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송파구 신천동의 비밀을 열다
- 2025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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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월 12일
잠실 롯데타워 그 자리,1912년엔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1912년 송파구 신천동 — 232필지, 1,917,393㎡. 밭 60%, 임야 35%. 국유지 116필지와 동척 23필지가 드리운 식민지의 그림자
목차
1.잊혀진 서울 — 1912년 신천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110채의 집과 1필지의 분묘지 — 신천동 마을의 속내
3.논밭과 임야의 땅 — 그 넓이를 보면 놀랄걸
4.신천동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 성씨별 소유 현황
5.국유지 116필지 — 절반이 사라진 땅
6.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23필지
7.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
8.문화재 발굴조사의 중요성과 의뢰 방법
9.마무리 —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다
1. 잊혀진 서울 — 1912년 신천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지금의 잠실 롯데타워, 석촌호수, 복잡한 8차선 도로. 서울 동남쪽에서 가장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이곳이 113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곳이 그렇게나 한적한 마을이었다고?" 누구도 믿기 어렵겠지만, 1912년 송파구 신천동은 밭과 숲이 전체 면적의 95%를 넘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총 필지 수
232필지
소박한 농촌 공동체
총 면적
1,917,393㎡
여의도 면적의 약 66%
밭 (압도적 1위)
1,214,299㎡
101필지, 전체의 약 63%
임야
663,573㎡
20필지, 두 번째 규모
1912년 신천동의 총 면적은 1,917,393㎡, 232필지.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그런데 그 땅의 구성이 놀랍다. 밭이 63%, 임야가 35%. 합치면 98%가 농경지와 숲이었다. 집이 들어선 대지는 고작 110필지, 전체의 2%에 불과했다.
2. 110채의 집과 1필지의 분묘지 — 신천동 마을의 속내

110필지의 대지, 39,309㎡. 이 광활한 191만 제곱미터 위에 집은 고작 110채 남짓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2%다. 이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낮은 대지 비율이다. 1912년 신천동은 사람보다 땅이, 건물보다 자연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공간이었다.
그 110채의 집들은 마당 한켠에 장독대를 두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피어나던 소박한 농가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딱 한 필지, 211㎡의 분묘지가 기록되어 있다. 마을 어딘가 조용한 언덕 위에 선인의 무덤이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롯데월드 어딘가의 지층에 그 분묘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문화재 발굴이 필요한 이유다.
3. 논밭과 임야의 땅 — 그 넓이를 보면 놀랄걸
밭
101필지
1,214,299㎡
임야
20필지
663,573㎡
대지
110필지
39,309㎡
기타
1
211㎡
밭이 101필지, 1,214,299㎡. 단위가 백만이 넘는다. 지금 석촌호수 공원과 롯데월드, 잠실 아파트 단지가 자리한 그 땅 전체가 밭이었다는 뜻이다. 콩, 보리, 채소.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이 광활한 밭을 가득 채웠다. 임야는 20필지, 663,573㎡. 마을을 둘러싼 숲과 야산이었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땔감을 구하고, 봄이면 산나물을 뜯던 그 숲이 지금의 잠실 어딘가에 있었다.
신천동 밭의 규모 비교
1,214,299㎡
여의도 면적의 약 42% — 이 시리즈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 밭 면적
4. 신천동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 성씨별 소유 현황
김씨
26필지
마을 공유
14필지
박씨
10필지

신천동 토지 기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김씨의 26필지와 함께 '마을 공유지'가 14필지나 된다는 사실이다. 개인 소유가 아닌 마을 전체가 함께 사용하던 공동 공간이 14필지였다는 건, 신천동이 공동체 중심의 마을이었음을 보여준다. 마을 우물, 공동 창고, 두레 마당이 이 14필지 안에 있었을 것이다.
박씨 10필지까지, 개인 소유지의 필지 수 자체가 크지 않다. 232필지 중 많은 부분이 국유지와 동척 소유였기 때문이다. 신천동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할 수 있었던 땅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그들이 가진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가족을 부양하던 자영농의 삶이 얼마나 소중했을지, 그 숫자들이 말해준다.
5. 국유지 116필지 — 절반이 사라진 땅
동양척식
23필지
수탈 기관 소유
국유지
116필지
전체의 50%
합계
139필지
232필지의 60%
가장 충격적인 숫자는 따로 있다. 국유지가 116필지. 전체 232필지의 정확히 50%다. 신천동 땅의 절반이 이미 개인의 손을 떠나 국가의 이름 아래 있었다는 뜻이다. 1912년은 조선총독부 통치가 시작된 지 2년째였고, 전국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역사적 맥락
신천동 국유지 116필지는 조선총독부가 관할하는 토지였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관아 소유였던 땅, 소유권이 불분명해 국가로 귀속된 땅들이 이 범주에 들어갔다. 특히 한강 인근 지역인 신천동의 국유지는 농업 생산 목적 외에 수운(水運) 관련 시설 부지로도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116필지의 성격을 특정하는 것이 신천동 근대사 연구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6.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23필지

국유지 116필지 외에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23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국유지와 동척을 합치면 139필지, 전체 232필지의 60%에 달한다. 신천동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 땅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은 40%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금동(38필지), 연희동(32필지), 증산동(28필지), 응암동(27필지)에 이어 신천동(23필지)까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동네들을 통해 동척이 서울 전역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가 보인다. 23필지의 밭과 임야에서 일하던 신천동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한 땅의 결실을 온전히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7.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
지금 잠실역 근처를 걸으며 이런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이 고층 아파트 아래 어딘가에 100년 전 김씨 가문의 밭이 있었다는 것을. 롯데월드 지하 어딘가에 신천동 사람들의 생활 도구가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고층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도로가 뚫려도, 그 아래 잠든 이야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도시 개발과 재건축이 활발한 서울 송파구에서는 문화유산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가 필수다. 과거를 보존하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시작이 문화재 지표조사다.
8. 문화재 발굴조사의 중요성과 의뢰 방법

서울 송파구에서 건축이나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신천동처럼 밭이 63%, 임야가 35%였던 지역은 지층 속에 농경 문화 유물이 풍부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백제 한성 시대의 핵심 지역인 송파구는 삼국시대 유적이 출토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시굴조사와 표본조사는 단순한 법적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신천동에서 밭을 일구던 김씨 가문의 기억을, 마을 공유지 14필지에서 함께 모여 살던 공동체의 이야기를 꺼내는 문화적 책임이다. 소규모 건축의 경우 국비 지원을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송파구는 백제 한성 유적 인접 지역으로 삼국시대 유물 출토 가능성이 높다. 풍납토성·몽촌토성 인근이라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seoulheritage.org 또는 e-minwon.go.kr에서 의뢰 가능.
9. 마무리 —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다

신천동의 이야기는 단순한 통계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고, 우리가 오늘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역사다. 100년 전의 신천동은 밭과 숲이 가득했던 마을이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가족을 지키고 땀 흘리며 살아갔다. 동척과 국유지라는 수탈의 그림자 속에서도, 남은 땅에서 삶을 이어가던 그들의 의지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도시의 뿌리다.
우리는 그 기억 위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그 기억을 지키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석촌호수 산책로를 걸을 때, 잠실 거리를 지날 때, 발 아래 1912년 신천동 사람들의 땀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기억해 주길 바란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송파구 관할 문화재 문의 → 송파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신천동, 김씨 가문의 밭이 1,214,299㎡ 펼쳐져 있었다.그 광활한 땅 위에 지금 잠실이 서 있다.땅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찾아주기만 한다면."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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