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강동구 상일동 소재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게가 많던 시내, 그 위쪽 마을의 나랏땅 문화유산 지표조사 · 표본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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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강동구 편 · 국유지 특집
1912년 강동구 상일동 소재 국유지는몇 필지였을까?
게가 많던 시내, 그 위쪽 마을의 나랏땅
문화유산 지표조사 · 표본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3필지7,735㎡논 2필지게내 위쪽 마을
제목 ①1912년 강동구 상일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논 2필지의 기록 ②게가 많던 시내, 그 위쪽 마을의 나랏땅, 상일동 국유지 현황 ③1912년 상일동 국유지 3필지, 아직 경기도 광주군이었던 시절 ④상일리에서 상일동으로, 50년이 걸린 서울 편입 ⑤1912년 상일동 국유지 논·밭 현황
게가 많이 살던 시내의 위쪽 마을,
이곳의 나랏땅을 들여다본다.
상일동. 이 이름은 게내(蟹川)—게가 많이 서식해 붙은 이름으로, 지금은 직강 공사를 거쳐 고덕천이라 불린다—의 위쪽(上)에 위치한 '상일리'에서 유래했다. 1914년 게내·게내안말·동자골 등 여러 자연부락이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로 병합되었고, 1962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된 뒤 1963년에야 지금의 '상일동'이 되었다.
즉 1912년 이 조사 시점에는, 이 지역은 아직 서울도 강동구도 아니었다. 이 게내 위쪽 마을의 국유지, 1912년 기록을 열어보면 3필지 중 2필지가 논이었다. 7,735㎡ 안에 담긴 이 작은 기록을 지금부터 풀어본다.
핵심 요약
1912년 지금의 강동구 상일동 지역 소재 국유지는 총 3필지, 면적 7,735㎡였다.
논 2필지(6,023㎡), 밭 1필지(1,712㎡)로 구성되어 있었다.
목차
1912년 상일동 국유지, 총 몇 필지였을까
논 2필지, 밭 1필지 — 작지만 온전한 농경지
상일리에서 상일동까지, 50년의 여정
자주 묻는 질문
한 줄 결론
11912년 상일동 국유지, 총 몇 필지였을까
1912년 토지조사사업 당시 지금의 강동구 상일동 지역에 소재한 국유지는 총 3필지, 면적으로는 7,735㎡였다.
지목 | 필지 수 | 면적 |
논 | 2필지 | 6,023㎡ |
밭 | 1필지 | 1,712㎡ |
합계 | 3필지 | 7,735㎡ |
3
국유지 필지 수
7,735㎡
국유지 면적
77.9%
논 면적 비율
⚠ 지명 안내1912년 당시 이 지역은 아직 '강동구 상일동'이 아니었습니다. 「상일동」이라는 이름은 1914년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로 병합되며 생겼고, 1962~1963년에야 서울특별시(당시 성동구)에 편입되었으며, 강동구는 1979년에 신설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지금의 강동구 상일동 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지역의 1912년 국유지 기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필지 수와 면적은 원자료와 정확히 일치하며, 오차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논 2필지, 밭 1필지 — 작지만 온전한 농경지
국유지 3필지 중 논이 2필지, 6,023㎡로 전체 면적의 77.9%를 차지했다. 밭은 1필지, 1,712㎡였다. 게내(고덕천)를 곁에 둔 이 위쪽 마을의 국유지는, 작은 규모에도 논과 밭이 온전히 갖춰져 있었다.

3상일리에서 상일동까지, 50년의 여정
조선시대~
게내·게내안말·동자골 등 여러 자연부락이 흩어져 있던 지역
1912년
이 국유지 조사 시점 — 3필지, 경기도 광주군 소속으로 추정
1914년
여러 자연부락이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로 병합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성동구에 편입
1963년
지금의 '상일동'으로 개칭
1979년
강동구 신설, 상일동이 강동구에 속하게 됨
게가 많이 서식하던 시내의 위쪽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은, 1912년 당시엔 아직 경기도 광주군에 속한 농촌이었다. 서울에 편입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50년, 강동구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67년이 더 필요했다. 이 3필지의 작은 국유지 기록은, 바로 그 먼 여정이 시작되기 전 조용한 농경지의 스냅샷이다. 이 오래된 토지 기록이 앞으로 이 일대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4자주 묻는 질문
1912년 상일동 소재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총 3필지, 7,735㎡였습니다.
상일동 국유지는 어떤 지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나요?
논 2필지(6,023㎡), 밭 1필지(1,712㎡)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상일동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나요?
게가 많이 서식했던 게내(蟹川, 지금의 고덕천)의 위쪽에 위치한 '상일리'에서 유래했습니다.
1912년 당시 상일동은 서울이었나요?
아니요, 당시엔 경기도 광주군 소속이었으며, 1962~1963년에야 서울(성동구)에 편입되고 1979년 강동구가 신설되며 지금의 소속이 되었습니다.

5한 줄 결론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지금의 강동구 상일동 지역에 소재한 국유지는 총 3필지 7,735㎡였으며, 논 2필지가 77.9%를 차지하고 밭 1필지가 함께 있었다. 이 지역은 게가 많던 게내(지금의 고덕천) 위쪽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졌으며, 1912년 당시엔 아직 경기도 광주군 소속이었다.
이 글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강동구 상일동 소재 국유지 현황을 정리한 문화유산 기초조사 자료입니다. 향후 지표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의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검증 노트
1912년 당시 이 지역은 '강동구 상일동'이 아니었습니다. 1914년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로 병합되었고, 1962~1963년 서울(성동구) 편입, 1979년 강동구 신설을 거쳐 지금의 이름과 소속이 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지금의 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지역의 1912년 국유지 기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목별 필지 수 합계(논 2 + 밭 1 = 3필지)와 면적 합계(6,023㎡ + 1,712㎡ = 7,735㎡) 모두 표기된 전체 수치와 정확히 일치하며, 오차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상일동·게내·구천면 관련 역사 정보는 나무위키 및 강동구청(상일1동 주민센터) 공식 자료를 근거로 인용했으며, 1912년 토지조사 수치와는 별개의 역사적 배경 설명임을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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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현황 자료 ·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소재 국유지 ·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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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가 많이 노닐던 시냇물의 위쪽 마을에서
나라의 땅 세 필지가 조용히 논밭을 이루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군의 작은 자락이었던 이 자리는
서울이 되기까지 반백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름도 소속도 여러 번 바뀌었어도 그 땅은 그대로 남아
지금은 아파트 숲 사이로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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