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익선동 토지조사로 본 한옥 골목의 시작과 도시의 기억
- 서울 HI
- 2025년 12월 21일
- 2분 분량
목차
지금의 익선동, 1912년으로 시간을 돌리다
174필지에 담긴 삶의 밀도
집이 대부분이었던 동네의 정체성
밭 3필지가 말해주는 익선동의 경계
성씨 분포로 본 익선동 사람들
법인과 일본인 소유 토지가 남긴 흔적
익선동 토지조사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
1912년의 익선동은 지금 우리가 걷는 감성 골목보다 훨씬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도시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1장 지금의 익선동, 1912년으로 시간을 돌리다
요즘 익선동을 걷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들어.
한옥 사이로 카페가 있고, 오래된 기와 아래에서 젊은 사람들이 웃고 있어.
그런데 이 공간이 이미 100년도 훨씬 전에 도시의 한복판이었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1912년 종로구 익선동은 총 174필지, 41,299㎡.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야.
문화재 발굴이나 문화재 지표 조사를 검색하다 보면, 익선동은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해.
그만큼 도시사적으로 밀도가 높은 공간이기 때문이야.

2장 174필지에 담긴 삶의 밀도
1912년 익선동의 가장 큰 특징은 토지 이용이 거의 주거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이야.
174필지 중 무려 171필지가 대지였고, 면적으로는 40,291㎡.
이건 익선동이 농촌도, 변두리도 아닌 명확한 ‘도시 주거지’였다는 뜻이야.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골목과 골목이 이어지며 사람들의 일상이 촘촘하게 얽혀 있었지.
지금 우리가 ‘익선동 한옥 골목’이라고 부르는 구조가 사실 이때 이미 완성 단계였다는 점, 정말 놀랍지 않아?
이런 지역은 발굴조사나 지표조사 단계에서 항상 주의 깊게 다뤄져.
땅을 조금만 파도 과거의 생활 흔적이 그대로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야.

3장 집이 대부분이었던 동네의 정체성
1912년 기준으로 보면 익선동은 거의 전부가 사람이 사는 공간이었어.
대지가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이곳이 상업지나 관청지가 아니라 생활 중심지였다는 의미야.
아이들이 뛰놀고, 밥 짓는 연기가 오르고, 이웃끼리 담을 넘겨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
그 장면들이 바로 이 171필지 위에서 펼쳐졌던 거야.
그래서 익선동은 개발할 때마다 항상 문화재 조사 대상이 돼.
문화재 발굴 기관들이 이 지역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

4장 밭 3필지가 말해주는 익선동의 경계
흥미로운 건 밭이 딱 3필지, 1,008㎡만 존재했다는 사실이야.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농경의 흔적’.
이건 익선동이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 있던 과도기적 공간이었다는 걸 보여줘.
집 뒤 작은 텃밭, 혹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이었을 가능성이 커.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이런 밭 흔적은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돼.
토층 아래에 생활유구와 농경 흔적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도 많거든.

5장 성씨 분포로 본 익선동 사람들
토지 소유 성씨를 보면 당시 익선동의 사회 구조가 보여.
김씨 32필지.
이씨 32필지.
박씨 14필지.
특정 가문이 독점한 구조가 아니라, 여러 성씨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된 동네였어.
이 말은 곧, 권력 중심지가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이 섞여 살던 동네’였다는 뜻이야.
그래서 익선동은 지금도 이상하게 편안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

6장 법인과 일본인 소유 토지가 남긴 흔적
1912년 익선동에는 법인 소유 토지가 1필지 있었어.
아주 적은 숫자지만, 이 한 필지는 상징성이 커.
이미 이 시기부터 개인의 삶 위로 자본과 조직이 스며들고 있었다는 증거니까.
그리고 일본인 소유 토지는 5필지.
숫자로 보면 많지 않지만, 도시 핵심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지 않아.
일제강점기 초기, 일본인들이 전략적으로 접근한 지역이 바로 이런 곳이었거든.
이런 토지들은 훗날 재개발이나 도로 정비 과정에서 문화재 발굴 이슈로 자주 이어져.

7장 익선동 토지조사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
1912년 익선동 토지조사는 단순한 옛 기록이 아니야.
이건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설계도야.
그래서 문화재 발굴이나 문화재 조사라는 건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해.
익선동이 지금처럼 사랑받는 공간이 된 이유.
그 답은 이미 100년 전, 174필지 안에 다 들어 있었어.
사람이 살았고, 이야기가 쌓였고, 시간이 켜켜이 남았기 때문이야.
오늘 익선동을 걷게 된다면, 잠깐 발걸음을 늦춰봐.
그 골목 아래에서 아직도 1912년의 익선동이 조용히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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