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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종로구 홍파동 토지조사로 읽는 서울의 시간, 집과 밭 사이에 숨은 이야기

목차


  1. 지도를 펼치는 순간, 1912년 홍파동으로 들어가다

  2. 거의 전부가 집이었던 동네, 숫자가 말해주는 풍경

  3. 밭 3필지가 남긴 뜻밖의 여운

  4. 성씨로 읽는 홍파동 사람들 이야기

  5. 외국인 소유 토지가 던지는 시대의 신호

  6. 오늘의 홍파동, 그리고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이유




1912년의 지도를 펼치는 순간, 익숙한 서울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로 인식되는 이곳, 하지만 그 시절의 홍파동은 숫자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이야기였다.


1912년 종로구 홍파동은 총 198필지, 면적은 38,760㎡.


이 숫자 안에는 사람의 삶, 골목의 숨결, 그리고 아직 땅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은 단순한 통계 정리가 아니다.


문화재 발굴과 문화재 지표 조사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도시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1장 지도를 펼치는 순간, 1912년 홍파동으로 들어가다


1912년 홍파동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으로 많은 대지 비율이다.


전체 198필지 중 무려 195필지, 면적으로는 35,970㎡가 ‘집’이었다.


이 말은 곧, 홍파동이 이미 그 시점에서 주거 중심지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밭이나 임야가 섞여 있는 주변 지역과 달리, 홍파동은 골목과 담장, 사람의 왕래로 촘촘히 채워진 동네였다.


이런 구조는 문화재 조사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신호다.


집이 많았다는 건, 생활유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물, 배수로, 담장 기초, 생활 토기 조각 같은 것들이 땅속에 켜켜이 쌓여 있을 확률이 커진다.



2장 거의 전부가 집이었던 동네, 숫자가 말해주는 풍경


195필지라는 숫자는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다.


홍파동 전체 필지의 거의 전부가 대지였다는 사실은, 이곳이 단기간에 형성된 계획지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성장한 생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지역은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늘 ‘주의 구역’으로 분류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주택지여도, 땅속에는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기에 이르는 생활 흔적이 연속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의 여러 재개발 구역에서, 이런 밀집 주거지 유형에서 뜻밖의 유구가 발견된 사례가 반복돼 왔다.


홍파동 역시 예외일 이유가 없다.



3장 밭 3필지가 남긴 뜻밖의 여운


홍파동에는 밭도 있었다.


단 3필지, 면적은 2,790㎡.


숫자로 보면 미미해 보이지만, 이 밭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주거지 한복판에 남아 있던 소규모 경작지.


이는 홍파동 주민들이 완전히 도시적 삶만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생계와 생활을 동시에 이어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밭 주변은 종종 생활 쓰레기층이나 임시 구조물 흔적이 발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문화재 지표 조사 단계에서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4장 성씨로 읽는 홍파동 사람들 이야기


토지 소유 성씨 분포를 보면 홍파동의 사회적 성격이 더 또렷해진다.


김씨 36필지, 이씨 32필지, 박씨와 안씨가 각각 11필지.


특정 한 성씨가 독점하지 않고, 여러 가문이 고르게 섞여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홍파동이 권문세가의 대규모 저택촌이 아니라, 중소 지주와 생활인이 함께 어울려 살던 동네였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는 생활 유물의 종류가 다양하게 나올 가능성을 높인다.


실제 발굴 사례에서도, 이런 지역에서는 장신구, 도자기, 목제 생활도구 등 생활 밀착형 유물이 풍부하게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5장 외국인 소유 토지가 던지는 시대의 신호


홍파동에는 외국인 소유 토지도 존재했다.


미국인 1필지, 영국인 1필지, 일본인 4필지.


숫자는 적지만, 이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1912년이라는 시점은 서울의 토지가 국제적 이해관계 속으로 본격 편입되던 시기다.


외국인 소유 토지는 근대 건축물의 흔적, 혹은 새로운 토지 이용 방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이런 필지는 늘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근대 유구와 전통 유구가 한 공간에 겹쳐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6장 오늘의 홍파동, 그리고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이유


1912년 홍파동의 토지 구조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이곳은 단순한 옛 동네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생활 공간으로 완성돼 가던 과정을 품은 장소다.


그래서 홍파동 일대에서 이뤄지는 개발이나 공사, 정비 사업은 반드시 문화재 지표 조사와 발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로 비슷한 조건의 지역에서, 사전 조사를 소홀히 했다가 공사가 중단되고 사회적 비용이 커진 사례는 적지 않다.


반대로, 초기 단계에서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를 충실히 진행해 도시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 성공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홍파동의 숫자들은 말없이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땅 위의 서울을 바꾸기 전에, 땅 아래의 시간을 먼저 만나는 것.


그것이 1912년 홍파동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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