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은평구 응암동, 그 땅에 흐르던 시간의 냄새를 기억하나요?
- 2025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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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월 12일
"여기가 서울이라고?"1912년 응암동엔 논이 출렁이고 있었다.
1912년 은평구 응암동 — 539필지, 120만㎡. 이씨·김씨가 일구던 논밭, 동양척식의 그림자, 그리고 조상의 무덤이 공존하던 마을
목차
1.응암동, 그 시절의 이야기 — 1912년으로의 시간 여행
2.논밭과 집 — 옛 응암동의 풍경
3.응암동 사람들 — 성씨로 본 땅의 주인들
4.분묘지와 임야 — 조상의 흔적과 자연의 품
5.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27필지
6.지금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7.서울 문화유산 시굴조사의 중요성
8.마무리 — 그 땅에 흐르던 시간의 냄새
1. 응암동, 그 시절의 이야기 — 1912년으로의 시간 여행

서울이라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시절, 지금의 은평구 응암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기가 서울이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졌던 그 땅. 응암역이나 증산로를 걷다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113년 전 이곳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총 필지 수
539필지
중규모 농촌 공동체
총 면적
1,200,000㎡+
대형 공원보다 넓은 땅
논 (면적 1위)
629,354㎡
183필지, 전체의 약 52%
밭
482,296㎡
273필지, 두 번째 규모
1912년 응암동은 총 539필지, 120만 제곱미터가 넘는 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팀이 분석한 토지조사부 기록을 따라 그 땅 안으로 들어가 보자. 땅의 용도 하나하나가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직결되던 시대, 논밭의 넓이, 집터의 위치, 무덤이 자리한 언덕까지. 모두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죽음, 희로애락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2. 논밭과 집 — 옛 응암동의 풍경
논
183필지
629,354㎡ · 52%
밭
273필지
482,296㎡ · 40%
대지
66필지
48,039㎡ · 4%
임야
11필지
35,229㎡ · 3%

응암동의 주인은 논이었다. 183필지, 629,354㎡. 전체의 52%가 넘는다. 이 시리즈 전체에서 손꼽히는 논 비율이다. 여름이면 물이 찰랑이는 논에 벼가 자라고,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마을 전체를 물들였다. 응암동 사람들의 삶은 이 논의 계절과 함께 흘러갔다.
밭은 273필지로 필지 수로는 논보다 많았다. 482,296㎡. 배추, 무, 고추, 마늘.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밭을 채우고, 그 수확이 시장으로 식탁으로 흘러들어갔다. 집터인 대지는 66필지, 48,039㎡로 전체의 4%에 불과했다. 사람보다 논밭이 훨씬 넓었던 시절, 집은 하루의 끝에 돌아와 쉬는 공간이었다.
3. 응암동 사람들 — 성씨로 본 땅의 주인들
이씨
152필지
김씨
130필지
박씨
33필지
천씨
31필지

응암동 토지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씨와 김씨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이씨가 152필지로 1위, 김씨가 130필지로 2위. 이 두 성씨만 합치면 전체 539필지의 53%를 넘는다. 응암동은 이씨와 김씨 두 가문이 중심을 이루고, 박씨 33필지, 천씨 31필지가 그 뒤를 받치는 구조였다.
그때는 "이장님 집", "김씨네 논"처럼 사람 이름이 곧 지역의 지도였다. 이씨 집안의 논 옆에 김씨 집안의 밭이 있었고, 박씨네와 천씨네는 그 사이사이에 터를 잡았다. 일손이 부족하면 서로 품앗이를 했고, 명절이면 마을 전체가 한데 모였다. 이씨 152필지와 김씨 130필지가 단순한 토지 면적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뼈대였던 것이다.
4. 분묘지와 임야 — 조상의 흔적과 자연의 품
분묘지
6필지
13,332㎡ — 조상을 기억하는 공간
임야
11필지
35,229㎡ — 자연 그대로의 숲
6필지, 13,332㎡의 분묘지.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응암동 어딘가의 야트막한 언덕에 조상의 무덤이 있었고,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그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묘지는 한 가문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가장 구체적인 물적 증거다. 이씨 집안의 묘인지, 김씨 가문의 묘인지. 그 분묘지가 어디였는지, 지금은 어떤 땅이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도 문화재 지표조사의 중요한 과제다.
임야는 11필지, 35,229㎡. 응암동의 작은 숲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을 구하러 오르고, 봄이면 산나물을 뜯던 곳. 아이들이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자연을 몸으로 배우던 공간. 이 임야의 위치가 지금 어떤 시설과 이어지는지 추적하는 것도 응암동의 자연 역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5.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27필지

응암동 토지 기록에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27필지. 이 작은 숫자가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 수탈을 위해 설립한 국책 회사다. 조선 농민들의 땅을 헐값에 매입하거나 강제로 빼앗아 일본 자본에 넘기는 역할을 했다. 응암동의 27필지는 이씨·김씨가 일구던 논밭 사이에 식민지 수탈의 손길이 뻗쳐 있었다는 증거다. 아무리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도 그 시절 그 그림자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응암동의 이씨가 152필지, 김씨가 130필지를 소유하던 그 땅 어딘가에, 동척의 27필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27필지에서 일하던 조선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한 땅의 결실을 온전히 가져가지 못했다. 증산동(28필지), 오금동(38필지), 연희동(32필지)에 이어 응암동에서도 반복되는 이 숫자들이, 당시 조선 전역을 덮쳤던 수탈의 규모를 말해준다.
6. 지금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 시절 응암동 사람들은 아마 몰랐겠지. 자신들이 일구던 논밭이, 조용한 묘지가, 풀 한 포기 흔들리던 임야가 1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가 궁금해하고 찾아보는 문화유산이 될 줄은요.
이씨 152필지의 벼이삭이 고개 숙이던 그 가을, 김씨 집안의 밭에서 배추를 뽑던 그 새벽, 동척 27필지의 경계선 앞에서 마음 무거웠을 그 겨울. 이 모든 기억이 응암동 땅 아래 켜켜이 쌓여 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 우리는 어떤 땅을 남기고, 어떤 기억을 새겨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답이 문화재 지표조사다.
7. 서울 문화유산 시굴조사의 중요성

응암동처럼 논이 52%를 차지하고, 이씨·김씨 두 가문이 절반 이상의 땅을 소유했으며, 동척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진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의 관점에서 여러 층위의 가치를 가진다. 농경 문화의 두터운 층위, 두 지배 가문의 생활 유물 가능성, 분묘지 6필지의 고고학적 가치, 그리고 동척 토지 27필지의 근대 역사 유적 가능성까지.
서울 문화유산 시굴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응암동처럼 잊힌 마을의 기억을 찾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문화 작업이다.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는 삽을 들고 시간을 파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 땅에 대한 예의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분묘지 6필지와 동척 소유지 27필지는 별도의 문화유산 검토 가치가 있다. seoulheritage.org 또는 e-minwon.go.kr에서 은평구 지역 조사 의뢰 가능.
8. 마무리 — 그 땅에 흐르던 시간의 냄새

한 장의 지도와 몇 줄의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씨 152필지, 김씨 130필지. 그들이 일구던 629,354㎡의 논이 지금은 응암동 주택가 아래 잠들어 있다. 동척 27필지의 아픔도, 분묘지 6필지에 잠든 조상의 기억도 모두 그 아래에 있다.
서울의 유산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이어진 이야기다. 우리가 걷는 응암동 골목이, 누군가의 논두렁이었을 수 있고, 아파트 지하주차장 아래 이씨 가문의 집터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땅을 파기 전에 한 번쯤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 이 도시와 이 역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은평구 관할 문화재 문의 → 은평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응암동, 이씨 어른이 논두렁을 걷던 그 가을.김씨 집안이 밭에서 배추를 뽑던 그 새벽.그 시간의 냄새가 지금도 이 땅 아래 남아 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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