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동숭동의 풍경, 그 안에 담긴 땅과 사람들의 이야기
- 서울 HI
- 9월 10일
- 2분 분량
목차
동숭동의 첫인상 – 1912년, 기록 속 마을을 열어보다
집과 대지 – 127필지에 담긴 삶의 흔적
밭과 농토 – 112,231㎡가 전하는 생활상
국유지 1필지 – 나라의 땅이 가진 의미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 – 이씨, 김씨, 망씨, 그리고 그들의 삶
일본인의 땅 소유 – 식민지 시대의 그림자
종로구 동숭동의 문화적 가치와 발굴 필요성
오늘날의 시선 –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주는 의미
서울 문화재 조사 성공 사례 – 과거를 밝히는 현재의 성과
마무리 – 동숭동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1912년 종로구 동숭동은 203필지, 총 206,632㎡의 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학로와 동숭동 일대가, 100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화려한 공연장과 카페,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로 알려진 이곳은 사실 농토와 집들이 어우러진 소박한 마을이었습니다. 기록을 통해 들여다보면, 당시 동숭동의 사람들, 그들의 삶, 그리고 시대적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당시 동숭동에는 127필지, 94,400㎡의 집과 대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작은 마을 단위의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사와 장사를 병행하며 일상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주거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76필지, 112,231㎡의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종로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농토가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울 곳곳은 여전히 도시와 농촌이 뒤섞여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밭에서는 채소와 곡식이 자라나 마을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었고, 일부는 장터로 나가 거래되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라의 땅도 있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국유지는 단 1필지였습니다. 작은 면적이었지만, 공공적 성격을 가진 공간이 이 마을에도 존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입니다. 1912년 동숭동에는 이씨가 43필지, 김씨가 33필지, 망씨가 10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성씨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땅의 분포는 단순한 소유의 개념을 넘어, 당시 가족과 가문이 어떤 기반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그림 속에는 식민지 시대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1912년, 일본인들이 이미 7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이후 본격적인 토지 수탈과 식민지 도시 재편의 전조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숫자 같아 보이지만, 일제의 영향력이 점점 깊숙이 파고들던 시기의 상징적인 흔적이었습니다.
이렇듯 1912년 동숭동의 기록은 단순히 숫자의 나열이 아닙니다. 집과 밭, 국유지, 그리고 성씨별 땅의 분포는 당시 주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일본인의 소유 현황은 시대적 상황을 드러냅니다.
오늘날 이런 자료는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더 깊이 이해되고 있습니다. 동숭동은 대학로와 맞닿은 지역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라는 이미지와 동시에 서울의 오래된 마을 구조와 역사를 품은 곳입니다. 실제로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는 발굴조사는 단순히 유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실제 성공 사례를 보면, 서울 종로 일대에서 진행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주거지, 도로 흔적, 그리고 생활유물이 발견된 적이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자들은 과거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으며, 어떤 생활문화를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 우리가 걷는 대학로 길바닥 아래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역사적 흔적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집터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밭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발굴조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결국 1912년 동숭동은 단순히 “땅이 몇 필지였다”라는 기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삶, 사회의 구조, 그리고 시대의 그림자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재 조사와 발굴을 통해 배우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입니다.
서울의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는 단순한 학술적 작업을 넘어, 우리가 사는 공간의 정체성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동숭동의 옛 기록처럼, 작은 숫자 하나에도 당시 사람들의 숨결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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