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구 을지로3가 타임슬립 산책 - 사라진 필지와 남겨진 이름들

목차

1. 오래된 지번 위로 걷기

2. 1912년 을지로3가의 풍경

3. 누가 이 땅을 소유했을까

4. 일본인과 중국인의 토지 소유가 남긴 흔적

5. 오늘의 을지로와 겹쳐지는 1912년 지도

6.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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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래된 지번 위로 걷기

을지로3가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늘 시간의 틈새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 향과 인쇄 소리가 섞여 풍풍 스치는 이 거리지만, 걷다 보면 문득 100년 전의 을지로가 발밑에서 들썩거리는 것만 같다.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오래된 간판 위로 반짝이는 철제 프레임, 바람이 한 번 훑고 지나가면 들리는 금속 냄새 같은 것들.

이 모든 감각이 1912년의 지도를 조용히 두드린다.

그 시절 이 자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누구의 땅이었고,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그 질문 하나로 시작된 작은 탐험이 오늘 이야기를 만들었다.

2. 1912년 을지로3가의 풍경

1912년, 을지로3가는 지금과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은 총 350필지, 면적으로는 65,342㎡.

지금의 높은 빌딩 숲 대신 작은 상가와 대지가 촘촘히 붙어 있었고, 좁은 골목마다 생활 소리가 박혀 있었을 것이다.

대지 필지만 해도 348필지에 달했다.

63,699㎡에 이르는 넓은 면적이 온전히 ‘집이 있는 땅’이었다는 뜻이다.

그 건물들은 지금처럼 높은 층을 올리지 않았겠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살아가기 충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 두 필지의 임야.

1,642㎡의 그 작은 숲 같은 공간은 아마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작은 언덕, 혹은 나무가 듬성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을지로 골목 사이에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니, 그 자체로 묘하게 현실감이 흔들린다.

3.누가 이 땅을 소유했을까

이 지번들은 그저 숫자와 필지가 아니다.

그 위에서 사람들이 살았고, 이름이 있었고, 삶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토지 대장을 펼칠 때마다 마치 오래된 명부를 읽는 기분이 든다.

1912년 을지로3가에는 다양한 성씨가 이 땅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이 소유한 성씨는 김씨.

무려 52필지를 소유하며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이씨 36필지, 박씨 18필지, 최씨 13필지.

익숙한 성씨들이 조용히 이 지역의 초기 모습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을지로는 오래전부터 서울 한복판의 생활 중심지였다는 사실이다.

권력층의 대지라기보다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역’이 주를 이루던 곳.

그런 도시의 맥박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4.일본인과 중국인의 토지 소유가 남긴 흔적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1912년의 을지로3가는 식민지 시대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의 토지 소유 구조를 보면 당시 사회의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1912년 을지로3가에는 일본인이 무려 89필지나 소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11필지를 소유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숫자는 당시 서울 도심 전반에 일어나던 조용한 변화,

그리고 이 변화가 결국 훗날 도시와 경제 구조를 흔들게 되는 과정을 예고하는 듯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법인 소유 토지가 단 2필지였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나 법인이 도시를 장악하기 전이었으니, 당시의 도심은 여전히 개인의 이름으로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5.오늘의 을지로와 겹쳐지는 1912년 지도

가끔 나는 1912년 지도를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놓고 지금 걷는 길 위에 겹쳐보곤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빌딩 앞, 전광판 아래, 바쁘게 오가는 출근길 사람들 틈새.

그 아래에는 100년 전에 누군가의 집이 있었고, 누군가의 터전이 있었다.

낡은 인쇄소 간판과 철제 공구 냄새가 남아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 지역이 처음부터 생활의 현장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1912년의 필지 위에 놓인 오늘의 을지로는

시간만 달라졌지 도시의 심장박동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을지로의 골목을 걸으면

도시가 가진 가장 오래된 숨결을 가장 가까이서 듣게 된다.

6.에필로그

역사를 연구한다는 건 결국 사람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이다.

을지로3가의 350필지 중 어느 하나라도 가벼운 역사는 없다.

그 땅 위에서 삶이 있었고

그 삶이 오늘을 만들었고

그 오늘 위에 우리가 다시 길을 걷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걷는 발걸음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100년 뒤 지도의 작은 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 생각 하나가 을지로의 길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