지금 살고 있거나, 이 동네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거나, 또는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면 이 질문을 한 번쯤 해봐야 한다. 내 땅 아래에 1912년 이씨 가문의 삶이 있었는가. 동척의 흔적이 있는가. 아니면 100년 전 농부가 심었던 씨앗의 흔적이 있는가.
문화재 지표조사는 이 질문에 답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포클레인이 땅을 파기 전에, 전문가가 먼저 이 땅을 읽어야 한다. 서울 전 지역의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에 의뢰할 수 있다. 조사 설계부터 보고서 작성, 관청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489필지 위에서 살아갔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 봄마다 논에 물을 대고, 무덤을 돌보고, 사당에서 기원하며 살아온 그 공동체의 기억.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들이 있다. 그 기억을 지키는 일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진관동 골목, 은평뉴타운의 어느 건물 아래에
이씨 가문 누군가가 갈던 논이 있었습니다.
동척이 빼앗아간 그 땅 어딘가에
이름 없는 농부의 땀이 스며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역사는 살아남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전 지역 문화재 조사 전문 — 은평구를 포함한 서울 각 지역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전 과정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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