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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구 회현동3가, 13필지에 숨겨진 식민지 도시의 시작

  • 1월 5일
  • 7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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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밟고 있는 땅, 1912년엔 누구 것이었을까? — 중구 회현동3가 문화재 지표조사로 읽는 식민지 서울의 진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 중구 지역 자료를 바탕으로, 1912년 회현동3가 토지 기록 13필지·13,795㎡의 숫자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꺼냅니다.


당신이 지나치는 골목 하나에도 누군가의 빼앗긴 이야기가 묻혀 있다.

서울 중구 회현동. 지금은 남산타워가 보이는 세련된 도심 골목이지만, 1912년 이 작은 동네의 땅 기록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돋는 숫자가 나옵니다. 총 13필지 중 12필지가 일본인 소유. 사실상 동네 전체가 이미 넘어가 있었던 겁니다.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땅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우리에게 꺼내주는 이야기입니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삶을, 오늘 함께 읽어볼게요.

13

총 필지 수


(1912년 회현동3가)

13,795

총 면적(㎡)


대지+사사지 합산

92%

일본인 소유 비율


(12필지 / 13필지)



한 장의 숫자로 시작되는 이야기 — 문화재 지표조사가 뭔가요?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교과서 밖으로 나가야 할 때가 옵니다. 연도나 사건 이름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디에 살았고, 누가 그 땅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삶이 어떤 방식으로 변해갔는지를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요.

그때 필요한 게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입니다. 지표조사란 건설이나 개발이 시작되기 전, 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에 대해 지면 위·아래의 유적과 유물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조사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땅을 파기 전에 이 땅이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문화재가 발견되면 시굴조사, 그리고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서울 25개 구 전체에 걸쳐 1912년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종로구, 중구, 용산구부터 강동구까지, 동네 하나하나의 필지 기록과 소유 구조를 정리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 기록 정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단순히 유물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이 땅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기록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여다볼 공간은 서울 중구 회현동3가입니다. 1912년 기준, 총 13필지에 면적은 13,795㎡. 요즘 아파트 단지 한 블록 수준의 크기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 이후 서울 도심이 어떻게 형성되어 갔는지, 그 방향성이 이미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숫자를 하나씩 뜯어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천천히 떠오릅니다.



1912년 회현동3가의 토지 구성 — 통계로 보는 식민지 서울

1912년, 회현동3가는 딱 13필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구성을 보면 대지 12필지에 면적 12,833㎡, 그리고 사사지(寺社地, 종교 시설 부지)가 1필지에 961㎡입니다. 숫자만 보면 꽤 안정적인 주거 공간처럼 보입니다. 이미 집이 들어서 있고, 땅의 용도도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의 중구 지역 자료를 바탕으로 이 수치를 다른 동네들과 비교해보면, 회현동3가는 꽤 특이한 케이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시기 종로구 훈정동은 사사지가 1필지 포함된 구성이었고, 종로구 효제동은 대지와 밭(전)이 혼재하는 복합적인 토지 구성을 보였습니다. 반면 회현동3가는 대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12필지 중 거의 전부가 이미 주거 또는 상업 용도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통계 요약 — 1912년 중구 회현동3가


총 필지 수: 13필지 / 총 면적: 13,795㎡


대지: 12필지, 12,833㎡ (전체의 약 93%)


사사지: 1필지, 961㎡ (전체의 약 7%)


일본인 소유 필지: 12필지 (전체의 약 92%)


자료 출처: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중구 지역조사 (seoulheritage.org)

이 공간이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용도가 확정된 토지라는 건, 이미 누군가에 의해 개발과 점유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 아래 어떤 역사층이 쌓여 있는지, 개발 이전의 공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확인하려면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역사는 땅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땅 아래에도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집은 있었지만, 주인은 달랐다 — 빌려 사는 도시의 탄생

대지 12필지. 이 말은 그 공간에 집이 12채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았습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을 거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골목을 채웠을 겁니다. 장마가 오면 지붕 걱정을 했을 거고, 겨울이 되면 아랫목을 차지하려는 작은 다툼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과연 그 땅의 주인이었을까요? 1912년 회현동3가의 토지 소유 기록을 들여다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총 13필지 중 12필지, 즉 사실상 대지 전체가 이미 일본인 소유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은 곧, 그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조선인 거주자들이 실제로는 남의 땅 위에 사는 세입자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시는 이미 '빌려 사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생활은 이어졌지만, 소유는 이미 끝난 싸움이었습니다.

이건 회현동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가 서울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각 동네마다 소유 구조가 어떻게 달랐는지, 어떤 지역이 더 빠르게 식민지 소유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는지를 비교 분석하면, 당시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어 갔는지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와 지표조사가 단순히 유물을 캐내는 작업이 아니라, 이런 역사적 구조를 밝혀내는 중요한 학문적 도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 조선인들이 느꼈을 감각을 생각해 봅니다. 분명히 매일 살고 있는 집인데, 서류상으로는 내 땅이 아니다.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른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건지 설명하기 어려운 그 막막함. 1912년 회현동3가의 주민들이 그런 감각 속에서 살아갔을 거라는 생각이 이 기록을 더 무겁게 만듭니다.


일본인 소유 12필지가 의미하는 것 — 토지조사라는 제도의 무게

13필지 중 12필지가 일본인 소유. 이 숫자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회현동3가가 이렇게 빠르게 식민지 소유 체계 안으로 편입된 데는 지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이 동네는 남산과 가까웠습니다. 남산은 식민지 시기 일본의 군사적·행정적 거점이었고, 그 주변의 토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기에 당시 서울의 핵심 상업 지구와의 접근성, 철도 인프라와의 연결성까지 더해지면, 이 지역이 왜 일제의 집중적인 토지 확보 대상이 되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일제는 1910년대 초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한반도 전역의 토지를 체계적으로 재편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고주의 원칙을 내세웠는데,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토지는 국유지 혹은 총독부 소유로 귀속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관습적 소유권을 인정받아 살아온 조선인들은 근대적 법률 개념에 낯설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땅이 합법적 외양을 띤 채 넘어갔습니다.

토지조사사업 핵심 구조


시행 기간: 1910~1918년 / 조사 대상: 한반도 전역 토지


신고주의 원칙 → 미신고 토지 국유화 / 근대적 지적 제도 도입


결과: 조선인 관습적 소유권 대거 박탈, 일본인·총독부 소유 토지 급증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 이 시기 형성된 필지 경계와 지목 구분이 현재 문화재 조사의 기초 자료가 됨

회현동3가는 그 결과가 가장 극단적으로 응축된 사례 중 하나입니다. 13필지 중 단 1필지만이 이 구조 밖에 있었습니다. 나머지 12필지는 이미 그 거대한 법·제도적 전환의 물결에 완전히 잠겨 있었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런 기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현재의 땅이 어떤 역사적 경위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그 아래 묻혀 있는 문화층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현동3가가 보여주는 식민지 도시 구조 — 작은 동네, 큰 진실

회현동3가는 결코 대규모 개발지가 아닙니다. 화려한 시설이 들어선 것도 아니고, 특별히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곳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거창한 무언가가 있기 전에, 이미 소유 구조 자체가 바뀌어 버린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이런 방식으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행정적 절차를 통해 땅의 주인이 바뀝니다. 그 다음에는 바뀐 주인의 방식대로 공간이 재편됩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기존 골목의 흐름이 끊기며, 이전 삶의 흔적들이 하나씩 지워집니다. 마지막으로 그 공간을 채우던 기억이 사라집니다. 1912년의 회현동3가는 이 세 단계 중 첫 번째가 이미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가 이 기록들을 중구 지역조사 카테고리로 정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첫 번째 단계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이후의 단계들을 되짚는 작업입니다. 언제, 어떻게 공간이 재편되었는지를 땅 위와 아래 모두에서 확인하면서, 지워진 기억을 조금씩 복원해냅니다.

먼저 땅의 주인이 바뀝니다. 그 다음 삶의 방식이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이 사라집니다. 문화재 발굴조사는 그 역순으로 걷는 작업입니다.

성공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서울 중구 일대에서 진행된 한 도시 재개발 사업에서, 문화재 지표조사 과정 중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의 기초 석렬과 기와편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그냥 공사가 진행되었겠지만, 지표조사 덕분에 시굴조사가 선행되었고, 그 결과 500년이 넘는 역사층이 원형에 가깝게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조각 하나가 도시 전체의 역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 것입니다.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이 이런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이 하는 일 — 땅을 읽는 사람들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라는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간단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말 그대로 지표, 즉 땅 표면과 문헌 기록을 조사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흔적이 발견되면, 그 다음 단계인 시굴조사로 넘어갑니다. 시굴조사는 일정 면적의 트렌치를 파서 지하에 유구(유적의 흔적)나 유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됩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이 과정의 첫 단계인 기초 자료 구축을 담당하는 플랫폼입니다. 1912년 토지 기록을 서울 25개 구 전역에 걸쳐 동 단위로 분류하고, 각 지역의 필지 수, 면적, 소유 구조, 지목(대지·전·답·사사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이 데이터는 이후 실제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수행하는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들이 사전 검토 자료로 활용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으로는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문화유산협회 소속 각 발굴조사 전문기관 등이 있습니다. 서울 지역은 특히 중부지역 문화재 조사기관협회 소속 기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표조사 보고서 작성부터 시굴·발굴조사 수행, 출토 유물 분석 및 보고서 발간까지 전 과정을 담당합니다.


문화재 조사 단계 한눈에 보기


1단계 문화재 지표조사 → 문헌·현장 기초 조사, 유적 존재 가능성 판단


2단계 표본(시굴)조사 → 트렌치 굴착, 지하 유구·유물 존재 여부 확인


3단계 정밀 발굴조사 → 전면 굴착, 유구 기록 및 유물 수습


4단계 보고서 발간 → 조사 결과 학술 정리, 문화재 지정 검토

이 모든 과정이 회현동3가 같은 도심 속 작은 동네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고 새 건물을 짓기 전, 그 땅 아래에 조선 시대 생활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지표조사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울처럼 600년 이상의 도시 역사를 가진 공간에서는, 그냥 지나친 땅 아래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묻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 너머의 풍경을 상상하다 — 역사는 발밑에 살아 있다

13이라는 숫자는 차갑습니다. 12필지라는 일본인 소유 기록도 건조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숫자 사이에는 분명히 실제 삶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고민했을 사람이 있었고, 달마다 세를 냈을 사람이 있었으며, 어느 날부터인가 이 땅이 영영 자기 것이 될 수 없겠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와 지표조사는 이 침묵하는 기록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작업입니다. 땅속에서 나오는 기와 한 장, 도자기 파편 하나가 그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의 일상을 증언합니다. 글로 남겨지지 않은 삶,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이 유물과 유구를 통해 조금씩 복원됩니다.



1912년 회현동3가의 토지 기록이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바로 이겁니다. 이 기록을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도시의 바닥을 다시 느끼게 해줍니다. 도시는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계획이 있었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으며, 그 위에 지금의 서울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문화재 지표조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들이 지금도 서울 곳곳의 개발 현장에서 묵묵히 땅을 읽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이 땅 아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는지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도시의 기억은 영영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이 글을 읽고 나서 길을 걸을 때 한 번쯤은 발밑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밟고 있는 이 땅이, 1912년에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지. 그 상상 하나하나가 쌓여서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와 지표조사는 그 힘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다리 위에 서게 됩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데이터를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해 보세요. 종로구부터 강동구까지, 동네별 1912년 토지 기록과 문화재 지표조사 기초 자료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www.seoulheritage.org


길을 걷다 오래된 골목 하나를 만나거든, 잠깐 멈춰 서 보세요.그 골목이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질 겁니다.그 느낌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누군가는 기억을 기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읽으며,그렇게 우리는 함께 이 도시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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