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지금의 강남구 율현동에 논이 있었다고?
- 2025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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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월 12일
지금 강남 한복판,1912년엔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1912년 강남구 율현동 — 352필지, 1,063,677㎡. 골프장과 국제학교가 들어서기 전, 이 땅에 살았던 조용한 마을의 기억
목차
1.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 1912년 강남구 율현동의 놀라운 풍경
2.논과 밭이 펼쳐진 율현동 —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모습
3.사람들이 살던 땅 — 집은 어디 있었을까
4.산과 잡종지 — 자연 그대로였던 공간들
5.율현동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 성씨로 보는 마을 구성
6.국유지 13필지의 의미
7.1912년 vs 지금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상
8.문화유산 조사 — 과거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열쇠
9.마무리 — 강남 땅 아래 잠든 이야기
1.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 1912년 강남구 율현동의 놀라운 풍경

강남구 율현동. 지금은 고급 주택 단지와 국제학교, 골프장이 들어선 강남의 한 자락이다. 부촌 이미지가 강한 이 동네가 113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가는가. 빌딩도, 고급 차도, 복잡한 도로도 없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흙내음이 나고, 계절이 천천히 바뀌는 것을 몸으로 느끼던 공간이었다.
총 필지 수
352필지
조용한 소규모 농촌 공동체
총 면적
1,063,677㎡
축구장 약 149개 규모
밭 (1위)
647,837㎡
215필지, 전체의 약 61%
논
305,221㎡
108필지, 두 번째 규모
1912년 율현동의 총 면적은 1,063,677㎡, 352필지. 면적만 따지면 서울에서 꽤 넓은 동네다. 그런데 그 352필지 중 집이 지어진 대지는 고작 25필지. 나머지는 전부 논과 밭, 산이었다. 사람보다 땅이, 건물보다 자연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었다.
2. 논과 밭이 펼쳐진 율현동 —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모습
밭
215필지
647,837㎡
논
108필지
305,221㎡
대지
25필지
30,244㎡
임야
3필지
22,581㎡

밭이 215필지, 647,837㎡. 전체의 61%가 밭이었다. 축구장 약 90개를 이어붙인 크기다. 콩, 보리, 채소, 곡식.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이 거대한 밭을 가득 채웠다. 논은 108필지, 305,221㎡. 지금 율현동의 도로 아래, 어딘가에 그 논의 흔적이 지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봄이면 모내기, 가을이면 추수. 벼가 고개를 숙이던 그 들판이 지금의 강남이었다.
밭과 논을 합치면 953,058㎡, 전체의 약 90%가 농경지였다. 지금 율현동에 있는 고급 주택 한 채의 부지가 그 시절에는 온통 밭이었다. 그 밭에서 누군가의 손이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수확을 기다렸다. 그 손의 기억이 아직 땅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3. 사람들이 살던 땅 — 집은 어디 있었을까

352필지 중 집터인 대지는 25필지, 30,244㎡.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건 단 하나다. 율현동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거대한 농경지 한가운데 몇 채의 집이 있던 조용한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빽빽한 주거지가 아니라, 논두렁 너머로 겨우 이웃집 굴뚝 연기가 보이는 정도의 한적함이었다.
그 25필지 위의 집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와집보다는 초가집이 많았을 것이고, 마당에는 장독대가 놓이고 텃밭이 딸려 있었을 것이다. 저녁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 집터 아래에 지금도 온돌 구조물이나 생활 유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25필지의 집터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4. 산과 잡종지 — 자연 그대로였던 공간들
임야는 3필지, 22,581㎡. 율현동 한쪽에 자리한 작은 산자락이었을 것이다. 개발 이전의 자연 그대로가 남아 있던 공간. 마을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러 오르고, 봄이면 산나물을 뜯던 곳이었다. 지금 이 임야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면 어떤 건물 아래 사라졌는지, 지표조사를 통해 그 위치를 특정하는 것도 중요한 역사 작업이다.
잡종지는 단 1필지, 228㎡. 이 작은 땅 한 조각은 마을 공동 우물이었을 수도 있고, 장터가 섰던 자리였을 수도 있다. 크기는 작지만 마을 사람들의 생활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공동체의 이야기는 항상 이런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다. 228㎡짜리 잡종지 하나가 율현동 공동체의 가장 생생한 생활 유산일 수 있다.
5. 율현동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 성씨로 보는 마을 구성
이씨
96필지
김씨
77필지
조씨
27필지
홍씨
19필지
송씨
다수
임씨
다수
민씨
다수
유·방씨
다수
율현동 토지의 주인들을 살펴보면 이씨가 96필지로 가장 많았다. 전체 352필지의 27%를 한 성씨가 소유한 것이다. 그 뒤를 김씨 77필지, 조씨 27필지, 홍씨 19필지가 이었다. 이씨와 김씨의 차이가 19필지로 비교적 넓지 않은 편이고, 그 외 송씨, 임씨, 민씨, 유씨, 방씨까지 다양한 성씨들이 고르게 분포했다.
이씨 집안이 96필지를 소유했다는 건, 이 가문이 율현동 마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뜻한다. 그 집안의 대청마루에서 마을 대소사가 논의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씨 한 가문이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성씨들이 공존했다는 사실이다. 소규모 마을치고는 꽤 다양한 공동체였다. 이 여러 성씨들의 삶의 흔적이 352필지 땅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 있다.
6. 국유지 13필지의 의미
역사적 맥락
1912년 율현동의 국유지 13필지는 조선총독부 관할 토지로 행정·공공 목적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은 대거 국유지로 편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마을 공동 사용지나 관습적 공유지가 국가 재산으로 귀속된 경우도 많았다. 율현동 13필지도 그 흐름 속에 있었을 것이다.
율현동에는 13필지의 국유지가 있었다. 전체의 3.7%에 해당하는 이 땅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던 공공 토지였다. 마을 공동 우물이나 도로, 관청 관련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13필지가 지금의 어떤 시설이나 도로와 연결되는지 추적하는 것은 근대 행정사 연구의 흥미로운 과제다.
7. 1912년 vs 지금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상
1912년 율현동
논·밭 90% — 광활한 농경지
집 25필지 — 몇 채 안 되는 조용한 마을
풀벌레 소리, 흙길, 굴뚝 연기
이씨·김씨·조씨가 땅을 일구다
지금의 율현동
고급 주택 단지와 국제학교
골프장과 빠른 도로
차 소리, 콘크리트, 조용한 부촌
논밭의 흔적은 땅속에 잠들다

불과 113년. 이 짧은 시간에 율현동은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되었다. 논밭이 사라지고 고급 주택이 들어섰으며, 흙길이 아스팔트로 덮이고 굴뚝 연기 대신 에어컨 실외기 소리가 들린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개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씨 집안의 96필지 논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교차했는지. 그 모든 것이 역사다.
강남이라는 이름 자체가 1970년대 개발 이후에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율현동은 강남 개발 이전에 이미 수백 년간 사람이 살던 땅이었다. 그 수백 년의 이야기가 아직 땅속에 잠들어 있다.
8. 문화유산 조사 — 과거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열쇠

율현동처럼 논밭이 90%를 차지했고, 대지가 2.8%에 불과했던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농경 문화의 층위가 두텁게 쌓여 있고, 집터가 소수여서 오히려 특정 가문의 생활 유물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강남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 한성의 영역이었던 만큼, 율현동 지층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건물을 짓기 전에 땅속 문화유산을 확인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율현동 일대에서 공사나 개발이 계획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발견'하고 '기록'하며 '보존'하는 것. 그게 우리 시대의 역할이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강남구는 백제 한성 시기 핵심 영역으로 삼국시대 유적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 및 국가유산청 협업포털(e-minwon.go.kr)에서 의뢰 가능.
9. 마무리 — 강남 땅 아래 잠든 이야기

1912년 율현동의 이씨 96필지, 김씨 77필지.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씨앗을 심고, 물을 대고, 풍년을 기도했다. 자동차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들렸고, 콘크리트 벽 대신 흙담이 마을을 감쌌다. 그 고요함 위에 지금의 강남이 세워졌다.
혹시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아래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기억이 잠들어 있다. 서울의 과거를 알고 싶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면, 오늘부터 관심을 가져보자. 땅은 언제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가 묻기만 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강남구 관할 문화재 문의 → 강남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이씨 어른이 씨앗을 심던 그 밭.지금은 누군가의 고급 주택이 그 위에 서 있다.하지만 땅속엔 여전히 그 씨앗의 기억이 남아 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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