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고 있는 서대문구 신촌동은 불과 100년 전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어.”
- 서울 HI
- 6월 12일
- 3분 분량
목차
신촌, 그 시작의 풍경
논과 밭으로 뒤덮인 신촌동
사람 사는 동네, 신촌의 삶터
묘지의 땅, 조상의 흔적을 따라
다양한 성씨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발자취
국가와 동양척식회사의 땅이 된 신촌
일본인의 소유지, 식민지 역사의 그림자
창덕궁 소유의 신촌 땅, 왕실과의 작은 인연
과거에서 현재로, 신촌의 시간여행
“네가 알고 있는 신촌은 불과 100년 전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어.”
지금의 신촌을 떠올려봐.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이를 오가는 청춘들이 넘쳐나는 활기찬 거리. 세련된 카페와 트렌디한 가게들, 매일 밤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으로 가득한 그곳. 그런데 1912년의 신촌동은 상상도 못할 만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
이 글을 읽으며 네가 지금 걷고 있는 그 신촌 거리를 100년 전의 논과 밭, 조상님들의 묘지가 있는 조용한 땅으로 한번 상상해보는 건 어때? 시간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면 지금부터 따라와.

신촌, 그 시작의 풍경
1912년 서대문구 신촌동은 총 135필지로 나뉘어져 있었고, 면적은 약 344,295㎡로 오늘날의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어. 아침마다 농부들이 부지런히 밭을 일구고, 아이들이 흙길에서 뛰놀던 아주 조용한 시골 같은 동네였지.
서울이 번화한 도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이 신촌동은 그 변화를 고스란히 겪게 돼. 그러나 이곳은 처음부터 도시적 풍경이 아니었고, 오히려 넓은 밭과 논, 그리고 선조들이 잠든 묘지가 많은 한적한 마을이었지.
논과 밭으로 뒤덮인 신촌동
당시 신촌동 땅의 대부분은 밭과 논이었어. 무려 105필지, 241,491㎡의 밭과 7필지 38,803㎡의 논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전체의 대부분이 농경지였던 셈이지.
생각해봐, 지금 연대 앞 큰길과 이대 앞 쇼핑거리가 당시엔 그저 벼가 익어가는 황금색 들판이었다니 신기하지 않아? 농부들이 땀 흘리며 일했던 그 공간에 지금은 너와 나 같은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게 참 기묘하게 느껴져.
사람 사는 동네, 신촌의 삶터
1912년 신촌동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지가 18필지, 12,740㎡ 정도였어. 당시에는 크지 않은 마을들이 몇 군데 있었고,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고 해.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서로 가족처럼 가까웠을 테지.
지금처럼 높은 건물이나 쇼핑몰은 없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서 따뜻한 이웃 관계를 나누며 소박하게 살아갔을 거야. 지금의 바쁜 삶과는 또 다른 여유로움과 평화가 존재했겠지?
묘지의 땅, 조상의 흔적을 따라
흥미롭게도, 신촌동의 가장 넓은 땅 중 하나가 바로 무덤이었어. 무덤은 5필지에 걸쳐 51,259㎡로 꽤 넓은 면적을 차지했어. 지금의 신촌 번화가가 선조들의 묘지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들지?
지금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곳이 한때 조상들이 영면하던 곳이었다니. 너도 가끔은 신촌을 걸으며 땅 밑의 긴 역사를 한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다양한 성씨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발자취
당시 신촌에는 다양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았어. 김씨가 가장 많아 22필지, 이어서 박씨 7필지, 최씨 6필지, 서씨 4필지, 이씨 3필지 등 많은 가문이 작은 땅에 얽혀 있었지.
그들이 남긴 성씨와 땅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어. 아마 서로 도우며 살던 따뜻한 정이 넘치는 마을이었을 거야.
국가와 동양척식회사의 땅이 된 신촌
한편으로는 신촌이 점점 변해가는 시기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어. 당시 국유지로 분류된 땅이 무려 42필지였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소유한 땅도 19필지나 있었지.
이 말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식민지 경제의 그림자가 신촌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해. 동척이 땅을 소유하며 벌였던 수탈의 역사가 이곳 신촌에서도 조용히 진행되었을 테니까 말이야.
일본인의 소유지, 식민지 역사의 그림자
1912년 신촌에는 일본인이 소유한 땅이 23필지나 있었어. 이것은 신촌동이 식민 지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한국의 근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에, 우리나라의 힘겨웠던 역사와 그 흔적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지 않아?
창덕궁 소유의 신촌 땅, 왕실과의 작은 인연
신촌동의 땅 중 단 1필지만 창덕궁 소유의 땅이었다고 해. 아마 왕실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땅이었을 거야. 어쩌면 왕실에서 쓰던 작물이나 왕실과 연결된 시설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볼 수 있겠지.
그 작은 연결 고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촌의 이미지에 색다른 이야기를 더해줘.
과거에서 현재로, 신촌의 시간여행
오늘의 신촌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지. 논과 밭 대신 빌딩과 대학 캠퍼스가 들어섰고, 묘지 대신 쇼핑몰과 번화가가 되었어. 그럼에도 신촌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바로 그 역사적 깊이에 있지 않을까?
네가 다음에 신촌을 방문할 때는, 한 번쯤 1912년 그 당시의 신촌을 떠올려보면서 발걸음을 옮겨 봐.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신촌이 또 다르게 다가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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