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종로6가, 숫자로 드러난 도시의 시작과 땅의 기억
- 서울 HI
- 2025년 12월 28일
- 2분 분량
목차
숫자 하나가 시간을 깨우는 순간
1912년 종로6가의 전체 윤곽
집이 먼저였던 동네, 종로6가의 주거 밀도
도시 한복판에 남아 있던 밭과 산
토지 소유 성씨로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
국유지와 외국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방향
종로6가가 오늘의 서울로 이어진 이유
땅 위에 남은 기억,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
1912년이라는 숫자를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오래된 지도 한 장이 천천히 펼쳐진다.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가는 종로 한복판이지만, 그때의 종로6가는 전혀 다른 숨결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 쌓인 기록이라는 사실을, 이 자료는 아주 솔직하게 보여준다.

1912년 종로구 종로6가는 총 321필지, 면적은 115,468㎡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힘든 여백과 질서를 동시에 품고 있던 공간이다.
이 수치는 단순한 행정 통계가 아니라, 종로가 이미 서울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하는 출발점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집의 비중이다.
종로6가에는 무려 274필지, 74,598㎡의 대지가 존재했다.
전체 필지 중 대부분이 집터였다는 사실은, 이곳이 이미 주거 중심지였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사람이 모여 살고, 골목이 생기고, 생활의 리듬이 반복되던 동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곳은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밭이 43필지, 36,152㎡나 존재했다.
집과 집 사이, 혹은 골목 끝자락에는 여전히 흙을 일구는 공간이 남아 있었다.
아침이면 밭을 돌보고, 낮에는 장터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 동네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산과 자연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임야는 2필지, 2,809㎡로 규모는 작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잡종지 역시 2필지, 1,907㎡가 확인된다.
이 잡종지들은 아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땅이거나,
앞으로 도로와 건물이 들어설 미래의 여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토지 소유 구조를 들여다보면, 종로6가는 특정 가문이 지배한 공간이 아니었다.
김씨가 61필지, 이씨가 59필지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망씨와 신씨가 각각 20필지, 박씨가 19필지, 최씨가 11필지를 소유하며
다양한 성씨가 고르게 섞여 있었다.
이건 종로6가가 장사와 주거,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던 열린 공간이었음을 의미한다.

공공의 땅도 분명히 존재했다.
국유지는 8필지로 확인되며,
이 땅들은 관청, 공공시설, 혹은 이후 도시 확장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시는 이 시점부터 이미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외국인 소유 토지는 시대의 흐름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미국인 소유 토지는 1필지에 불과했지만,
일본인 소유 토지는 8필지나 확인된다.
아직 압도적인 비중은 아니지만,
식민지 시기의 토지 구조 변화가 종로6가에도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모든 수치를 종합하면,
1912년 종로구 종로6가는 주거를 중심으로 하되 농경과 자연, 공공과 외래 자본이 공존하던
아주 입체적인 공간이었다.
이 구조 덕분에 종로는 이후 상업과 교통, 행정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땅 위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앞으로 어떤 개발이 가능한지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로6가는 숫자만 봐도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순간,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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