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 돈의동 땅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서울 도심 속 땅의 기억을 찾는 문화유산 지표조사 이야기
- 서울 HI
- 2025년 9월 6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21일
종로 한복판에 밭이 있었다 — 1912년 돈의동 171필지의 진짜 이야기
이씨 37필지·김씨 26필지·박씨 18필지의 마을, 도심 한복판의 잡종지와 밭, 일본인 5필지의 그림자 — 낡은 집터를 정비하다 발견한 서울의 숨겨진 역사
목차
1. 한 장의 지도로 시작된 이야기
2. 1912년 돈의동, 서울의 심장을 기록하다
3. 168필지 대지 — 땅 위에 남겨진 삶의 흔적
4. 잡종지와 밭 — 도심 속 농경지의 흔적
5. 이씨·김씨·박씨의 마을 권력 지도
6. 일본인 5필지 — 불편한 진실
7. 문화유산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8. 돈의동 같은 도심, 왜 지금도 조사가 필요한가
9. 서울에서 발굴조사를 의뢰하려면
10. 성공 사례 — 성북구 골목이 역사문화 공간으로
11. 마무리 — 당신의 땅에도 역사가 있다
종로.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다. 그런데 그 한복판, 돈의동이라는 작은 동네의 1912년 기록을 펼쳐보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나타난다. 도심 한복판에 밭이 있었고, 잡종지가 있었고, 이씨와 김씨와 박씨 가문이 골목마다 나눠 살았고, 일본인의 손이 이미 5필지를 붙들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느 시민이 낡은 집터를 정비하면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뢰했다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록들과 마주치면서 시작됐다.
171필지, 27,781㎡. 작아 보이는 이 숫자 안에 서울 도심의 가장 복잡하고 생생한 100년 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꺼낸다.

1. 한 장의 지도로 시작된 이야기
건축허가를 위해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뢰한 한 시민.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종로 한복판 낡은 집터에서, 믿기 어려운 기록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선식 기와 파편, 생활 도기 조각, 그리고 그 아래로 더 깊이 이어지는 층위들. 단순한 행정 절차로 시작된 조사가 서울의 진짜 역사를 꺼내놓는 탐험이 됐다.
이건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도심에서 건축이나 재개발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순간, 이 글을 다시 읽어봐 줬으면 한다. 발굴은 걸림돌이 아니라 기회다.
2. 1912년 돈의동, 서울의 심장을 기록하다
1912년 종로구 돈의동은 171필지, 총 27,781㎡의 땅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약 8,400평 규모다. 지금의 돈의동을 걷는다면 좁은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이 인상적인 종로 구도심의 한 귀퉁이로 느껴지겠지만, 1912년 이 171필지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용도의 땅이 공존하고 있었다.
171필지
총 필지 수
27,781㎡
총 면적 (약 8,400평)
1912년
토지조사사업 기준
대지 (주거·상업)
168필지
23,005㎡ — 전체의 약 83%
잡종지
1필지
3,917㎡
밭
2필지
859㎡
국유지
1필지
공공·행정 기능
대지가 168필지로 전체의 98%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1912년 돈의동이 얼마나 촘촘한 주거·상업 밀집 지역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동네는 농촌과 도시의 경계가 흐릿한 다른 종로구 동네들과는 달리, 이미 도심형 생활 공간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 밭 2필지와 잡종지 1필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3. 168필지 대지 — 땅 위에 남겨진 삶의 흔적
168필지, 23,005㎡의 대지. 지금 기준으로 약 7천 평 규모의 주거·상업 공간이 이 작은 동네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기와집들이 이어지고, 상점과 주택이 뒤섞이고,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고,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던 그 풍경이 23,005㎡ 안에 있다.
돈의동의 대지 비율(83%)이 다른 종로구 동네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 이 동네의 성격을 말해준다. 부암동(밭 88%)이나 명륜동1가(밭 78%)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돈의동은 농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이미 도시화된 종로 중심부의 주거 밀집 지역이었던 것이다.
168필지 대지 구역은 조선 후기 주거 유구, 상업 시설 흔적, 생활 도기가 가장 집중적으로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구역이다. 특히 도심형 주거 밀집 지역의 특성상 건축 기단이 겹겹이 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4. 잡종지와 밭 — 도심 속 농경지의 흔적
잡종지 1필지(3,917㎡), 밭 2필지(859㎡). 도심형 마을 돈의동에서 가장 뜻밖의 존재들이다. 밭 2필지는 다른 종로구 동네들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지만, 종로 한복판에 밭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전히 충격적이다.
잡종지 3,917㎡는 기록상 용도가 불명확한 땅이다. 공동 우물터, 나무 저장소, 공용 통로, 혹은 임시 상업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두 유형의 땅은 서울이 완전한 도시로 변해가면서도 아직 농경지와 미분류 공간이 남아 있던 과도기적 현실을 보여준다.
"도심 한복판에 밭 2필지. 돈의동은 도시였지만, 아직 완전히 도시가 되지는 않았다."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잡종지 구역은 공동 이용 시설 관련 유구, 수리 시설 흔적, 비정형 건축 구조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특수 조사 구역으로 분류된다. 3,917㎡의 이 잡종지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발굴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밝혀진다.
5. 이씨·김씨·박씨의 마을 권력 지도
1912년 돈의동 토지 소유 현황을 성씨별로 보면 이 동네의 사회 구조가 드러난다. 이씨가 37필지로 1위, 김씨가 26필지로 2위, 박씨가 18필지로 3위였다.
순위 | 성씨 | 필지 수 | 비율 |
1위 | 이씨 | 37필지 | |
2위 | 김씨 | 26필지 | |
3위 | 박씨 | 18필지 |
이씨·김씨·박씨 세 성씨가 합쳐서 81필지. 전체 171필지의 약 47%다. 이 비율은 앞서 살펴본 다른 동네들과 비교해도 특별히 집중된 편은 아니다. 그 말은 돈의동이 소수 가문의 독점이 아닌, 다양한 성씨들이 비교적 고르게 공존하던 개방적 도심 상업지 성격이 강했다는 뜻이다.
이씨 37필지가 이 동네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다른 동네와는 다르게 읽힌다. 농촌형 마을에서 이씨 가문의 토지 집중은 경작지 기반의 가문 권력을 의미했지만, 도심형 상업 지역에서는 상권 기반의 경제적 영향력을 의미할 가능성이 더 크다.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이 차이가 유물의 성격에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6. 일본인 5필지 — 불편한 진실
1912년 돈의동에는 일본인 소유 5필지가 있었다. 전체 171필지에서 약 3%에 불과하지만, 이 숫자가 가진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강제 병합 2년차, 토지조사사업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종로 한복판까지 일본인의 소유지가 파고들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인 소유 5필지는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니었다. 이 시기 일본인의 서울 도심 토지 확보는 이후 본격화되는 식민지 경제 수탈의 교두보였다. 돈의동처럼 종로 상권 중심부의 필지를 선점했다는 사실은 당시 일본의 경제적 침투 전략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다. 발굴 시 이 구역에서 일본식 기와, 근대식 벽돌 구조, 일본산 도기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역사의 증언이 된다.
일제강점기의 부동산 침탈이 이미 종로 한복판까지 퍼지고 있었다는 증거. 이 5필지를 모른 채 그냥 땅을 파는 행위는 역사적 맥락을 지우는 일이다. 그래서 서울 도심에서도 문화재 지표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7. 문화유산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문화재 지표조사는 쉽게 말해 땅의 이력을 추적하는 일이다. 땅을 파지 않고도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표면에서 먼저 조사하는 과학적 사전 절차다. 토지의 형상, 지형 변화, 토양 성분, 역사 기록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 분석해 그 땅에 문화재가 존재할 가능성을 평가한다.
지표조사→표본조사→시굴조사→정밀발굴조사→보고서 작성
이 단계들은 순서대로 진행되며, 각 단계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여부가 결정된다. 지표조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공사를 바로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유적 가능성이 확인되면 시굴조사로, 중요 유구가 발견되면 정밀발굴조사로 이어진다. 사전에 철저히 받아두면 공사 중 갑작스러운 유물 발견으로 인한 장기 중단 사태를 막을 수 있다.
8. 돈의동 같은 도심, 왜 지금도 조사가 필요한가
서울은 이미 다 개발됐다는 말은 착각이다. 서울 도심에도 여전히 수많은 유적이 잠들어 있다. 돈의동처럼 오래된 주택가나 구획이 오랫동안 보존된 곳에는 문화재가 지표 아래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 중요한 건 이 조사 없이 진행되는 재개발이 문화재를 영구적으로 파괴한다는 사실이다. 한 번 파괴된 역사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한양도성의 석재가 일제강점기 도로 공사에 사용됐고, 조선 시대 주거지가 콘크리트 아래 묻혔고, 이름 없는 수많은 유물이 쓰레기로 처리됐다. 이 반복이 지금도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9. 서울에서 발굴조사를 의뢰하려면
서울 지역에서 발굴조사나 지표조사를 의뢰하고 싶다면 국가유산청 허가를 받은 전문 조사기관을 통해 정식 절차를 밟으면 된다. 공공기관과 민간 의뢰 모두 가능하며, 현장 컨설팅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특히 종로구, 중구, 성북구 등 전통 한옥지구나 구도심 재건축 예정지는 지표조사가 의무화되어 있다. 돈의동처럼 역사 밀집 지역에서 건축을 계획 중이라면 사전에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지표조사를 미리 받아두는 것이 시간과 비용 양면에서 모두 유리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종로구·중구 등 역사 중심 지역은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 시 문화재 지표조사가 법적 의무다. 사전 조사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 전면 중단과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알고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10. 성공 사례 — 성북구 골목이 역사문화 공간으로
발굴이 단순한 걸림돌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성북구의 한 오래된 주택가에서 진행된 지표조사에서 조선 시대 우물터와 한옥 기반이 발견됐다. 당초 개발 예정이었던 이 구역은 발굴 결과에 따라 보존 구역으로 전환됐고, 서울시는 이곳을 역사문화 골목으로 재생시켰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변 상권이 살아났고, 그 동네는 이제 성북구의 대표적인 역사 관광 코스가 됐다. 개발을 포기한 게 아니라, 역사를 살려 더 나은 방식으로 개발한 것이다. 돈의동도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품고 있다. 종로 구도심이라는 위치와 171필지의 역사적 잠재력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서울 역사 투어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 있다.
성북구 역사문화 골목 사례처럼 문화재 발굴이 보존·재생으로 이어질 때, 그 지역의 역사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동시에 높아진다. 문화재 조사는 걸림돌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여는 열쇠다.

11. 마무리 — 당신의 땅에도 역사가 있다
오늘 종로를 걷다 돈의동 골목 어딘가에 멈춰 선다면, 발아래 땅을 한 번 느껴봐 줬으면 한다. 이씨 가문의 상점이었던 자리일 수도 있고, 박씨의 기와집 마당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도심 한복판 밭 2필지 중 한 뙈기였을 수도 있고, 일본인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5필지 중 어딘가였을 수도 있다.
171필지, 27,781㎡. 이 숫자 뒤에는 이름도 기록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상점 문을 열고, 골목에서 이웃을 만나고, 조선이 무너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하루를 버티던 그 사람들. 그들의 삶이 지금 이 땅 아래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기억을 꺼내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가장 조용하고 진지한 약속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 공사하려는 그 자리에도 분명 역사가 있다. 그 역사를 지우지 않는 방법이 지표조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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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필지 아래, 이씨의 상점과 일본인의 그림자가 함께 잠들어 있다
171필지, 27,781㎡. 이씨·김씨·박씨의 기와집, 도심 한복판의 밭 2필지, 잡종지의 수수께끼, 그리고 일본인 5필지의 그림자. 종로 한복판 돈의동의 1912년 기록이 지금도 땅 아래에 잠들어 있다. 문화재 발굴은 그 기억을 꺼내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약속이다.
돈의동이나 종로 인근에서 건축이나 재개발을 준비 중이라면 지표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이 도움이 됐다면 주변에 공유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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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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