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송파구 신천동의 비밀을 열다
- 서울 HI
- 6월 15일
- 3분 분량
[목차]
잊혀진 서울, 1912년 송파구 신천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110채의 집과 1필지의 분묘지, 신천동의 모습은 어땠을까?
논밭과 임야의 땅, 그 넓이를 보면 놀랄걸?
신천동의 땅 주인은 누구였을까? 성씨별 소유 현황
국유지와 동척의 그림자, 식민시대의 흔적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의 중요성과 의뢰 방법
마무리하며: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쉬고 있다

1912년, 송파구 신천동의 비밀을 열다
“이곳이 그렇게나 한적한 마을이었다고?”
서울 중심에서 강남을 넘어 송파구 신천동에 발을 딛는 순간, 누구도 지금의 고층 아파트와 복잡한 교통망 아래 100년 전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상상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1912년으로 가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누군가는 ‘서울에 무슨 발굴이 필요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디딘 이 땅 아래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그 중심에 1912년 송파구 신천동이 있다.
1.잊혀진 서울, 1912년 송파구 신천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1912년. 일제강점기의 첫 무렵. 행정구역도, 사람들의 삶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했던 그 시절.
송파구 신천동의 전체 면적은 약 1,917,393㎡, 232필지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큰 마을이지만, 당시엔 대부분이 밭과 임야였다. 마을 중심은 작고 소박한 주거지였고, 집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2.110채의 집과 1필지의 분묘지, 신천동의 모습은 어땠을까?
1912년 당시 신천동에는 총 110필지의 대지가 있었고, 그 면적은 약 39,309㎡에 달했다. 이는 곧 집이 100채 이상 존재했다는 이야기다.
도시화가 되기 전, 이곳은 작고 단란한 농가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다. 마당 한 켠에는 장독대가 있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피었을 작은 마을. 하지만 딱 한 필지, 211㎡의 분묘지가 있었던 것도 이채롭다. 마을 중심에 조용히 누워 있던 선인의 무덤은, 그 마을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보는 존재였을 것이다.
3.논밭과 임야의 땅, 그 넓이를 보면 놀랄걸?
신천동의 가장 큰 특징은 넓은 밭이었다. 총 101필지, 무려 1,214,299㎡가 밭으로 사용됐다. 이는 전체 마을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비중이다.
또한 20필지, 663,573㎡의 임야도 존재했다. 마을 주변을 둘러싼 숲과 야산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때론 자연과의 싸움터였을 것이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땔감을 얻고, 때론 짐승들과 조우했을 그 시절의 신천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4.신천동의 땅 주인은 누구였을까? 성씨별 소유 현황
흥미로운 건 ‘누가 이 땅을 소유하고 있었나’이다. 기록에 따르면, 마을 소유의 땅이 14필지, 김씨가 26필지, 박씨가 10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여러 성씨들이 각각 땅을 나누어 갖고 살아갔다.
이들은 단순한 소작농이나 빈민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가족을 부양하던 자영농의 이미지가 더욱 가까웠을 것이다.
5.국유지와 동척의 그림자, 식민시대의 흔적
하지만 이 목가적인 그림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가 있다.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른바 ‘동척’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의 땅을 빼앗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식민 지배 도구였던 동척은, 신천동에 무려 23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국유지 역시 116필지나 되었으니, 전체의 절반 가까운 땅이 이미 개인 소유가 아닌 국가 혹은 일본의 손에 넘어가 있던 셈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수탈을 생생히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6.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
이런 기록이 왜 지금 중요할까?
바로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위에 어떤 역사와 이야기가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오늘의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층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도로가 뚫려도, 그 아래 잠든 이야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도시 개발과 재건축이 활발한 서울에서는 문화유산 시굴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가 필수다. 과거를 보존하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다.
7.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의 중요성과 의뢰 방법
만약 지금 여러분이 서울 지역에서 건축이나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에 의뢰를 해보자. 시굴조사와 표본조사를 통해 개발지 안에 문화유산이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발굴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법적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는 ‘문화적 책임’이기도 하다.
8.마무리하며: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쉬고 있다
신천동의 이야기는 단순한 통계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고, 우리가 오늘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역사다.
100년 전의 송파는 밭과 숲이 가득했던 마을이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가족을 지키고 땀 흘리며 살아갔다. 우리는 그 기억 위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그 기억을 지키는 일 또한 우리의 몫이다.
글 출처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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