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으로 떠나는 종로구 궁정동 이야기
- 서울 HI
- 7월 20일
- 3분 분량
목차
시간 속으로 떠나는 궁정동 이야기
1912년, 궁정동의 땅과 집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성씨들이 궁정동을 이루고 있었나
조선의 땅, 그리고 국유지의 존재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남긴 흔적
오늘날 문화재지표조사로 다시 보는 궁정동
서울의 문화유적 발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
실질적인 조사 성공사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의 가치
마무리하며
시간 속으로 떠나는 궁정동 이야기
“1912년의 서울, 지금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지금은 북촌과 경복궁으로 대표되는 이 도심의 중심이, 한 세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이름, ‘궁정동’. 그러나 1912년 당시 궁정동의 실제 모습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오늘 우리는 그 궁정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우리가 문화재지표조사와 유적 발굴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이어가는 역사 보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912년, 궁정동의 땅과 집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12년의 궁정동은 총 98필지, 총면적 66,076㎡에 이르는 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감각으로 환산하면 여의도공원 절반에 가까운 규모였죠. 당시 기록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다양한 사회 계층과 문화를 아우르는 ‘작은 사회’였습니다.
필지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는 곧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맞닿아 있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문화유산으로 지켜야 할 이유입니다.
어떤 성씨들이 궁정동을 이루고 있었나
궁정동의 땅을 소유했던 이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성씨는 이씨였습니다. 이들은 16필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김씨가 12필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성씨별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던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당시 궁정동도 이들 성씨의 활동 범위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세운 가옥, 조상의 묘소, 마당에 심어둔 나무 한 그루까지도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조선의 땅, 그리고 국유지의 존재
놀라운 사실 하나. 1912년의 궁정동에는 4필지의 국유지가 존재했습니다.
당시는 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일본의 통치가 막 시작되던 시기. 국유지는 국가적 자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당시 정치권력과 토지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토지를 오늘날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지표조사 혹은 시굴조사를 통해 과거의 흔적을 세밀하게 확인합니다. 그러한 과정은 단순히 흙을 파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하나하나 걷어내는 섬세한 문화 작업입니다.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남긴 흔적
1912년 궁정동에는 일본인 명의로 된 4필지의 땅이 존재했습니다.
이 숫자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로선 매우 상징적인 수치였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 속에서 외세가 토지를 소유한다는 건 단순한 매입을 넘어선 정치적 의미가 있었죠. 실제 이들 토지는 이후로도 여러 사건과 맞물려 중요한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문화재지표조사나 표본조사는 단지 유적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역사의 이면을 재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기초 작업입니다.
오늘날 문화재지표조사로 다시 보는 궁정동
현재 서울시에서는 도시개발이나 재건축 등으로 인해 문화재 관련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궁정동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본격적인 공사 이전에 반드시 문화재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조사의 범위는 단순한 건축유물에 그치지 않고, 과거 생활 유적이나 토지이용의 흔적까지 포함합니다. 궁정동의 예처럼 작은 필지 하나에도 수십 년, 수백 년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문화유적 발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
예전엔 그저 오래된 흙과 돌로 여겨졌던 것들이, 문화재지표조사를 통해 보물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서울의 문화유산 발굴은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시민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확하고 체계적인 문화재 조사기관들이 존재합니다. 서울문화유산 같은 전문 기관은 수많은 조사를 통해 서울의 ‘지금’에 과거를 연결짓는 다리가 되어주고 있죠.
실질적인 조사 성공사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신축 부지에서는 문화재지표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의 도로 흔적과 민가 터가 확인됐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개발지로만 보였지만, 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그 유적은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이 사례는 문화재지표조사가 단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실제 문화재 보호에 있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의 가치
궁정동의 98필지, 그 중 몇 필지의 이름만 남은 땅들. 그러나 그것들이 가진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문화재지표조사란 단어가 생소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이해해야 하며, 그 첫걸음은 바로 ‘제대로 보는 일’입니다.
궁정동의 과거를 되짚으며, 지금의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다시 확인해봅니다.
마무리하며
문화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발견되고, 복원되고, 우리 앞에 다시 서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그 시작점이 궁금하다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를 꼭 기억해 주세요.
글 출처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