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종로5가 토지 조사 기록 - 숫자로 드러난 일제강점기 직전 도시의 얼굴
- 서울 HI
- 2025년 12월 28일
- 3분 분량
목차
한 줄의 숫자가 도시를 말해주던 시절
406필지, 종로5가의 첫인상
집보다 밭이 많았던 골목의 속사정
성씨로 읽는 종로5가의 권력 지도
국유지와 외국인 토지가 남긴 흔적
이 땅은 왜 지금 문화재 발굴의 핵심이 되었을까
종로5가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숫자 뒤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한 줄의 숫자가 도시를 말해주던 시절
1912년 종로구 종로5가.
지금의 번잡한 상가와 병원, 시장 풍경을 떠올리면 상상이 잘 안 될 거야.
하지만 그때의 종로5가는 숫자로 정리된 아주 솔직한 도시였어.
필지 수, 면적, 소유자, 그리고 밭과 집의 비율까지.
이 숫자들은 그냥 통계가 아니야.
사람이 살았고, 장사를 했고, 땅을 지키려 했던 흔적이야.
그래서 문화재 지표 조사나 발굴 조사에서 종로5가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해.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왜 종로5가가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 주목하는 공간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거야.

406필지, 종로5가의 첫인상
1912년 종로구 종로5가는 총 406필지, 면적은 72,264㎡였어.
이 숫자만 봐도 밀도가 상당했단 걸 알 수 있어.
당시 서울 도심에서도 종로5가는 생활과 생산이 동시에 이뤄지던 곳이었거든.
상업 중심지로만 기억되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살아 있는 생활 공간이었어.
땅 하나하나에 사람이 얹혀 살았고, 그 위에 시간이 켜켜이 쌓였지.
이런 구조는 이후 문화재 시굴 조사에서 유구가 발견될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조건이 돼.
집보다 밭이 많았던 골목의 속사정
종로5가에 집은 얼마나 있었을까.
1912년 기준으로 대지는 347필지, 면적은 50,106㎡였어.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밭이야.
무려 59필지, 22,158㎡가 밭이었어.
도심 한복판에 이 정도 규모의 밭이 있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해.
이건 종로5가가 완전히 도시화되기 전 단계였다는 증거야.
주거와 농경이 공존하던 공간.
이런 곳은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생활 유구와 생산 유구가 동시에 나올 확률이 높아.
그래서 종로5가는 지금도 개발 전 지표 조사 대상지로 자주 언급돼.

성씨로 읽는 종로5가의 권력 지도
토지 소유 성씨를 보면 그 시대의 힘의 흐름이 보여.
종로5가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성씨는 이씨였어.
94필지.
그 다음이 김씨 79필지.
박씨 16필지, 최씨 15필지, 권씨 12필지, 류씨 13필지, 신씨 10필지.
이 숫자들은 단순한 가문 자랑이 아니야.
어디에 큰 집이 있었는지, 어느 골목이 중심이었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이 이후 상업화의 출발점이었는지를 말해줘.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는 이런 성씨 분포를 통해 과거 토지 이용 패턴을 추적해.
그래서 토지 조사 자료는 발굴 조사에서 거의 설계도 같은 역할을 해.

국유지와 외국인 토지가 남긴 흔적
종로5가의 국유지는 단 1필지였어.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이 1필지는 행정과 도시 계획의 흔적일 가능성이 커.
그리고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어.
일본인 소유 토지가 22필지.
중국인 소유 토지가 1필지.
이건 일제강점기 초반, 외국 자본이 이미 종로5가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증거야.
이런 토지는 건물 기초, 도로 흔적, 상업 시설 유구가 발견될 확률이 높아.
그래서 실제로 문화재 시굴 조사에서 이 구역은 항상 우선 검토 대상이 돼.

이 땅은 왜 지금 문화재 발굴의 핵심이 되었을까
종로5가는 개발 이야기만 나오면 빠지지 않아.
왜냐면 조건이 너무 완벽해.
도심 중심지.
주거와 농경의 혼합.
다양한 성씨와 외국인 소유 구조.
그리고 국유지의 존재.
이 네 가지가 겹치면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항상 신호가 켜져.
실제로 서울 곳곳의 성공적인 문화재 발굴 사례를 보면,
1912년 토지 조사에서 이런 특징을 가진 지역이 대부분이야.
그래서 종로5가는 단순한 옛 동네가 아니라,
서울 도시 형성사의 핵심 퍼즐 조각이야.

종로5가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이 땅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누구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숫자는 차갑지만, 그 숫자 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은 아직 남아 있어.
그래서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파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다시 묻는 작업이야.
종로5가의 406필지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어.
빨리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추고 기억할 것인가.

숫자 뒤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1912년 종로5가는 밭이 있었고,
집이 있었고,
사람이 살았어.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그 위를 걷고 있어.
문화재 발굴 조사와 지표 조사는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야.
미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야.
종로5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이 숫자들이 언젠가 발굴 현장에서 다시 빛을 볼 날을,
조용히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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