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기억하는 백년의 기록, 1912년 서초구 서초동에서 시작된 문화재발굴의 여정”
- 2025년 10월 27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20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서초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이 땅은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 1912년 서초동 1,179필지, 한강 남쪽 광활한 논밭이 품은 조선의 농경 역사
서초역 근처를 걷고 있다면 한 번만 발을 멈춰봐. 그 아래에는 1,972,061제곱미터의 논과 1,038,331제곱미터의 밭이 잠들어 있어. 서초구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논밭이었던 그 땅. 이씨 220필지, 박씨 100필지, 왕씨 73필지. 대한민국 법조의 중심인 지금 이 자리가 불과 113년 전에는 쌀과 보리가 자라던 농촌 마을이었어. 믿어져?
목차
서초동의 시간, 땅 아래 묻힌 이야기 — 프롤로그
1912년 서초동의 풍경 — 논, 밭, 그리고 사람들
이 시리즈 최대 규모 — 1,179필지의 거대한 농경지
토지의 주인들 — 성씨별로 본 소유의 역사
서초동 속 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단의 역할
문화재 지표조사로 드러난 서울의 뿌리
성공 사례 — 잊힌 마을에서 되살아난 유물발굴 현장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서초동의 의미 — 에필로그
프롤로그서초동의 시간, 땅 아래 묻힌 이야기
서초구 서초동. 오늘날 대한민국 법조의 중심이자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상징적인 공간이야. 하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1,179필지, 3,604,998제곱미터의 거대한 농경지였어.
그 넓은 땅 위에서는 논이 531필지, 밭이 512필지. 사람들의 손끝에서 쌀과 보리가 자라던 전형적인 한강 남쪽의 농촌 풍경이었어. 그 시절의 서초동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서울 남부 문화권의 기원지였어. 이후 진행된 수많은 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에서 서초동은 조선 후기의 생활 흔적, 무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토지 구조를 모두 품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밝혀지고 있어.
11912년 서초동의 풍경 — 논, 밭, 그리고 사람들

그 시절 서초동은 물의 마을이었어. 531필지에 달하는 논은 남쪽의 한강 지류를 따라 펼쳐졌고, 수로가 마을의 중심을 지나며 밭과 집터를 나누었어. 논 1,972,061제곱미터, 밭 1,038,331제곱미터. 그 규모는 지금의 서초동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야.
1,179
총 필지 수
3,604,998
총 면적(제곱미터)
531
논 필지
512
밭 필지
지목 구분 | 필지 수 | 면적(제곱미터) | 비고 |
논 | 531필지 | 1,972,061 | 전체의 54.7% |
밭 | 512필지 | 1,038,331 | 전체의 28.8% |
대지 | 78필지 | 124,800 | 주거 공간 |
임야(산) | 44필지 | 기타 | 야산 구역 |
분묘지 | 8필지 | 기타 | 조상 무덤 |
지소(연못) | 2필지 | 1,514 | 공동 수원 |
잡종지 | 4필지 | 기타 | — |
집터로 쓰인 대지는 78필지, 124,800제곱미터. 여기서 사람들은 흙벽돌집을 짓고 돌담을 쌓아 올리며, 작은 연못 두 곳을 중심으로 공동 생활을 이어갔어. 무덤 8필지, 산 44필지까지. 그 모든 구성은 한 마을의 유기적 구조를 보여줘. 논에서 태어나, 밭에서 살다가, 산 아래 묻히는 한 생애의 전부가 이 기록 안에 있어.
2이 시리즈 최대 규모 — 1,179필지의 거대한 농경지
잠깐, 이 시리즈 전체에서 서초동이 얼마나 큰지 비교해봐.
이 시리즈 주요 지역 필지 수 비교
서초동1,179필지 — 시리즈 최대
공릉동704필지
도봉동552필지
망우동555필지
잠원동142필지
예관동137필지
예장동8필지 — 시리즈 최소
예장동 8필지와 서초동 1,179필지. 이 시리즈의 양 극단이야. 면적으로 따지면 서초동 3,604,998제곱미터는 예장동 64,354제곱미터의 무려 56배야. 하지만 앞서 배웠듯이 크기가 역사적 밀도를 결정하지 않아. 다만 서초동의 크기는 한강 이남 지역이 얼마나 광활한 농경지대였는지를 보여주는 압도적인 증거야.
3토지의 주인들 — 성씨별로 본 소유의 역사

이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1912년 서초동에는 이씨 220필지, 박씨 100필지, 왕씨 73필지, 윤씨 52필지, 임씨 48필지 등 다양한 성씨가 토지를 소유했어.
이씨
220필지
박씨
100필지
왕씨
73필지
윤씨
52필지
임씨
48필지
이씨 220필지. 이 시리즈에서 다뤄온 모든 지역 중 단일 성씨 최다 소유야. 그리고 왕씨 73필지. 이게 눈에 띄어. 왕씨는 고려 왕실 후손으로, 조선 건국 이후 차별을 피해 지방으로 흩어진 성씨야. 서초동처럼 한양 외곽의 한강 남쪽 땅에 왕씨가 73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건 이 지역이 고려 왕실 후손의 피난처이자 정착지였을 가능성을 보여줘.
왕씨 73필지 — 고려 왕실의 마지막 흔적
왕씨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처음 등장하는 성씨야.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후손들은 조선 건국 이후 개성 인근과 한양 외곽으로 흩어졌어. 서초동처럼 한강을 건너 남쪽에 자리 잡은 왕씨 73필지는 단순한 토지 소유 기록이 아니야.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상처와 생존의 흔적이야.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 지역에서 고려 시대 유물을 발견한다면, 그 단서가 바로 여기서 시작될 수도 있어.
4서초동 속 문화재 발굴과 유적발굴단의 역할

오늘날의 서초동은 아파트 단지와 도로 아래로 여전히 수많은 유적이 잠들어 있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은 이러한 땅속 유물을 찾기 위해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의 과정을 거쳐. 문화재 발굴은 단순히 땅을 파는 일이 아니야. 그 속엔 유적발굴단의 세심한 시선과 과거를 읽는 눈이 있어.
발굴조사원들은 작은 토기 조각 하나에서도 당시 생활상을 복원해내. 서초동 일대에서는 조선 후기 기와, 생활도구, 분묘 유구 등 수많은 자료가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문화유산이 보호되고 있어. 1,179필지라는 광활한 면적에서 발굴이 이루어질 때, 그 규모와 층위가 얼마나 복잡할지는 발굴조사원만이 알아.
5문화재 지표조사로 드러난 서울의 뿌리
지표조사란 본격적인 발굴 전에 표면의 지질, 토양, 유물 흔적을 조사해 문화재 분포를 파악하는 과정이야. 서울 문화유산 연구진은 이 과정을 통해 도시의 역사적 층위를 복원하고 있어.
서초동 지표조사에서는 조선 후기 생활층과 일제시대 도로 흔적, 심지어 조선시대 물길까지 확인됐어. 531필지의 논이 필요로 했던 수로 구조가 지금도 지하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거야. 도시의 겉모습이 아무리 변해도 지층 속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증거야.
6성공 사례 — 잊힌 마을에서 되살아난 유물발굴 현장
성공 사례 — 서초동 아파트 신축 부지 조선 후기 생활유적 발견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은 서초동 일대 아파트 신축 부지에서 조선 후기 생활유적을 발견했어.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 철제 농기구, 그리고 분묘 구조는 1912년 자료와 정확히 맞물렸어. 당시 기록된 논과 밭의 위치, 분묘지의 분포가 실제 유물발굴 현장과 일치한 거야. 이는 서초동이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시간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임을 증명했어.
1912년 토지 대장의 분묘지 8필지가 실제 발굴 현장에서 확인되는 순간, 100년의 시간이 연결되는 거야. 숫자가 유물이 되고, 유물이 역사가 되는 그 순간이 문화재 발굴의 진짜 감동이야. 발굴조사원들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바로 그 순간 때문이야.
에필로그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서초동의 의미

서초동은 더 이상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야. 그곳은 서울의 남쪽에서 문화재 발굴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공간이야. 고속터미널 주변, 양재천 인근, 반포와 맞닿은 언덕까지 모두 과거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서초동은 1912년의 논밭에서 지금의 도시로 바뀌었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백 년 전, 서초동의 땅은 농부들의 손에서 숨 쉬고 있었어. 오늘, 그 땅은 문화재 발굴단의 손에서 다시 깨어나고 있어.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보는 일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기록하는 일이야. 우리가 지나치는 도로, 서초역의 계단, 법원 뒤편의 흙 한 줌에도 서울의 근원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어.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아래 묻힌 기억으로 완성된다
이씨 220필지, 박씨 100필지, 왕씨 73필지.논 531필지, 밭 512필지.한강 남쪽 3,604,998제곱미터의 땅 위에서사람들이 밥을 지었어.그 밥솥 연기가 올라가던 자리에지금 법원이 있고, 고속버스터미널이 있고,아파트 숲이 들어섰어.하지만 그 땅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발굴조사원이 흙을 걷는 순간쌀 냄새가 올라올 것 같은 그 기억을.서초동이 말하고 있어.나는 아직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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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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