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무교동, 1912년으로의 시간 여행
- 서울 HI
- 8월 1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16일
목차
무교동, 1912년으로의 시간 여행
94필지 24,922㎡, 숫자 속에 숨은 이야기
김씨, 이씨, 그리고 다양한 성씨들의 땅 소유 현황
일본인과 중국인의 등장, 다문화의 시작
무교동 골목 속 사람들의 하루
지금의 무교동과 이어지는 역사적 의미
문화유적 조사와 발굴, 그 가치를 되살리다
서울 중심의 땅이 말해주는 미래

무교동, 그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고층 빌딩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풍경일 겁니다.
하지만 1912년의 무교동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은 서울 한복판이었지만, 오늘날의 화려함 대신 골목마다 낮은 기와집과 나무 울타리가 늘어서 있었죠.
그곳엔 94필지, 총 24,922㎡라는, 지금으로 치면 작은 동네 한 구역 크기의 땅이 있었습니다.
이 숫자만 보면 그냥 통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경제, 그리고 문화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12년의 기록에 따르면, 무교동의 땅은 다양한 성씨들이 나눠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건 김씨로, 무려 16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씨가 14필지를 갖고 있었죠.
이 두 성씨가 무교동의 절반 가까운 땅을 점유하며 지역의 주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곳이 이미 국제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8필지를, 중국인들이 2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무교동 골목 어귀마다 일본식 가게, 중국 음식점이 자리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아마 길을 걷다 보면 일본어 인사와 중국어 장터 호객 소리가 섞여 들렸을 겁니다.
그 시절 무교동의 하루를 상상해 봅니다.
아침이 되면 장터로 향하는 행상들이 땅거미처럼 모여들고,
기와집 안에서는 장작불에 밥을 지으며 하루를 시작했겠죠.
일본 상인들은 일본에서 들여온 물건들을 진열했고,
중국인들은 향신료 가득한 요리를 팔며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을 겁니다.
이런 기록들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문화유적 발굴과 지표조사, 시굴조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옛날의 땅과 건물, 생활 흔적이 현재의 도시 속에 여전히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발굴조사를 하다 보면, 이렇게 100년 전의 생활사와 연결되는 자료들이 발견됩니다.
이것이 단순한 학술 기록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무교동의 이야기는 결국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다양한 사람과 문화 속에서 성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 지역에서 발굴조사나 표본조사가 진행된다면,
아마도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가 땅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글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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