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 망우리의 땅이 들려주는 1912년의 기억 – 잊혀진 중랑의 유산을 찾아서
- 2025년 11월 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6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중랑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근심을 잊는 마을, 망우리 — 1912년 555필지가 품은 정씨골의 논과 밭, 그리고 잊혀선 안 될 이야기
망우리(忘憂里). 근심을 잊는 마을이라는 뜻이야. 그런데 이 땅이 품은 이야기를 들으면 근심보다 더 무거운 감정이 밀려와. 정씨가 127필지를 일구던 들판 아래에 조선의 도자기 파편이 잠들어 있고, 독립운동가들이 눈을 감은 그 언덕 아래에 이름 모를 조상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어.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망우역에서 내릴 때마다 발밑이 다르게 느껴질 거야.
목차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무게 — 프롤로그
논과 밭이 만든 삶의 풍경 — 1912년 망우동의 땅
1912년 망우동의 사람들 — 성씨로 보는 마을 구조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와 국유지의 확장
묘역과 산이 말해주는 유적발굴의 단서
문화재 발굴의 현재,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의 역할
오늘의 도시 속에 살아 있는 과거 — 에필로그
프롤로그이름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무게

망우리(忘憂里). 근심을 잊는 마을이라는 뜻이야. 그런데 이 땅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잊기보다는 기억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아. 1912년, 이곳은 단순한 동네가 아니었어. 논과 밭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사이를 물길이 흐르던 이 땅은 수백 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식민의 흔적이 얽혀 있는 거대한 기록이었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틀 속에서 잊혀가던 이 땅이 오늘날 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단의 손끝을 통해 다시 깨어나고 있어. 한 삽의 흙을 젖히면 나오는 조선의 도자기 파편, 돌담의 흔적, 이름 모를 조상의 묘비 하나. 그 모든 것이 망우동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유물발굴작업의 시작점이야.
1논과 밭이 만든 삶의 풍경 — 1912년 망우동의 땅

1912년 망우동은 555필지 1,437,196㎡의 면적을 가진 큰 마을이었어. 지금의 중랑구 망우동 전체를 떠올려봐. 중랑천 인근의 평탄한 들판 전체가 논이었고, 그 주변 완만한 경사를 따라 밭이 이어졌어. 한양의 동쪽 끝자락에서 쌀과 보리를 키우며 서울로 물자를 공급하던 중요한 농업 지대였던 거야.
555
총 필지 수
1,437,196
총 면적(㎡)
191
논 필지
301
밭 필지
지목 구분 | 필지 수 | 면적(㎡) | 비고 |
밭 | 301필지 | 493,575 | 가장 많은 필지 |
논 | 191필지 | 792,872 | 가장 넓은 면적 |
임야 | 13필지 | 111,233 | 묘역 인접 산 |
대지 | 기타 | 기타 | 주거 공간 |
분묘지 | 1필지 | 446 | 조상 무덤 |
논·밭 면적 비교
논
792,872㎡
밭
493,575㎡
임야
111,233㎡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과 달리 망우동은 밭보다 논의 면적이 훨씬 넓었다는 거야. 필지 수는 밭이 더 많지만 면적은 논이 앞서. 중랑천에서 흘러오는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평탄한 지형 덕분이야.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논을 적셨고, 그 곁에는 흙벽돌로 지은 초가집들이 줄지어 있었겠지. 지금의 중랑천 인근의 평탄한 지형이 바로 그때부터 삶의 터전이었던 거야.
21912년 망우동의 사람들 — 성씨로 보는 마을 구조

이 마을의 주인공은 '정씨'였어. 127필지. 다른 어떤 성씨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숫자야. 공릉동이 한씨와 김씨가 비슷하게 나뉜 다성씨 마을이었다면, 망우동은 정씨 집안이 마을의 중심을 확실히 잡고 있었어.
정씨
127필지
김씨
74필지
윤씨
42필지
신씨
39필지
이씨
36필지
박씨
26필지
최씨
26필지
장씨
18필지
남씨
11필지
지씨
10필지
성씨 분포는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니야. 지표조사에서 지역의 공동체 구조를 읽어내는 핵심 단서야. 특정 성씨가 집중된 지역은 혈연 중심 집성촌일 가능성이 커. 그런 마을에는 조상의 묘역, 재실, 제단 같은 문화재적 가치가 숨어 있어. 발굴조사원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곳들이야.
정씨골, 그 이름의 무게
정씨가 지배했던 망우동은 '정씨골'이라 불렸어. 마을의 중심에는 정씨 집안의 재실이 있었고, 그 주변의 밭과 논은 대대로 같은 가문이 경작하며 전통을 이어갔어. 재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야. 제사를 지내고,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이었어. 그 재실 자리가 어디인지는 지금도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탐색 대상이야.
3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와 국유지의 확장
그러나 1912년의 망우동은 평온하지만은 않았어.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지역 토지를 대거 사들였거든. 기록에 따르면 47필지가 동척의 소유로 넘어갔어. 공릉동의 93필지보다는 적지만, 망우동 전체 555필지에서 47필지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야.
망우동 토지 수탈 현황 — 1912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47필지 / 국유지: 28필지 / 공유지: 1필지 / 마을 소유지: 3필지 / 법인 소유지: 1필지. 합산하면 외부 세력과 국가가 장악한 토지가 80필지를 넘어. 망우동 10필지 중 1.5필지 이상이 조선 농민의 손에 없었던 거야. 동척이 세운 창고와 관리소 주변에서는 농민들의 이주가 이어졌고, 그 자리에 일제식 건물들이 들어섰어. 오늘날 발굴조사원들이 땅속에서 찾아낸 벽돌 잔해와 일본제 도자기 파편이 바로 그 시기의 흔적이야.
이 수치는 식민통치가 진행되면서 토지 소유권이 공공과 제국의 손으로 옮겨가던 시대적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줘. 정씨 집안이 127필지를 일구던 마을에 일제가 조용히 손을 뻗어오던 그 과정이, 1912년 토지 대장 한 장에 숫자로 남아 있는 거야.
4묘역과 산이 말해주는 유적발굴의 단서

망우리라는 이름에서 '망(忘)'은 잊는다는 뜻이지만 이 땅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소야. 지금도 망우리공원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어. 하지만 그보다 오래된 묘역의 흔적은 이미 1912년 토지대장에서 시작돼.
당시 기록에는 분묘지 1필지 446㎡와 임야 13필지 111,233㎡가 존재했어. 이는 지금의 망우리공원과 이어지는 유적발굴단의 조사 구간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 당시 묘역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야. 조선 후기 묘제와 석물, 봉분 구조를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야. GPS 기반 정밀측량기와 지하탐사레이더로 발전한 오늘날의 문화재 발굴조사 장비가 그 구조를 정밀하게 읽어내고 있어.
망우리공원 —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의 가치
망우리공원은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어. 하지만 문화재 발굴조사 관점에서는 그 아래 층위, 즉 조선시대 일반 주민들의 묘역 구조가 더 주목받고 있어. 양반 가문의 봉분, 상석, 문인석 배치 방식,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되는 도자기류는 이 지역 조선 후기 생활사를 재구성하는 핵심 자료야.
5문화재 발굴의 현재,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의 역할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단순히 과거를 캐내는 작업이 아니야. 현재의 도시 개발 속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이 땅이 어떤 기억을 품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야. 망우동 일대는 지금도 도로 확장, 주거지 개발, 공원 정비 사업이 계속되고 있어.
이때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은 시굴조사와 표본조사를 병행하며 문화재 훼손 가능성을 최소화해. 때로는 도자기 조각 하나, 나무 말뚝 하나가 도시 설계도를 바꾸기도 해. 삽을 드는 순간 시작되는 긴장감, 그리고 한 조각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낼 때의 전율. 이것이 유물발굴작업의 진짜 매력이야. 서울의 발전과 보존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세심한 문화재 발굴과정 덕분이야.
에필로그오늘의 도시 속에 살아 있는 과거

망우리묘지공원. 그 언덕에 잠든 이름들을 떠올려봐. 그들이 눈을 감은 곳의 땅 아래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많은 선조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어. 정씨, 김씨, 윤씨, 신씨. 127필지에서 10필지까지 이 땅을 일구었던 그 손들의 흔적이 흙 속에 잠들어 있어.
그들의 흔적은 1912년 토지대장 속 숫자에서, 발굴 현장의 흙냄새 속에서, 그리고 오늘의 우리 눈앞에서 되살아나. 서울의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캐내는 일이 아니야. 현재의 우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야. 망우리의 흙 아래 숨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그 기억을 서울의 미래로 이어가는 것.
근심을 잊는 마을에서 기억을 지키는 도시로
망우리(忘憂里). 근심을 잊는 곳이라는 이름이지만이 땅이 품은 기억은 잊혀선 안 돼.정씨 집안이 127필지를 갈던 그 논에지금은 아파트가 서 있고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어.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 땅의 이야기를 알게 될 때서울은 비로소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는 도시가 돼.그리고 그 기억의 첫 번째 페이지는언제나 발굴조사원의 붓끝에서 시작돼.
서울문화유산망우리역사기행문화재발굴문화재지표조사중랑구지역조사유물발굴유적발굴발굴조사원일기서울유적탐방유물발굴작업문화재발굴조사장비동양척식주식회사망우리공원역사1912년서울중랑천역사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