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강서구 오곡동의 놀라운 역사를 지금부터 들려드립니다.
- 2025년 7월 14일
- 6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기관강서구 역사한강 농경지서울 문화유산
김씨 116필지, 이씨 112필지, 한씨 103필지— 강서구 오곡동 1912년, 세 가문이 지킨 한강 옆 대농촌
697필지 2,952,763㎡의 서울 최대급 농경 마을 — 논이 62%를 차지하고, 연못이 있었으며, 세 성씨가 고르게 뿌리 내린 진짜 농촌 공동체의 이야기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seoulheritage.org·읽는 시간 약 13분
"697필지, 2,952,763㎡.
지금 기준으로 축구장 414개를 합친 면적이다.
그 땅의 62%가 논이었고,
김씨, 이씨, 한씨 세 가문이
나란히 이 땅을 나눠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땅 어딘가에 연못 하나가 있었다."
강서구 오곡동. 지금은 김포공항과 마곡지구 사이, 서울 서쪽 끝자락의 주거·산업 복합 지역이지만, 1912년의 기록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공간이 드러난다. 697필지, 2,952,763㎡. 서울 어느 동네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광활한 농경 지대였다. 논과 밭이 전체의 93%를 차지하는 진짜 농촌이었다.
이 글은 오곡동 1912년 토지 기록을 들춰가며, 이 거대한 농경 마을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지를 꺼낸다. 그리고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 땅 아래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를 어떻게 찾아내는지를 이야기한다.
목차 — 이 글의 흐름
1. 오곡동, 오곡이 자라던 땅의 1912년
2. 논 327필지 — 전체의 62%, 한강 옆 논농사의 왕국
3. 밭 310필지 — 논 못지않게 넓었던 밭의 세계
4. 잡종지 17필지와 연못 1필지 — 여백과 물의 기억
5. 임야와 분묘 — 자연과 삶의 끝자락
6. 김씨·이씨·한씨의 삼각 균형 — 이 마을의 핵심 구조
7. 일본인 15필지와 국유지 6필지의 의미
8. 문화재 지표조사, 이 광활한 땅을 읽는 방법
9. 성공 사례 — 한강 서쪽 농경지에서 역사가 돌아온 순간들
10. 오곡동 땅의 기억을 지켜야 할 이유
1. 오곡동, 오곡이 자라던 땅의 1912년
오곡(五穀)이라는 이름은 다섯 가지 곡식, 즉 쌀, 보리, 콩, 조, 기장이 모두 자라는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름부터가 풍요로운 농경지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1912년의 오곡동은 그 이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공간이었다. 697필지, 2,952,763㎡. 가리봉동(572필지)보다 크고, 성산동(571필지)보다 크고, 장지동(652필지)보다도 크다.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동네 중 가장 광대한 면적을 가진 곳이다.
강서구 오곡동은 한강 하류에 인접한 지역으로,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비옥한 천혜의 농경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자연 조건이 697필지 중 637필지(93%)가 논과 밭으로 구성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강서구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 전까지, 오곡동은 서울 서쪽의 대표적인 농업 마을이었다.
697필지
총 필지 수
2,952,763㎡
총 면적
327필지
논 (62%)
310필지
밭 (31%)
116필지
김씨 소유
1필지
연못 (희귀)

2. 논 327필지 — 전체의 62%, 한강 옆 논농사의 왕국
논 327필지, 1,844,467㎡. 전체 면적의 62%가 논이었다. 오곡동이 이 시리즈에서 논 비율 1위다. 가리봉동(69%)이 필지 기준으로 높지만, 오곡동의 논 면적 절대값 1,844,467㎡은 가리봉동(1,348,564㎡)을 훨씬 뛰어넘는다. 순수 논 면적만으로 축구장 258개에 해당한다.
이 광대한 논은 한강 하류의 비옥한 충적토 위에 조성되었을 것이다. 한강에서 흘러들어오는 물과 풍부한 강우가 이 넓은 논을 가능하게 했다. 봄이면 모내기, 여름이면 논매기, 가을이면 추수. 327필지의 논에서 매년 이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그 반복의 흔적이 지금도 오곡동 땅속에 논바닥 점토층과 수로 흔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한강 인근 논 지대는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강을 통한 교류와 이동이 활발했던 시대, 이 논 사이 어딘가에 교역 관련 시설이나 나루터 구조물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 농기구, 수리시설, 경계석 같은 농경 유구도 발굴 기대 대상이다.
논
327필지 / 1,844,467㎡ / 62%
밭
310필지 / 906,053㎡ / 31%
잡종지
17필지 / 116,010㎡
임야
16필지 / 55,068㎡
대지
20필지 / 20,191㎡
분묘지
6필지 / 10,406㎡

3. 밭 310필지 — 논 못지않게 넓었던 밭의 세계
밭 310필지, 906,053㎡. 논(327필지)보다 필지 수는 적지만 거의 맞먹는다. 오곡동에서 논과 밭이 나란히 공존했다는 건, 이 땅이 단일 작물 중심이 아닌 다양한 농업이 이루어지는 복합 농경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이름 그대로 오곡이 모두 자라는 땅이었다.
논이 한강 물을 끌어올 수 있는 저지대에 조성되었다면, 밭은 조금 높은 구릉지와 논을 둘러싼 주변 땅에 촘촘히 배치되었을 것이다. 310필지의 밭.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잡초를 뽑고, 가을이면 수확을 나누던 그 공간들이 지금 어딘가에 도로와 건물 아래 층위로 남아있다.
4. 잡종지 17필지와 연못 1필지 — 여백과 물의 기억
잡종지 17필지, 116,010㎡. 창고, 공동 이용 공간, 농기구 보관 공간, 또는 용도를 정하지 못한 여백의 땅들이었다. 오곡동처럼 농업 중심 마을에서 잡종지는 농업 지원 시설이 집중된 구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연못 1필지, 1,117㎡. 작은 규모지만 이 존재 자체가 특별하다. 오곡동처럼 한강 인근에 위치한 농경 마을에서 별도로 연못을 만들어 관리했다는 건, 이 연못이 단순한 자연 웅덩이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관리한 공간이었다는 뜻이다. 농업용 물 저장, 마을 공동 이용 공간, 또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공간이었을 것이다.
오곡동 연못 1필지 — 한강 옆 마을의 또 다른 물
한강이 바로 인근에 있는데도 별도의 연못이 있었다는 건 주목할 만하다. 이 연못은 농업용 용수 저장이나 마을 공동체의 특별한 의식 공간이었을 수 있다. 연못 바닥 퇴적층에는 당시 생활 유물이 보존될 가능성이 있어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중요한 조사 포인트가 된다.

5. 임야와 분묘 — 자연과 삶의 끝자락
임야 16필지, 55,068㎡. 전체의 약 2%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숲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진 의미는 컸다. 땔감을 구하고, 채집을 하고, 가끔은 뒷산에서 숨을 고르는 공간이었다. 임야 구역은 지표조사에서 기와 조각이나 토기 편이 지표면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중요한 조사 포인트가 된다.
분묘지 6필지, 10,406㎡. 서교동(21필지)이나 신수동(9필지)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이 6필지의 무덤이 어느 성씨의 선산이었는지가 발굴 방향을 결정하는 단서가 된다. 오곡동의 세 주요 가문(김씨, 이씨, 한씨)이 각각 자신의 선산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6필지가 어떻게 분배되어 있었는지가 흥미롭다.
6. 김씨·이씨·한씨의 삼각 균형 — 이 마을의 핵심 구조
오곡동 토지 소유자 분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김씨 116필지, 이씨 112필지, 한씨 103필지. 세 성씨의 필지 수가 놀랍도록 균형 잡혀 있다. 한 가문이 독점하지 않고, 세 가문이 비슷한 비중으로 이 마을을 나눠 지키고 있었다.
이 삼각 균형 구조는 오곡동 공동체의 안정성을 보여준다. 특정 가문이 지배하는 마을이 아니라, 세 가문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공동체. 이 구조가 마을의 오랜 안정과 지속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문의 경계 구역이 지표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굴 포인트가 된다. 경계에는 경계석이 있고, 그 경계석이 땅속에 남아있다.
116필지
김씨
전체의 16.6%
112필지
이씨
전체의 16.1%
103필지
한씨
전체의 14.8%
세 성씨를 합치면 331필지, 전체의 47.5%. 그 외에 장씨, 임씨, 박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나머지 52.5%를 나눠가지고 있었다. 오곡동은 특정 가문의 마을이 아니라 다양한 가문이 공존하는 진정한 농촌 공동체였다.
김씨
116필지
균형 1위
이씨
112필지
균형 2위
한씨
103필지
균형 3위
장씨
기록 있음
임씨
기록 있음
박씨
기록 있음
일본인
15필지
국유지
6필지

7. 일본인 15필지와 국유지 6필지의 의미
697필지 중 일본인 소유 15필지, 국유지 6필지. 합치면 21필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다른 동네들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신계동(전체의 54%가 철도용지+일본인), 용문동(38%가 일본인), 신창동(30%가 일본인)에 비해 오곡동은 식민 침탈의 비율이 낮았다.
이건 오곡동이 서울 외곽의 농촌 지역이어서 일제의 전략적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 15필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15필지가 오곡동의 어느 구역에 있었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가 지표조사에서 파악해야 할 부분이다.
"3%밖에 되지 않는 일본인 소유지지만,
그 15필지도 누군가의 논이었고
누군가의 밭이었으며
누군가의 생계였다.
그 손실이 작다고 말할 수 없다."
8. 문화재 지표조사, 이 광활한 땅을 읽는 방법
697필지 2,952,763㎡라는 오곡동의 규모는 지표조사의 도전을 의미한다. 어느 구역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디에서 무엇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까.
출발점은 세 가문의 분포 구역 파악이다. 김씨, 이씨, 한씨가 각각 어느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는지를 분석하면, 각 구역에서 어떤 성격의 유구가 나올지를 예측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연못 1필지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연못이 있었던 자리는 퇴적층 분석의 핵심 포인트다. 분묘지 6필지의 위치도 중요하다. 그 무덤들이 어느 구릉에 있었는지가 파악되면 선산 주변에서의 발굴 방향이 정해진다.
STEP 1
지표조사
기록·현장
비파괴 분석
STEP 2
표본조사
2% 이내
탐색 발굴
STEP 3
시굴조사
10~20%
예비 발굴
STEP 4
정밀 발굴
면 단위
전면 기록
STEP 5
기록·보존
보고서·전시
역사 활용
697필지라는 넓은 면적에서 지표조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역사 기록 분석이 더욱 중요하다. 어느 구역을 우선 조사할지를 잘못 판단하면 정작 중요한 유적을 놓칠 수 있다. 1912년 토지 대장과 같은 역사 기록이 바로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핵심 나침반이다.
9. 성공 사례 — 한강 서쪽 농경지에서 역사가 돌아온 순간들
성공 사례 01
마포·은평 일대 발굴 — 논밭 아래 조선시대 도기와 청자
마포구와 은평구 일대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논밭 아래 조선시대 도기, 백자, 청자가 출토된 사례들이 있다. 오곡동처럼 한강 인근의 광활한 논밭 지대에서도 이런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 수백 년간 농부들의 손이 닿았던 그 땅 아래에 훨씬 더 오래된 이야기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성공 사례 02
가리봉동 논 지대 — 농경 유구와 생활 흔적의 발굴
오곡동과 비슷하게 논 비율이 높았던 가리봉동 일대에서 논바닥 퇴적층과 수로 흔적이 확인된 사례가 있다. 당시 농업 기술과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농기구 잔재와 생활 유구가 출토되었다. 오곡동의 327필지 논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당시 강서구 일대 농경 문화의 생생한 증거를 꺼낼 수 있다.
성공 사례 03
장지동 청동기시대 집터 — 논밭 아래 수천 년 이야기
송파구 장지동에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거쳐 청동기시대 집터가 발굴된 사례는, 논밭 아래에 수천 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물로 증명했다. 오곡동 역시 이름 자체가 오곡이 자라는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을 만큼 오래된 농경지다. 그 아래 어느 시대의 문화층이 있는지는 지표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10. 오곡동 땅의 기억을 지켜야 할 이유
지금 강서구 오곡동 일대는 마곡지구 개발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LG사이언스파크, 코오롱원앤온리타워, 대형 업무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는 이 땅이 1912년에는 김씨, 이씨, 한씨 가문이 나란히 논을 갈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곡지구 개발과정에서 이 절차가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아있는 오곡동 구역에서 이 순서가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가 중요하다. 697필지의 논밭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지표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김씨 116필지의 논에서 자란 벼, 이씨 112필지의 밭에서 키운 채소, 한씨 103필지의 땅에 새겨진 발자국. 그 이야기들이 오곡동 땅속 어딘가에 아직 잠들어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역할이고, 그 조사를 요구하는 것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역할이다.

오곡동 땅을 걸으면서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지금 내 발밑 어딘가에
김씨, 이씨, 한씨 세 가문이
나란히 논을 갈던 자리가 있다는 것을.
그 논이 지금 마곡지구 빌딩 아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이 도시는 뿌리를 잃지 않습니다.
그 기억을 시작하는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강서구를 포함한 서울 전 지역 — 지표조사부터 발굴,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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