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은평구 증산동으로 시간 여행 떠나볼래?”
- 2025년 6월 28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내가 사는 이 동네,100년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12년 은평구 증산동 — 156필지, 43만㎡가 간직한 사람들의 기억. 논밭과 성씨, 그리고 지워진 역사까지
목차
1.1912년 증산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논밭이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 증산동
3.집은 몇 채였을까 — 100년 전 증산동의 주거 풍경
4.증산동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 성씨로 본 마을의 구성
5.낯선 이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6.1912년 증산동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
7.문화재 지표조사 — 잊혀진 땅을 기억하는 방법
8.마무리 — 그때 그 시절의 숨결을 느끼며
1. 1912년 증산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지금의 은평구 증산동을 생각해보면 고층 아파트와 상가, 좁은 골목이 뒤섞인 전형적인 서울의 주거지다. 지하철 6호선 증산역 근처, 누가 봐도 평범한 도시 동네다. 그런데 딱 113년 전, 이 땅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1912년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가 교차하던 그 시절, 증산동은 전체 면적 약 439,449㎡, 총 156필지로 구성된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팀이 분석한 당시 토지조사부 기록에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자연과 깊이 맞닿아 있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시화가 시작되기 훨씬 전, 증산동은 그야말로 땅이 곧 삶이던 시절을 살고 있었다.
이 글은 단순한 역사 탐방이 아니다. 그 기억들이 지금도 땅 아래 잠들어 있을 수 있고,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그것을 어떻게 꺼내는지까지 담았다. 끝까지 읽다 보면 증산동 골목을 걸을 때 발 아래 흙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2. 논밭이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 증산동
총 면적
439,449㎡
156필지 — 광활한 농경 마을
논 (전체 1위)
283,581㎡
46필지, 전체의 약 65%
밭
136,268㎡
84필지, 두 번째 규모
대지·기타
19,600㎡
26필지 집터 포함
1912년 증산동에서 가장 넓은 땅은 논이었다. 46필지, 283,581㎡. 전체 면적의 65%에 가까운 수치다. 벼를 심고, 물을 대고, 가을이면 황금빛 수확을 기다리는 삶. 증산동은 농촌 그 자체였다.
밭은 84필지, 136,268㎡로 두 번째로 넓었다. 채소, 콩, 보리, 어쩌면 약초까지.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자라나고, 마을 사람들은 그 밭에서 한 해의 끼니를 만들어냈다. 논과 밭을 합치면 증산동 전체 면적의 95%에 가깝다. 지금 이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은 하늘과 흙과 사람이 함께 숨 쉬던 공간이었다.
3. 집은 몇 채였을까 — 100년 전 증산동의 주거 풍경

논밭이 넘실대는 그 마을 어딘가에 집이 있었다. 26필지, 19,600㎡.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소박한 숫자다. 하지만 그 26채의 집터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펼쳐졌을지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고, 마당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고, 저녁이면 온 가족이 한 상 앞에 모였다. 좁고 빽빽한 아파트 대신 텃밭이 딸린 한옥이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 골목을.
집터 주변에는 무덤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기록에는 분묘지가 별도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마을 뒷산이나 논두렁 너머에 집안 선조들의 묘가 자리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같은 마을 안에서 공존하던 시절. 문화재 발굴조사가 그 경계를 다시 찾아줄 수 있다.
4. 증산동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 성씨로 본 마을의 구성
나씨
32필지
천씨
22필지
이씨
20필지
김씨
15필지
1912년 증산동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성씨는 나씨였다. 무려 32필지다. 그 뒤를 천씨 22필지, 이씨 20필지, 김씨 15필지가 이었다. 이름 모를 마을 어르신들의 후손이 지금도 이 동네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성씨 분포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나씨 집안이 가장 많은 논을 가졌다는 건, 그 가문이 마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천씨와 이씨 사이에는 혼인 관계가 있었을 수도 있고, 김씨 집안은 마을 대소사를 함께 챙기던 이웃이었을 수도 있다. 이 관계망의 흔적이 땅속에, 혹은 문헌 기록 속에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지표조사는 그 실마리를 찾는 첫 번째 열쇠다.
5. 낯선 이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1912년 증산동 토지 기록에서 눈에 걸리는 이름이 하나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줄여서 동척. 이들이 증산동 내에 무려 28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동척은 1908년 일본이 조선 토지 수탈을 위해 설립한 국책 회사다. 조선 농민들의 땅을 합법적 형식을 빌려 빼앗고, 일본 자본가들에게 넘기는 역할을 했다. 1912년 증산동에서도 전체 156필지 중 28필지, 즉 18% 가까운 땅이 이미 동척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 땅에서 일하던 농민들은 남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소작농 신세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 맥락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설립되어 1945년 광복 직후 해체되었다. 전성기에는 조선 전역 수십만 헥타르의 농지를 지배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조선 농민이 토지를 잃고 유랑민이 되었다. 증산동의 28필지도 그 수탈의 한 장면이다.
증산동의 논밭 위에 동척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사실은, 이 동네의 역사가 단순히 평화로운 농촌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아픔까지 포함해서 땅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 진짜 역사를 마주하는 자세다.
6. 1912년 증산동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

지금 우리가 걷는 증산동 거리 밑에 이 모든 기억이 쌓여 있다. 나씨 집안이 벼를 심던 46필지의 논, 천씨 어르신이 새벽마다 물꼬를 트던 논두렁, 이씨 가족이 모여 살던 집터, 동척이 빼앗아간 28필지의 아픔. 이것들이 모두 지층처럼 포개진 채 오늘의 도시 아래 잠들어 있다.
100년 전 증산동은 뿌리가 무엇인지,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논밭에서 시작된 마을이 외세의 침탈 속에서도 성씨별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강한 서사를 가진다. 그리고 그 서사의 물적 증거가 지금도 땅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7. 문화재 지표조사 — 잊혀진 땅을 기억하는 방법

증산동처럼 오래된 농촌 마을이 도시로 변한 지역일수록, 문화재 지표조사의 필요성은 높아진다. 지표조사는 개발 전에 해당 부지의 역사적 가치를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다. 논이었던 땅, 집터였던 공간, 잡종지로 분류된 곳 어디서든 유물이 나올 수 있다. 지층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일기장이기 때문이다.
지표조사에서 유물의 가능성이 확인되면 표본조사, 시굴조사, 정밀 발굴조사 순으로 단계가 이어진다. 은평구 지역의 경우 조선시대 이전 유적이 출토된 전례가 있어, 증산동 일대 역시 면밀한 사전 조사가 권장된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에서는 은평구를 포함한 서울 전 구역에 대한 지역 조사 기록과 발굴 의뢰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소규모 건축의 경우 국비 지원 신청 가능. 국가유산청 협업포털(e-minwon.go.kr) 또는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를 통해 의뢰 가능.
8. 마무리 — 그때 그 시절의 숨결을 느끼며

이제 증산동엔 논도, 밭도, 흙냄새 나는 골목도 없다. 하지만 그 땅 위엔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나씨의 32필지, 동척의 28필지, 이씨의 20필지. 숫자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이름이고, 한 계절의 땀이며, 한 시대의 흔적이다.
당신이 사는 이곳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시간 여행지가 된다. 지금 우리가 기록하고, 이해하고, 보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기록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다. 서울 어느 동네를 개발하든, 그 첫 번째 행동이 삽이 아닌 조사여야 한다. 그게 1912년 증산동 사람들에게, 그리고 100년 뒤의 누군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은평구 관할 문화재 문의 → 은평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나씨 어르신이 논두렁을 걷던 그 길.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과 같다.땅은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우리가 묻지 않을 뿐이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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