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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마포구 공덕동 부자들은 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타임머신 발굴 조사 출동!

  • 2025년 4월 5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7일


당신이 매일 지나치는 공덕역 그 아래, 100년 전 사람들이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마포구 공덕동 1912년 완전 해부 · 451필지가 품은 잊혀진 삶의 이야기 · seoulheritage.org 데이터 기반 ·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완전 가이드


목차

1장공덕역 5번 출구 아래, 1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장1912년 공덕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이 숫자가 말하는 충격적인 진실

3장밭 125필지, 논 5필지 — 도심 한복판이 농촌이었던 시절

4장집터 320필지 —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5장김씨, 이씨, 최씨, 박씨, 안씨 — 공덕동을 일군 다섯 성씨의 이야기

6장문화재 지표조사가 공덕동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

7장지금 마포구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 놓치면 후회하는 필수 정보


1

공덕역 5번 출구 아래, 1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덕역. 지하철 5호선, 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까지 네 개 노선이 교차하는 마포구의 교통 중심지입니다. 출퇴근 시간이면 수천 명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역 주변에는 오피스 빌딩과 편의점, 카페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요. 그런데 잠깐 멈춰서 이런 상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콘크리트 바닥 아래, 100년 전에는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면?

1912년 마포구 공덕동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어요. 총 451필지, 540,947㎡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에 논이 있고 밭이 있었으며, 수백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깨를 맞댄 채 마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김씨, 이씨, 최씨, 박씨, 안씨 집안 사람들이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그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곳이었어요.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같은 마포구 현석동 자료를 보면 215필지 88,767㎡에 이씨, 김씨, 박씨가 한강변 나루터 곁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공덕동은 그보다 훨씬 더 컸어요.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공덕역을 지나칠 때 발 아래 땅이 달라 보일 거예요. 마포구에서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면, 이 정보가 법적 리스크를 막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2

1912년 공덕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이 숫자가 말하는 충격적인 진실



451필지

전체 토지 수

540,947㎡

총 면적 · 축구장 약 75개

322,689㎡

125필지 · 전체 60%

대지(집터)

200,271㎡

320필지 · 전체 37%

15,576㎡

5필지

농경지 합계

338,265㎡

전체 면적의 63%

1912년 공덕동 토지 구성 비율

밭 60%

대지 37%

기타

1912년 공덕동의 토지 기록을 들여다보면 숫자 하나하나가 이야기가 됩니다. 전체 451필지, 540,947㎡. 축구장 약 75개를 나란히 놓아도 이보다 작아요. 논과 밭을 합치면 338,265㎡, 전체 면적의 무려 63%가 농경지였습니다. 지금 지하철 네 개 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허브 공덕동이 100년 전에는 땅의 63%가 논밭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여기에 있어요.


3

밭 125필지, 논 5필지 — 도심 한복판이 농촌이었던 시절



밭 125필지 322,689㎡. 공덕동 전체 면적의 약 60%가 밭이었어요. 지금 공덕동에서 이 비율을 차지하는 건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입니다. 100년 전 공덕동 사람들은 이 밭에서 배추, 무, 콩, 고추, 감자를 키웠을 거예요. 마포 지역은 한강을 통해 서울 도성 안으로 물자를 공급하는 중간 거점이었기 때문에, 공덕동의 밭에서 나온 채소들이 나룻배를 타고 서울 도심 시장으로 팔려 나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밭으로 사용된 토지는 교란이 적어서 그 아래 지층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됩니다. 322,689㎡에 달하는 광대한 밭 지역은, 지금 공덕동 어딘가에서 공사가 진행될 때 조선시대 이전의 생활 유구가 나올 수 있는 잠재적 지역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4

집터 320필지 —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집터가 320필지라는 사실은 공덕동이 단순한 농촌 마을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면적으로는 전체의 37%지만 필지 수는 71%를 차지해요. 집들이 작고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최소로 잡아도 320가구 이상이 거주했고, 가구당 5명 내외로 보면 1,500명을 훌쩍 넘는 인구가 공덕동에 살았을 거예요.

이 많은 집터들이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대지 지역에서는 온돌 구조 흔적, 부엌터, 우물, 담장 기초석, 생활 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될 수 있거든요. 320필지라는 대규모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공덕동은, 발굴조사를 진행할 경우 당시 마포 일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가장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오피스 빌딩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지하 2~3미터 아래에는 320필지 집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어요.


5

김씨, 이씨, 최씨, 박씨, 안씨 — 공덕동을 일군 다섯 성씨의 이야기

1912년 공덕동의 토지 소유 기록에는 다섯 성씨의 이름이 두드러집니다.

김씨

이씨

최씨

박씨

안씨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성씨는 안씨입니다. 김씨, 이씨, 최씨, 박씨는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씨지만, 안씨가 공덕동에서 주요 토지 소유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이 지역에 안씨 문중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요. seoulheritage.org의 현석동 분석에서도 특정 성씨 집안들이 대를 이어 토지를 보유하며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공덕동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다섯 성씨가 함께 공존했다는 것은 공덕동이 단일 가문 중심의 집성촌이 아니라 복합 생활 공동체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구조의 마을에서는 서로 다른 가문의 생활 방식이 뒤섞이면서 더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나올 수 있어요. 김씨 집안의 밭에서 나온 농기구, 이씨 집안의 집터에서 나온 도자기, 최씨 집안 어딘가에 있었을 우물터, 박씨 집안의 제례 용기, 그리고 안씨 집안의 기와 조각. 이 모든 것들이 공덕동 어딘가의 흙 속에 아직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6

문화재 지표조사가 공덕동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



공덕동은 서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복잡한 역사적 구조를 가진 곳이에요. 451필지라는 상당한 규모, 농경지 63%와 주거지 37%의 혼재, 그리고 다섯 개 이상의 주요 성씨가 공존하던 복합 생활 공동체.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공덕동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매우 높은 잠재성을 가진 지역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보존 처리

공덕동에서 지표조사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밭 322,689㎡라는 광대한 농경지 면적은 조선시대 이전부터의 생활 층위가 잘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예요. 둘째, 집터 320필지라는 대규모 주거 밀집 구역은 생활 유구가 집중적으로 나올 수 있는 지점이 분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현석동 기록에서는 일본인 소유 필지 5개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마포 지역에 외부 자본이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증거이기도 해요. 공덕동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7

지금 마포구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 놓치면 후회하는 필수 정보



마포구 공덕동이나 인근 지역에서 건물 신축이나 대규모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라면 아래 내용을 반드시 읽어 주세요. 공덕동은 1912년 기준으로 451필지, 540,947㎡에 달하는 광대한 농경·주거 복합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상 지표조사 의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해당 부지의 1912년 당시 지목을 확인하는 겁니다. 밭이었던 곳과 대지였던 곳은 발굴 결과가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공사 중 매장문화재를 발견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사는 즉시 중단되고 일정이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연될 수 있어요. seoulheritage.org에서 발굴조사 비용 및 예산 FAQ, 법적 및 행정 FAQ, 공사 일정 FAQ를 먼저 확인하세요.

사전에 지표조사를 받고 확인받은 현장과 그렇지 않은 현장의 결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문화재청에 정식 등록된 전문 발굴조사 기관만이 법적 효력 있는 조사를 수행할 수 있어요.

1912년 공덕동, 이씨 집안 누군가가 밭두렁에 쪼그려 앉아 무 씨앗을 심고 있었을 거예요.옆 밭에는 김씨 아저씨가 호미를 들고 있고, 저 멀리 안씨 집 마당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최씨 할머니는 우물가에서 빨래를 두드리고, 박씨 집 굴뚝에서는 저녁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그 평범하고 정겨운 하루하루가 지금의 공덕역 아래 어딘가에 고스란히 묻혀 있어요.이씨 집안 그 사람이 무 씨앗 하나를 심었다는 증거, 그것 자체가 이 도시의 가장 솔직한 역사입니다. 지금 공덕역을 지나면서 잠깐 발을 멈춰 보세요. 저 콘크리트 아래, 다섯 성씨의 삶이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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