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화양동, 당신이 알고 있던 그곳이 아닐지도 몰라요.
- 서울 HI
- 5월 8일
- 2분 분량
광진구 화양동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건대입구역과 다양한 맛집, 젊음이 넘치는 거리로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오늘은 시계를 돌려, 우리가 알던 화려한 화양동의 모습을 잠시 접고, 무려 100여 년 전인 1912년 화양동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려고 해요.
오늘의 여정은 그때의 화양동, 1912년으로 떠나볼 거예요.

목차
1. 프롤로그 - 1912년 화양동으로의 초대
2. 너른 들판, 생명의 터전 ‘논’ 이야기
3. 사람이 사는 자리 ‘대지’
4. 숲과 산의 이야기, ‘임야’
5.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잡종지’
6. 화양동의 주역, 삶을 일군 ‘밭’
7. 화양동의 주인, 성씨별 이야기
8. 에필로그 - 100년의 시간을 넘어
프롤로그 - 1912년 화양동으로의 초대
지금의 화양동 거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걷던 당신이, 1912년으로 타임슬립했다고 상상해 봐요.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한적한 논밭과 낮은 산, 드문드문 있는 집들이 있는 풍경이 펼쳐져요. 전혀 낯설고 어색한 모습일지 모르겠어요.
너른 들판, 생명의 터전 ‘논’ 이야기
지금은 건물과 도로가 가득하지만, 당시 화양동에는 무려 21필지의 논이 있었어요. 면적은 약 114,436㎡로, 이는 여의도공원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크기였답니다. 봄이면 푸른 싹이 자라나고, 가을이면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논이었겠죠? 당시 농부들이 일하며 서로 웃고 떠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는 자리 ‘대지’
당시 화양동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인 대지가 총 66필지, 면적은 21,504㎡가 있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함께 삶을 꾸려가고 있었어요. 집과 집 사이를 지나다니는 주민들의 웃음소리와 대화가 들리는 듯해요.
숲과 산의 이야기, ‘임야’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12년 화양동에는 무려 75,431㎡의 임야가 존재했어요. 필지로는 총 9필지였죠. 숲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계절마다 다양한 색깔로 변하는 산의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 좋은 쉼터이자 생활의 터전이었을 거예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잡종지’
잡종지는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땅을 의미해요. 당시 화양동에는 잡종지가 4필지, 약 41,325㎡나 존재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물자를 쌓아놓기도 하고, 때로는 동네 잔치를 열기도 했을 거예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공간이죠?
화양동의 주역, 삶을 일군 ‘밭’
화양동의 가장 큰 땅덩어리는 역시 밭이었어요. 총 75필지에 달하는 밭은 437,856㎡로, 지금의 번화한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죠. 감자와 고구마, 콩, 각종 채소가 심겨 있던 넓은 밭에서는 매일 아침 마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땀 흘렸을 거예요.
화양동의 주인, 성씨별 이야기
이 넓은 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김씨가 가장 많은 18필지의 땅을 소유했고, 뒤를 이어 이씨가 12필지, 윤씨가 8필지, 정씨가 6필지, 박씨가 5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어요. 땅을 소유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더욱 생생하게 화양동의 과거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에필로그 - 100년의 시간을 넘어
100년이라는 시간은 길고도 짧아요. 지금 우리가 즐겨 찾는 화양동은 이제 논밭 대신 쇼핑몰과 맛집, 대학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죠. 하지만 1912년의 화양동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우리의 기억과 기록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까요.
화양동을 거닐 때마다 이 땅이 품고 있던 이야기들을 기억해 준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화양동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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