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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구 충무로5가 토지조사로 본 식민지 도시의 민낯

목차


  1. 숫자로 시작되는 불편한 진실

  2. 충무로5가, 88필지에 담긴 도시의 구조

  3. 집이 많았다는 건, 사람이 살았다는 뜻일까

  4. 밭과 산이 남아 있던 도심의 경계

  5. 국유지와 도로, 지배의 흔적

  6. 일본인 소유 79필지가 말해주는 것

  7. 문화재 지표조사로 다시 읽는 충무로5가

  8. 오늘 우리가 이 기록을 봐야 하는 이유


1912년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조금 묵직해진다.


지금은 번쩍이는 상업지와 극장, 빌딩이 가득한 충무로지만, 그 시작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 글은 단순한 숫자 정리가 아니다.


1912년 중구 충무로5가의 토지조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 도시가 어떻게 점유되고,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숫자로 시작되는 불편한 진실


1912년 충무로5가는 총 88필지, 면적은 45,613㎡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 한양 도심에서는 결코 작은 땅이 아니었다.


이 안에 집과 밭, 산, 도로, 그리고 국유지가 뒤섞여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도시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충무로5가, 88필지에 담긴 도시의 구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집이었다.


77필지, 30,730㎡.


필지 수와 면적 모두 압도적이다.


이 숫자만 보면 “사람들이 많이 살았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살았느냐다.


집이 많았다는 건, 사람이 살았다는 뜻일까


1912년 충무로5가의 대지는 대부분 주거와 상업을 겸한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땅의 소유 구조다.


전체 88필지 중 무려 79필지가 일본인 소유였다.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조선 사람이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땅의 주인은 달랐다.


이건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밭과 산이 남아 있던 도심의 경계


충무로5가는 이미 도심이었지만,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은 아니었다.


밭이 6필지, 12,324㎡나 존재했다.


이 면적은 단순한 텃밭 수준이 아니다.


도심 속에서 여전히 농업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여기에 임야도 4필지, 2,370㎡가 남아 있었다.


도시와 자연, 생활과 생산이 겹쳐 있던 과도기의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유지와 도로, 지배의 흔적


도로는 단 1필지, 188㎡였다.


아직 체계적인 도로망이 정비되기 전이라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국유지는 3필지나 존재했다.


이 국유지는 단순한 공공용지가 아니라, 통치와 관리의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 국유지는 종종 경찰, 행정, 군사 목적과 연결됐다.


일본인 소유 79필지가 말해주는 것


가장 충격적인 숫자는 역시 일본인 소유 토지다.


79필지.


거의 전부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충무로 일대는 상업과 유통, 오락 산업의 중심지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 가능성을 누구보다 빨리 읽었다.


그리고 토지를 선점했다.


이 선택이 이후 충무로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문화재 지표조사로 다시 읽는 충무로5가


지금 충무로5가에서 공사나 개발이 이뤄진다면,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이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지역은 단순한 상업지가 아니라,


식민지 도시 형성과 토지 수탈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도심 발굴 사례를 보면,


일제강점기 이전과 이후의 층위가 동시에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지역일수록 사전 조사와 기록이 더 중요해진다.


오늘 우리가 이 기록을 봐야 하는 이유


1912년 충무로5가 토지조사는 과거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와 연결돼 있다.


지금 우리가 걷는 거리, 서 있는 건물, 익숙한 골목은


누군가의 삶 위에, 또 다른 누군가의 선택 위에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이 숫자들을 기억하는 건 과거에 머무르기 위함이 아니다.


앞으로 이 도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묻기 위함이다.


도시는 기억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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