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912년 종로구 중학동 토지조사로 읽는 서울의 숨겨진 시간

  • 2025년 12월 2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29일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조사문화재 발굴 기관중학동 역사종로구 지역조사동양척식주식회사서울 문화유산


지금 종로 한복판을 걷고 있다면, 그 발밑에 113개의 이야기가 묻혀 있다 — 1912년 종로구 중학동 문화재 지표조사로 읽는 제국의 흔적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 종로구 지역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1912년 중학동 113필지·25,190㎡에 담긴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 독일인·일본인 소유의 의미를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지금 네가 종로 한복판을 걷고 있다면, 그 발밑에는 113개의 이야기가 겹겹이 묻혀 있습니다. 1912년, 그 땅에는 사람이 살았고, 권력이 개입했고, 제국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1912년 지도 위의 종로구 중학동. 면적은 25,190㎡로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 독일인 1필지, 일본인 3필지가 숨어 있었습니다. 113필지 전부가 대지. 밭도 없고 임야도 없었습니다. 이미 완전히 도시화된 이 공간이 왜 지금도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대상이 되는지, 함께 읽어봅니다.


113

총 필지 수


(전 필지 대지)

25,190

총 면적(㎡)


1912년 기준

5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필지

4

외국인 소유


(독일 1 + 일본 3)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 1912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문화재 지표조사란

1912년, 지도 위의 종로구 중학동은 조용하지만 밀도가 높은 동네였습니다. 면적은 25,190㎡.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살았고, 권력이 개입했고, 제국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중학동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 기록을 읽어내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출발점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건설이나 개발이 시작되기 전, 해당 지역의 지면 위와 아래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존재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기초 조사 과정입니다. 이 조사에서 중요한 흔적이 발견되면 시굴조사로, 이후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지며,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이 전 과정을 수행합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동 단위로 정리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기초 자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중학동은 그 기록 안에서 작지만 강렬한 공간입니다. 113필지라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와 독일인 1필지라는 조합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지을지 고민하기 전에, 이 땅이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게 도시를 존중하는 방식이고 역사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중학동 113필지 — 숫자 속에 숨은 삶의 밀도

1912년 종로구 중학동은 총 113필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토지의 성격입니다. 113필지 전부가 대지였습니다. 면적 역시 25,190㎡ 전부가 집이 들어선 땅이었습니다. 논도 없고, 밭도 없고, 임야도 없었습니다. 이건 중학동이 이미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서울에서도 이런 구조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중학동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사는 데 최적화된 동네였습니다.

113필지라는 숫자를 다른 동네들과 비교해봅니다. 창성동(184필지), 태평로1가(80필지), 태평로2가(373필지)와 비교하면 중학동은 중간 규모입니다. 하지만 총 면적 25,190㎡는 이 시리즈에서 상당히 작은 수준입니다. 이 말은 필지당 평균 면적이 작다는 뜻이고, 중학동이 그만큼 촘촘하고 밀도 높게 구성된 공간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좁은 필지에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 좁은 골목. 그것이 1912년 중학동의 실제 모습이었을 겁니다.

통계 요약 — 1912년 종로구 중학동


총 필지 수: 113필지 / 총 면적: 25,190㎡


대지: 113필지 100% (논·밭·임야 없음)


국유지: 3필지 /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


독일인 소유: 1필지 / 일본인 소유: 3필지


김씨: 18필지 / 이씨: 14필지


자료 출처: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종로구 지역조사 (seoulheritage.org)



집만 가득했던 동네 — 대지 100%의 의미

113 / 113

1912년 중학동 113필지 전부가 대지였습니다.

논도 없고 · 밭도 없고 · 임야도 없습니다.


관청과 주요 도로에 인접한 핵심 도시 공간이었습니다.

대지가 100%라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 지역은 관청과 주요 도로, 상업 활동이 인접한 핵심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고, 일하고, 거래했습니다. 그래서 중학동의 토지조사는 단순한 토지 목록이 아니라 도시 구조의 완성 단계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이런 곳에서 문화재 발굴이나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건물 기초 아래에서 생활 유구나 근대 도시 흔적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학동의 전 필지 대지 구성이 다른 전 필지 대지 동네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청진동(302필지 52,420㎡)이나 체부동(214필지 38,658㎡)은 규모가 컸고, 창성동(184필지 50,740㎡)은 면적 기준으로도 상당했습니다. 반면 중학동은 113필지에 25,190㎡로, 필지당 평균 면적이 약 223㎡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작은 필지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공간은 생활 밀도가 가장 높았다는 의미이고, 그 아래에는 가장 촘촘한 생활 층위가 쌓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국유지와 외국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공기

중학동에는 국유지가 3필지 있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적어 보이지만, 국유지는 언제나 의미 있는 위치에 자리합니다. 도로 인접지거나, 행정 목적의 핵심 지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로구 한복판의 국유지 3필지는 그 자체로 이 공간이 국가의 시선 안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외국인 소유 토지가 있습니다. 독일인 소유 토지 1필지, 일본인 소유 토지 3필지. 이 두 가지 정보를 함께 읽으면 1912년 중학동의 국제적 성격이 드러납니다. 독일인 1필지는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국적입니다. 당시 서울에는 각국 공사관이 인근에 있었고, 독일 공사관 관련 인물이나 상인이 이 지역에 토지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인 소유

1필지


공사관·상인 관련

🇯🇵일본인 소유

3필지


행정·상업 관련

🏛️국유지

3필지


행정·도로 목적

독일인 소유 1필지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특별한 가능성을 가집니다. 이 시리즈에서 미국인, 프랑스인, 덴마크인, 영국인의 소유지가 등장한 적이 있지만 독일인은 처음입니다. 독일인의 건축 방식과 생활 용품이 조선인 생활 유구와 함께 출토된다면, 그것은 매우 희귀한 발굴 성과가 될 수 있습니다. 중학동의 이 1필지가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지표조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김씨와 이씨, 성씨로 읽는 중학동의 사람들

중학동 토지 소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씨는 김씨와 이씨입니다. 김씨 18필지, 이씨 14필지. 이 수치는 단순한 가문 분포가 아닙니다. 이 동네에 오래 뿌리내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종로구 한복판에서 김씨와 이씨 가문이 이 정도 필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건, 이 가문들이 이 공간의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1912년 중학동 주요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

김씨 18필지

이씨 14필지

성씨 분석은 문화재 조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정 가문이 장기간 점유한 공간일수록, 생활 유물, 가옥 구조, 공간 사용 방식이 비교적 잘 보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씨 18필지와 이씨 14필지가 중학동 113필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합산 28%에 달합니다. 이 두 가문이 중학동의 어느 구역에 집중해 있었는지를 파악하면, 생활 유구가 연속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특정할 수 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토지가 남긴 불편한 흔적

1912년 중학동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가 5필지나 있었습니다. 이건 절대 가볍게 볼 숫자가 아닙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토지를 통해 식민지 경제를 지배하던 핵심 기관이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그것도 대지만으로 구성된 중학동에 5필지를 확보했다는 건 이 지역이 얼마나 전략적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5

중학동 113필지 중 5필지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종로 도심 한가운데, 전 필지 대지 구성의 공간에서 5필지를 확보했다는 건


이 지역이 식민지 도시 전략의 핵심 거점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창신동(20필지), 통의동(1필지)에 이어 중학동에서도 이 기관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1912년 중학동 토지 소유 구조 (113필지 기준)

조선인 등 (91필지, 81%)

동척 5필

일본 3

국유·독일

조선인 등 (91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

일본인 (3필지)

국유·독일인 (4필지)

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이런 토지 이력을 알고 있느냐 없느냐는 해석의 깊이를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보유했던 5필지에서는 조선인의 전통 생활 유구와 근대 식민지 구조물이 중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5필지가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학동 문화재 지표조사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과제입니다.


중학동 토지조사가 오늘날 문화재 발굴에 주는 메시지



이제 시선을 현재로 돌려봅니다. 중학동처럼 이미 1912년에 완성형 도시였던 지역은 지표조사 단계부터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단순히 "유적 가능성 낮음"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근대 도시 유구, 일제강점기 생활 흔적, 외국인 거주지 구조, 행정 기능과 연계된 공간 배치. 이런 요소들이 한꺼번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곳입니다.

중학동 문화재 지표조사 핵심 포인트

🏠

전 필지 대지(113/113) →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촘촘한 생활 역사층, 필지당 면적 작아 밀도 높음

🏭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 → 조선·일제 중층 유구 발견 가능성, 시리즈에서 2번째로 높은 동척 필지 수

🇩🇪

독일인 소유 1필지(시리즈 유일) → 독일식 생활 유물 출토 가능성, 희귀 발굴 성과 기대

👨‍👩‍👦

김씨·이씨 집중 거주(28%) → 세대 연속 주거 공간, 가문 공동 시설 유구 가능성

🏛️

국유지 3필지 → 행정·도로 목적 공간, 관청 연계 구조물 흔적 가능성


도시 개발과 문화재 지표조사가 만나는 지점

요즘 문화재 발굴은 발견보다 예측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1912년 토지조사는 그 예측의 출발점입니다. 중학동처럼 대지 비율이 높고,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와 외국인 소유가 혼재된 지역은 사전에 자료를 읽을수록 현장에서 당황할 일이 줄어듭니다. 이게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와 토지조사가 함께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에서 이런 사전 토지 분석을 제대로 한 사례는 조사 기간 단축과 사업 안정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에 의뢰해 지표조사를 선행하는 것이,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지가 포함된 중학동 같은 복합 공간에서는 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문화재 조사 단계별 흐름


1단계 지표조사 → 문헌·현장 기초 조사, 유물 산포 확인, 유적 가능성 판단


2단계 시굴(표본)조사 → 트렌치 굴착, 지하 유구·유물 존재 직접 확인


3단계 정밀 발굴조사 → 전면 굴착, 유구 실측·기록 및 유물 수습


4단계 보고서 발간 → 학술 기록 정리, 문화재 지정·활용 검토


주요 기관: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문화유산협회, 중부지역 문화재 조사기관협회


기록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중학동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1912년의 숫자 하나하나가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끝까지 읽은 당신은, 이미 그 대화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113필지 전 대지, 동양척식주식회사 5필지, 독일인 1필지, 김씨 18필지. 이 숫자들이 중학동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만들어줍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장면을 복원하는 작업입니다. 땅 위에서는 흔적이 사라졌지만, 땅 아래에는 여전히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중학동은 더 이상 평범한 동네가 아닙니다. 기억을 품은 땅으로, 다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과 문화재 지표조사 기초 자료는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공식 사이트에서 동 단위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종로구 지역조사 카테고리에서 중학동 외에도 창성동, 통의동, 청진동, 체부동 등 다양한 동네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www.seoulheritage.org



중학동 골목을 걷다 발밑을 내려다볼 때,이 기록을 떠올려주세요. 113필지 전부가 집이었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이 5번 적혀 있었으며, 독일인과 일본인의 이름도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사람이 살았고, 제국이 스며들었고, 그 모든 것이 지금 당신의 발밑에 있습니다. 기록을 읽는 사람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댓글

별점 5점 중 0점을 주었습니다.
등록된 평점 없음

평점 추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