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홍파동 토지조사로 읽는 서울의 시간, 집과 밭 사이에 숨은 이야기
- 1월 8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20일
문화재 발굴 · 지표조사 · 서울 문화유산
1912년 홍파동, 땅속에 묻힌 서울의 시간
숫자 하나가 말해주는 도시의 기억, 그리고 문화재 지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서울헤리티지 발굴조사 리서치팀·종로구 홍파동 지역조사·문화재 발굴 · 지표조사 · 서울 문화유산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그 땅 아래,
조선 사람들의 우물과 담장이 아직 잠들어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재개발 공사 한 삽에 수백 년이 사라진다. 그 직전에 누군가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여기, 먼저 지표 조사 했어?"라고. 1912년의 숫자들이 오늘의 홍파동에게 건네는 경고이자 초대장.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문화재 발굴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섬세하고 긴박한 일인지 완전히 달라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목 차
지도를 펼치는 순간, 1912년 홍파동으로 들어가다
거의 전부가 집이었던 동네, 숫자가 말해주는 풍경
밭 3필지가 남긴 뜻밖의 여운
성씨로 읽는 홍파동 사람들 이야기
외국인 소유 토지가 던지는 시대의 신호
오늘의 홍파동, 그리고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이유

1. 지도를 펼치는 순간, 1912년 홍파동으로 들어가다
1912년의 토지조사부를 펼치는 순간, 서울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빠르게 걷고 지하철역 입구를 찾는 그 거리가, 당시에는 담장과 골목과 우물이 숨 쉬는 생활 공간이었다.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로 인식되는 종로구 홍파동이지만, 그 시절의 이 동네는 숫자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이야기였다.
1912년 종로구 홍파동의 기초 통계를 보면 전체 필지 수는 198필지, 총면적은 38,760㎡다. 이 수치는 단순한 행정 기록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땅이 얼마나 있었는지, 누가 소유했는지, 어떻게 쓰였는지가 모두 담긴 시간의 단면이다. 문화재 발굴과 문화재 지표 조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숫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천천히 들여다봐야 한다.
198총 필지 수
(1912년 기준)
38,760㎡홍파동 전체
총 면적
195대지(주거) 필지
(전체의 98.5%)
이 수치가 말해주는 첫 번째 사실은 홍파동이 압도적인 주거 밀집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1912년 당시 종로 일대 다른 동네들이 밭과 임야, 사사지가 뒤섞인 복합 구조를 가지고 있던 것과 달리, 홍파동은 이미 완성된 생활 공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홍파동이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짐작이 간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서울 전역의 조선~대한제국기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기관의 조사 방식은 단순히 지도를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토지 유형, 소유 성씨, 외국인 보유 여부, 인접 시설과의 관계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 문화재 지표 조사 및 발굴 조사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데 활용한다. 홍파동은 그 기준으로 보면 최우선 관심 지역 중 하나다.

2. 거의 전부가 집이었던 동네, 숫자가 말해주는 풍경
195필지, 35,970㎡. 홍파동 전체 198필지 중 무려 195필지가 대지, 즉 사람이 거주하던 집터였다. 비율로 따지면 필지의 98.5%, 면적의 92.8%가 주거지였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단순히 "집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홍파동이 계획적으로 조성된 신도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쌓인 생활 공간이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는 이런 지역을 특별히 주목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옛날 주택가처럼 보여도, 땅속에는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기에 이르는 생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물 터, 배수로 기초, 담장 흔적, 생활 토기 조각, 기와편 같은 것들이 발굴 현장에서 연속적으로 확인되는 지역일수록, 사전에 이루어지는 문화재 지표 조사의 중요성이 커진다.
문화재 지표 조사란, 공사나 개발 이전에 해당 지역의 역사적 잠재성을 파악하기 위해 지상에서 관찰 가능한 흔적을 조사하는 첫 번째 단계다. 이 조사가 충실할수록, 불필요한 공사 중단이나 유적 훼손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서울 종로, 중구, 용산구 일대의 여러 재개발 구역에서 이런 밀집 주거지 유형에서 뜻밖의 유구가 발견된 사례가 반복돼 왔다. 골목 하나를 걷어내다가 조선 시대 우물이 나오고, 건물 기초를 파내려 가다가 16세기 도자기 파편이 쏟아지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홍파동도 그런 잠재력을 품은 공간이다.
특히 홍파동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주거 밀집지는, 문화재 지표 조사 → 시굴 조사 → 발굴 조사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생활유구가 연속으로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유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아니라, 통계적 구조 자체가 그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3. 밭 3필지가 남긴 뜻밖의 여운

195필지의 집터 사이에, 밭이 있었다. 딱 3필지, 2,790㎡. 숫자만 보면 미미하다. 하지만 이 작은 숫자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주거지 한복판에 남아 있던 소규모 경작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홍파동 주민들이 완전히 도시적 삶만을 산 것이 아니라, 자급과 생활을 동시에 이어가던 이중적 생존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농촌적 삶의 방식을 일부 붙들고 있던 사람들, 그 경계에서의 일상이 이 3필지에 담겨 있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이런 소규모 경작지 주변은 항상 특별한 주의 대상이 된다. 밭 주변에는 종종 생활 쓰레기층, 즉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패총'과 유사한 생활 폐기층이 형성된다. 깨진 옹기, 퇴비를 담던 독, 임시 구조물의 기초 흔적들이 이런 공간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 지표 조사 단계에서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홍파동의 밭 3필지가 정확히 어느 위치였는지는 현재로서 특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1912년 지적도와 현재 지형을 교차 분석하면 위치 추정이 가능하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은 이런 작업을 통해 지표 조사 우선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토지 유형 데이터를 핵심 근거로 활용한다.
4. 성씨로 읽는 홍파동 사람들 이야기
숫자의 층위를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사람이 보인다. 1912년 홍파동 토지 소유 성씨 분포를 보면 동네의 사회적 성격이 훨씬 선명해진다. 김씨 36필지, 이씨 32필지, 박씨 11필지, 안씨 11필지. 그 외에도 다양한 성씨들이 크고 작은 필지를 나눠 가지고 있었다.
36김씨 보유
필지 수
32이씨 보유
필지 수
11박씨 · 안씨
각각 보유
특정 성씨 한 가문이 마을 전체를 독점하지 않고, 여러 집안이 비교적 고르게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이는 홍파동이 권문세가의 대형 저택이 늘어선 귀족 마을이 아니라, 중소 지주와 일반 생활인이 함께 어울려 살던 보통 사람들의 동네였음을 뜻한다.
이런 구조는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권력이 집중된 곳에서는 특정 유형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반면, 다양한 계층이 공존한 지역에서는 유물의 종류 자체가 풍부해진다. 장신구, 소형 도자기, 목제 생활 도구, 다양한 규격의 기와편처럼 계층과 생활 방식이 섞인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홍파동이 바로 그런 성격의 공간이었다.
실제로 고고학계에서는 이런 데이터를 '취락 구조 분석'의 핵심 근거로 쓴다. 단순히 "여기서 뭔가 나왔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가"를 해석하는 데 토지 소유 성씨 분포가 큰 단서를 제공한다. 1912년 홍파동의 성씨 데이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생한 역사 자료다.

5. 외국인 소유 토지가 던지는 시대의 신호
홍파동 198필지 중에 눈에 띄는 항목이 있다. 외국인 소유 토지다. 미국인 1필지, 영국인 1필지, 일본인 4필지. 숫자로는 전체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1912년이라는 시점은 서울의 토지가 처음으로 국제적 이해관계 속으로 본격 편입되던 시기다. 조선의 개항과 대한제국의 몰락, 일제강점기의 시작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 홍파동에 미국인과 영국인, 일본인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동네가 단순한 서울 구석의 주거지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외국인이 소유한 토지는 근대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서양식 벽돌 구조물의 기초, 이전에 없던 배수 방식, 또는 전통 한옥과 완전히 다른 공간 구성이 땅속에 겹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이런 필지는 항상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근대 유구와 전통 유구가 한 공간에 겹쳐 나타나는 것, 이것이 바로 서울 도심의 발굴 현장을 가장 복잡하고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이다. 어떤 층에서는 조선 시대 기와편이 나오고, 바로 그 위 층에서는 1900년대 초반의 서양식 벽돌 조각이 섞여 나온다. 홍파동의 외국인 소유 토지 6필지는 그런 중층적 발굴 스토리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은 이런 근대 전환기 흔적을 추적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전통 유구만이 문화재가 아니다. 근대 초기의 생활 방식, 외국인과 조선인이 공존하던 공간의 구조, 그 경계에서의 삶도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다.

6. 오늘의 홍파동, 그리고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이유
1912년 홍파동의 토지 구조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곳은 단순한 옛 동네가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생활 공간으로 완성돼 가던 과정, 다양한 계층과 국적의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공존하던 시간, 그리고 땅속에 아직 잠들어 있을 수백 년의 기억을 품은 장소다.
그렇다면 지금 홍파동은 어떤 상황일까. 도심 재개발의 압력은 지속적으로 가해지고 있다.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지하를 파고, 새 구조물을 세우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사전에 충분한 문화재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번 사라진 유구는 영원히 복원할 수 없다.
성공 사례 — 서울 종로구 돈의동 재개발 지구
2018년 종로구 돈의동 일대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사전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주거 유구 흔적이 확인됐다. 이후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로 이어진 작업에서 16~19세기 생활유구, 우물 3기, 담장 기초, 도자기 수백 점이 출토됐다. 공사는 일정 부분 조정됐지만, 발굴된 유구는 기록·보존되어 향후 전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초기 지표 조사가 없었다면 이 모든 기록은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공사가 시작됐다가, 굴착 중 유구가 발견되어 공사가 전면 중단되고 대규모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 지연, 법적 분쟁, 유구 훼손 논란이 동시에 터진다. 초기에 지표 조사 한 번 제대로 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문화재 지표 조사는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잠재성이 있는 지역에서는 사실상 의무에 가까운 절차다. 특히 1912년 토지 구조 분석에서 주거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성씨가 혼재했으며, 외국인 소유 필지까지 존재했던 홍파동 같은 지역은 문화재 발굴 기관의 시각으로 보면 최우선 조사 대상이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바로 이 맥락에서 서울 전역의 1912년 토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지역별 문화재 잠재성을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종로구를 시작으로 중구, 용산구, 성동구, 광진구, 은평구, 강남구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에 걸쳐 방대한 기초 데이터를 쌓고 있다. 이 데이터가 실제 발굴 조사의 기초 근거로 활용될 때, 비로소 도시의 기억은 지켜진다.
홍파동의 숫자들은 말없이 방향을 가리킨다. 198필지, 38,760㎡, 95% 이상의 주거 밀집도, 다양한 성씨의 공존, 외국인 소유 필지의 존재. 이 조각들을 모으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 땅 위의 서울을 바꾸기 전에, 땅 아래의 시간을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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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은,
누군가의 집터였고,
누군가의 우물이었고,
누군가의 골목이었다.
1912년 홍파동의 숫자들은 오늘도 그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문화재 발굴이란,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다. 문화재 지표 조사란, 그 부름을 들을 준비를 하는 일이다. 오늘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이제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서울의 기억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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