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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조선의 왕이 두 번 무릎을 꿇다 — 사육신부터 고종 퇴위까지

  • 2025년 7월 18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19일

역사속 오늘 · History of Today

7월 18일

왕좌를 빼앗기던 날, 저항은 계속되었다

고종 강제 퇴위사육신여운형 피살대한매일신보육영공원수능필수


오늘의 시작

역사 속 오늘을 여는 글

1456년 한여름 밤, 사육신의 가족들은 피를 흘리며 끌려갔다. 450년이 흘러 1907년 7월 18일, 같은 계절 서울의 밤거리에서는 수만 명이 목청껏 외쳤다. 고종 퇴위 반대! 궁궐 앞에 몰려든 군중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쫓겼고, 자정이 넘도록 물러서지 않았다. 역사는 이상하리만큼 7월 18일에 '강탈'과 '저항'을 반복해서 새겨 넣었다. 1904년에는 민족의 목소리를 담은 신문이 태어났고, 1947년에는 그 목소리를 대표하던 지도자가 총탄에 쓰러졌다. 권력을 잃은 자리마다 저항이 피어났던 날, 7월 18일이다.



목차

이 글의 구성

한국 전근대사

고려 · 조선 시대 주요 사건

연도 (양력)

음력 / 왕대

사건명

분류

핵심 내용

527년

음 6.3 / 법흥왕 14

근강모야신의 임나 파병

외교/군사

일본 사신 근강모야신이 6만 군을 이끌고 가야(남가라) 지역에 개입, 임나 문제의 국제화

1031년

음 6.20 / 현종 22

현종 선릉 안장

왕실

거란 침입 격퇴의 명군 현종을 선릉에 장사지냄. 고려 최전성기 문을 닫는 상징적 사건

1109년

음 6.12 / 예종 4

윤관, 여진과 화친 후 귀환

군사

여진이 화친 요청, 윤관이 함경도 9성(동북 9성)에서 정주로 귀환. 이후 9성 반환으로 이어짐 수능★

1456년

음 6.7 / 세조 2

사육신 연좌 처벌

정치

단종 복위 거사 실패로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의 가족까지 연좌 처벌. 세조 왕권의 철권 과시 수능★

1521년

음 6.5 / 중종 16

정순왕후(단종 비) 송씨 별세

왕실

세조에 의해 폐위된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65년 가까운 한 많은 생을 마감. 영월 이후의 긴 기다림

1607년

음 6.25 / 선조 40

회답 겸 쇄환사 일본 출발

외교

임진왜란 포로 송환을 위해 장희춘·강기 등 사절단 500명 출발. 조선인 포로 수천 명 귀환의 시작 수능★

1613년

음 6.1 / 광해군 5

김제남 사사

정치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이 계축옥사로 처형됨. 광해군의 왕권 강화와 인목대비 폐위 수순의 일환

1694년

윤5.27 / 숙종 20

희빈 장씨 예우 논의

왕실

우의정 윤지완이 장희빈에 대한 예우 조정을 논의. 갑술환국 이후 남인 실각, 서인 재집권의 후속 처리 수능★

1761년

음 6.17 / 영조 37

영조, 〈경세문답〉 찬술

문화

영조가 직접 지은 경세(警世) 문답집. 탕평 철학과 민생 안정 의지를 담은 군주의 자기 표현



한국 근현대사

개화기 · 일제강점기 · 현대 주요 사건

연도

시대 / 왕·정권

사건명

분류

핵심 내용

1886년

고종 23 / 음 6.17

육영공원 설립

교육

최초의 근대식 관립 교육기관 육영공원 설립. 미국인 교사 헐버트 등 초빙, 양반 자제 대상 신교육 실시 수능★

1904년

고종 41 / 광무 8

〈대한매일신보〉 창간

언론

영국인 베델(裵說)·양기탁 공동 창간.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 유지. 국·영문 동시 발행 수능★

1907년

고종 44 / 광무 11

고종 강제 퇴위 · 시민 저항

정치

이완용 등이 퇴위 강요, 동우회원 1천여 명 포함 수만 명이 종로·대한문 앞에서 밤새 저항. 일본 헌병과 충돌 수능★

1910년

순종 4 / 융희 4

의병장 맹달섭 순국 · 전해산 순국

항일

경성감옥에서 의병장 맹달섭 교수형, 전해산도 이날 순국. 국권 피탈 한 달 전 마지막 의병들의 희생

1919년

일제 강점 / 대정 8

남산 조선신사 준공

식민

일본이 남산에 조선신사(이후 조선신궁으로 격상) 준공. 민족 정기를 훼손하려는 식민지 공간 지배의 상징 수능★

1925년

일제 강점 / 대정 14

한강 대홍수 — 한강철교 유실

재해

한강 수위 12.26m 도달, 한강인도교 역대 최고 수위 기록. 한강철교 유실 등 대규모 피해

1946년

미군정기

서울대학교 설립

교육

미군정이 경성대학 등 9개 전문학교를 통합해 서울대 설립(국대안 파동의 시작) 수능★

1947년

미군정기

여운형 피살

정치

좌우합작 운동 이끌던 몽양 여운형, 혜화동에서 극우청년 한지근에게 암살당함. 8.3 국민장 거행 수능★

1989년

노태우 정부

강수연,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

문화

임권택 감독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 첫 확인

1990년

노태우 정부

전 대통령 윤보선 별세

정치

제4대 대통령 윤보선(1897~1990) 사망. 구한말 출생 마지막 대통령, 민주화 운동의 어른

2021년

문재인 정부

산악인 김홍빈 히말라야 14좌 완등 후 실종

인물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브로드피크(8,047m) 오르며 장애인 최초 14좌 완등. 하산 중 크레바스에서 실종



세계사

7월 18일 세계 주요 사건

연도

지역

사건명

분류

핵심 내용

1369년

중앙아시아

티무르 왕조 성립

왕조

티무르(타메를란)가 중앙아시아에 제국 건설. 15세기 동서 교역로 장악,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 개막

1870년

바티칸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 무류성 선언

종교

교황이 신앙·도덕에 관해 공식 선언할 때 오류가 없다는 교리 선포. 근대 가톨릭 권위 구조의 정점

1955년

스위스

미·영·불·소 제네바 4대국 회담

외교

냉전 최초의 주요 정상회담. 독일 통일·군비 축소 협의. 아이젠하워·흐루쇼프 첫 만남

1956년

유고슬라비아

티토-네루-나세르 비동맹 3자 회담

외교

비동맹 운동의 기틀 마련. 미소 냉전 구도에서 제3세계 독자 노선 선언 수능★

1964년

미국

뉴욕 할렘 흑인 폭동

인권

백인 경찰의 흑인 소년 총격 사건에 분노한 할렘 주민 봉기.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격화 신호탄

1982년

미국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 사망

학문

구조주의 언어학·시학의 거장 로만 야콥슨 86세로 사망. 소쉬르 이후 언어학의 체계 확립에 기여

핵심 사건 심층 분석

4대 사건 — 사건 · 내용 · 중요성 · 오늘날 의미

1907년 7월 18일 (음 6.9)고종 강제 퇴위와 시민 저항 수능★

사건

헤이그 특사 파견이 빌미가 돼 일본이 이완용을 앞세워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 고종이 거부하자 황태자 대리청정 조칙 발표

내용

밤 9시부터 수만 명이 종로·대한문 앞 집결. 동우회 1천여 명 주도, 자정 넘도록 저항. 일 헌병 총검으로 새벽에야 해산

중요성

실질적 국권 상실의 전조. 이틀 뒤 순종 즉위·군대 해산으로 이어져 정미7조약 체결과 의병 전쟁 격화의 도화선

오늘날 의미

외압에 맞선 시민 저항의 원형. 촛불집회 등 민주적 저항 문화의 역사적 뿌리로 재조명되고 있음

헤이그 특사고종 퇴위 강요군대 해산정미의병국권 피탈

1904년 7월 18일 (음 6.7)〈대한매일신보〉 창간 수능★

사건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裵說)과 애국지사 양기탁이 서울에서 한국어·영어 병행 신문 창간

내용

베델이 사장, 양기탁이 총무. 치외법권 이용해 통감부 검열 회피. 의병 지지·을사조약 반대 논조 유지. 국채보상운동 적극 지원

중요성

일제 탄압을 피할 수 있는 영국인 발행인 덕에 가장 강력한 항일 언론 역할. 발행 부수 1만 부 돌파로 민중 계몽의 선두

오늘날 의미

외국인과 한국인의 협업으로 탄생한 언론 독립의 상징. 언론 자유의 역사적 모범으로 교과서에 수록

1904 창간국채보상운동 보도베델 추방1910 총독부 접수

1456년 7월 18일 (음 6.7)사육신 연좌 처벌 수능★

사건

성삼문·박팽년 등 단종 복위 거사가 발각된 후 주모자의 삼족(가족·외가·처가)까지 처형·유배

내용

세조가 주도적으로 국문 참가, 가혹한 처형 방식 사용. 성삼문은 거열형. 이 날의 처벌로 복위 운동 완전 봉쇄

중요성

충절 대 현실 권력의 상징적 대결. 후대 절의파 사림의 정신적 근거가 됨. 숙종 대에 복권·현창

오늘날 의미

충성과 원칙을 지킨 지식인의 원형으로 계승. 노량진 민절서원 등 기념 공간 존재. 수능 사육신 관련 문항 다수

계유정난세조 즉위사육신 처형생육신 은거숙종 대 복권

1947년 7월 18일여운형 피살 수능★

사건

혜화동 로터리에서 좌우합작 운동 이끌던 몽양 여운형이 극우 청년 한지근에게 암살됨. 8.3 국민장 거행

내용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결성, 좌우합작 7원칙 추진. 암살 직전까지 통일 정부 수립 노력. 향년 62세

중요성

통일 정부의 마지막 가능성이 사라진 상징적 사건. 이후 남북 분단 구조가 더욱 고착화되는 분수령

오늘날 의미

분단 역사를 되돌아보는 핵심 인물. 200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좌우 어느 진영도 독점하지 못하는 인물로 재평가

건준 결성미소공위 결렬여운형 암살유엔 한국위원회단독 선거·분단



스토리텔링 심층 서술

고종의 마지막 밤 — 1907년 7월 18일

📜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으려 했던 황제와 백성의 밤

1907년 7월 18일 밤, 덕수궁 안과 밖은 서로 다른 드라마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궁 안에서는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 대신들이 고종에게 퇴위를 종용하고 있었다. 불과 열흘 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 세 특사를 보낸 것이 빌미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일을 조약 위반이라며 즉각 황제를 압박했다. 자정 무렵, 원로대신들까지 "양위 이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아뢰었다. 고종은 끝까지 거부했다. 그러나 이미 궁궐 주변은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궁 밖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밤 9시가 넘자 종로 일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우회 회원 1천여 명을 필두로 학생, 시민, 상인들이 대한문 앞으로 몰렸다. "황제 폐하 퇴위 반대!" 함성이 한양 하늘을 뒤흔들었다. 자정이 지나도 군중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사대를 조직한 수만 명이 횃불을 들고 버텼다.

새벽이 되어서야 일본 순사와 헌병들이 총검으로 군중을 밀어냈다. 사상자가 나왔다. 새벽의 종로는 핏자국과 신발들로 가득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퇴위 저항이 아니었다. 1456년 이 같은 날, 사육신이 세조의 왕권 찬탈에 목숨으로 저항했듯, 451년 뒤의 서울 시민들도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선택을 했다. 역사의 어떤 날들은 저항의 유전자를 지닌다.

이틀 뒤인 7월 20일, 순종이 즉위했다. 7월 3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병사들은 해산을 거부하고 의병에 합류했다. 고종이 그날 밤 마지막으로 보낸 조칙, 황태자의 대리청정을 명하는 그 문서가 사실상 제국의 마지막 공식 문서였다.

그날 밤 대한문 앞에서 일본 헌병의 총검을 맨몸으로 막아선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기에, 1907년 7월 18일은 '굴복의 날'이 아니라 '저항의 날'로 역사에 남았다.



인용용 요약

이 글의 핵심 메시지

"

7월 18일은 한국사가 반복해서 새긴 저항의 날이다.


1456년 사육신의 피, 1904년 민족 언론의 탄생,


1907년 수만 명의 절규, 1947년 통일의 꿈이 쓰러진 날 —


권력이 빼앗으려 할 때마다 누군가는 버텼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건의 날짜가 아니라,


그날 자리를 지켰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 주세요.

수업 · 블로그 활용

이렇게 활용해 보세요

📚

[수업 도입부] "1907년 7월 18일 밤, 대한문 앞에서 수만 명이 무엇을 외쳤을까요? 그리고 그 외침은 지켜졌을까요?" — 고종 강제 퇴위 단원의 도입 질문으로 활용 가능

✏️

[수행평가 주제] "사육신(1456)과 고종 퇴위 저항(1907)을 비교하여, 조선 시대와 근대의 '저항'의 형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서술하시오." — 비교사 논술 주제

📰

[카드뉴스 활용] 〈대한매일신보〉 창간(1904) — "일본 검열을 피하기 위해 영국인 발행인을 내세웠다"는 역설적 사실을 카드 한 장으로 정리하기 좋습니다

🗣️

[토론 주제] "1947년 여운형의 암살 이후 한반도 분단은 피할 수 없었을까?" — 역사적 가정(if history) 토론 수업, 미소공위 자료와 함께 활용

🔗

[블로그 인용 안내] 이 글은 역사 교육·블로그 글쓰기·수업자료 제작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내용 인용 시 출처: 네이버 블로그 〈역사속 오늘〉 https://www.seoulheritage.org 표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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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활용 안내

이 글은 역사 교육, 블로그 글쓰기, 수업자료 제작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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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참고 사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흠영일기, 해동기, 각종 관보 및 근현대 사료 ·음력 날짜는 한국천문연구원 양·음력 변환 기준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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