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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우리가 몰랐던 종로구 권농동의 이야기”

최종 수정일: 4월 21일

91필지 중 정씨 혼자 112필지 — 한 성씨가 동네의 59%를 가졌던 이야기


'농사를 권장하는 동네'라는 이름, 그런데 1912년엔 논밭이 없었다. 정씨 가문이 과반수를 독식한 마을, 국유지 12필지의 의미, 그리고 조선 후기 유물이 역사박물관으로 간 이야기


목차

1. 이름부터 독특한 동네 — 권농동의 숨겨진 역사

2. 191필지 29,395㎡, 축구장 4개 규모의 마을

3. 정씨 112필지 — 이 시리즈 역대 최고 단일 성씨 점유율

4. 이씨·김씨·박씨·최씨의 나머지 분포

5. 국유지 12필지 — 이 시리즈 최다 국유지 보유 동네

6.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 기록을 읽는 방법

7. 성공 사례 — 조선 후기 민가 유물이 역사박물관으로

8. 마무리 — 권농동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이 시리즈를 통해 수십 개의 종로구 동네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권농동은 처음부터 뭔가 다르다. 이름부터다. 권농(勸農), 농사를 권장한다는 뜻. 조선 시대 농업이 국가의 근본이던 시절 그 중요성을 새기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12년의 권농동에는 논밭이 없었다. 191필지가 전부 대지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숫자가 있다. 그 191필지 중 정씨 가문이 112필지를 갖고 있었다. 59%.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모든 종로구 동네들 중 단일 성씨가 과반수를 초과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권농동이 처음이다.



1. 이름부터 독특한 동네 — 권농동의 숨겨진 역사

권농동(勸農洞). 이름 안에 이미 이 동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조선은 농업 국가였고, 왕이 직접 농사의 중요성을 백성에게 보여주는 친경(親耕) 의식을 거행하던 나라였다. 그런 맥락에서 농사를 권장한다는 이름을 가진 이 동네는 조선 국가 이념의 한 면을 담고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12년의 기록을 보면 그 이름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논밭 없이 전부 대지로 채워진 도심형 마을. 이름은 농업을 권장하지만 실제로는 한 가문이 압도적인 토지를 장악한 도시 권력의 공간이었다. 이 간극이 권농동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2. 191필지 29,395㎡, 축구장 4개 규모의 마을

1912년 권농동은 191필지, 29,395㎡의 면적이었다. 축구장 약 4개 크기의 땅이다. 앞서 살펴본 낙원동(303필지)이나 내수동(249필지)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이 191필지 안에서 벌어진 토지 소유의 편중이 어떤 동네보다 강렬하다.

191필지

총 필지 수 (전부 대지)

29,395㎡

총 면적 (약 8,900평)

논밭 0개

農(농)이 없는 권농동

191필지가 모두 대지라는 사실은 권농동이 이미 완전히 도시화된 주거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름은 농사를 권장하지만, 실제 땅에는 농사 흔적이 없었다. 이 아이러니가 1912년 서울 도심의 빠른 도시화 속도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3. 정씨 112필지 — 이 시리즈 역대 최고 단일 성씨 점유율

이게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다. 정씨 112필지. 전체 191필지의 59%.

59%

종로구 동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단일 성씨가 과반수를 넘긴 유일한 사례.


191필지 중 112필지가 정씨 가문 소유였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동네들의 최고 기록을 비교해보자. 누상동의 김씨가 26%, 내수동의 김씨가 26%, 낙원동의 김씨가 18%. 그런데 권농동의 정씨는 59%. 세 동네 최고 기록을 두 배 이상 뛰어넘는다. 이건 단순한 통계적 차이가 아니다. 권농동은 특정 가문이 마을 자체를 장악하고 있던, 다른 차원의 권력 구조를 가진 동네였다는 뜻이다.

정씨 가문이 112필지를 어떻게 확보했는지는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다. 대대로 이어온 세습 재산이었을 수도 있고, 혼인과 동맹을 통해 확장된 토지였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112필지는 권농동에서 정씨 가문이 가졌던 압도적 영향력을 말해준다.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이 구역은 가장 풍부하고 일관된 유물 층위를 기대할 수 있는 최우선 조사 대상이다.



4. 이씨·김씨·박씨·최씨의 나머지 분포

정씨 112필지 이후 남은 79필지를 나눠 가진 성씨들의 분포를 보면, 이 동네의 사회적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정씨

112필지

이씨

38필지

김씨

31필지

박씨

11필지

최씨

11필지

이씨 38필지와 김씨 31필지가 뒤를 이었지만, 정씨와의 격차가 너무 크다. 이씨와 김씨를 합쳐도 69필지로 정씨 112필지에 한참 못 미친다. 이 구조는 권농동이 정씨 가문을 중심으로 하고, 이씨와 김씨가 그 주변에 분포하는 위성 형태의 마을 구조였음을 시사한다.

박씨와 최씨가 각각 11필지로 공동 4위. 이 두 성씨가 같은 필지 수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권농동 내에서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두 가문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박씨·최씨 집중 구역과 정씨·이씨 집중 구역은 출토 유물의 성격이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흥미로운 비교 연구 대상이 된다.


5. 국유지 12필지 — 이 시리즈 최다 국유지 보유 동네

권농동에서 또 하나의 기록이 나온다. 국유지 12필지. 지금까지 살펴본 종로구 동네들 중 가장 많은 국유지다.

권농동 국유지

12필지

이 시리즈 전체 최다

전체 191필지 중 비율

약 6.3%

공공 기능 공간 추정

국유지 12필지는 관청, 경찰서, 창고, 학교, 공용 도로 등 다양한 공공 기능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권농동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맥락을 생각하면, 농업 권장과 관련된 국가 시설이나 관청 부속 시설이 이 국유지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국유지 12필지는 가장 중요한 공공 유구 조사 구역이 된다. 행정 건물의 기단석, 관청 관련 유물, 도로 구조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어 당시 권농동의 도시 행정 구조를 복원하는 핵심 자료가 될 수 있다.



6.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 기록을 읽는 방법

1912년 권농동 토지대장의 이 모든 기록이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어떻게 활용되는가. 정씨 가문이 집중된 구역에서는 가문의 생활 방식이 반영된 건축 유구와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국유지 12필지 구역에서는 공공 시설 관련 유구가 출토될 수 있다. 이씨와 김씨가 분포한 구역에서는 두 가문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 정씨 구역과 대비되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

토지대장 분석지표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정밀발굴

서울처럼 역사가 깊은 지역에서는 개발 전에 반드시 이런 조사를 통해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권농동처럼 특정 가문이 압도적으로 집중된 지역은 그 가문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 집중 출토될 가능성이 높아 발굴 가치가 특히 높다. seoulheritage.org는 이런 역사 토지 데이터를 서울 전역에 걸쳐 체계적으로 아카이브하고 있다.


7. 성공 사례 — 조선 후기 민가 유물이 역사박물관으로

종로구의 한 아파트 재개발 지역에서 지표조사 결과 조선 후기 민가 유구와 기와 조각, 도자기 조각 등이 다수 발견됐다. 당초 건축 예정이었던 구역은 보존구역으로 전환됐고, 그 유물들은 서울 역사박물관의 전시물로 재탄생했다.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표조사가 개발을 막는 게 아니라,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공간을 활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권농동처럼 단일 가문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 동네에서 조선 후기 유물이 출토된다면, 그 유물들이 어떤 가문의 생활을 보여주는지까지 추적이 가능해진다. 단순한 유물 발굴이 아니라 가문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종로구 재개발 지역 발굴 성공 사례처럼 유물이 박물관 전시로 이어질 때, 그 지역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 특별한 장소가 된다. 권농동의 정씨 가문 유물이 세상에 나온다면, 조선 후기 특정 가문의 생활 문화를 복원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



8. 마무리 — 권농동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권농동을 걷게 된다면, 발아래 땅을 한 번 생각해봐 줬으면 한다. 정씨 가문의 112필지 어딘가였을 수 있다. 국유지 12필지 중 관청 터였을 수도 있다. 이씨나 김씨 가문의 작은 집 마당이었을 수도 있다.

농사를 권장한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논밭 하나 없던 1912년 권농동. 대신 정씨 가문이 59%를 점유한 특이한 권력 구조, 12필지의 국유지가 말해주는 공공 기능. 이 모든 이야기가 지금도 이 땅 아래에 잠들어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그 잠든 이야기를 깨우는 가장 정중한 방법이다.

"종로구 권농동 같은 지역은 말 그대로 '땅이 곧 역사'인 곳이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표본조사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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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권장하던 동네에 논밭이 없었고, 정씨 가문이 59%를 가졌다

191필지, 29,395㎡. 이 시리즈 단일 성씨 점유율 최고 기록 정씨 59%, 그리고 국유지 최다 기록 12필지. 이름과 현실이 엇갈리던 1912년 권농동의 기억이 지금도 땅 아래에 잠들어 있다. 문화재 발굴은 그 기억을 꺼내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약속이다.



권농동 종로 인근에서 건축이나 재개발을 준비 중이라면 지표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이 도움이 됐다면 주변에 공유해줘.

지표조사 의뢰 방법 알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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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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