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구 회현동2가, 땅 위에 새겨진 제국의 그림자와 사람들의 일상
- 서울 HI
- 1월 4일
- 3분 분량
목차
한 줄의 숫자에서 시작된 이야기
1912년 회현동2가의 공간 풍경
대지 85필지, 집으로 가득 찼던 동네
국유지 1필지가 남긴 의미
일본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공기
미국인과 덴마크인, 낯선 이름의 흔적
회현동2가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중요한 이유
발굴조사가 남긴 실제 성공 사례
지금 우리가 이 땅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
기억 위에 도시가 다시 서는 순간
이 동네의 숫자 하나하나에는 시간이 눌어붙어 있다.

1912년.
지금의 서울을 상상하면 도저히 겹쳐지지 않는 풍경이지만, 중구 회현동2가는 이미 촘촘하게 짜인 삶의 무대였다.
85필지.
66,208제곱미터.
이 숫자는 단순한 면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가 오가던 골목이고, 누군가의 생계가 이어지던 마당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빼앗기고 바뀌어야 했던 삶의 경계선이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게 될 사람이라면 아마 느낄 것이다.
회현동2가는 그냥 옛 동네가 아니었다는 걸.
1장 한 줄의 숫자에서 시작된 이야기
1912년 중구 회현동2가는 전 필지가 대지였다.
밭도 없고, 임야도 없다.
오로지 집과 집,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 구조였다.
85필지 전체가 주거지였다는 사실은 이곳이 이미 완성형 도시 공간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문화재 발굴이나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다 보면, 이런 지역이 가진 특징은 분명하다.
땅을 파기 전부터 이미 ‘뭔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곳은 그냥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생활유적의 집합소였기 때문이다.
2장 1912년 회현동2가의 공간 풍경
회현동2가는 남산 자락과 가까웠고, 도심과 외곽을 잇는 길목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다.
장사꾼이 머물고, 외국인이 들어오고, 일본인이 땅을 사들이던 자리.
1912년 당시 이미 도시 구조는 안정되어 있었고, 골목은 계획 없이 생긴 듯하지만 생활 동선에 최적화돼 있었다.
이런 지역은 발굴조사에서 생활유구, 건물지, 배수로 흔적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집터가 아니라 ‘살아 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3장 대지 85필지, 집으로 가득 찼던 동네
1912년 회현동2가에는 집이 85필지 있었다.

필지 수와 대지 수가 동일하다는 건, 빈 땅 없이 모두 누군가의 거처였다는 의미다.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장작 냄새가 났고, 저녁이면 골목에 불빛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동네는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생활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엌 자리, 우물 흔적, 작은 담장, 버려진 생활도구들.
지표조사 단계에서도 이미 토양 색과 파편으로 신호가 잡히는 유형이다.
4장 국유지 1필지가 남긴 의미
회현동2가에는 국유지가 단 1필지 있었다.

숫자로 보면 아주 작다.
하지만 이 1필지는 행정과 통치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도로, 관청 부속지, 혹은 관리 목적의 공간.
문화재 발굴 사례를 보면, 이런 국유지 인접 지역에서 의외의 유구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몰리고, 관리가 이뤄지고, 기록이 남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아 보여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필지다.
5장 일본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공기
가장 충격적인 숫자는 여기서 나온다.
85필지 중 65필지.
무려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였다.
이건 단순한 토지 소유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주인이 바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일본인 소유 필지가 많은 지역은 발굴조사에서 근대 건축 흔적과 전통 구조가 뒤섞여 나타난다.
기와 아래에 일본식 기초가 있고, 한옥 구조 옆에 서양식 벽돌이 나온다.
이질적인 시간이 한 땅 위에서 충돌한 결과다.
6장 미국인과 덴마크인, 낯선 이름의 흔적
회현동2가에는 미국인 소유 토지 1필지, 덴마크인 소유 토지 1필지가 있었다.

숫자는 작지만 상징성은 크다.
이곳이 이미 국제적 공간이었음을 의미한다.
선교, 무역, 외교 활동의 거점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 문화재 발굴 성공 사례 중에는 외국인 소유지에서 서양식 생활유물이 대거 출토된 경우도 있다.
병, 식기, 문서 파편.
회현동2가는 그런 가능성을 품은 동네다.
7장 회현동2가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중요한 이유
이 지역은 조건이 너무 명확하다.
전 필지 대지.

고밀 주거.
외국인 소유 혼재.
일제강점기 초기 도시 변화의 핵심 지점.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지로서 거의 교과서적인 사례다.
조사 없이 공사를 진행하면, 공사 중단 리스크가 매우 높아지는 유형이다.
그래서 문화재 발굴 기관들이 가장 먼저 주목하는 지역 중 하나다.
8장 발굴조사가 남긴 실제 성공 사례
유사한 도심 주거지 발굴 사례에서, 생활유구가 온전히 보존된 채 발견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던 현장이었다.
하지만 시굴조사에서 부엌 자리와 배수로가 확인됐고, 발굴조사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회현동2가 역시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9장 지금 우리가 이 땅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
도시는 계속 바뀐다.
하지만 땅은 기억한다.
회현동2가는 숫자로만 보면 오래된 통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숨결과 시대의 갈등이 살아 있다.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는 과거를 붙잡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지금의 도시가 어디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10장 기억 위에 도시가 다시 서는 순간
회현동2가를 들여다보는 일은, 서울을 이해하는 일이다.
땅 위에 남은 흔적을 존중할 때, 도시는 더 단단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살펴보는 순간,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걷게 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살아난다.
이 땅을 기억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보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와 이 도시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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