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912년 중구 필동2가 토지로 읽는 서울의 숨겨진 진실

목차

프롤로그 필동2가 땅이 말해주는 이야기

필동2가의 공간 구성 집과 삶의 밀도

밭과 잡종지 도시와 자연의 경계

국유지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일본인 토지 소유 102필지가 남긴 흔적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이 중요한 이유

실제 성공 사례로 보는 문화재 조사

필동2가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 아래에 어떤 시간이 묻혀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골목 하나가 사실은 100년 전 도시의 욕망과 선택이 겹겹이 쌓인 장소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져


1912년의 중구 필동2가는 단순한 동네가 아니었어

총 134필지, 무려 172,265㎡

숫자만 봐도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지


이 글은 그냥 옛날 얘기가 아니야

지금 재개발, 건축, 그리고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읽게 될 이야기야


프롤로그 필동2가 땅이 말해주는 이야기


1912년 필동2가는 이미 도시로 숨 쉬고 있었어

전체 134필지 중 127필지가 집이 있던 대지였고 면적은 162,800㎡였어

이 말은 곧 이 동네가 주거 중심지로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는 뜻이야


당시 서울 다른 지역을 보면 밭이나 임야 비중이 훨씬 큰 곳도 많았거든

그런데 필동2가는 달랐어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생활이 돌아가고 있었고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지


이건 우연이 아니야

입지 때문이야


남산 자락

도심 접근성

행정과 상업의 중심과 가까운 위치


지금 우리가 좋은 동네라고 말하는 조건이 1912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던 거야


필동2가의 공간 구성 집과 삶의 밀도


127필지의 대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야

그 안에는 골목이 있었고

마당이 있었고

우물이 있었고

사람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여 있었어


당시 대지 면적 비율을 보면 필동2가는 이미 도시형 주거지였어

농촌에서 막 벗어난 과도기가 아니라

완성된 생활권에 가까웠다는 점이 중요해


이런 지역은 나중에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굉장히 민감해

왜냐하면

집이 많았다는 건

그만큼 유물도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거든


생활 유구

기초석

배수로

우물 흔적


이런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아


밭과 잡종지 도시와 자연의 경계


필동2가에는 밭도 있었어

4필지, 7,100㎡


그리고 잡종지

3필지, 2,363㎡


이 수치가 왜 중요하냐면

도시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거든


밭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야

도시가 밀려오기 직전의 마지막 여백이야


이런 공간은

임시 건물

창고

비공식 구조물


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고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반드시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구간이야


실제로 많은 발굴 사례에서

밭으로 기록된 필지에서 중요한 유구가 나오는 경우가 정말 많아


국유지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필동2가에는 국유지가 14필지나 있었어


이건 그냥 행정용 땅이 아니야

당시 국유지는

도로

공공시설

군사 관련 시설

행정 목적 부지


였을 가능성이 커


국유지가 많다는 건

그 지역이 이미 국가 단위에서 관리 대상이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이런 곳은

지금 문화재 조사에서 빠지면 안 되는 핵심 구역이 돼


왜냐하면

공공시설은 위치가 크게 변하지 않거든

땅의 기억이 오래 남아


일본인 토지 소유 102필지가 남긴 흔적


이 숫자를 보는 순간 숨이 멎을 수 있어


102필지


전체 134필지 중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였다는 거야


이건 단순한 개인 소유가 아니야

식민지 도시 전략의 결과야


도심 요지

주거 밀집지

향후 개발 가치가 높은 곳


이런 곳부터 집중적으로 토지를 확보했어


그래서 필동2가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식민지 도시 구조의 핵심 실험장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이런 지역에서 문화재 발굴이 이루어지면

조선인의 흔적

일본식 구조물

혼합 양식 유구


가 동시에 나오는 경우가 많아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이 중요한 이유


이제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한지 감이 올 거야


필동2가 같은 지역에서

건축이나 개발을 계획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는 선택이 아니야 필수야


지표조사에서

토기 파편

기와 조각

석축 흔적


이 하나라도 나오면

시굴조사

정밀 발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느냐

아니면 중단 리스크를 맞느냐

갈리게 돼


실제 성공 사례로 보는 문화재 조사


서울 도심의 한 재개발 지역

초기 지표조사를 성실하게 진행했어


예상보다 많은 유구가 확인됐지만

초기 단계에서 대응해서

설계 변경

보존 후 활용


으로 오히려 지역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어


문화재를 피한 게 아니라

문화재를 자산으로 만든 거야


필동2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지역이야


필동2가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1912년의 필동2가는

이미 도시였고

이미 경쟁의 대상이었고

이미 선택받은 땅이었어


그 선택의 흔적은

지금도 땅속에 남아 있어


그래서 이 동네를 바라볼 때

그냥 오래된 동네라고 보면 안 돼


시간이 겹겹이 쌓인 장소

기억이 잠들어 있는 땅


이렇게 봐야 해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는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야

미래의 리스크를 줄이고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야


필동2가의 땅이

우리에게 조용히 그걸 말해주고 있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너는 이미 이 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야


과거를 이해하는 순간

지금의 선택이 달라지고

도시는 조금 더 단단해져


필동2가는

그걸 조용히 증명하고 있어

댓글

별점 5점 중 0점을 주었습니다.
등록된 평점 없음

평점 추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