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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의 강서구 외발산동, 시간의 한 줌을 열다

  • 2025년 7월 3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당신이 밟고 있는 그 땅,100년 전엔 누군가의 논밭이었다.

서울 외발산동 226만㎡ 땅 속에 잠든 이야기 — 문화재 지표조사가 열어젖히는 역사의 문


목차

1.땅이 먼저 말을 걸었다 — 외발산동 이야기의 시작

2.숫자로 읽는 1912년 외발산동 — 토지 통계 완전 분석

3.최·이·김·박씨 — 이 땅을 가꾼 사람들

4.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땅을 열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5.표본·시굴·발굴조사의 세 계단 — 땅속 역사를 꺼내는 법

6.살아있는 성공 사례 — 도심 속 발굴이 바꾼 이야기

7.외발산동, 다시 쓰는 역사 —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1. 땅이 먼저 말을 걸었다 — 외발산동 이야기의 시작



지하철 5호선 마곡역 근처, 지금은 고층 아파트와 IT 빌딩이 즐비한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그런데 딱 112년 전 이 자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논물 소리가 들리고, 봄이 되면 모내기 노래가 퍼지던 그 땅. 여름이면 벼 이삭이 바람에 출렁이고, 가을이면 수확의 환호성이 마을을 가득 채우던 그 공간이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팀(seoulheritage.org)이 1912년 토지조사부 원본 기록을 분석한 결과, 외발산동의 총 면적은 무려 약 226만 제곱미터에 달했다. 이 숫자가 실감이 잘 안 온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여의도 면적(약 290만㎡)의 약 78% 수준이다. 그 거대한 땅 위에 논이 펼쳐지고, 밭이 이어지고, 숲이 감싸고, 사람들이 살았다.

이 글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땅 아래 잠들어 있는 유물과 유적을 어떻게 찾아내고 보존하는지, 그 생생한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봐라. 반드시 달라질 거다.


2. 숫자로 읽는 1912년 외발산동 — 토지 통계 완전 분석

총 면적

226만㎡

여의도의 약 78% 규모

논 (전체의 55%)

1,245,698㎡

225필지, 압도적 비중

372,064㎡

131필지, 두 번째 규모

대지·임야·잡종지

59,268㎡

마을·숲·공공부지 합산



논은 225필지, 약 124만 5천 제곱미터로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이 땅에서 매년 봄 씨앗이 뿌려지고, 초여름 뙤약볕 아래 모내기가 진행되었으며, 가을이면 황금빛 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 논이 곧 외발산동 사람들의 밥이었고, 삶이었다.

밭은 131필지, 37만여 제곱미터다. 콩, 보리, 채소류 등 다양한 작물들이 계절에 맞춰 자라났다. 한여름 땡볕에도 쉬지 않고 호미를 쥔 손이 있었기에 이 마을이 살아갔다. 대지는 32필지, 26,155㎡로 실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생활 터전이었다. 저녁이 되면 아궁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골목을 채웠을 그 집터들이다.

임야는 8필지, 17,745㎡. 마을 뒷산의 숲이다.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만들고, 봄이면 산나물을 뜯던 공간이었다. 잡종지는 3필지, 15,368㎡로 지금의 개념으로 보면 마을 공유지나 소규모 상업 공간에 해당한다. 그리고 눈여겨볼 것이 있다. 전체 토지 중 99필지는 국유지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던 공공 토지로, 이 숫자 안에도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다.


3. 최·이·김·박씨 — 이 땅을 가꾼 사람들

최씨

193필지

이씨

38필지

김씨

24필지

박씨

11필지

토지조사부 기록을 들여다보면 이름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최씨가 193필지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고, 이씨 38필지, 김씨 24필지, 박씨 11필지 순이었다. 특히 최씨 집안의 영향력은 압도적이었다. 전체 사유지의 약 70% 이상을 단일 성씨가 관리했다는 건 이 마을이 특정 씨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성촌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 최씨 가문의 한 어른이 논에서 허리를 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그 눈에 담겼던 하늘이, 지금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그 하늘과 같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땅은 남았고, 그 땅 아래엔 그들이 쓰던 도구, 그들이 먹던 음식 그릇, 어쩌면 그들의 흔적이 아직도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문화재 발굴조사가 중요하다.


4.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땅을 열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문화재 지표조사는 말 그대로 땅 표면을 꼼꼼히 살피는 조사다. 공사나 개발 행위가 시작되기 전, 해당 지역에 유구(옛 구조물의 흔적)나 유물이 노출되어 있진 않은지, 역사 문헌 속에 어떤 기록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사전 절차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를 시작하기 전엔 반드시 이 조사를 거쳐야 한다.

지표조사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이 단계에서 문화재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이후 단계인 시굴조사, 발굴조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표조사 단계에서 유물의 흔적이 전혀 없다고 판명되면 공사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 즉 지표조사는 역사와 개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첫 번째 관문이다.

지표조사 신청은 국가유산청 협업포털(e-minwon.go.kr)을 통해 가능하며, 건설공사 규모나 지역 조건에 따라 전문 조사기관이 배정된다. 소규모 건축의 경우 국비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외발산동처럼 오래된 집성촌이 있던 지역, 논밭이 펼쳐져 있던 지역, 국유지와 사유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지역일수록 지표조사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땅 아래에 조선시대 온돌 흔적이 있을 수도 있고, 고려시대 청자 조각이 묻혀 있을 수도 있다. 삽을 들이붓기 전에 먼저 살피는 것, 그게 바로 지표조사의 정신이다.


5. 표본·시굴·발굴조사의 세 계단 — 땅속 역사를 꺼내는 법



지표조사를 통해 문화재 가능성이 확인되면 본격적인 조사 단계로 넘어간다.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표본조사다. 전체 조사 대상 면적의 2% 이내에서 땅을 선별적으로 파보는 단계다. 말 그대로 샘플링이다. 유물이 있을 법한 지점을 골라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고, 무엇이 있는지 파악한다. 이 단계에서 유물이 나오면 다음 단계인 시굴조사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시굴조사다. 전체 면적의 10% 이내를 조사하는 단계로, 표본조사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넓은 범위를 다룬다. 트렌치(좁고 긴 도랑)를 파서 지층 구조를 파악하고, 유구의 규모와 성격을 가늠한다. 여기서 중요한 유적이 확인되면 세 번째 단계인 정밀 발굴조사로 진입한다.

세 번째, 정밀 발굴조사가 가장 중요하다. 전문 고고학자들이 팀을 이뤄 해당 지역 전체를 체계적으로 발굴한다. 흙 한 줌,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치우지 않는다. 모든 유물의 위치를 기록하고, 3차원 데이터로 저장하며, 역사적 맥락을 분석한다.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그 땅의 역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관련 기관: 국가유산청(khs.go.kr)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 | 국립문화유산연구원(nrich.go.kr)


6. 살아있는 성공 사례 — 도심 속 발굴이 바꾼 이야기



2019년, 서울 강동구의 한 도심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 단지를 짓기 위해 부지 정리를 시작하기 전, 의무적으로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이다. 지층 구조가 심상치 않았다. 조사기관은 즉시 시굴조사를 요청했고, 땅을 조금 파내자 고려시대 주거지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진 이 현장에서는 고려시대 가옥터, 온돌 구조물, 조선시대 분청사기 파편, 그리고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생활 유물들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개발이 늦어진다는 사실에 주민들도, 시행사도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발굴 결과가 공개되고 언론이 주목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발굴 현장은 임시 박물관으로 탈바꿈했고,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었다. 결국 이 재개발 단지에는 유적 전시 공간이 마련되었고, 지금은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 자산이 되었다.

이 사례는 외발산동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최씨 집안이 193필지를 경작하던 그 땅, 논과 밭이 넘실대던 226만 제곱미터의 공간 어딘가에,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역사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걸 발견하는 행위가 단순히 역사 복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 브랜딩, 관광자원화, 문화 콘텐츠 개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7. 외발산동, 다시 쓰는 역사 —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1912년 외발산동의 토지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225필지의 논 하나하나에 이름이 있었고, 131개의 밭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 32개의 대지 위에 집이 섰고, 그 집에서 밥이 지어졌으며,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 모든 기억이 지금도 땅 아래 새겨져 있다.

우리가 그 기억을 불러내는 방법이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이고, 시굴조사이며, 발굴조사다. 이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공사를 앞둔 의무 절차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건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외발산동에서 개발이나 토지 이용 계획을 갖고 있다면, 혹은 역사적 관심에서 조사를 원한다면,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나 국가유산청을 통해 전문 조사기관과 연결할 수 있다. 표본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의뢰가 가능하며, 소규모 건물의 경우 국비 지원을 받아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문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지원 발굴조사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가능

"112년 전, 최씨 가문이 씨앗을 심던 그 논에서오늘 우리는 역사를 캐낸다.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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