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서울의 골목, 1912년 서대문구 충정로2가로의 시간여행
최종 수정일: 5월 8일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 서대문 역사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교지 바로 옆,
1912년 충정로2가를 아시나요?
— 180필지 위에 공존했던 이씨·김씨·미국인·일본인의 기묘한 동거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충정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서소문역사공원이 나옵니다.
그 공원 지하에는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성지가 있고, 수백 명이 참수당한 처형장의 기억이 잠들어 있습니다. 2019년, 그 공원을 리모델링할 때 땅속 역사와 마주했기 때문에 지금의 박물관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 공원에서 불과 몇 발짝 거리에 있는 충정로2가. 1912년, 이 동네의 땅은 누가 갖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그 땅 아래엔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요?
180필지
1912년 충정로2가
대지 필지 수
102,532㎡
전체 토지
총 면적
21필지
미국인+일본인
외국인 소유
목 차
1.잊혀진 서울의 골목, 1912년 충정로2가로의 시간여행
2.충정로2가의 땅은 누가 소유하고 있었을까
3.다양한 지목 — 충정로2가 땅의 용도는?
4.일본인과 미국인, 외국인 토지 소유가 뜻하는 것
5.당시를 상상해보자 — 충정로2가의 삶과 풍경
6.문화재 지표조사로 본 충정로2가의 역사적 가치
7.성공 사례 — 서소문 역사공원이 보여준 가능성
8.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
9.마무리 — 사라지기 전, 기록해야 할 가치
01
잊혀진 서울의 골목, 1912년 충정로2가로의 시간여행
눈을 감고 상상해보세요. 지금의 충정로 교차로에서 아스팔트가 사라지고, 자동차 소음이 멈춥니다. 그 자리에 흙길이 깔리고, 흙담 너머로 기와집 처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골목 어귀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어르신이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바람을 맞습니다. 1912년 충정로2가. 오늘날 교통의 요지이자 번화한 도심인 이곳이, 113년 전에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평온한 골목 풍경 뒤로, 이미 시대의 격류가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한일병합 2년 차. 서대문 일대는 조선 서쪽 관문의 역할을 여전히 하면서도, 일본의 행정 체계와 외국인 자본이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충정로2가의 총면적 102,532㎡, 그 땅의 기록 속에 그 시대의 공기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충정로2가는 지금의 서소문 일대와 충정로역을 아우르는 구역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이 지역은 한양 도성 서쪽의 상업·교통 거점이었고, 바로 옆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최대의 공식 처형장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 역사적 무게가 이 동네의 땅속 깊은 곳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02
충정로2가의 땅은 누가 소유하고 있었을까
1912년 충정로2가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성씨는 이씨였습니다. 30필지. 이어서 김씨 28필지, 박씨 20필지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 세 성씨만 합쳐도 78필지로 전체 대지 180필지의 43%를 차지합니다.
이씨
30필지
김씨
28필지
박씨
20필지
일본인
14필지
미국인
7필지
이씨가 충정로2가에서 가장 많은 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건, 이 집안이 오래전부터 이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30필지를 가진 이씨 가문은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졌을 겁니다. 김씨 28필지도 거의 비슷한 규모로, 이 두 가문이 충정로2가의 실질적인 중심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씨 20필지. 셋 중 가장 적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이씨, 김씨, 박씨. 이 세 성씨의 조합이 1912년 충정로2가의 조선인 토지 소유 구조를 대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전혀 다른 이름의 주인들이 등장합니다.
03
다양한 지목 — 충정로2가 땅의 용도는?
충정로2가의 토지 구성을 용도별로 보면, 이 동네의 성격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지목 | 필지 수 | 면적 (㎡) | 특징 |
대지 | 180 | 77,322 | 전체의 75.4%, 주거 집중 |
밭 | 9 | 23,610 | 도시 근교 농업의 흔적 |
임야 | 1 | 1,600 | 마을 끝 자연 공간 |
대지가 180필지, 77,322㎡로 전체의 75.4%를 차지합니다. 이는 충정로2가가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동네들 중 주거 비중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논도 없고, 무덤도 없습니다. 거의 전체가 집과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러면서도 9필지, 23,610㎡의 밭이 남아 있었습니다. 충정로2가는 도심의 문턱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아직 밭을 놓지 못한 경계 지대였습니다. 그 밭에서는 무엇이 자랐을까요? 아마도 배추, 무, 파 같은 부식거리였을 겁니다. 아침마다 밭에서 채소를 뽑아 근처 장터에 내다 파는 아낙의 발걸음이 그려집니다.
임야 1필지, 1,600㎡. 가장 작은 규모지만 의미심장합니다. 동네 가장자리에 남아 있던 이 산림 지역은, 아이들이 나무에 오르고 어른들이 땔감을 구하러 가던 마지막 자연 공간이었을 겁니다. 지금 그 자리엔 무엇이 세워져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04
일본인과 미국인, 외국인 토지 소유가 뜻하는 것
충정로2가의 토지 기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외국인 소유 토지입니다. 일본인 14필지, 미국인 7필지. 이 두 나라의 사람들이 같은 동네 안에서 땅을 나눠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
미국인
7필지 소유
1880년대 이후 서대문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미국 선교사들의 토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근에 약현성당(1892년), 배재학당 등 선교 관련 시설이 집중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
일본인
14필지 소유
미국인의 두 배. 한일병합 2년 차인 1912년, 일본인들은 서울 도심 인근 상업지구의 토지를 빠르게 매입하고 있었습니다. 14필지는 상점, 숙소, 행정 관련 시설 용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인 7필지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충정로2가 인근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1892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인 약현성당이 바로 이 일대에 세워졌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은 1880년대부터 서대문 인근에 교회, 병원, 학교를 잇달아 세우며 이 지역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충정로2가의 미국인 7필지는 그 선교 거점의 부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인 14필지는 다른 맥락입니다. 충정로3가 편에서 살펴봤듯이, 일본인들은 서대문 서쪽의 교통 요충지를 타깃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있었습니다. 충정로2가도 그 범위 안에 있었습니다. 이씨, 김씨, 박씨가 오랫동안 지켜온 동네 한 귀퉁이에, 이미 식민지 자본의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던 겁니다.
충정로2가 인근 역사 타임라인
1892년
약현성당 — 한국 최초 서양식 벽돌 성당 건립, 인근 서소문 일대
1900년
경인선 개통, 서소문 일대 교통·물류 기능 급부상
1908년
서대문감옥(경성감옥) 개소, 인근 현저동
1910년
한일병합, 일본인 토지 매입 본격화
1912년
충정로2가 토지대장 작성 — 이 글의 기준 시점
05
당시를 상상해보자 — 충정로2가의 삶과 풍경
1912년 충정로2가의 골목을 걷는다면 어떤 소리가 들렸을까요. 아침 일찍 밭에서 채소를 뽑는 소리, 이웃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냄새, 가까운 서소문 밖 장터에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외침. 그리고 어느 이른 아침, 가죽 신발 소리를 내며 골목을 지나가는 낯선 외국인의 발걸음.
이씨 어른과 박씨 아낙과 미국인 선교사와 일본인 상인이, 같은 골목 안에서 아침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서로 언어도 다르고 목적도 달랐지만, 같은 땅 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 공존의 흔적이 지금 충정로2가 어딘가의 땅속에 남아 있습니다. 쓰다 버린 도자기 조각, 건물 기초의 잔재, 오래된 우물의 흔적으로.
이 골목의 이야기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그리고 발굴조사. 땅을 파기 전에 먼저 기록을 살피고, 가능성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는 작업. 그 순간에 1912년의 이야기가 현재로 돌아옵니다.

06
문화재 지표조사로 본 충정로2가의 역사적 가치
충정로2가는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지역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대지 180필지 77,322㎡는 오랫동안 사람이 거주한 공간이었습니다. 주거지가 오래될수록 생활 유물이 켜켜이 쌓입니다. 조선시대 기와 조각, 생활 도기, 건물 기초, 우물 구조물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미국인과 일본인이 소유한 21필지는 근대 초기의 이문화 접촉을 보여주는 구역입니다. 서양식 건물 기초, 수입 도자기, 유리 제품, 의료 기구 같은 근대 유물이 이 구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될 수 있습니다. 이런 유물들은 한국 근대사 연구의 소중한 1차 자료입니다.
셋째, 충정로2가는 서소문 밖 네거리와 인접해 있습니다. 조선 최대의 공식 처형장이었던 그 자리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역사의 무게가 인접한 충정로2가의 토지에도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지표조사는 그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개발 사업 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며, 이 조사 없이는 소중한 역사 유산이 공사 과정에서 영구적으로 훼손됩니다. 충정로2가처럼 다양한 계층과 문화가 공존했던 지역은, 조사의 가치가 그만큼 더 큽니다.
07
성공 사례 — 서소문 역사공원이 보여준 가능성
충정로2가 바로 옆,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어떻게 도시의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주차장이 성지가 되다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던 서소문 밖 네거리. 1784년 천주교 창설 이후 수많은 순교자가 이곳에서 참수되었습니다. 그 터는 오랫동안 공영주차장으로 쓰였습니다. 2011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제안으로 역사공원 조성 계획이 시작되었고, 5년간의 설계·공사 끝에 2019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바티칸이 아시아 최초 세계국제순례지로 승인한 이 공간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화 공간 중 하나입니다.
🏛️
약현성당 — 1892년 건물이 지금도 살아있다
충정로2가 인근 중림동에 자리한 약현성당은 1892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입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형을 유지하며 서울 도심 속에서 당당히 서 있습니다. 이 성당과 연관된 미국 선교사들의 토지 소유 기록이 충정로2가에도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 건물 하나를 지킨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가 됩니다.
🔍
종로구 재개발지구 조선 후기 유물 발굴
서울 종로구 한 재개발 지역에서 문화재 지표조사가 진행된 결과, 조선 후기 건물터와 생활 유물이 발견되어 서울시 지정 기념물로 등록된 사례가 있습니다. 발굴이 공사의 '방해물'이 아니라 도시 가치를 높이는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충정로2가도 이와 같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08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
서울은 빠르게 변합니다. 충정로2가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래된 건물이 허물어지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넓어집니다. 그 변화의 속도만큼 우리가 잃는 것들도 많습니다.
1912년의 이씨 어른이 살던 집터. 박씨 가문의 오래된 대문 흔적.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던 건물의 벽돌 기초. 일본인 상점의 바닥 타일. 이것들이 지금 충정로2가 어딘가의 땅속에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재 지표조사 없이 공사가 시작되는 순간, 그 흔적들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한 번 지워진 기억은 다시 찾기 어렵습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조선 최대 처형장의 기억을 되살린 것처럼, 충정로2가의 땅속 이야기도 누군가가 먼저 묻고, 조사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문화재 지표조사입니다.
지금 충정로2가에서 건축이나 개발을 계획 중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에 연락하는 것입니다. 법적 의무이기도 하고, 이 땅의 기억을 지키는 첫 번째 행동이기도 합니다.

09
마무리 — 사라지기 전, 기록해야 할 가치
서울의 중심, 역사의 교차점이었던 충정로2가. 1912년의 기록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씨가 지키던 집, 박씨가 가꾸던 밭, 미국인 선교사가 열었던 문, 일본인이 눈여겨보던 땅. 이 모든 이야기가 102,532㎡의 숫자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기록을 들여다보는 건,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그 땅 아래에 잠들어 있는 흔적들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시작이 언제나 '제대로 된 질문 하나'에서 비롯됩니다.
당신이 지금 충정로를 걷고 있다면, 한 번 멈춰 서서 발아래를 생각해보세요. 113년 전 이 자리에서 누가 살았는지. 그들이 남긴 흔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 기다림에 응답하는 것이 문화재 발굴조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충정로2가, 개발 전에 먼저 물어보세요.
180필지의 주거지와 외국인 소유 토지가 공존했던 이 땅.문화재 지표조사 한 번이, 사라질 뻔한 역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바로가기 →
🕯️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다만 찾아야 합니다.
서소문 밖에서 목숨을 잃은 수백 명의 이름이 이제 박물관에서 빛을 받고 있듯이,충정로2가의 이씨 어른도, 박씨 농부도, 이름 모를 미국인 선교사도언젠가는 그 흔적을 통해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습니다.그 가능성을 지키는 첫 번째 행동이공사 삽을 드는 것보다 먼저, 조사를 의뢰하는 것입니다.역사는 기다립니다. 우리가 물어봐 주기를.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이, 그 물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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