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구 회현동3가, 13필지에 숨겨진 식민지 도시의 시작
- 서울 HI
- 1월 5일
- 2분 분량
목차
한 장의 숫자로 시작되는 이야기
1912년 회현동3가의 토지 구성
집은 있었지만, 주인은 달랐다
일본인 소유 12필지가 의미하는 것
회현동3가가 보여주는 식민지 도시 구조
숫자 너머의 풍경을 상상하다
기록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1912년의 회현동3가는 조용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던 공간이었다.
1장 한 장의 숫자로 시작되는 이야기
지도를 펼치기 전, 숫자부터 마주하게 된다.
1912년 중구 회현동3가는 단 13필지, 면적은 13,795㎡에 불과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작은 블록 하나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 안에는 이후 서울 도심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그 방향성이 이미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글은 단순한 토지 통계가 아니다.
숫자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의 위치, 소유의 구조, 그리고 권력의 방향을 읽어보는 기록이다.

2장 1912년 회현동3가의 토지 구성
1912년 회현동3가는 총 13필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대부분은 이미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지는 12필지, 면적은 12,833㎡.
그리고 사사지는 1필지, 961㎡.
숫자만 보면 안정된 주거 공간처럼 보인다.
이미 집이 들어서 있고, 땅의 용도도 명확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있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가지고 있었느냐’다.

3장 집은 있었지만, 주인은 달랐다
대지가 12필지라는 건, 집이 12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생활이 있었다.
골목이 있었고, 밥 짓는 연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의 소유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1912년 회현동3가의 일본인 소유 토지는 12필지.
사실상 대지 전체가 일본인 소유였다는 의미다.
이 말은 곧,
집에 살고 있던 사람과
땅의 주인이 다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도시는 이미 ‘빌려 사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4장 일본인 소유 12필지가 의미하는 것
13필지 중 12필지가 일본인 소유.
이건 우연이 아니다.
회현동은 남산과 가까웠고,
철도와 상업 시설 접근성이 좋았으며,
행정과 군사적 활용 가능성도 높았다.
일제는 이런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토지조사라는 제도를 통해
법적으로, 체계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도시의 핵심 땅을 장악해 나갔다.
회현동3가는 그 결과가 응축된 아주 작은 단면이다.
작지만 분명한 증거다.

5장 회현동3가가 보여주는 식민지 도시 구조
회현동3가는 대규모 개발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이곳은 거창한 시설이 들어오기 전,
이미 소유 구조부터 바뀐 동네였다.
도시는 이렇게 변한다.
먼저 땅의 주인이 바뀌고,
그 다음에 삶의 방식이 바뀌며,
마지막에 기억이 사라진다.
1912년의 회현동3가는
그 첫 단계가 끝난 상태였다.

6장 숫자 너머의 풍경을 상상하다
13필지라는 숫자는 차갑다.
12필지라는 일본인 소유 기록도 건조하다.
하지만 그 숫자 사이에는
실제 사람이 살았던 시간이 있다.
이사를 고민했을 사람.
월세를 냈을 사람.
언젠가는 이 땅이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을 사람들.
토지 기록은 말이 없지만,
도시는 늘 사람의 감정 위에 세워진다.

7장 기록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1912년 회현동3가의 토지 기록은
과거를 설명하는 자료이기도 하지만,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왜 이 동네는 이렇게 변했는지.
왜 어떤 기억은 남고,
어떤 삶은 지워졌는지.
13필지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도시는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은 기록을 들여다보는 일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도시의 바닥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 순간,
역사는 교과서가 아니라
발밑의 땅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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