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서대문구 현저동 토지 조사와 성씨별 소유 분석
- 서울 HI
- 8월 21일
- 3분 분량
목차
서론 – 1912년 토지조사의 의의와 연구 필요성
현저동의 공간적 범위와 총면적
주거 공간의 분포 – 대지 현황 분석
자연환경과 산지 – 임야의 기록과 활용
농업 기반 – 밭의 분포와 의미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과 사회 구조
시대적 배경 – 일제강점기 토지조사 사업과 현저동
문화유산 지표 조사와의 연결성
결론 – 오늘날 연구에 주는 함의

서론 – 1912년 토지조사의 의의와 연구 필요성
1912년, 서대문구 현저동은 단순한 동네가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당시 작성된 토지 관련 기록은 오늘날의 문화유산 조사와 지표 조사 연구에서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문화재 발굴이나 시굴조사가 진행될 때, 단순히 땅 속의 유물만이 아니라 그 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파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12년 현저동의 토지조사 자료는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사료로 자리 잡는다.
현저동의 공간적 범위와 총면적
1912년 당시 현저동의 총 면적은 126,314㎡였으며, 이는 105필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행정 구획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한 규모의 토지였다.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근대사의 상징적 공간이 자리했던 현저동은, 이미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저동의 토지 분포는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식민지 지배와 근대 도시화 과정의 영향을 함께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거 공간의 분포 – 대지 현황 분석
1912년 현저동에는 총 86필지의 대지가 존재했으며, 그 면적은 70,347㎡에 달했다. 이는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으로, 현저동이 단순한 농촌 지역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주거 밀집지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지는 곧 집이 들어선 공간이므로, 당시 현저동은 농업보다는 도시적 성격이 강한 마을로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자연환경과 산지 – 임야의 기록과 활용
기록에 따르면 현저동에는 단 1필지, 5,034㎡의 임야가 존재했다. 면적만 보더라도 이곳은 본격적인 산림 지대라기보다는 마을 주변의 작은 구릉이나 숲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임야는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라 연료나 목재 자원의 공급지였으며, 마을의 생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농업 기반 – 밭의 분포와 의미
당시 현저동에는 18필지, 50,932㎡의 밭이 있었다. 이는 대지와 함께 현저동 생활의 양 축을 형성하는 공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지 면적이 밭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농촌 마을이라면 밭과 논의 면적이 훨씬 넓었을 텐데, 현저동에서는 주거 공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현저동이 이미 도시화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서울 도심과 인접한 위치적 특성이 농업보다는 생활 중심지로 변모하게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과 사회 구조
1912년 현저동에는 다양한 성씨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김씨가 16필지, 이씨가 12필지, 장씨가 11필지, 조씨가 10필지를 보유했다. 이를 통해 당시 현저동 사회가 특정 대토지 소유자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여러 가문이 균형을 이루며 토지를 나누어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씨와 이씨는 서울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큰 기반을 가진 성씨로, 이들의 토지 소유는 단순한 경제적 활동을 넘어 지역 사회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 – 일제강점기 토지조사 사업과 현저동
1912년의 토지조사는 단순한 생활 기록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를 위한 토지조사 사업의 일환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토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근대적 지적도를 작성함으로써 토지세 부과, 소유권 정리, 나아가 토지 수탈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현저동의 사례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1912년 현저동의 토지 현황은 단순한 마을 단위의 기록을 넘어, 식민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지역 사회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문화유산 지표 조사와의 연결성
오늘날 문화재 발굴이나 시굴조사, 지표 조사를 진행할 때, 단순히 땅을 파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땅 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1912년 현저동의 토지 기록은 바로 그 맥락에서 활용될 수 있다. 주거지와 농경지의 분포, 임야의 존재 여부, 성씨별 토지 소유 양상은 곧 문화유산 조사에서 마을 구조와 생활 양식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결론 – 오늘날 연구에 주는 함의
1912년 서대문구 현저동의 토지조사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표 조사를 진행할 때 참고해야 할 역사적 근거다. 또한 특정 가문들이 어떤 방식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공동체를 형성했는지, 도시와 농업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학술적 통찰을 제공한다. 결국 이러한 조사는 단순히 땅의 과거를 밝히는 것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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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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