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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구 태평로1가 토지조사로 읽는 서울의 시작, 땅 위에 남은 권력의 흔적

  • 2025년 12월 30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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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지나갔고, 국가가 관리했고, 세계가 스쳐간 자리 — 1912년 중구 태평로1가 문화재 지표조사로 읽는 서울의 심장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 중구 지역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1912년 태평로1가 80필지·54,496㎡에 담긴 국유지·다국적 소유 구조와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의 의미를 풀어냅니다.

1912년의 서울을 그대로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지도 한 장, 숫자 몇 개만 있어도 그 시대의 공기와 긴장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서울의 심장부, 중구 태평로1가. 이 동네는 지금도 국가와 권력이 모여 있는 공간이지만, 이미 1912년에도 그 기운은 분명했습니다. 80필지 54,496㎡, 전 필지 대지. 국유지 9필지. 일본인 17필지, 중국인 1필지, 프랑스인 1필지. 이미 이곳은 한 나라의 수도가 국제적 각축장으로 변해가던 현장이었습니다. 이 기록을 읽는 순간, 평범한 거리 하나가 전혀 다르게 보일 겁니다.


80

총 필지 수


(전 필지 대지)

54,496

총 면적(㎡)


1912년 기준

9

국유지 필지


시리즈 최고 비율

17

일본인 소유


필지 수



태평로1가, 서울의 심장에 서다 — 문화재 지표조사란

1912년 중구 태평로1가는 총 80필지, 54,496㎡의 면적을 가진 동네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 수치는 엄청난 밀도를 말해줍니다. 당시 태평로는 행정, 외교, 상업의 중심축이었고,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도시의 뼈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태평로는 서울 한복판, 시청과 덕수궁을 끼고 있는 권력의 거리입니다. 1912년에도 그 성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을 체계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출발점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건설이나 개발이 시작되기 전, 해당 지역의 지면 위와 아래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존재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기초 조사 과정입니다. 이 조사에서 중요한 흔적이 발견되면 시굴조사로, 이후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지며,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이 전 과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합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동 단위로 정리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기초 자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태평로1가는 그 기록 안에서 이 시리즈 다른 동네들과 확연히 다른 성격을 드러냅니다. 권력과 국가의 흔적, 다국적 소유 구조, 그리고 전 필지 대지.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읽어봅니다.

태평로1가는 과거를 아는 사람에게만 말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에게, 조용히 감동을 남깁니다.


80필지 전부가 대지 — 완전히 도시화된 권력의 공간

80 / 80

1912년 태평로1가 80필지 전부가 대지였습니다.

밭도 없고 · 임야도 없고 · 잡종지도 없습니다.


행정과 외교, 권력이 집약된 완전한 도시 공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토지 이용 형태입니다. 1912년 태평로1가의 토지는 전부 대지였습니다. 밭도 없고, 임야도 없고, 잡종지도 없었습니다. 이 말은 곧, 이곳이 이미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이었다는 뜻입니다. 80필지 전부가 대지라는 사실은 굉장히 강력한 신호입니다. 이 지역에는 농사의 흔적이 없었고, 오직 사람이 살고, 일하고, 통치하는 공간만 존재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전 필지 대지를 보인 동네들은 체부동(214필지), 청진동(302필지), 태평로2가(373필지), 회현동 시리즈, 필동 시리즈 등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평로1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80필지)이면서도 국유지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권력의 밀도가 가장 높았던 공간이었습니다.

통계 요약 — 1912년 중구 태평로1가


총 필지 수: 80필지 / 총 면적: 54,496㎡


대지: 80필지 100% (밭·임야·잡종지 없음)


국유지: 9필지 (전체의 11.3%) / 일본인 소유: 17필지


이씨: 10필지 / 중국인 소유: 1필지 / 프랑스인 소유: 1필지


자료 출처: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중구 지역조사 (seoulheritage.org)



국유지 9필지가 말해주는 국가의 시선

9

80필지 중 9필지가 국유지. 비율로 따지면 11.3%입니다.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높은 국유지 비율입니다.


(비교: 필동2가 10.4%, 필동3가 6.3%, 청진동 0.7%, 창성동 1.6%)


국가는 이미 이 지역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1912년 태평로1가에는 국유지가 9필지 있었습니다. 이 숫자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80필지 중 9필지면 11.3%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모든 동네 중 가장 높은 국유지 비율입니다. 국가는 이미 이 지역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있었고, 도로, 관청, 공공시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태평로 일대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도 늘 핵심 구역으로 분류됩니다.

국유지 9필지가 어디에 위치했는지는 추가적인 문헌 검토가 필요하지만, 태평로1가의 입지를 고려하면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오릅니다. 덕수궁과 인접한 이 지역에는 조선 시대부터 중요 관청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 공공 시설의 흔적이 국유지 9필지 아래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이 이 지역을 조사할 때 국유지 9필지의 위치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구역이 됩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국유지는 항상 우선 검토 대상입니다. 공공 기능을 가진 공간은 위치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 이전 시기 시설의 흔적이 비교적 잘 보존된 경우가 많습니다. 태평로1가의 9필지 국유지는 그런 의미에서 이 동네 발굴 가능성의 가장 중요한 단서입니다.


성씨로 본 토지 소유 구조 — 이씨의 존재감

민간 소유 토지 중에서는 이씨가 10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 중심부에서 특정 성씨가 다수의 필지를 확보했다는 건 단순한 개인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관료, 상인, 혹은 정치적 네트워크와 연결된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태평로1가처럼 행정과 외교의 중심지에서 이씨 가문이 10필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가문이 이 공간의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정보 하나가 문화재 조사 보고서의 해석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씨 소유 10필지가 어느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는지, 그 주변에서 관료 계층의 생활 유구나 관련 문서가 발견될 수 있는지가 조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태평로1가의 이씨 10필지는 단순한 성씨 소유 통계가 아니라, 이 공간의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씨 10필지. 서울 한복판, 권력의 거리에서 그 가문이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땅을 보유했다는 기록만으로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일본인 소유 17필지가 남긴 질문

1912년 태평로1가에서 일본인 소유 토지는 17필지였습니다. 전체 80필지 중 21%에 해당합니다. 이건 단순한 부동산 투자가 아닙니다. 행정 중심지 인근의 토지를 선점했다는 건, 향후 도시 구조를 지배하려는 의도가 읽힙니다. 관청과 가까운 태평로1가의 일본인 17필지는 금융, 행정 지원, 상업 서비스 등과 연결된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12년 태평로1가 토지 소유 구조 (80필지 기준)

국유 9필지

조선인 등 (52필지, 65%)

일본인 17필지

기타

국유지 (9필지)

조선인 등 (52필지)

일본인 (17필지)

중국·프랑스 (2필지)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일본인 소유 토지가 포함된 구역은 조사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인의 전통 생활 층위 위에 일제강점기 건축 기초와 근대 생활 유물이 겹치는 중층 유구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태평로1가의 17필지는 그런 복합 층위가 기대되는 구역입니다.

동네

총 필지

국유지

국유지 비율

일본인

충신동

214필지

1필지

0.5%

5필지

창성동

184필지

3필지

1.6%

15필지

필동3가

79필지

5필지

6.3%

65필지

필동2가

134필지

14필지

10.4%

102필지

태평로1가 ★

80필지

9필지

11.3%

17필지


중국인과 프랑스인 소유 토지 — 국제 도시 서울의 단서

흥미로운 건 외국인 소유 토지의 다양성입니다. 중국인 소유 토지 1필지, 프랑스인 소유 토지 1필지가 확인됩니다. 숫자는 작지만 상징성은 큽니다. 태평로1가는 이미 국제 외교와 상권이 교차하던 공간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중국인 소유

1필지


상업·교역 관련

🇫🇷프랑스인 소유

1필지


외교·가톨릭 관련

🏛️이씨 민간 소유

10필지


관료·상인 가문

프랑스인 소유 1필지는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공사관 관련 인물이거나 가톨릭 선교 관련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평로1가는 덕수궁과 가까운 외교 지구였기 때문에, 각국 공사관과의 연결성을 가진 인물들이 이 일대에 토지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인 1필지도 당시 서울에 진출한 화교 상인의 상업 공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외국인 소유지는 독특한 유물 출토 가능성을 가집니다. 서양식 건축 기초, 벽돌 구조물, 유리병, 서양 식기류 같은 것들이 조선인 생활 유구와 함께 나올 수 있습니다. 태평로1가의 프랑스인·중국인 소유 필지가 그런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태평로1가, 왜 중요한가



이런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절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도시의 중심, 국유지 11.3%, 외국인 소유, 일본인 소유 토지가 뒤섞인 구조는 매장문화재 존재 가능성을 높입니다. 실제로 서울 도심에서는 지표조사 후 시굴조사, 발굴조사로 이어진 사례가 많습니다. 특히 국유지와 관청 인접 지역에서는 조선 시대 공공 시설의 기초 구조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태평로1가는 전 필지 대지, 국유지 최고 비율(11.3%), 다국적 소유 구조(일본·중국·프랑스), 그리고 권력 핵심 지구라는 네 가지 조건이 한 공간에 집약된 경우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지로서 이보다 더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공간은 찾기 어렵습니다. 조사 없이 공사를 시작하는 것은 역사적 손실은 물론 사업적 리스크도 동반합니다.

태평로1가에서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이유


전 필지 대지 →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도심 생활 역사층 두텁게 보존


국유지 11.3%(시리즈 최고) → 관청·공공 시설 기초 구조물 발견 가능성


일본인 21% → 조선·일제 복합 중층 유구 발견 가능성


프랑스인·중국인 소유 → 다문화 생활 유물 출토 가능성


덕수궁 인접, 행정 중심지 → 장기 역사층 보존, 조선 왕조 관련 유구 가능성


문화재 발굴 성공 사례로 보는 태평로의 가치

비슷한 도심 지역에서 조선 후기 관청 유구, 근대 도로 흔적, 생활 유물이 함께 나온 사례가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한 재개발 현장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먼저 실시한 결과,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의 초석과 계단 석재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엔 평범한 도심 공사 현장이었지만, 지표조사에서 기와편과 석재 파편이 수습되면서 시굴조사로 이어졌습니다.

시굴 결과는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조선 후기 관청 건물의 기초 구조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었고,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졌습니다. 그 한 번의 발굴로 지역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발굴 결과는 지역 역사 교육 자료로 재탄생했고,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역사적 가치를 제공했습니다. 태평로1가 역시 충분히 그런 잠재력을 가진 곳입니다.

문화재 조사 단계별 흐름


1단계 지표조사 → 문헌·현장 기초 조사, 유물 산포 확인, 유적 가능성 판단


2단계 시굴(표본)조사 → 트렌치 굴착, 지하 유구·유물 존재 직접 확인


3단계 정밀 발굴조사 → 전면 굴착, 유구 실측·기록 및 유물 수습


4단계 보고서 발간 → 학술 기록 정리, 문화재 지정·활용 검토


주요 기관: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문화유산협회, 중부지역 문화재 조사기관협회


지금 우리가 이 기록을 읽어야 하는 이유



1912년 태평로1가는 단순한 옛 동네가 아닙니다. 이 땅은 권력이 지나갔고, 국가가 관리했고, 세계가 스쳐간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보도블록 아래에는 그 모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9필지의 국유지가 어디에 있었는지, 이씨 가문의 10필지가 어떤 건물을 품고 있었는지, 프랑스인의 1필지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는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입니다.

이 기록을 읽는 순간, 평범한 거리 하나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닙니다. 도시의 뿌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일입니다. 태평로1가의 80필지가 그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과 문화재 지표조사 기초 자료는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공식 사이트에서 동 단위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구 지역조사 카테고리에서 태평로1가·2가, 회현동 시리즈, 필동 시리즈 등 다양한 동네의 기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www.seoulheritage.org



태평로를 걷다 잠깐 멈춰보세요.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보도블록 아래에9필지의 국유지가 있었고,이씨 가문의 집이 있었으며,프랑스인과 중국인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습니다.권력이 지나갔고,국가가 관리했고,세계가 스쳐간 자리.그 시간들이 지금 당신의 발밑에 있습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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