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종로6가, 숫자로 드러난 도시의 시작과 땅의 기억
- 2025년 12월 28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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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밭·산·외래 자본이 한 동네에 공존했다 — 1912년 종로구 종로6가 문화재 지표조사로 읽는 입체적인 서울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 종로구 지역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1912년 종로6가 321필지·115,468㎡에 담긴 대지·밭·임야·잡종지의 복합 구성과 다국적 소유 구조를 풀어냅니다.
1912년이라는 숫자를 마주하는 순간, 오래된 지도 한 장이 천천히 펼쳐집니다. 지금은 수십만 명이 오가는 종로 한복판이지만, 그때의 종로6가는 전혀 다른 숨결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321필지 115,468㎡. 이 시리즈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 동네는 전 필지 대지가 아니었습니다. 대지 274필지 옆에 밭 43필지, 임야 2필지, 잡종지 2필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집이 있었고 밭이 있었고 산이 있었습니다. 김씨 61필지, 이씨 59필지, 망씨 20필지. 그리고 일본인 8필지, 미국인 1필지. 이 모든 것이 한 동네 안에서 공존하던 공간이 바로 1912년 종로6가였습니다.
321
총 필지 수
(4가지 지목 구성)
115,468
총 면적(㎡)
종로구 시리즈 최대
43
밭 필지
도심 속 농경 흔적
61
김씨 소유 필지
최대 단일 성씨

숫자 하나가 시간을 깨우는 순간 — 문화재 지표조사란
1912년 종로구 종로6가는 총 321필지, 면적은 115,468㎡였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힘든 여백과 질서를 동시에 품고 있던 공간입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행정 통계가 아니라, 종로가 이미 서울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하는 출발점입니다. 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 쌓인 기록이라는 사실을, 이 자료는 아주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이 기록을 체계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출발점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건설이나 개발이 시작되기 전, 해당 지역의 지면 위와 아래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존재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기초 조사 과정입니다. 이 조사에서 중요한 흔적이 발견되면 시굴조사로, 이후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지며,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이 전 과정을 수행합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동 단위로 정리해 이 조사의 기초 자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종로6가는 그 기록 안에서 이 시리즈의 다른 동네들과 확연히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전 필지 대지인 체부동·청진동과 달리, 밭과 임야가 함께 존재합니다. 창신동(밭 163필지)처럼 농경지가 압도적이지도 않습니다. 집·밭·산·잡종지가 균형 있게 공존하는 이 구성이 종로6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도시는 기억 위에 세워질 때 가장 단단해집니다. 종로6가의 1912년 기록은 그 기억이 얼마나 입체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912년 종로6가의 전체 윤곽 — 4가지 지목의 공존
1912년 종로6가 토지 구성 (321필지 기준)
대지
85% · 74,598㎡
274필지
밭(전)
13% · 36,152㎡
43필지
임야
—
2필지
잡종지
—
2필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다른 동네들과 비교하면 종로6가의 특성이 선명해집니다. 창신동은 밭이 163필지(23%)로 압도적이었고, 청운동은 임야 6필지·밭 8필지가 공존했습니다. 반면 종로6가는 대지 85%·밭 13%·임야 0.6%·잡종지 0.6%로, 도시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과도기를 보여줍니다.
총 면적 115,468㎡는 이 시리즈에서 창신동(375,975㎡), 청운동(220,328㎡) 다음으로 큰 규모입니다. 321필지라는 필지 수도 창신동(701필지), 청진동(302필지)에 이어 높은 수준입니다. 이 규모와 복합 구성이 합쳐질 때,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종로6가가 얼마나 다양한 층위의 역사를 품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통계 요약 — 1912년 종로구 종로6가
총 필지 수: 321필지 / 총 면적: 115,468㎡
대지: 274필지, 74,598㎡ / 밭(전): 43필지, 36,152㎡
임야: 2필지, 2,809㎡ / 잡종지: 2필지, 1,907㎡
국유지: 8필지 / 일본인: 8필지 / 미국인: 1필지
김씨: 61필지 / 이씨: 59필지 / 망씨: 20필지 / 신씨: 20필지 / 박씨: 19필지 / 최씨: 11필지
자료 출처: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종로구 지역조사 (seoulheritage.org)

집이 먼저였던 동네 — 대지 274필지의 주거 밀도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집의 비중입니다. 종로6가에는 무려 274필지 74,598㎡의 대지가 존재했습니다. 전체 필지 중 85%가 집터였다는 사실은, 이곳이 이미 주거 중심지였음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사람이 모여 살고, 골목이 생기고, 생활의 리듬이 반복되던 동네였다는 뜻입니다.
274필지라는 숫자를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더 흥미롭습니다. 같은 시기 창신동(534필지 대지)이나 청진동(302필지 전 대지)과 비교하면, 종로6가는 대지 수로는 적지만 여기에 43필지의 밭과 임야·잡종지가 더해집니다. 이 구성이 종로6가를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주거·농경·자연이 공존하는 생활권으로 만들었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 관점에서 이런 복합 공간은 각 지목의 경계 지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유구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74필지의 집. 그 집마다 가족이 있었고, 골목이 있었으며, 이웃이 있었습니다. 종로6가는 그 모든 삶이 층층이 쌓인 공간이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남아 있던 밭과 산 — 43필지의 의미

이곳은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밭이 43필지 36,152㎡나 존재했습니다. 집과 집 사이, 혹은 골목 끝자락에는 여전히 흙을 일구는 공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밭을 돌보고, 낮에는 장터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 동네의 일상이었을 것입니다. 이 43필지의 밭이 대지 274필지와 어떻게 공존하고 있었는지, 그 경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1912년 종로6가를 가장 생생하게 느끼는 방법입니다.
임야는 2필지 2,809㎡로 규모는 작지만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잡종지 역시 2필지 1,907㎡가 확인됩니다. 이 잡종지들은 아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땅이거나, 앞으로 도로와 건물이 들어설 미래의 여백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이런 소규모 비대지 필지들은 그 경계 지점에서 유구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지에서 밭으로, 밭에서 임야로 이어지는 그 전환 지점들이 발굴 조사의 핵심 구역이 됩니다.
대지 274필지 · 74,598㎡
세대 연속 주거 공간. 생활 유구·배수로·우물 흔적 집약. 문화재 지표조사 핵심 구역.
밭 43필지 · 36,152㎡
도시 한복판 농경 흔적. 하층 유구 보존 가능성. 대지와의 경계 지점 특히 중요.
임야 2필지 · 2,809㎡
마을 경계·묘역 가능성. 소규모지만 전통 공간 사용 흔적 남아 있을 수 있음.
잡종지 2필지 · 1,907㎡
용도 미확정 과도기 땅. 임시 시설·창고 흔적. 다층 사용 흔적 겹쳐 있을 가능성.
토지 소유 성씨로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
토지 소유 구조를 들여다보면, 종로6가는 특정 가문이 지배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김씨가 61필지, 이씨가 59필지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망씨와 신씨가 각각 20필지, 박씨가 19필지, 최씨가 11필지를 소유하며 다양한 성씨가 고르게 섞여 있었습니다. 이건 종로6가가 장사와 주거,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던 열린 공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1912년 종로6가 주요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
金
김씨 61필지
李
이씨 59필지
網
망씨 20필지
申
신씨 20필지
朴
박씨 19필지
崔
최씨 11필지
주목할 점은 6개 성씨의 필지 분산 구조입니다. 김씨(61필지)와 이씨(59필지)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망씨·신씨·박씨가 각각 19~20필지로 비슷하게 분포합니다. 이 분산된 구조는 종로6가가 한 가문이 독점한 촌락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상업과 주거를 함께 영위하던 열린 시장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문화재 발굴조사 관점에서 이런 다양한 성씨 분포는 다채로운 생활 유물이 혼재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국유지와 외국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방향
공공의 땅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국유지는 8필지로 확인됩니다. 이 시리즈에서 태평로1가(9필지, 11.3%)보다는 낮지만, 필동2가(14필지, 10.4%)와 유사한 수준의 비율입니다. 이 땅들은 관청, 공공시설, 혹은 이후 도시 확장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시는 이 시점부터 이미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소유 토지는 시대의 흐름을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인 소유 토지는 1필지에 불과했지만, 일본인 소유 토지는 8필지가 확인됩니다. 아직 압도적인 비중은 아니지만, 식민지 시기의 토지 구조 변화가 종로6가에도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912년 종로6가 토지 소유 구조 (321필지 기준)
조선인 등 (285필지, 89%)
일본 8필
국유 8필
조선인 등 (285필지)
일본인 (8필지)
국유지 (8필지)
미국인 (1필지)
조선인 소유 비율은 약 89%로 높은 편입니다. 창신동(87%), 청운동(97.9%), 창성동(90%)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이 동네가 식민지 토지 수탈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직 되지 않았던 단계임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일본인 8필지는 이미 종로 한복판에 외래 자본이 거점을 확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종로6가가 오늘의 서울로 이어진 이유
이 모든 수치를 종합하면, 1912년 종로구 종로6가는 주거를 중심으로 하되 농경과 자연, 공공과 외래 자본이 공존하던 아주 입체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종로는 이후 상업과 교통, 행정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지 274필지가 상업과 주거의 기반을 마련했고, 밭 43필지는 자급 경제의 여백을 제공했으며, 국유지 8필지는 도시 인프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앞으로 어떤 개발이 가능한지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로6가는 숫자만 봐도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순간,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종로6가 문화재 지표조사 핵심 특성
대지 85%(274필지) → 세대 연속 주거 공간, 생활 역사층 두텁게 보존
밭 13%(43필지) → 도심 내 농경 공간, 하층 유구 보존 가능성
임야·잡종지 4필지 → 경계 지점 유구 집중 가능성
6개 성씨 분산 소유 → 다채로운 계층 생활 유물 혼재 가능성
국유지 8필지 → 공공 시설 기초 구조물 발견 가능성
땅 위에 남은 기억, 우리가 해야 할 일

지금 우리가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321필지에 쌓인 시간을 이해해야, 종로6가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에서 사전 지표조사를 선행한 사례는 공사 중단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발굴 결과를 지역 역사 자산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종로6가처럼 복합 지목 구성을 가진 공간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김씨의 61필지, 이씨의 59필지, 망씨·신씨의 각 20필지. 이 사람들이 살았던 골목이 어디에 있었는지, 43필지의 밭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지, 국유지 8필지가 어느 도로 옆에 자리했는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이 문화재 지표조사이고, 그 답 위에 종로의 미래가 세워집니다.
문화재 조사 단계별 흐름
1단계 지표조사 → 문헌·현장 기초 조사, 유물 산포 확인, 유적 가능성 판단
2단계 시굴(표본)조사 → 트렌치 굴착, 지하 유구·유물 존재 직접 확인
3단계 정밀 발굴조사 → 전면 굴착, 유구 실측·기록 및 유물 수습
4단계 보고서 발간 → 학술 기록 정리, 문화재 지정·활용 검토
주요 기관: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문화유산협회, 중부지역 문화재 조사기관협회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과 문화재 지표조사 기초 자료는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공식 사이트에서 동 단위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종로구 지역조사 카테고리에서 종로6가 외에도 창신동, 통의동, 청진동, 체부동, 청운동 등 다양한 동네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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