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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오래된 지도 위, 1912년의 서대문구 합동이 살아 숨쉰다

최종 수정일: 8월 16일

목차

1. 잊혀진 동네, 1912 서대문구 합동으로의 시간 여행

2. 집과 밭이 그린 풍경 – 202필지의 대지와 11필지의

3. 성씨로 보는 땅의 주인들누가 합동을 지배했나

4. 낯선 얼굴들미국인과 일본인의 이야기

5. 시절 골목의 하루생활상과 사람들의 표정

6. 100 기록이 오늘날에 주는 의미

7. 문화유산 발굴과 지표조사로 다시 만나는 합동의 역사



한 장의 오래된 지도 위, 1912년의 합동이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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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합동. 오늘날엔 빌딩과 도로, 카페와 주택이 뒤섞인 도시 속 한 구역이지만, 113년 전 이곳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흙길을 따라 걸으며 장에 가고, 누군가는 대문 앞에서 장독대를 닦고 있었죠. 그리고 그 모든 일상을 기록한 숫자가 남아 있습니다. 213필지, 79,626㎡. 이 단순한 수치 속에 그 시절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1. 잊혀진 동네, 1912 서대문구 합동으로의 시간 여행


1912년은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본 통치가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변화의 한가운데, 서대문구 합동은 한적하면서도 도시로 변해가는 중간 지점이었죠. 213필지, 79,626㎡의땅. 안에는 크고 작은 , 마당, 그리고 소규모 밭이 있었습니다.



2. 집과 밭이 그린 풍경 – 202필지의 대지와 11필지의


그해 합동에는 대지만 무려 202필지, 73,428㎡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주택지였지만, 단순한 집터를 넘어 부속 마당과 창고, 우물자리까지 포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밭은 11필지, 6,198㎡였는데, 이는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농사와 자급자족이 이루어졌음을보여줍니다. 봄이면 밭고랑 사이로 푸른 새싹이 올라오고, 가을이면 곡식 냄새가 골목을 채웠을 것입니다.



3. 성씨로 보는 땅의 주인들누가 합동을 지배했나


기록을 들여다보면 특정 성씨가 합동의 주인이었습니다. 이씨가 44필지, 김씨가 42필지, 박씨가 17필지, 최씨가 12필지. 당시 토지는 몇몇 가문이 크게 소유하고 있었죠. 이런 구조는 마치 작은 왕국처럼, 골목마다누구네 이라는 호칭이 붙어 불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4. 낯선 얼굴들미국인과 일본인의 이야기


놀랍게도, 합동에는 외국인도 살았습니다. 미국인은 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마 선교사 주택이나 교육기관 부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인은 6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912년이면 이미 한일병합 2년이 지난 시점이라, 일본인의 토지 소유가 서서히 늘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이는 훗날 합동의 풍경을 크게 바꿔놓게됩니다.



5. 시절 골목의 하루생활상과 사람들의 표정


아침이면 장터로 가는 사람들로 골목이 분주했고, 아이들은 대문 앞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아궁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냄새와 함께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대지와 밭의 비율, 성씨별 토지 소유, 외국인 거주까지 모든 요소가 당시 합동의 일상을형성했습니다.



6. 100 기록이 오늘날에 주는 의미


자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도시의 변화, 토지 구조,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죠. 오늘날 우리가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를 통해 모습을 복원하는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7. 문화유산 발굴과 지표조사로 다시 만나는 합동의 역사


지금의 합동은 100 전과 전혀 다른 풍경을 하고 있지만, 속에는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서울의 문화유적 시굴조사, 표본조사, 지표조사, 발굴조사를 통해 이런 과거를 되살릴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록을 보고, 시절 합동의 골목을 다시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들렸던웃음소리와 발걸음 소리까지 상상하면서요.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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