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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 1912년의 필지 풍경, 송파구 잠실동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 1912년의 필지 풍경, 잠실동


1912년 어느 봄날, 잠실동 240필지 전체 면적 93만 9,283㎡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떤 집들이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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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처럼 펼쳐진 옛 풍경 속, 잠실동엔 소박한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총 70필지, 면적 38,036㎡에 대지가 형성되어 있었죠.

이 작은 터전 위에서 사람들은 삶을 꾸리고, 웃고, 고된 일상을 쌓아 올렸어요.

돌담과 기와지붕, 흙바닥 마당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농사일의 활기가 퍼졌겠죠.




그런데 잠실동엔 대지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하늘과 땅을 잇던 무덤, 1필지 16,571㎡ 규모의 분묘지가 있었어요.

초기에 벌초나 성묘하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며, 김·박·이·최 성을 가진 분들이 정성스레 돌봐 왔을 거예요.




그 옆으로 더 깊숙이 들면? 나지막한 언덕마다 ‘산’, 임야 10필지, 69,342㎡가 펼쳐졌어요.

숲이 우거졌고, 소나무·참나무 군락 속에는 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했겠죠.

마을 사람들은 약초를 캐고 벌채하고 땔감도 챙겼을 거예요.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삶이었어요.




그리고 밭! 논은 없었지만 밭은 159필지, 815,332㎡.

벼보다 채소·곡물 텃밭들이 많았겠죠.

여기서 나오는 고구마, 보리가 사람들 밥상이 채웠고,

이웃 간 나눔과 교류도 이루어졌어요. 삶이 흐르는 통로였죠.




그럼 누가 이 땅들을 갖고 있었을까요?


  • 김씨 성을 가진 분들이 41필지 소유, 꽤 큰 규모였어요.


    김씨들은 마을의 핵심이었을지도 몰라요.

  • 그리고 국유지! 100필지, 중앙정부 소유의 땅도 있었어요.


    당시 일제강점기의 시대 배경 속에서 정부가 직접 토지를 관리하던 흔적이죠.

  • 동양척식주식회사, 일제 시대 대표적 식민지 토지 수탈기업이죠.


    잠실동에도 43필지를 소유했답니다.

  • 마을공동소유 땅도 있었어요. 15필지.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동목적의 문화·복지 기능을 수행했을 거예요.





자,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밭을 갈고, 대지 위 집에서 불빛을 밝히고, 산에 올라 나무를 베고…

그러다 무덤 앞에서 조상의 이름을 부르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겠죠.


이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어요.

현대 서울 잠실, 스카이라인과 고층건물 뒤엔 여전히 과거의 숨결이 남아있거든요.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문화재지표조사의 필요성을 알리려서예요.

땅 이곳저곳엔 현대적 공간 속에서도 흙속 이야기, 터의 맥이 살아 있어요.

발굴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는 그런 맥락을 복원해 주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특히 서울지역 도시 개발에서는 이런 조사가 필수예요.


성공사례 하나 들려드릴게요.

어느 서울 아파트 단지 신축 공사 중, 지표조사 통해 청동기 시대 생활터전 흔적을 발견했고,

시굴조사·발굴조사를 거쳐 일반에 공개된 후 문화재로 보존되었어요.

그 결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행사도 생겼죠.

도심 속 유물이 삶과 일상을 풍성하게 만든 사례예요.




지금 여러분이 사는 땅도, 언젠가 이런 ‘숨은 과거’가 있을 수 있어요.

발굴조사 의뢰하면,

“어느 순간 이곳에도 옛날 인연이 묻혀 있었네…”

하며 조상의 땀과 웃음, 눈물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삶은 흐르고 땅은 묵묵히 기억을 지켜요.

우리 일상 속 문화재지표조사는 문화의 숨결을 잇는 작은 다리입니다.




강력한 후킹으로 시작해 여러분의 뇌리에 오래 맴돌길 바라며…

현대 도시 속에서 흙 한 줌이 가진 이야기의 힘,

그리고 오래된 땅이 주는 생생한 울림을 전하고 싶었어요.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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