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서초구 잠원동, 한강을 품은 밭마을의 기억
- 서울 HI
- 11월 12일
- 3분 분량
목차
프롤로그 – 강변에서 피어난 삶의 결
1912년 잠원동의 땅, 숫자로 읽는 이야기
논과 밭, 그리고 집터가 들려주는 생활상
잠원동 사람들 – 김씨의 마을과 무덤의 기억
일본인 토지 소유의 시작, 시대의 그림자
한강가 마을에서 도시로, 잠원동의 변천사
에필로그 – 밭에서 도시로 이어진 유산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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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프롤로그 – 강변에서 피어난 삶의 결
한강이 유유히 흐르던 1912년,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은 아직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오늘날 고층 아파트와 화려한 도로로 가득한 이 땅이, 불과 한 세기 전에는 흙내와 땀냄새로 가득한 밭이었음을 믿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재발굴을 통해 드러난 잠원동의 옛 모습은, 이곳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리듬으로 살아가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땅에는 농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강바람을 따라 흙먼지가 일며 계절의 색이 바뀌던 풍경이 있었다.
1912년 잠원동의 땅, 숫자로 읽는 이야기
1912년 당시 서초구 잠원동은 총 142필지, 면적은 959,587㎡였다.
이는 지금의 압구정에서 반포까지 이어지는 한강 남단의 거대한 농경지대였다.
그중 밭이 94필지, 826,621㎡로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대지는 31필지, 65,917㎡, 논은 11필지, 34,115㎡, 임야는 4필지, 28,628㎡, 분묘지는 2필지, 4,304㎡로 확인된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 자체로 당시 사람들의 삶의 결을 보여주는 생생한 문화재 기록이다.
잠원동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비단을 짜던 들판’이자 ‘물가의 넓은 원(原)’이었던 이곳은 농업과 생업이 공존하던 공간이었다.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에서도, 잠원동 일대는 농경 유적뿐 아니라 작은 취락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어 생활의 밀도가 높았던 마을임을 보여준다.
논과 밭, 그리고 집터가 들려주는 생활상
한강의 물줄기가 가까웠던 잠원동은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물길이 자주 바뀌고 지형이 낮아 홍수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둑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이용해 밭을 일구고, 조·수수·보리·콩 같은 건조 작물을 재배했다.
그 밭들 사이에는 31필지, 65,917㎡의 대지가 있었다.
이곳에는 흙벽집, 초가, 기와집이 뒤섞여 있었고, 마을 어귀에는 공동 우물이 자리했으며, 사람들은 해질 무렵 강둑에 모여 서로의 하루를 나누었다.
이러한 정경은 오늘날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생활유구—가마터, 우물, 담장 흔적 등—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단순히 땅을 일군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손길은 서울의 문화유적 형성과 직결되는 살아 있는 역사였다.
잠원동 사람들 – 김씨의 마을과 무덤의 기억
1912년 토지대장에 따르면 잠원동에는 김씨가 52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이 지역에 김씨 집안이 중심이 된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의 흔적은 오늘날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던 작은 분묘(2필지, 4,304㎡), 조선 후기의 도자기 조각, 생활 도구 파편 등은 모두 그들의 손길과 신앙을 증언한다.
한 필지의 무덤이 사라져도, 그곳에 묻힌 한 사람의 삶은 잠원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지금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일본인 토지 소유의 시작, 시대의 그림자
이 평화로운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왔다.
1912년, 잠원동에는 이미 4필지의 일본인 소유 토지가 있었다.
이는 일제강점 초기 일본인 자본이 한강 연안의 비옥한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 시기 한강 남단 일대는 도시 확장의 전초기지로 주목받았고,
특히 잠원동은 강변 제방 건설과 신작로 개설의 중심지였다.
이로 인해 마을 주민 일부는 경작지를 잃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땅 위에서 새로이 형성된 문화층은 오늘날의 잠원동 도시 구조의 기원이 되었다.
한강가 마을에서 도시로, 잠원동의 변천사
잠원동의 ‘밭’은 시간이 흘러 ‘거리’가 되었고,
‘논’은 ‘도로’로, ‘무덤’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현장에서 발견되는 도기 파편 하나, 기와 조각 하나는 여전히 당시의 숨결을 품고 있다.
서울의 도시 발달을 연구하는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는 잠원동을 서울 남부 도시 형성사의 주요 단서로 보고 있다.
특히 지표조사와 표본조사를 통해 한강변 제방 구조, 농경 흔적, 취락 잔해 등이 복합적으로 확인되면서
이 지역이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서울의 확장 전초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늘의 잠원동은 ‘강남’의 이름 아래 화려하게 변했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1912년의 밭이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화재 발굴을 통해 다시 세상 위로 올라오고 있다.
에필로그 – 밭에서 도시로 이어진 유산의 숨결
흙먼지 날리던 잠원동의 밭 한 켜 한 켜는 오늘의 도시를 떠받치는 근본이었다.
문화재발굴조사는 단지 유물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흔적을, 시간의 층을, 그리고 잊혀진 이야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지금 잠원동을 걷는다면,
화려한 아파트 숲 너머로 언젠가 밭을 갈던 농부의 땀과 노을빛이 겹쳐 보일지도 모른다.
그 기억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서울의 문화유산이다.
해시태그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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