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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심장, 중구 쌍림동의 땅속에서 깨어난 1912년의 시간 – 잊힌 역사와 문화재 발굴의 이야기”

  • 2025년 10월 26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6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중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잊혀진 이름, 쌍림동에서 깨어나다 — 1912년 291필지, 일본인 98필지가 지운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의 기억

서울의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쌍림동'이라는 표식을 본 적 있어? 지금은 호텔과 오피스텔이 가득한 도심 한복판이지만, 불과 113년 전 이곳은 대지 264필지와 밭 27필지가 공존하는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었어. 그런데 291필지 중 98필지가 일본인 소유였어. 비율로 따지면 33.7%. 예관동 54%에는 못 미치지만, 쌍림동은 숫자 98이라는 절대치에서 이 시리즈 상위권이야.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충무로 근처를 지날 때마다 발밑이 다르게 느껴질 거야.


목차

  • 잊혀진 이름, 쌍림동에서 깨어나다 — 프롤로그

  • 1912년,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대지와 밭이 말해주는 도시의 흔적

  • 김씨·이씨·박씨, 그리고 일본인 98필지의 이름이 새겨진 땅

  • 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의 진짜 의미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성공 사례 — 사라진 마을의 부활

  • 유물발굴과 문화재 지표조사,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 땅 아래 묻힌 역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다 — 에필로그


프롤로그잊혀진 이름, 쌍림동에서 깨어나다



서울의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쌍림동이라는 표식을 본 적이 있어? 이제는 고층빌딩과 호텔, 오피스텔이 가득한 도심의 한복판이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논밭이 뒤섞인 생활의 터전이었어. 1912년의 쌍림동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아래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는지를 알게 돼.

그 시절 쌍림동은 291필지, 총면적 78,380제곱미터. 그 안에 사람들의 땀, 전통, 그리고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가 이 기록을 다시 꺼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쌍림동은 잊혀진 이름이지만, 그 땅은 아직 기억하고 있거든.


11912년,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12년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된 지 2년째 되던 해였어. 일제는 전국을 대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고 쌍림동 역시 그 대상이 됐어. 땅의 주인을 기록하고, 필지를 구분하며, 세금을 매기기 위한 과정이었어. 하지만 그 기록은 단순한 행정 데이터가 아니야. 땅이 기억하는 역사였어.

291

총 필지 수

78,380

총 면적(제곱미터)

264

대지 필지

98

일본인 소유 필지

지목 구분

필지 수

면적(제곱미터)

비고

대지

264필지

41,372

주거·생활 공간

27필지

37,008

도심 속 경작지

당시 쌍림동의 면적은 78,380제곱미터, 그 안에 291필지. 그중 대부분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자 생계의 터전이었어.


2대지와 밭이 말해주는 도시의 흔적

쌍림동의 땅 중 264필지 41,372제곱미터가 대지였어. 사람이 살던 집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거야. 그리고 27필지 37,008제곱미터는 밭이었어. 이 수치는 지금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야.

쌍림동 대지 대 밭 면적 비교

대지

41,372㎡

37,008㎡

대지와 밭이 거의 같은 면적 — 쌍림동만의 특성

이 시리즈에서 다뤄온 많은 지역들이 대지가 압도적으로 많거나(소격동, 예장동), 밭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서초동, 잠원동). 그런데 쌍림동은 대지 41,372제곱미터와 밭 37,008제곱미터가 거의 대등하게 공존해. 도심이면서도 농촌의 기능을 함께 가진 혼합지대였다는 거야. 오늘날 명동, 을지로, 충무로가 빌딩의 숲이라면 그 시절 쌍림동은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었어.


3김씨·이씨·박씨, 그리고 일본인 98필지의 이름이 새겨진 땅



이 마을의 땅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름이 보여. 1912년 쌍림동에는 김씨가 41필지, 이씨가 34필지, 박씨가 14필지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어. 이 세 성씨만으로도 마을 전체의 절반 가까운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거야.

김씨

41필지

이씨

34필지

박씨

14필지

일본인


98필지

전체의 33.7%

일본인 98필지 — 이 시리즈 절대 수치 최상위권

비율로는 예관동 54%에 못 미치지만, 절대 필지 수 98필지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오장동 75필지를 훌쩍 넘어. 291필지 중 98필지. 김씨 41필지, 이씨 34필지, 박씨 14필지를 합친 89필지보다도 일본인 98필지가 더 많아. 조선인 상위 3개 성씨를 합쳐도 일본인 한 세력을 이길 수 없었던 거야. 쌍림동은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먼저 드러난 곳 중 하나였어.

한일병합 이후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게 드리워졌는지가 이 숫자 하나에 담겨 있어. 조선인 모두를 합쳐야 간신히 일본인 한 세력을 넘을 수 있었던 그 마을. 그게 1912년 쌍림동이었어.


4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의 진짜 의미

우리가 지금 문화재 발굴 혹은 유적발굴이라고 부르는 작업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캐내는 일이 아니야. 그건 사람의 흔적을 복원하는 일이야. 유물발굴작업은 땅속의 작은 파편에서 한 시대의 경제, 문화, 생활 구조를 복원해내.

쌍림동의 경우처럼 토지 대장과 발굴조사가 결합되면 그 마을이 어떻게 변했고 누가 살았는지를 명확히 볼 수 있어. 서울의 문화재 지표조사나 발굴조사 현장에서 이런 토지 기록은 지도 없는 지도처럼 쓰여. 잊힌 시간의 좌표를 되찾는 나침반이 되는 거야.

쌍림동 토지 기록이 발굴조사에서 활용되는 방식

1912년 토지 대장에 기록된 대지 264필지와 밭 27필지의 위치 정보는 발굴조사원들에게 층위 예측의 단서가 돼. 대지였던 구역에서는 한옥 기단석, 우물터, 생활유구가 나올 가능성이 높고, 밭이었던 구역에서는 경작층 아래 토기편이 발견될 수 있어. 일본인 98필지가 집중된 구역에서는 일본식 건축 자재나 수입 타일 파편이 나오는 식이야. 기록이 발굴의 지도가 되는 거야.


5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성공 사례 — 사라진 마을의 부활



성공 사례 — 을지로 일대 조선·고려 복합 생활층 발굴

쌍림동과 인접한 을지로 일대의 지표조사 중 조선 후기 공방터와 한옥 주거지가 발굴됐어. 그리고 그 아래층에서는 고려시대 토기편과 생활유구가 함께 발견됐어. 도시의 한 켜 아래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생활이 층층이 쌓여 있는 거야. 쌍림동도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 아래에 조선시대 생활층, 일제강점기 건축층, 그리고 어쩌면 더 오래된 층위가 겹겹이 잠들어 있을 거야.

그것이 바로 발굴조사원들이 매일 땅을 파는 이유야. 그들은 단순히 흙을 다루는 사람들이 아니야. 시간을 복원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사람들이야. 쌍림동처럼 이미 변해버린 공간이라 해도 기록이 남아 있다면 다시 복원할 수 있어.


6유물발굴과 문화재 지표조사,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문화재 지표조사는 발굴조사의 첫걸음이야. 도로 하나, 건물 하나를 짓기 전에 그곳에 문화재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일. 그게 바로 도시의 양심이자 기억을 존중하는 일이야. 유적발굴단의 노력, 문화재 발굴과정의 철저함,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이 더해질 때 서울의 역사는 계속 숨 쉴 수 있어.

쌍림동처럼 이미 변해버린 공간이라 해도 1912년 토지 대장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기록이 있는 한 복원할 수 있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가 이 기록을 계속 쌓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지금 쌓는 기록이 100년 후 누군가의 발굴 지도가 될 거니까.


에필로그땅 아래 묻힌 역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다



우리는 지금 눈앞의 도시를 완성된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서울은 여전히 발굴 중인 도시야. 쌍림동의 땅속에는 1912년의 시간, 그곳을 살던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이 잠들어 있어. 문화재 발굴은 그 잠든 이야기를 깨워 다시 우리 곁으로 데려오는 일이야.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해.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 유적발굴단의 조용한 삽질 소리가 들려. 그건 단지 흙을 파는 소리가 아니야. 잊혀진 이름을 부르는 소리야.


잊혀진 이름을 부르는 소리

김씨 41필지, 이씨 34필지, 박씨 14필지.그리고 그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일본인 98필지.그 숫자들이 한 마을의 지형도를 그리고한 시대의 아픔을 기록했어.지금 쌍림동 골목을 걷는다면잠깐 멈춰봐.발밑 어딘가에서그 이름들이 아직 살아 있어.유적발굴단의 삽이 닿는 순간그 이름들이 다시 깨어나.쌍림동은 기억하고 있어.그리고 이제 네가 그 기억을 이어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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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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