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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오래된 지도 위, 1912년의 서대문구 합동이 살아 숨쉰다

  • 2025년 8월 16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8일

문화재 발굴 · 지표조사 · 서울 서대문구 합동 역사

서대문 합동, 213필지가 품은 1912년의 골목이씨·김씨·미국인·일본인이 뒤섞인 땅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말하다

서대문구 합동 · 213필지 · 79,626㎡ · 문화재 발굴조사의 현장

출처: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문화재 지표조사 기초자료

한 장의 오래된 지도 위, 1912년의 합동이 살아 숨쉽니다. 당신이 오늘 걷는 그 골목에서, 113년 전 누군가 흙길을 따라 장에 가고 있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합동. 지금은 빌딩과 도로, 카페와 주택이 뒤섞인 도심 속 한 구역이지만, 1912년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장터로 가는 사람들로 골목이 분주했고, 대문 앞에선 장독대를 닦는 아낙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213필지의 땅 안에는 이씨·김씨 가문의 집 옆에 미국인의 부지와 일본인의 소유지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당신이 매일 지나치는 합동의 골목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할 겁니다.


목차

  1. 1912년 합동 — 213필지의 전체 풍경

  2. 202필지의 대지와 11필지의 밭 — 집과 밭이 그린 풍경

  3. 그 시절 골목의 하루 — 합동 사람들의 생활상

  4. 이씨·김씨·박씨·최씨 — 성씨로 보는 땅의 주인들

  5. 미국인 1필지, 일본인 6필지 — 낯선 얼굴들의 땅 이야기

  6. 합동이라는 이름이 품은 역사적 맥락

  7. 문화재 지표조사와 연결되는 합동의 과거

  8. 성공 사례 — 발굴이 되살린 서울 골목의 기억들

  9. 100년 전 기록이 오늘날에 주는 의미

  10. 마무리 — 합동 골목이 지금 당신에게 건네는 말



SECTION 01

1912년 합동 — 213필지의 전체 풍경

서대문구 합동. 지금은 신촌과 홍대 사이에 자리 잡은 조용한 주거 구역이지만, 1912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합동은 총 213필지, 79,626㎡의 땅이었습니다.

1912년은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본 통치가 막 시작된 지 2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서대문구 합동은 한적하면서도 도시로 변해가는 중간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조선의 마을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서서히 스며들던 과도기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213필지의 기록에는 이 시리즈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미국인 소유지가 담겨 있습니다. 원효로4가(1필지)에 이어, 합동에서도 미국인 소유지가 확인됩니다. 조선·일본·미국 세 나라의 이름이 한 마을 안에서 교차하는 이 기록이 합동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213총 필지 수

79,626㎡총 면적

202대지 필지 수

11밭 필지 수

44이씨 소유 필지

7외국인 소유 필지


SECTION 02

202필지의 대지와 11필지의 밭 — 집과 밭이 그린 풍경

합동 213필지 중 202필지, 73,428㎡가 대지였습니다. 전체의 95%가 집터였다는 이 수치는 이 시리즈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원효로4가(95%)와 나란히, 합동이 얼마나 순수한 주거 공간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논밭이 넓게 펼쳐진 농촌과는 달리, 합동은 이미 1912년에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주거 밀집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1필지, 6,198㎡가 밭이었습니다. 202필지의 집터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이 밭들은,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농사와 자급자족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전체 면적의 8%에 불과한 밭. 그러나 이 작은 경작지가 합동 사람들의 밥상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을지는 쉽게 상상됩니다.

202필지의 대지는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매우 집중적인 생활 유물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구역입니다. 기와 조각, 백자 파편, 건물 기초 구조물, 우물터, 아궁이 잔재. 부속 마당과 창고, 우물자리까지 포함했을 이 202필지 하나하나가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타임캡슐입니다.



SECTION 03

그 시절 골목의 하루 — 합동 사람들의 생활상

1912년 합동의 하루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202채의 집이 줄지어 선 이 마을에서, 아침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상상해보세요 — 1912년 합동의 어느 봄 아침첫닭이 울면 골목 안쪽에서 아궁이 불 피우는 냄새가 납니다. 이씨 댁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장독대를 확인하고, 김씨 아저씨는 지게를 지고 장터로 향합니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다 어른들 발길에 쫓겨납니다. 11필지의 밭에서는 봄 햇살 아래 새싹이 올라오고,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아궁이 연기가 골목 가득 퍼집니다. 그리고 어느 골목 끝, 낯선 언어가 들리는 집 하나. 미국인 선교사의 집이었을까요.

합동의 95%가 집터였다는 사실은 이 마을이 얼마나 촘촘하게 사람들의 삶으로 채워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웃과 담장을 맞대고 살며, 골목 하나 건너 서로의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생일과 제삿날이면 음식을 나누던 공동체. 그 생생한 삶의 흔적이 지금 합동의 땅 아래에 잠들어 있습니다.

— ◆ —


SECTION 04

이씨·김씨·박씨·최씨 — 성씨로 보는 땅의 주인들

1912년 합동의 토지 기록에서 네 성씨가 두드러지게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씨가 44필지, 김씨가 42필지, 박씨가 17필지, 최씨가 12필지를 소유했습니다.

이씨44필지최대 보유 가문

김씨42필지두 번째

박씨17필지세 번째

최씨12필지네 번째

이씨 44필지와 김씨 42필지. 두 가문의 차이가 단 2필지에 불과합니다. 이 팽팽한 균형은 합동이 특정 가문의 독점이 아닌, 두 대가문이 균형을 이루며 마을을 이끌었음을 시사합니다. 마을 제사에서, 공동 행사에서, 혼사와 중요한 결정에서 이씨와 김씨 두 가문의 목소리가 늘 함께 울렸을 것입니다.

네 성씨를 합하면 115필지로 전체 213필지의 54%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절반 가까운 필지들도 다양한 성씨들에게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합동이 소수 가문의 독점 마을이 아니라, 다양한 혈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열린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이씨와 김씨의 기록은 출토된 유물의 소유자를 추적하는 핵심 단서가 됩니다. 이 두 가문의 44필지와 42필지가 합동 어느 구역에 분포했는지를 추적하면,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살펴야 할 구역이 결정됩니다.


SECTION 05

미국인 1필지, 일본인 6필지 — 낯선 얼굴들의 땅 이야기

합동 213필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펼쳐지는 대목이 여기 있습니다. 미국인 소유지 1필지, 일본인 소유지 6필지. 이씨와 김씨의 골목 마을 안에 두 나라 외국인의 땅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인 소유1

필지


선교사 주택 또는


교육기관 부지


가능성

일본인 소유6

필지


1910년 한일병합 후


서서히 확대되던


토지 소유

미국인 소유지 1필지는 당시 서울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기독교 선교사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대문구 일대는 1900년대 초 선교사들이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지역이었습니다. 합동의 그 1필지에 예배당이 있었는지, 선교사 사택이 있었는지는 더 깊은 조사가 필요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합동이 당시 국제적인 흐름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일본인 소유지 6필지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 직후 일본인들이 서울 곳곳에 토지를 매입하거나 취득하던 시기에, 합동도 그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6필지라는 수치는 원효로3가(54필지), 이촌동(48필지)에 비하면 적지만, 그 안에는 합동이 식민지 경제 구조 안에 편입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맥락 — 합동의 미국인·일본인 소유지

이 시리즈에서 미국인 소유지가 등장한 마을은 원효로4가(1필지)와 합동(1필지) 두 곳입니다. 1912년 서울에서 미국인이 토지를 소유했다는 것은 대부분 선교사, 외교관, 혹은 상인과 관련된 경우였습니다. 합동의 서대문구라는 위치와 당시 이 지역의 선교 활동 역사를 고려하면, 기독교 관련 시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1필지는 문화재 조사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집니다.


SECTION 06

합동이라는 이름이 품은 역사적 맥락

서대문구 합동(蛤洞). 이 이름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합(蛤)은 조개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왜 조개 합 자가 이 동네 이름에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명에는 늘 그 땅의 오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이 지명의 기원을 밝히는 단서도 함께 발견될지 모릅니다.

1912년 합동이 위치한 서대문구는 조선시대부터 서쪽 성문인 돈의문(서대문)과 연결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한양 도성 밖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흐름이 1912년 기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씨와 김씨 가문의 전통적 마을 구조, 그리고 미국인과 일본인의 존재가 공존하는 합동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교차로였습니다.

오늘날 서대문구는 신촌과 홍대 문화권의 영향 속에 있습니다. 20·30대가 즐겨 찾는 이 지역이 1912년에는 이씨와 김씨 가문의 골목 마을이었다는 사실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빠른 변화와 깊은 역사를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SECTION 07

문화재 지표조사와 연결되는 합동의 과거

1912년 합동의 213필지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진행하는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와 직접적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합동은 202필지의 대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주거 밀집 지역이면서도, 미국인과 일본인의 소유지라는 독특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마을입니다.

합동 어딘가에 있었을 미국인 소유 1필지의 위치를 파악한다면, 그곳에서 선교 관련 유물이나 서양식 건축 자재가 출토될 수 있습니다. 일본인 소유 6필지 구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초기 건물지의 잔재가 발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씨·김씨 가문의 골목에서는 조선 후기 생활 유물이 풍부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합동에서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씨 44필지와 김씨 42필지가 집중된 구역의 생활 유구, 미국인 소유지 1필지의 건물 잔재, 일본인 소유지 6필지의 식민지 초기 흔적을 추적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발굴조사의 단계적 접근을 통해, 조선·미국·일본 세 문화의 층위가 공존하는 합동의 복합 역사를 온전히 복원할 수 있습니다.


SECTION 08

성공 사례 — 발굴이 되살린 서울 골목의 기억들

성공 사례 01 — 서울 청진동 발굴조사, 도시의 뿌리를 재조명하다

현대적 건물이 들어서기 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생활 유구와 건물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발굴은 도시의 뿌리를 재조명하게 했고, 도시 개발과 문화재 보존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합동처럼 202필지의 집터가 빼곡한 주거 밀집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 02 — 인사동 금속활자, 조사가 역사를 구하다

종로구 인사동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에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선행된 덕분에 조선 전기 금속활자와 과학 기기가 출토되었습니다. 합동의 미국인 소유지 1필지 구역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당시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특수 도구나 건축 자재가 발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선과 서양 문화가 교차하던 합동의 흔적이 땅속에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 03 — 용산 일대 다층 역사 유구 발굴

용산구 일대에서 진행된 발굴조사들에서 조선시대 생활 유구와 일제강점기 건물지가 같은 지층에서 중첩 출토된 사례가 있습니다. 합동처럼 조선인 가문과 일본인 소유지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두 시대의 흔적이 함께 발굴되는 성과가 기대됩니다.



SECTION 09

100년 전 기록이 오늘날에 주는 의미

1912년 합동의 213필지는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도시의 변화, 토지 구조,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서대문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이 땅 위에서 살아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씨와 김씨 가문의 균형 잡힌 공존, 그 옆에 자리 잡은 미국인의 1필지와 일본인의 6필지. 이 구성은 1912년 합동이 얼마나 복잡한 시대적 맥락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전통과 근대, 자주와 종속, 동양과 서양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이런 기록을 되살리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위에서 더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투자입니다. 합동의 213필지가 오늘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SECTION 10

마무리 — 합동 골목이 지금 당신에게 건네는 말

1912년 서대문구 합동의 213필지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이씨와 김씨 가문이 이웃해 살던 골목, 11필지의 밭에서 봄마다 새싹이 오르던 풍경, 미국인 선교사의 집에서 들리던 낯선 언어, 그리고 6필지를 잠식해 들어오던 일본의 그림자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걷는 합동의 골목 아래에 고요히 잠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기록을 보고 그 시절 합동의 한 골목을 다시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들렸던 웃음소리와 발걸음 소리까지 상상하면서요. 그리고 그 상상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실제 역사로 복원될 때, 합동은 단순한 동네를 넘어 살아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언제나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은 당신이 합동의 골목을 걸을 때, 잠깐 발을 멈추고 땅 아래 잠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213필지의 골목이지금 당신에게 말을 건다"

이씨 44필지와 김씨 42의 집이 이웃해 살던 골목, 11필지의 밭에서 봄이면 새싹이 오르고 가을이면 곡식 냄새가 골목을 채우던 그 마을. 그리고 미국인의 집 1필지와 일본인의 땅 6필지가 조용히 그 옆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조선과 미국과 일본의 이름이 한 골목 안에서 교차하던 1912년의 합동. 그 모든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걷는 이 좁은 골목 아래, 고요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의 첫 삽이 내려지는 순간, 그 이야기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옵니다. 관심이 역사를 지키는 힘입니다.

합동의 213필지는 오늘도당신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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