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서울 중구 봉래동1가, 땅 위에 새겨진 역사 — 서울 문화재 지표조사로 본 토지와 사람들의 이야기
- 서울 HI
- 8월 29일
- 3분 분량
목차
1. 서울 도심 속 봉래동1가, 1912년의 풍경
2. 165필지 38,251㎡, 집과 마을의 규모
3. 김씨, 이씨, 박씨… 봉래동1가의 성씨별 토지 분포
4. 독일인과 일본인의 토지 소유, 제국주의의 그림자
5. 왜 문화재 지표조사가 중요한가?
6. 봉래동1가 사례로 보는 지표조사의 가치
7. 현대 서울 개발과 문화재 발굴의 갈등과 조화
8. 성공적인 발굴 사례와 교훈
9.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의 의미
10. 봉래동1가에서 미래 서울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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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12년, 지금의 서울 중구 봉래동1가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을까요?
도시를 걷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에도 사실 수백 년, 수천 년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건물과 길은 단지 현재의 모습일 뿐, 그 아래 땅 속에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지요. 특히 1912년의 봉래동1가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그 당시 봉래동1가는 총 165필지, 면적으로는 38,251㎡에 달하는 땅 위에 형성된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의 면적 개념으로 환산해 보면, 이는 축구장 다섯 개 이상을 합친 크기로, 단순한 작은 동네가 아니라 상당히 밀집된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좁은 골목길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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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필지의 집, 그리고 사람들의 삶
봉래동1가의 165필지는 단순히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각 필지는 한 가족의 생활 터전이자, 조상의 땀과 흔적이 서린 공간이었지요. 대문 앞에는 나무로 된 문패가 걸려 있었고, 작은 우물과 장독대가 골목마다 자리했습니다.
김씨가 30필지를, 이씨가 25필지를, 박씨가 15필지를 소유하며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집에서는 늘 장작 타는 연기와 된장 냄새가 풍겼고, 명절마다 집안 대문 앞에는 붉은 복주머니가 붙어 있었지요.
하지만 봉래동1가는 특정 성씨만의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가문과 계층이 모여 살아가며, 서울 도심의 다채로운 삶을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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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소유, 독일인과 일본인의 흔적
이 시기 봉래동1가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외국인의 토지 소유입니다. 당시 독일인이 2필지를 소유하며 거주했는데, 이는 서울의 개항 이후 서양인들이 도심 속으로 점차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작은 단서입니다.
그러나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 직후 적극적으로 서울의 토지를 확보하며 도시 구조를 바꿔 나갔습니다. 봉래동1가에서도 무려 24필지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거주가 아니라 권력과 지배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 지역의 토지 분포만 살펴봐도, 우리는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봉래동1가는 단지 주거지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지화라는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 현장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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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표조사가 왜 중요한가?
이쯤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답은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입니다. 지표조사는 개발이나 건설을 하기 전에 해당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땅 위의 흔적, 땅 속의 흔적을 탐색해 과거 사람들의 삶을 복원해내는 작업이지요.
만약 봉래동1가 같은 지역이 단순히 건설로 덮여 버렸다면, 우리는 그 속에 담긴 1912년의 이야기, 조선인과 일본인, 그리고 서양인이 함께 살았던 복잡한 역사를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지표조사는 그저 땅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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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사례로 보는 문화재 발굴
서울 곳곳에서 발굴된 문화재 사례를 보면, 지표조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예컨대 종로의 한 개발 현장에서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는 조선시대 골목길과 생활유적이 발견되었고, 이를 계기로 지역 개발 계획이 조정되며 문화재와 현대 건물이 공존할 수 있는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봉래동1가 역시 앞으로 개발과 재개발 과정에서 지표조사를 철저히 시행한다면, 단순한 부동산 가치를 넘어 서울의 역사적 자산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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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1912년 봉래동1가의 165필지 중 상당수는 오늘날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지대장과 발굴조사를 통해 남겨진 기록은, 우리가 당시 사람들의 삶을 다시 그려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결국 우리가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땅은 단순히 집을 짓는 자리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이야기의 저장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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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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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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