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강남구 6,483필지 18,130,432㎡테헤란로 아래 밭 3,384필지, 이씨 1,969필지, 석씨 175필지의 강남 이야기
- 6월 1일
- 7분 분량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강남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강남구 6,483필지 18,130,432㎡테헤란로 아래 밭 3,384필지, 이씨 1,969필지, 석씨 175필지의 강남 이야기
지금 강남의 고층빌딩과 아파트 아래, 112년 전엔 이씨 가문의 밭이 펼쳐져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릉 주변엔 석씨 집성촌이 있었고, 봉은사를 품은 국유지 686필지가 이 모든 땅을 감싸고 있었다.
6,483총 필지
3,384밭(시리즈 최다)
1,969이씨(시리즈 최다)
686국유지 필지
11성씨 종류
지금 강남의 가장 비싼 땅이 1912년엔 이씨 집안의 밭이었다.
6,483필지 18,130,432㎡. 이 시리즈에서 송파구(20,480,029㎡) 다음으로 넓은 면적이다. 그 넓은 강남 땅의 48.0%가 밭이었고, 그 밭의 상당수가 이씨 가문의 소유였다. 이씨 1,969필지. 이것도 이 시리즈 단일 성씨 최다 필지다.
지금 코엑스 앞 테헤란로, 압구정 로데오거리, 대치동 학원가가 들어선 그 땅에 1912년엔 이씨, 김씨, 석씨 집안이 대대로 일구던 밭과 논이 있었다.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삼성동에는 성종과 중종의 왕릉이 있었고, 그 왕릉을 지키는 사찰 봉은사가 국유지로 관리됐다. 강남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다. 1912년부터 개발 직전까지 이 땅은 약 60년간 거의 그대로였다.
그 60년 동안 조선 농민의 후손들이 논과 밭을 일구며 살던 강남의 흙 아래에는 수백 년의 씨족 마을 역사, 왕릉 관련 유구, 그리고 더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였다.
목차
11912년 강남구 토지 통계 총괄
2밭 3,384필지 — 시리즈 최다, 강남 땅의 진짜 얼굴
3이씨 1,969필지 — 이 시리즈 단일 성씨 최다
4석씨 175필지 — 희귀 성씨와 삼성동 집성촌
511개 성씨의 지도 — 1912년 강남 사회의 단면
6국유지 686필지 — 선정릉과 봉은사의 땅
7분묘지 89필지 — 강남 개발이 지운 이름들
8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9성공 사례와 감동으로 닫는 이야기

1
1912년 강남구 토지 통계 총괄 — 숫자가 보여주는 강남의 진짜 과거
1912년 강남구의 토지 현황이다. 6,483필지 18,130,432㎡. 이 방대한 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를 먼저 한눈에 본다.
3,384필지밭(시리즈 최다)
2,145필지논
686필지국유지
568필지대지
180필지임야
105필지잡종지
89필지분묘지
26필지마을 공유지
18필지일본인 소유
11필지성씨 종류
6필지지소(연못)
지목 | 필지 수 | 면적(㎡) | 면적 비율 | 비율 시각화 |
밭(田) | 3,384 | 8,660,326 | 47.8% | |
논(畓) | 2,145 | 6,360,716 | 35.1% | |
임야(林野) | 180 | 1,399,530 | 7.7% | |
잡종지 | 105 | 913,567 | 5.0% | |
대지(垈) | 568 | 676,214 | 3.7% | |
분묘지 | 89 | 94,373 | 0.52% | |
지소(池沼/연못) | 6 | 12,426 | 0.069% | |
합계 | 6,483 | 18,117,152 | ≈100% |
밭 47.8%와 논 35.1%. 이 두 지목이 합쳐 전체 면적의 82.9%를 차지한다. 1912년 강남구는 한강 남쪽의 광활한 농경 평야였다. 하지만 이 농경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농촌이 아닌 복잡한 씨족 사회의 구조가 보인다. 이씨 1,969필지를 중심으로 11개 성씨가 이 농경지를 나누어 소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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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밭 3,384필지 — 시리즈 최다, 강남 땅의 진짜 얼굴
시리즈 전 구 밭 필지 수 비교
강남구
3,384필지 — 시리즈 최다
3,384
송파구
2,906필지
2,906
마포구
2,538필지
2,538
영등포구
2,135필지
2,135
성동구
2,050필지
2,050
강남구의 밭 3,384필지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많다. 지금의 강남이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인 것을 생각하면 이 숫자가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1975년 강남구가 공식 행정구역으로 탄생하기 전까지, 이 일대는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한 농촌이었다.
밭 3,384필지의 분포를 현재 지도와 대조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온다. 지금의 테헤란로 일대(역삼동, 삼성동)는 대규모 밭이 펼쳐진 드넓은 평야였다. 압구정동 일대는 한강에 인접한 충적지로 논이 많았고, 대치동·개포동 일대는 구릉 지형이라 밭 비율이 높았다. 선정릉이 있는 삼성동 주변은 왕릉 능역과 봉은사 부지가 국유지로 묶여 있어 민간 밭이 그 주변에 분포했다.

3
이씨 1,969필지 — 이 시리즈 단일 성씨 최다, 강남의 씨족 지배
이씨 1,969필지. 이것은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단일 성씨 최다 필지 수다. 마포구 이씨(1,134필지), 송파구 김씨(1,019필지)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6,483필지 중 이씨가 30.4%를 차지한다. 3필지 중 1필지가 이씨 소유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성씨 가문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집성촌을 넘어 강남 전역에 걸친 이씨 가문의 광범위한 세거(世居)를 뜻한다. 조선 시대 경기도 광주·시흥 지역에 대대로 정착한 전주 이씨, 경주 이씨, 광주 이씨 등 여러 이씨 가문들이 이 땅에 수백 년간 거주하며 상속과 매매를 통해 토지를 누적했을 것이다.
이씨 1,969필지 중 얼마나 많은 필지가 1970년대 강남 개발 과정에서 수용·철거됐을까. 그리고 그 이씨 가문의 마을 터에 지금 무엇이 들어서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강남구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과제다. 씨족 마을의 터에는 반드시 건물지, 우물, 화덕, 그리고 묘역의 흔적이 남는다. 이씨 1,969필지와 대지 568필지의 분포가 겹치는 지점이 1912년 이씨 마을의 위치를 추정하는 핵심 자료가 된다.
4
석씨 175필지 — 강남에서 가장 흥미로운 성씨의 발견
11개 성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석씨 175필지다. 석씨는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한 성씨다. 조선시대 전체 인구에서 석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0.1% 미만이었다. 그런데 1912년 강남구에서 석씨가 175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강남구 일대에 석씨 집성촌이 존재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석씨 집성촌이 있었다면 어디였을까. 삼성동과 청담동 일대에 석씨 가문이 집거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정릉(성종·중종 왕릉)과 봉은사가 있는 삼성동 인근에 왕릉을 관리하는 능참봉(陵參奉) 관련 가문이 세거한 경우가 있었는데, 석씨가 그 역할과 관련된 가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씨 집성촌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강남구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과제다.
석씨 175필지와 고고학적 의미
희귀 성씨 집성촌은 고고학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소수 가문이 수 세대에 걸쳐 같은 공간을 점유하면, 그 마을의 문화층은 더 일관되고 풍부하게 형성된다. 석씨 집성촌 추정 구역의 시굴조사에서는 조선 중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친 연속적인 주거 유구가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강남 개발이 이 마을 위에 고층 건물을 세우기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이 조사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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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개 성씨의 지도 — 1912년 강남 사회의 단면
강남구 11개 성씨는 이 시리즈에서 마포구(19종) 다음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마포는 상업 도시로서의 다양성이었고, 강남은 농촌 공동체로서의 다양성이다. 11개 성씨가 한강 남쪽 광활한 농경지에 각각의 씨족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이씨1,969필지1위 · 시리즈 최다
김씨869필지2위
박씨436필지3위
조씨279필지4위
임씨183필지5위 · 주목
석씨175필지6위 · 희귀
홍씨152필지7위
최씨144필지8위
한씨133필지9위
유씨117필지10위
강씨100필지11위
임씨 183필지가 5위에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임씨는 이 시리즈에서 강남구와 송파구에서만 상위권에 등장한다. 한강 남쪽 지역에 임씨 가문의 세력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홍씨 152필지는 성동구 5위(125필지)에도 등장했는데, 한강 이남 지역에 걸쳐 홍씨 가문의 분포가 넓었음을 보여준다.
11개 성씨 중 100필지 이상을 소유한 성씨가 11개나 된다는 것도 특별하다. 이것은 강남구에 단일 가문의 독점적 지배가 아니라 다수의 씨족 가문이 공존하는 다원적 씨족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이 11개 가문의 마을 터를 모두 추적하는 것이 강남구 문화재 조사의 방대한 과제가 된다.
6
국유지 686필지 — 선정릉·봉은사가 품은 땅

국유지 686필지. 이 숫자의 핵심에는 선정릉(宣靖陵)이 있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왕 성종(1457~1494)과 정현왕후의 능이고, 정릉은 제11대 왕 중종(1488~1544)의 능이다. 이 두 능을 합쳐 선정릉이라 부르며,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일부다.
왕릉의 능역(陵域)은 조선 시대부터 엄격히 국유지로 관리됐다. 봉은사(奉恩寺) 역시 선릉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 선릉의 봉사를 위해 운영됐다. 봉은사는 조선 성종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1912년 국유지 686필지 중 상당수가 선정릉 능역과 봉은사 부지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선정릉 국유지의 고고학적 가치
선정릉 능역 주변의 국유지 686필지 중 일부는 능역이 조성되기 이전의 문화층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 시대 왕릉 조성 과정에서 이전된 민간 분묘나 취락의 흔적, 능역 경계를 표시했던 표석, 능행로(陵行路)의 석조 유구 등이 발굴될 수 있다. 선정릉 주변의 문화재 지표조사는 단순한 농경지 조사가 아니라 조선 왕실 문화유산의 맥락을 추적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7
분묘지 89필지 — 강남 개발이 지운 이름들
분묘지 89필지 94,373㎡. 이 시리즈에서 송파구(50필지)와 마포구(139필지) 사이의 중간 규모다. 1필지 평균 1,060㎡로 비교적 소규모 묘역 중심이다. 이씨, 김씨, 석씨 등 각 가문들이 마을 인근 야산에 소규모로 조성한 가족 묘역이 이 89필지의 대부분을 구성했을 것이다.
이 89필지 분묘지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묘가 이장 압박을 받았다. 개발 속도에 쫓겨 연고자를 찾지 못한 무연고 분묘들은 기록도 없이 사라졌다. 1912년 분묘지 89필지 기록은 그 이름 없이 사라진 묘들의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지금도 강남 재개발 현장에서 간헐적으로 조선 시대 분묘가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이 89필지의 흔적들이다.
지소(池沼) 6필지 12,426㎡도 주목해야 한다. 강남구에 6필지의 연못이 있었다는 것은 이 지역에 조선 시대 수리시설이나 자연 습지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연못 주변은 혐기성 환경이 발달하여 유기물 보존이 양호하다. 1912년 연못 6필지 구역은 수리 관련 유구, 목재 유물, 식물 씨앗 등 유기물 매장문화재의 잠재적 출토지로 문화재 지표조사의 우선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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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유자 구조와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필요성
조선인(성씨)
약 5,767필지 (88.9%)
88.9%
국유지
686필지 (10.6%)
10.6%
마을 공유지
26필지
일본인
18필지
강남구는 이 시리즈에서 일본인 소유 필지 비율(18필지, 0.28%)이 가장 낮은 구다. 강북구(5.9%), 서대문구(3.1%), 마포구(1.3%)와 비교하면 극히 낮다. 이것은 1912년 강남구 일대가 일본인의 진입이 가장 제한적이었음을 뜻한다. 한강 이남의 농촌 지역으로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편함이 1912년 강남을 가장 순수한 조선인 농촌으로 보존했고, 그 땅 아래에 가장 풍부한 조선 씨족 문화의 흔적을 남겼다.
조사 단계 | 강남구 핵심 적용 지점 | 기대 성과 |
문화재 지표조사 | 이씨 1,969필지·석씨 175필지 마을 터 현황·선정릉 능역 국유지 686필지 분포·분묘지 89필지 위치·지소 6필지 습지 조건 파악 | 조사 우선 구역 선정 |
시굴조사 | 석씨 집성촌 추정 구역 건물지 트렌치·선정릉 능역 경계부 유구 확인·분묘지 묘제 형식 파악·지소 6필지 유기물층 측정 | 유구 성격·층위 확인 |
표본조사 | 11개 씨족 마을 터 선택 발굴·마을 공유지 26필지 공동시설 유구·선정릉 능행로 관련 석조 유구 | 유적 범위·성격 파악 |
본발굴조사 | 전면 발굴·기록·국가유산청 보고·강남구 향토박물관 연계 전시 | 역사 복원 완성 |
9
성공 사례 — 강남 개발 속에서 역사를 건져낸 발굴들
강남구의 발굴 사례들이 이 일대의 고고학적 잠재력을 증명하고 있다.
성공 사례 01
선정릉 발굴 조사 —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실물을 확인하다
선정릉(사적 제199호) 능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성종·정현왕후·중종의 능침 구조와 능역 배치, 조선 시대 제례 관련 유구들이 확인됐다. 1912년 국유지 686필지의 상당수가 바로 이 능역과 연결된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보존 및 복원 연구가 강화되면서,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성공 사례 02
대치동·개포동 재건축 현장 분묘 발굴 — 강남 개발이 지운 이름 되찾기
대치동과 개포동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조선 후기 분묘가 연속 발견됐다. 1912년 분묘지 89필지와 현재 지적도를 대조한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굴조사가 진행됐고, 회곽묘와 목관묘에서 분청사기, 백자, 동전이 출토됐다. 이 발굴은 강남 개발이 이름 없이 지운 조선 씨족 마을의 역사를 다시 불러낸 사례다.
성공 사례 03
seoulheritage.org 율현동 논 연구 — 1912년 기록이 오늘의 발굴 단서가 되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진행한 강남구 율현동 1912년 토지조사부 연구에서, 지금의 율현동 일대에 논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이 연구는 1912년 토지조사부 기록이 현대 문화재 조사의 1차 문헌 자료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율현동 논 지역의 문화층 분석이 주변 씨족 마을 유구 발굴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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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부 기록 분석부터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 본발굴조사까지. 서울 25개 구 매장문화재 조사 전문 기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이씨 1,969필지, 김씨 869필지,
그리고 석씨 175필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릉 주변에서
이름 없는 농민들이 밭을 갈았다.
지금 그 밭 위에 고층빌딩이 섰고,
고층빌딩 아래 밭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발굴은 그 잊혀진 이름을 되찾는 일이다.
— 강남구 6,483필지, 1912년의 기억을 위해
지금 강남의 가장 비싼 땅 아래, 이씨 집안의 밭이 있었고, 석씨 집안의 마을이 있었으며, 조선 왕의 무덤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지금도 땅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 강남 개발이 지운 이름들을 발굴조사가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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