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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구 을지로2가, 근대 서울의 심장부가 태동하던 시절

  • 2025년 11월 8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6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중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서울의 심장 을지로2가, 그 땅 아래 새겨진 시간 — 1912년 200필지에 뒤섞인 조선·일본·중국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의 심장은 어디예요?" 이 질문에 많은 사람이 을지로를 떠올려. 근데 알아? 지금 네가 아메리카노 들고 걷는 그 을지로2가의 골목 아래에 1912년의 이씨, 김씨, 류씨, 그리고 일본인 63필지와 중국인 4필지가 한 거리에서 뒤섞여 살던 서울 최초의 국제 거리가 묻혀 있다는 걸.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을지로 골목을 다시는 같은 눈으로 걷지 못할 거야.


목차

  • 을지로라는 이름에 깃든 시간의 향기 — 프롤로그

  • 1912년 서울 중심을 새기다 — 을지로2가의 지형과 규모

  • 성씨별 토지 소유로 본 생활사 — 이름 속에 담긴 사람들

  • 일본인 63필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도시 침투

  • 중국 상인들의 흔적, 서울 최초의 국제 교류 거리

  • 사라진 집터에서 피어난 도시 — 근대화의 그림자와 빛

  • 문화재 발굴과 유적 보존 성공 사례

  • 오늘의 을지로, 그 땅 위의 역사 — 에필로그


프롤로그을지로라는 이름에 깃든 시간의 향기



서울의 심장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이 명동, 청계천, 을지로를 떠올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걷는 을지로2가의 골목길은 단순한 상업지구가 아니야. 100여 년 전, 1912년의 을지로2가는 근대 서울의 도시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변화의 최전선이었어.

길게 늘어선 전깃줄, 벽돌로 쌓은 양옥, 그리고 조선과 일본, 중국의 사람들이 함께 뒤섞여 살던 거리. 그곳은 단지 건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피어나는 실험의 무대였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가 복원해낸 1912년 을지로2가의 기록은, 이 거리가 처음부터 다국적 도시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는 걸 보여줘.


11912년 서울 중심을 새기다 — 을지로2가의 지형과 규모



1912년의 을지로2가는 200필지, 총면적 94,869㎡에 달하는 큰 구획이었어. 그리고 이 200필지 전체가 대지, 즉 주거 및 상업지의 기반이었어. 논도 없고, 밭도 없고, 임야도 없어. 온전히 사람이 사는 공간, 장사가 이뤄지는 공간으로만 가득 찬 거야. 이게 을지로2가가 다른 지역과 확연히 다른 점이야.

200

총 필지 수

94,869

총 면적(㎡)

100%

대지 구성 비율

3개국

토지 소유 국적

당시 조선총독부는 을지로 일대를 근대 도시의 중심축으로 삼고 도로 확장과 상업용지 조성을 병행하고 있었어. 청계천과 가까워 물류가 활발했고, 인근의 종로·명동과 연결되며 서울의 중심 기능을 수행했어.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을지로2가는 근대 서울의 0번지라 부를 만한 곳이야. 거기서부터 서울이라는 도시가 설계되고 확장되기 시작했거든.


2성씨별 토지 소유로 본 생활사 — 이름 속에 담긴 사람들



이 200필지 위에서 살아간 조선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한 시대의 사회 구조가 선명하게 보여.

이씨

24필지

김씨

15필지

류씨

12필지

최씨

12필지

이씨 24필지, 김씨 15필지. 한양의 전통적인 양반층이자 상업계에도 영향력을 가진 집안들이야. 반면 류씨와 최씨는 지방에서 상경한 신흥 중산층으로, 을지로 일대에서 상업과 제조업을 결합한 새로운 경제 활동을 시작한 세력이야. 성씨별 소유 분포는 한양 내부의 계층 이동을 반영하고 있어. 전통적인 양반 상업계와 새롭게 떠오르는 중산 상인 계층이 같은 거리에서 어깨를 맞댄 거야. 이게 근대 시민계급의 출현이야.


3일본인 63필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도시 침투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숫자가 등장해. 을지로2가 200필지 중 63필지가 일본인 소유였어. 31.5%. 거리의 세 집 중 하나가 이미 일본인 손에 넘어가 있었던 거야.

조선인

약 132

필지 추정

일본인

63

필지 — 전체의 31.5%

중국인

4

필지

동양척식

1

핵심 부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을지로2가 전략

동척은 을지로2가에서 단 1필지를 확보했지만, 그 위치가 핵심이었어. 금융과 상권의 중심에 자리 잡은 그 부지는 이후 조선인들의 토지 분할과 상권 위축을 야기하는 거점이 됐어. 단순한 토지 소유가 아니라, 도시 지배의 상징으로 기능한 거야. 동척의 건물은 훗날 철거됐지만, 그 건물이 강요한 도시의 형태는 오늘날 을지로의 거리 디자인에 간접적인 흔적을 남겼어.

63필지의 일본인 소유. 이건 단순한 이주가 아니야. 식민 도시화의 시작이야. 조선인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터가 하나씩 일본인 상인, 관료, 사업가의 손으로 넘어가던 과정이 이 숫자 하나에 압축되어 있어.


4중국 상인들의 흔적, 서울 최초의 국제 교류 거리

그런데 을지로2가를 진짜 특별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어. 4필지의 중국인 소유 토지가 있었다는 거야. 겨우 4필지처럼 보일 수 있어. 하지만 이게 갖는 의미는 달라.

서울 최초의 국제 거리 — 을지로2가 1912년

조선인, 일본인, 중국인이 한 거리에서 같은 지번을 두고 살았어. 청계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중국 상권은 직물과 잡화류를 취급하는 화교 상인들의 거점이었고, 남대문시장과 연결된 중국계 상업망의 핵심 역할을 했어. 이 교류가 훗날 명동과 을지로의 세계 상권 형성의 씨앗이 됐어. 오늘날에도 골목 구석 낡은 건물에서 한자 간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조선인, 일본인, 중국인이 같은 골목에서 각자의 언어로 흥정하고, 서로의 물건을 사고팔던 그 을지로2가. 1912년의 그 거리야말로 서울이 처음으로 '국제 도시'로 호흡하기 시작한 공간이야.


5사라진 집터에서 피어난 도시 — 근대화의 그림자와 빛



1912년 이후 을지로2가는 전력·운수·은행·인쇄소가 밀집하는 근대 인프라의 허브로 변모했어. 전차 노선이 개통되며 사람과 물류가 집중됐고, 청계천 복개 이후에는 지하상가와 빌딩이 들어서며 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거리로 진화했어.

1912

조선·일본·중국 3국 토지 소유가 공존하는 200필지 도심 구획

1920년대

전차 노선 개통, 을지로 상업 인프라 급격 팽창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재건, 인쇄·금속·조명 산업 집중

1970년대

청계천 복개, 지하상가·빌딩 건설 가속

2010년대~

힙스터 문화 유입, 오래된 공방과 카페가 공존하는 을지로 르네상스

그러나 이 화려한 변화의 이면에는 토지 수용과 강제 이주로 사라진 수많은 가정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 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 작업을 통해 드러난 집터, 우물, 도자기 파편들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어. 서울의 도시화는 누군가의 삶 위에 세워졌다고.


6문화재 발굴과 유적 보존 성공 사례

성공 사례 01 — 을지로 재개발 구역 1890년대 벽돌 기단부 발견

한 재개발 현장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선행한 결과 1890년대 벽돌 건물의 기단부가 발견됐어. 단순히 철거하고 지나쳤다면 영원히 사라졌을 흔적이야. 이 발견으로 해당 기단부는 서울시 지정 근대유산으로 등록됐어. 발굴이 개발을 막은 게 아니야. 개발에 역사적 가치를 더한 거야.

성공 사례 02 — 조선 후기 주거유적·생활토기 확인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센터는 을지로 일대 도심 재개발 전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주거유적, 생활토기, 근대 건축기초부 등을 다수 확인했어. 1912년 토지 기록과 발굴 현장에서 나온 유물이 정확히 일치하는 층위가 나왔을 때, 발굴조사원들은 숨을 멈추고 그 순간을 바라봤어. 113년 전의 기록이 흙 속에서 살아있는 증거로 나타난 거야.


에필로그오늘의 을지로, 그 땅 위의 역사



오늘의 을지로2가는 조명공예와 인쇄, 디자인, 소규모 제조업이 어우러진 창조의 거리로 불려. 낡은 건물 사이사이에 100년 전의 도시 흔적이 남아 있어. 그리고 그 흔적이 오히려 이 거리를 힙하게 만들어. 아이러니하게도 을지로가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오래됨 속에 있는 거야.

문화재 발굴조사원들은 여전히 그 땅을 발굴하며, 사라진 이름과 꿈, 그리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내고 있어. 우리가 걷는 길 위에 묻힌 시간. 그것이 곧 서울의 유산이야.



1912년의 이씨, 김씨, 류씨, 일본인 상인, 중국 화교가


같은 골목에서 살았던 그 거리

지금 네가 걷는 을지로2가는서울이 처음으로 세계를 만난 자리야.조선과 일본, 중국의 목소리가한 골목에서 뒤섞이던 그 공기가지금도 이 거리 위에 떠 있어.발굴조사원의 붓끝이 닿는 순간그 공기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해.그게 문화재 발굴이 존재하는 이유야.그리고 이 글을 읽은 네가그 공기의 일부가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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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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