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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 시골, 1912년 마포구 상수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 2025년 6월 2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홍대 앞 그 골목,100년 전엔 벼가 자라고 무덤이 있었다.

1912년 마포구 상수동 — 469필지, 325,869㎡.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서기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목차

1.서울 속 시골, 1912년 상수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논밭과 무덤 — 마포 상수동 하루의 풍경

3.성씨로 풀어보는 옛 상수동의 주인들

4.국유지, 사사지, 임야 — 땅의 다양성

5.지금의 홍대 거리와 1912년 상수동의 놀라운 대조

6.분묘지 43,798㎡가 말해주는 것

7.시굴조사와 표본조사로 만나는 100년 전 기억

8.마무리 — 문화유산으로 남은 일상


1. 서울 속 시골, 1912년 상수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홍대 앞, 상수동.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거리 중 하나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청춘들로 골목이 넘쳐나고, 카페와 갤러리, 스트릿 퍼포먼스와 빈티지 숍이 골목마다 이어진다. 그런데 딱 113년 전, 이 동네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총 필지 수

469필지

마을로서의 규모를 갖춘 공동체

총 면적

325,869㎡

약 98,570평 — 축구장 46개 규모

밭 (면적 1위)

127,802㎡

전체의 약 39%, 생계의 중심

대지

92,248㎡

303필지, 제법 큰 마을 규모

1912년 상수동의 전체 면적은 325,869㎡, 469필지. 축구장 46개를 합쳐놓은 크기다. 일제강점기 초기, 조선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아직 이 땅을 지배하고 있던 시절. 마포구 상수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하고 있었다. 농사짓고, 기도하고, 죽은 이를 묻고, 이웃과 명절을 나누던 마을이었다.


2. 논밭과 무덤 — 마포 상수동 하루의 풍경

127,802㎡

39% · 1위

대지

92,248㎡

28% · 303필지

분묘지

43,798㎡

13% · 무덤터

61,454㎡

19%

상수동에서 가장 넓은 땅은 밭이었다. 127,802㎡, 전체의 39%. 콩과 보리, 채소, 어쩌면 약초까지. 밭은 상수동 주민들의 끼니와 생계를 지탱하는 핵심이었다. 그 다음으로 넓은 건 대지였다. 303필지, 92,248㎡. 이 숫자가 보여주는 건 상수동이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라 제법 규모 있는 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논은 61,454㎡. 지금 홍익대학교 근처 어딘가에 벼가 자라고 있었다는 뜻이다. 봄이면 모내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을이면 황금빛 이삭이 바람에 출렁였을 그 논이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분묘지가 43,798㎡다. 이 숫자는 상수동의 토지 구성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다. 전체 면적의 13%가 넘는 땅이 무덤터였다.


3. 성씨로 풀어보는 옛 상수동의 주인들



김씨

86필지

이씨

51필지

조씨

27필지

신씨

24필지

최씨

24필지

박씨

22필지

윤씨

20필지

문씨

17필지

임씨

16필지

한씨

15필지

차씨

14필지

송·홍씨

각 12필지

상수동 토지의 주인들을 보면 이 마을이 얼마나 풍성한 공동체였는지 실감이 온다. 김씨가 86필지로 선두였고, 이씨 51필지, 조씨 27필지까지는 비교적 명확한 위계가 보인다. 그런데 그 뒤로는 신씨·최씨(각 24필지), 박씨(22필지), 윤씨(20필지), 문씨(17필지), 임씨(16필지), 한씨(15필지), 차씨(14필지), 송씨·홍씨(각 12필지)까지 이어진다.

무려 12개 이상의 성씨가 한 마을에 공존했다. 이건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다른 동네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다양성이다. 외발산동의 4개 성씨, 일원동의 4개 성씨와 달리, 상수동은 12개 이상의 성씨가 어울려 살던 열린 공동체였다. 이 다양성이 오늘날 홍대·상수 문화의 개방성과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4. 국유지, 사사지, 임야 — 땅의 다양성

국유지

13필지

공공 관할 토지

사사지

1필지

198㎡ 신앙 공간

임야

1필지

366㎡ 마을의 숲

상수동 토지 기록에는 흥미로운 소규모 항목들이 남아 있다. 국유지 13필지는 조선 말기부터 국가 관할이었던 땅으로, 지금의 도로나 공공시설 부지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임야는 단 1필지, 366㎡. 마을 한쪽에 자리한 작은 숲이었을 것이다. 땔감을 구하고, 산나물을 뜯고, 가끔은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던 그 숲이 지금은 어떤 건물로 덮여 있는지 알 수 없다.

가장 흥미로운 건 사사지다. 단 1필지, 198㎡, 약 60평 규모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은 누군가가 기도하거나 제사를 올리던 신앙의 공간이었다. 절의 흔적인지, 신당의 자리인지, 아니면 작은 사당인지. 그 정체는 지표조사와 문헌 조사를 병행해야만 알 수 있다. 60평의 땅 하나가 한 시대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을 수 있다.


5. 지금의 홍대 거리와 1912년 상수동의 놀라운 대조



상수동 카페 골목을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테이블마다 노트북을 펼친 사람들, 줄을 선 브런치 맛집,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꾸민 소품숍들. 이 풍경이 불과 100년 전에는 전혀 달랐다. 지금 카페 자리가 밭이었고, 갤러리 아래 지층에 벼가 자라던 논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세련된 주택가 어딘가에 분묘지의 경계가 땅속에 새겨져 있을 수 있다.

도시화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지층은 속이지 않는다. 아스팔트 아래, 콘크리트 기초 아래, 100년간 퇴적된 역사의 층위가 쌓여 있다. 홍대·상수 일대가 지금처럼 문화와 예술의 거리가 된 것도, 어쩌면 이 땅이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품어온 개방적 공동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6. 분묘지 43,798㎡가 말해주는 것



상수동 토지 기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수치는 분묘지 43,798㎡다. 전체 면적의 13%가 넘는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비율이다. 하왕십리의 37필지(30,981㎡)와 비교해도 면적으로는 상수동이 훨씬 컸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무덤이 많다는 건 이 땅에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뜻이다. 12개 이상의 성씨가 각자의 가족묘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수는 쉽게 늘어난다. 무덤 하나하나는 단순한 죽음의 표식이 아니다. 그 가문의 대수, 당시 장례 문화, 매장 풍습, 심지어 그 시대 사람들의 건강 상태와 수명까지 담고 있는 고고학적 정보의 보고다. 상수동의 분묘지 43,798㎡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역사 아카이브다.

발굴 시사점

분묘지가 전체 면적의 13% 이상인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묘역 내 부장품, 비석 파편, 관재 흔적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통해 조선 후기 마포 지역 민간 장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다. 상수동 일대 재개발 전 반드시 정밀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7. 시굴조사와 표본조사로 만나는 100년 전 기억



상수동처럼 밭이 전체의 39%를 차지하고, 분묘지가 13%를 넘으며, 12개 이상의 성씨가 공존했던 마을은 문화재 매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농경 문화의 두터운 층위, 다수의 가족묘, 사사지의 존재까지. 이 세 가지 조건이 겹치는 지역에서 지표조사를 하면 유물이 나올 확률은 상당히 높다.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는 건물을 짓기 전에 땅속 문화유산을 확인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수동 근처에서 공사나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에 문의하거나 국가유산청 협업포털을 통해 지표조사 의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소규모 건축의 경우 국비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분묘지 비율이 높은 상수동 일대는 특히 면밀한 사전 조사가 권장된다. 사사지 198㎡는 별도의 근대 문화유산 검토도 필요하다. seoulheritage.org 또는 e-minwon.go.kr에서 의뢰 가능.


8. 마무리 — 문화유산으로 남은 일상



상수동은 더 이상 논밭이 아니다. 무덤도 대부분 사라졌고, 12개 성씨의 집터도 지금은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흙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김씨 86필지의 밭에서 자라던 곡식, 조씨 가문의 분묘에 새겨진 비석, 사사지 198㎡ 위에서 드리던 기도. 이 모두가 문화유산이다.

오늘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상수동 골목을 걸을 때, 발 아래를 한 번쯤 내려다봤으면 한다. 트렌디한 카페의 시멘트 바닥 아래, 갤러리의 지하 공간 아래, 홍대 앞 횡단보도 아래 어딘가에 1912년 상수동 사람들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 이 도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마포구 관할 문화재 문의 → 마포구청 문화관광과

"홍대 앞 그 골목,1912년엔 김씨 어른의 밭이었고조씨 가문의 무덤이 언덕에 있었다.그 땅 위에서, 오늘도 당신이 걷는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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