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구 남산동3가의 땅 이야기
- 서울 HI
- 6월 30일
- 3분 분량
남산 자락, 시간의 흔적이 숨 쉬는 그곳에서
1912년 중구 남산동3가, 약 29,547㎡의 땅 위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까.
당시 이 땅을 지나는 사람이면, 골목마다 흐르던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그때의 지도와 기록 속으로 들어가 본다.

1. 1912년 중구 남산동3가의 땅 이야기
1912년, 남산동3가의 전체 면적은 29,547㎡. 그중 21,405㎡는 주택 대지, 796㎡는 도로, 7,345㎡는 사사지(私寺地), 그리고 1필의 땅은 송씨 성을 가진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한눈에 파악되는 분포지만, 그 뒤엔 수많은 사람과 사건이 숨겨져 있다.
2. 누가 살았고, 어떤 땅을 가졌는가
주택 대지가 31필지, 약 21,405㎡
각 필지마다 집과 사연들이 담겨 있고
도로는 1필지, 796㎡
사람들이 오가던 좁은 골목과 마주였다
그 당시 주택지에서 경계가 그어지는 작은 골목길들은 주민들의 삶이 구불구불히 얽혀 있던 공간이었다.
3. 사사지와 국유지의 의미
사사지 2필지, 7,345㎡
절 사유지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절터 흔적을 찾는 이유다.
국유지 2필지
이 땅은 국가나 관청이 관리하던 곳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행정이 손댔던 장소에는 조선시대 제도와 일제 시대 초기 정책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4. 일본인의 토지 소유, 그리고 송씨의 단독 보유
일본계는 31필지나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인 개별 가문 중에는 송씨가 1필만 가지고 있었다.
이 통계 한 줄에, 당시의 ‘식민 지배’와 ‘토지 소유 구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5.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 왜 중요한가?
지금 우리가 남산 일대를 조사할 때, 이 기록들은 지표조사의 기초가 된다.
사사지 위치 따라 옛 절터 흔적 찾기
국유지 근방에서 조선시대·일제시대 유물 발견
주택지 경계 따라 골목 형태, 건축 양식 흔적 확인
이런 조사를 통해 발굴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시굴조사나 시굴 발굴을 통해 흙 밑에 묻힌 호미자국, 그릇 조각, 벽돌·기와 조각까지 발견된다.
6. 서울에서의 성공적인 시굴조사 사례
종로구 경동시장 인근 절터 발굴
한 종로구 현장에서, 옛 절터의 흙단층층을 확인하고 사찰 관련 기와 조각 다량 발견.
숭례문 주변 국유지 발굴
국유지 터에 숭례문 복원 이전 소형 시굴 진행. 토층 경계선에서 조선시대 기와·벽돌 파편과 생활 용기 조각을 수집.
이처럼 지표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단순한 지표층 조사만이 아니라, 역사적 연결고리를 도자기·기와·건축물 잔해를 통해 복원하게 된다.
7. 우리, 지금 뭐 해야 할까?
지금 남산 일대에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의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표조사: 먼저 대상지를 정한 뒤, 땅 표면에서 눈에 보이는 유구·유물 흔적을 관찰하고 기록
시굴조사: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정된 굴착 구역에 소형 시굴을 통해 흙층 분리와 유물 확인
본 발굴: 시굴 결과에 따라 절터·주거지 등 중요 문화층 확인 시 본격 발굴 진행
보고서 작성과 정비 계획까지 확정
8. 의뢰자 안내 (서울 중구, 남산 일대 대상)
밀도 높은 도시 지역까지 확대된 우리의 조사 대상
조사를 의뢰하고 싶은 분들은:
서울 문화재청 또는 전문 문화재 지표조사 기관에 연락
조사 범위·용도·시기·예산 등을 협의
시굴→본발굴 순서대로 단계별 동의서·신고서 등 준비
강력한 후킹에서 이야기했듯, 택지와 절터, 국유지 속에서 사람들이 오갔고, 식민이 드리웠던 자취가 흙 속에 숨는다.
지금 우리가 땅을 파기 전, 기록과 지표조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1912년의 통계가 왜 의미 있는지, 이제 이해되시죠?
🔍 살아있는 언어로 정리하자면
31필지 주택, 좁디좁은 골목길
길 하나(796㎡), 하루 종일 사람들이 오르내렸고
절터(사사지) 7,345㎡에선 종 소리와 연기가 스며났고
국유지엔 관청의 발자취가 있었고
일본인은 대토지주로 존재했고 송씨는 겨우 1필…
오늘의 조사자 여러분, 이 모든 건 지표조사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기 해시태그
인스타그램처럼
#발굴조사의뢰 해시태그
성공사례처럼, 시굴과 본발굴, 단계적 조사로 토층과 유물을 확인하고 기록하다 보면
눈에 안 보이는 역사도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혹시 남산 주변에서 문소리와 흙냄새가 어제와 다른 흔적을 남겼다면
관심과 의뢰가 훗날의 문화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를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발굴팀이 되어 보세요. 시간을 품은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