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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종로구 청운동, 숫자로 드러난 조선 말 서울의 속살

목차

청운동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던 풍경

1912년 청운동의 전체 구조 한눈에 보기

집이 가장 많았던 동네, 대지의 의미

산과 밭이 공존하던 삶의 경계

국유지와 일본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그림자

청운동 토지 소유 성씨 분석

청운동 사례가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중요한 이유

지표조사 단계에서 반드시 체크해야 할 포인트

숫자를 넘어, 지금 우리가 청운동을 다시 보는 이유


1912년의 청운동은 지금 우리가 걷는 그 청운동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청운동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던 풍경


1912년 종로구 청운동은 총 144필지, 면적만 220,328㎡에 달하는 꽤 넓은 공간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하나의 ‘동’이라기보다 작은 마을 여러 개가 이어진 느낌에 가깝다.

북악산 자락 아래, 물과 산, 집과 밭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던 공간.

그 시절 청운동은 서울 도심이면서도 아직 도시가 되기 전의 호흡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이 많은 땅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1912년 토지조사 자료는 그 질문에 꽤 솔직하게 답해준다.



1912년 청운동의 전체 구조 한눈에 보기

144필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단연 ‘대지’였다.

130필지, 189,204㎡.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청운동은 분명히 사람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여기에 임야 6필지 19,256㎡, 밭 8필지 11,867㎡가 더해진다.

산과 밭이 집과 나란히 존재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건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생활권’이었다는 뜻이다.



집이 가장 많았던 동네, 대지의 의미

청운동 대지가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건, 이곳이 이미 정착형 주거지였다는 의미다.

임시 거주나 농경 중심 지역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항상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집이 많았다는 건 그만큼 생활 유구, 우물, 담장, 배수시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문화유산 발굴 사례를 보면, 이런 동네에서 예상치 못한 유구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정말 많다.


산과 밭이 공존하던 삶의 경계

청운동에는 임야와 밭이 함께 존재했다.

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다.

땔감을 얻고, 물길을 만들고, 마을의 경계를 형성했다.


밭 8필지라는 숫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도심 안에서 직접 먹을 것을 키웠다는 증거다.

이 말은 곧, 청운동이 완전히 상업화되기 전의 ‘자급적 도시’였다는 뜻이다.



국유지와 일본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그림자

청운동에는 국유지가 2필지 있었다.

숫자는 적지만, 의미는 가볍지 않다.

국유지는 대개 도로, 하천, 공공시설 예정지와 연결된다.

이건 이후 도시 개편의 씨앗이 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일본인 소유 토지 1필지.

단 한 필지지만, 이 존재 자체가 시대를 말해준다.

이미 이 시기에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의 토지 진입이 시작되고 있었다.

문화재 조사 현장에서 이런 토지는 종종 행정시설, 근대 건물 유구와 연결된다.



청운동 토지 소유 성씨 분석

청운동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성씨는 김씨였다.

무려 42필지.

그 다음이 이씨 20필지.


이건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특정 성씨가 집중적으로 토지를 소유했다는 건, 해당 가문이 오랫동안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이런 정보는 굉장히 중요하다.

문헌 기록, 족보, 묘역, 사찰 기록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청운동 사례가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중요한 이유

청운동은 ‘전형적인 고위험·고가치 지역’이다.

집이 많고, 산과 밭이 섞여 있고, 오랜 가문이 거주했다.

이 조합은 발굴 조사자 입장에서 심장이 빨리 뛰는 조건이다.


실제로 이런 지역에서는 지표조사 단계에서 이미 토기편, 기와편이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시굴조사로 넘어가면 생활 유구가 연속으로 확인되는 패턴도 흔하다.


지표조사 단계에서 반드시 체크해야 할 포인트

청운동 같은 지역에서는 평탄지보다 경사지, 담장 흔적, 오래된 수목 주변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임야와 대지가 맞닿은 경계부.

이곳은 과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던 공간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조사 결과가 달라진다.

실제 발굴 성공 사례를 보면, 작은 지표조사의 차이가 수천 년의 이야기를 끌어올린 경우가 적지 않다.



숫자를 넘어, 지금 우리가 청운동을 다시 보는 이유

1912년 청운동의 숫자들은 차갑지만, 그 안의 삶은 아주 뜨거웠다.

집이 있었고, 밭이 있었고, 산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그 땅 위를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삶을 밟고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화재 발굴 조사와 지표조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과거의 숨결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청운동의 1912년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땅 아래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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