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구 태평로2가 토지로 읽는 서울의 숨겨진 얼굴
- 서울 HI
- 2025년 12월 31일
- 3분 분량
목차
한 장의 토지대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373필지, 숫자 뒤에 숨은 삶의 밀도
태평로2가, 누가 이 땅을 소유했을까
외국인 토지가 말해주는 국제도시 서울
일본인과 중국인 토지의 의미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가 중요한 이유
오늘의 태평로2가, 과거를 딛고 서다
1912년, 종이 위에 적힌 숫자 하나가 도시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이 글을 읽는 순간, 너는 단순한 통계를 보는 게 아니라 100년 전 서울 한복판을 걷고 있다.
지금의 중구 태평로2가는 빌딩 숲과 도로로 익숙하지만, 1912년의 이곳은 전혀 다른 숨결을 품고 있었다.
1장 한 장의 토지대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1912년 중구 태평로2가는 373필지, 58,242㎡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숫자는 단순한 면적이 아니다.
그 안에는 집이 있었고, 사람의 삶이 있었고, 국가와 외국 세력의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있었다.
당시 태평로2가는 전 필지가 대지였다.
밭도, 임야도 없었다.
이미 이 시점에서 태평로2가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도시형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문화재 지표 조사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땅 위에는 흔적이 사라졌지만, 땅 아래에는 여전히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2장 373필지, 숫자 뒤에 숨은 삶의 밀도
373필지 전부가 주거용 대지라는 사실은 놀랍다.
이는 태평로2가가 단순한 상업지 이전에, 사람들이 밀집해 살던 공간이었다는 뜻이다.
골목마다 집이 들어서고, 집과 집 사이로 생활의 소리가 흘렀다.
지표조사를 진행한다면 생활유구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기와 조각, 도기 파편, 생활 흔적이 땅속에 층층이 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지역은 공사 전 문화재 발굴 조사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에서는 사전 조사만으로 공사 리스크를 줄인 사례가 적지 않다.

3장 태평로2가, 누가 이 땅을 소유했을까
1912년 태평로2가의 토지 소유 구조는 꽤 흥미롭다.
김씨가 50필지로 가장 많았고, 이씨 38필지, 박씨 13필지, 한씨 10필지가 뒤를 이었다.
전통적인 조선 후기 토지 소유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유지도 7필지가 존재했다.
이는 국가 시설이나 공공 기능이 이미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 이 지역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유지 주변은 행정, 군사, 외교 시설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장 외국인 토지가 말해주는 국제도시 서울
태평로2가는 이미 국제 도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 소유 토지 3필지, 프랑스인 소유 토지 1필지.
숫자는 적지만 상징성은 크다.
외교, 선교, 상업 활동이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런 토지는 발굴 조사에서 서양식 건축 기초, 벽돌 구조, 유리 파편 등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서울 도심 발굴 사례 중에는 외국 공사관 터에서 서양식 생활유물이 출토된 경우도 있다.

5장 일본인과 중국인 토지의 의미
가장 눈에 띄는 수치는 일본인 88필지, 중국인 70필지다.
이 숫자는 우연이 아니다.
태평로2가는 식민지 시기 경제와 외교의 핵심 공간이었다.
일본인은 금융, 행정, 상업 거점을 확보했고,
중국인은 상업과 교역 중심의 토지를 확보했다.
이런 지역은 문화재 시굴조사 단계에서도 반드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질적인 건축 방식과 생활 유물이 혼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6장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가 중요한 이유
태평로2가는 숫자만 봐도 발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전 필지 대지, 다수의 외국인 소유, 국유지 존재.
이 세 가지 조건은 문화재 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신호다.
지표조사만 제대로 진행해도, 불필요한 공사 중단을 예방할 수 있다.
실제 성공 사례를 보면, 사전 조사를 통해 유구를 보존하고 설계를 변경해 오히려 도시의 가치를 높인 경우도 있다.
발굴은 멈추는 작업이 아니라, 이어가는 작업이다.

7장 오늘의 태평로2가, 과거를 딛고 서다
지금 너가 걷는 태평로2가는 콘크리트 위의 도시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1912년의 집들이 있고,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고, 도시가 만들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니다.
도시의 뿌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태평로2가는 그 자체로 서울 근대사의 교과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너는 이제, 단순한 길 하나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땅은 말이 없지만,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읽는 사람이 있을 때, 도시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