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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초구 반포동, 논밭과 무덤 사이에 숨은 서울의 뿌리를 찾아서

  • 2025년 10월 1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6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서초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1912년 반포의 흙냄새를 기억하나요 — 한강변 농경 심장부 반포동 607필지, 은씨·천씨·길씨가 살던 복합 공동체의 비밀

반포대교를 건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강이 보여. 그 강변에 113년 전에는 밭 364필지, 논 133필지가 펼쳐져 있었어. 이씨 163필지, 김씨 134필지. 그런데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어. 은씨, 천씨, 길씨. 그리고 프랑스인 3필지. 방배동, 사당동에 이어 이번엔 반포동에서도 프랑스 선교사의 흔적이 나왔어. 한강변 선교 벨트가 완성되고 있어.


목차

  • 사라진 들녘 위의 기억, 반포동의 1912년을 열다 — 프롤로그

  • 논밭과 임야가 품은 반포의 원형

  • 반포동 땅의 주인들 — 이씨·김씨, 그리고 잊힌 성씨들

  • 외국인의 발자국 — 일본인과 프랑스인의 흔적

  •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로 되살아난 반포의 시간

  • 성공적인 문화재 발굴 사례 — 한강변 유적지의 증언

  • 서울 속 발굴조사의 의미와 미래

  •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서울 유적발굴의 여정 — 에필로그


프롤로그사라진 들녘 위의 기억, 반포동의 1912년을 열다



1912년, 반포의 흙냄새를 기억하나? 그날의 반포동은 지금의 화려한 아파트 숲이 아니었어. 논과 밭, 그리고 이름 모를 무덤들이 한강을 바라보며 고요히 숨 쉬던 땅이었어. 바람에 흙이 흩날리고, 소의 발자국이 논두렁을 따라 이어지던 그 길 위에서 서울의 원형이 시작되고 있었어.

반포라는 이름은 강가에 있는 넓은 들판을 뜻해. 그 이름처럼 1912년의 반포는 서울 남단의 광활한 평야였어. 봄이면 논두렁마다 모내기 소리가 들리고, 여름이면 벼가 물결쳤어. 그러나 이 땅은 단순한 농지 그 이상이었어. 그곳에는 조상들의 흔적이, 마을 공동체의 삶이, 그리고 시대의 상처가 함께 묻혀 있었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가 그 기억을 다시 꺼내고 있어.


1논밭과 임야가 품은 반포의 원형



1912년 반포동에는 논이 133필지 471,893제곱미터, 밭이 364필지 1,818,018제곱미터였어. 전체 면적 2,843,341제곱미터에서 밭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야. 이 지역은 한강변의 수자원이 풍부해 농사에 적합했고 농업과 생활이 조화된 전형적인 농촌형 서울의 원형 마을이었어.

607

총 필지 수

2,843,341

총 면적(제곱미터)

364

밭 필지(최다)

16

임야 필지

지목 구분

필지 수

면적(제곱미터)

비고

364필지

1,818,018

전체의 63.9%

133필지

471,893

한강 수자원 활용

임야

16필지

173,759

방풍림·산신당

대지

기타

기타

주거 공간

임야도 16필지 173,759제곱미터에 달했어. 이 임야들은 당시 마을의 방풍림과 산신당으로 쓰였으며 사람들은 그 숲을 생명의 보호막으로 여겼어. 이제 그 자리에 반포대로가 지나가고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어. 하지만 문화재 발굴조사단의 손끝에서 그 옛날 논두렁의 흔적과 목탄층, 그리고 조선 후기의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며 이 땅이 단순한 개발지가 아닌 역사적 증언자임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어.

서울 서남부 한강변 농경지 비교

서초동

3,604,998㎡

반포동

2,843,341㎡

방배동

1,695,293㎡

잠원동

959,587㎡


2반포동 땅의 주인들 — 이씨·김씨, 그리고 잊힌 성씨들



반포동의 토지 소유자 조사에 따르면 이씨가 163필지로 가장 많았고 김씨가 134필지로 그 뒤를 이었어. 정씨, 최씨, 조씨, 오씨, 박씨 등 수십 개의 성씨가 이곳의 토지를 나누어 가지고 있었어.

이씨

163필지

김씨

134필지

정씨

다수

최씨

다수

은씨


천씨


길씨

10필지 이상 각

프랑스인


3필지

선교 시설 추정

은씨·천씨·길씨 —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성씨들

이 시리즈에서 왕씨(서초동), 허씨(방배동), 강씨(사당동)가 새롭게 등장했듯이, 반포동에서는 은씨, 천씨, 길씨가 처음 나와. 이들은 조선 후기 이농민이거나 한강 수운과 관련된 상업 종사자 가문으로 추정돼. 강을 따라 물자를 나르고 거래하던 사람들이 한강변 반포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아. 지표조사에서는 이들이 사용하던 생활유물들이 발견됐는데 도자기 조각과 조리용 옹기, 그리고 마을 공동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는 단일 씨족 중심의 마을이 아닌 여러 가족이 모여 살아가는 복합적 공동체였음을 의미해. 한강이라는 교통로와 수자원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끌어모은 거야. 그 다양성이 반포동을 이 시리즈에서 가장 개방적인 마을 구조를 가진 곳으로 만들어.


3외국인의 발자국 — 일본인과 프랑스인의 흔적

1912년은 일제강점기의 한가운데였어. 반포동에도 일본인 토지 소유가 17필지 있었어. 그들은 주로 한강 인근 평야를 중심으로 대규모 농업 실험이나 군사적 요충지 확보를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어.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있어. 프랑스인이 3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어.

방배동 31필지 → 사당동 19필지 → 반포동 3필지 — 한강변 프랑스 선교 벨트의 완성

이 시리즈에서 프랑스인이 등장한 건 방배동, 사당동, 그리고 반포동이야. 방배동 31필지, 사당동 19필지, 반포동 3필지. 세 마을 합산 53필지. 이 세 마을은 모두 한강 이남 구릉지에서 한강변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연결선 위에 있어.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방배동을 거점으로 사당동, 반포동까지 활동 반경을 확장했다는 게 이 세 편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거야. 반포동의 3필지는 필지 수는 가장 적지만 한강변 교통로와 가장 가깝다는 점에서 선교 활동의 최전선이었을 거야.

문화재 발굴팀은 이 시기의 건축 잔해와 석재 기초를 분석해 외국인의 생활 흔적을 복원하고 있어. 서양식 벽돌과 조선 기와가 같은 지층에서 나오는 반포동의 발굴 현장은 20세기 초 한강변이 얼마나 다양한 문명의 교차점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야.


4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로 되살아난 반포의 시간



지금의 반포동은 서울의 중심 상류 주거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어. 발굴조사원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유물발굴 작업을 진행해왔어.

한강변에서 발견된 토기편과 기와 조각, 그리고 철제 생활도구는 반포가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교역과 생활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했어. 특히 2020년대 이후 진행된 서울시 문화재 발굴조사에서는 한강 남단 일대의 지표조사를 통해 토지 이용 변화와 조선 후기 마을 배치가 복원됐어. 이처럼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는 시간의 틈새를 메우는 서울의 기억 복원술이야.


5성공적인 문화재 발굴 사례 — 한강변 유적지의 증언

성공 사례 — 반포 한강공원 부근 조선 후기 주거유적과 수운 구조물

반포 한강공원 부근에서는 조선 후기 주거유적과 한강 수운 관련 구조물이 함께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어. 강을 따라 물자를 운반하던 배를 정박하던 선착장 구조물과 그 옆의 창고 터가 확인된 거야. 1912년 토지 대장에서 한강변에 특이한 성씨들(은씨·천씨·길씨)이 등장한 이유가 바로 이 수운 경제와 연결되는 거야. 이러한 발굴 결과는 도시개발 과정에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줘.

발굴조사원이 땅을 파는 순간 과거의 이야기가 깨어나. 그리고 그 이야기는 미래 도시계획의 근거가 돼. 반포동처럼 한강변에 위치한 지역은 지층이 복잡하게 쌓여 있어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에필로그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서울 유적발굴의 여정



한 삽의 흙, 한 조각의 기와, 그 안에는 100년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어. 반포동의 유적발굴은 단순한 유물발굴이 아니라 서울의 정체성을 복원하는 여정이야.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길 아래에는 그들의 집이, 그들의 밭이, 그리고 그들의 꿈이 있어.

그것을 다시 세상 위로 올려주는 일. 그것이 바로 문화재 발굴이며 지표조사의 존재 이유야. 서울은 과거의 흔적 위에 서 있고 그 발굴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한강을 바라보던 그 들판에서


서울의 원형이 시작됐다

이씨 163필지, 김씨 134필지.그리고 은씨, 천씨, 길씨.강을 따라 흘러온 이름들이반포동에 뿌리를 내렸어.그 땅 끝에프랑스 선교사가 3필지를 가꾸고일본인 17필지가 들어왔어.그 모든 이름이 지금한강변 흙 속에 잠들어 있어.발굴조사원이 그 흙을 걷어낼 때한강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그 이름들이 다시 올라와.반포동은 말하고 있어.나는 언제나 여기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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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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