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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송파구 삼전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목차


  1. 시간여행, 1912년 송파구 삼전동으로

  2. 삼전동의 크기: 217필지, 1,228,835㎡

  3. 집이 있었던 흔적: 38필지, 14,033㎡의 대지

  4. 특별한 공간, 사사지 1필지 449㎡

  5. 잡종지의 비밀: 8필지, 115,372㎡

  6. 삼전동 사람들의 삶: 밭 170필지, 1,098,980㎡

  7. 땅을 지킨 성씨들: 이씨, 김씨, 신씨, 염씨, 한씨, 강씨

  8.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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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12년, 송파구 삼전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1912년.

지금으로부터 110년도 훌쩍 넘은 시간이다.

이 거대한 도시 서울 속에서도 특히 송파구 삼전동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가 아는 고층 아파트도, 북적이는 거리도 없던 그 시절.

삼전동은 217필지, 무려 1,228,835㎡에 이르는 드넓은 땅 위에 자연의 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서울’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과연 그때 이곳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금부터 삼전동의 1912년을 함께 걸어가 보자.




삼전동의 크기: 217필지, 1,228,835㎡


먼저 삼전동 전체 면적은 1,228,835㎡.

필지 수는 217개였다.

지금으로 치면 웬만한 신도시급 규모지만, 그때는 대부분이 논밭이었다.


바로 옆에 흐르던 한강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게 자연의 리듬을 따라 흘렀고,

삼전동은 그 흐름에 맞춰 숨 쉬던 마을이었다.




집이 있었던 흔적: 38필지, 14,033㎡의 대지


그럼 사람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1912년 삼전동에는 38필지, 14,033㎡의 대지가 존재했다.


‘대지’라는 것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뜻한다.

38필지면 지금 생각하는 ‘동네’보다 훨씬 작은 규모다.

소박한 집들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었고, 서로의 존재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담벼락 너머 이웃의 웃음소리, 저녁이면 퍼져나가는 구수한 연기.

삼전동의 밤은 조용하고 따뜻했을 것 같다.




특별한 공간, 사사지 1필지 449㎡


1912년 삼전동에는 ‘사사지’도 있었다.

1필지, 449㎡ 크기의 사사지.


’사사지(寺社地)’란 절이나 사당의 부지다.

즉, 이 작은 마을에도 신을 모시던 신성한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들러 풍년을 기원하고, 가족의 안녕을 빌었겠지.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삼전동 구석 어딘가에선 여전히 조용히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종지의 비밀: 8필지, 115,372㎡


놀라운 건 ‘잡종지’의 규모다.

8필지나 있었고, 그 면적은 무려 115,372㎡.


잡종지는 쉽게 말해, 쓸모 있는 땅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한 용도가 지정된 땅도 아닌 애매한 땅이다.

하지만 이런 땅이 많았다는 건, 삼전동이 아직 인간의 손길이 덜 닿은 ‘자연 그대로’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잡종지 위에는 때로는 야생 동물들이 뛰놀았고, 때로는 작은 논두렁과 오솔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삼전동 사람들의 삶: 밭 170필지, 1,098,980㎡


삼전동에서 진짜 주인공은 ‘밭’이었다.

170필지, 무려 1,098,980㎡에 달하는 땅이 밭이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하루 종일 밭을 일구었을 것이다.

논두렁을 걷고, 땀을 뻘뻘 흘리며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렸을 테지.


봄이면 푸릇한 새싹이 돋고, 여름이면 온 동네가 초록빛으로 넘실댔을 것이다.

가을이면 고개 숙인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겨울이면 새하얀 눈이 모든 밭을 덮어 고요한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땅을 지킨 성씨들: 이씨, 김씨, 신씨, 염씨, 한씨, 강씨


이렇게 넓은 땅을 누가 지켰을까?


1912년 삼전동에서는


  • 이씨가 61필지

  • 김씨가 29필지

  • 신씨가 27필지

  • 염씨가 17필지

  • 한씨가 15필지

  • 강씨가 10필지



이런 식으로 각각의 가문이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삼전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땅 위에서 농사를 짓고, 가족을 키우고, 세월을 견뎠겠지.


지금 우리가 삼전동이라 부르는 이 땅에는,

바로 그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희망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


삼전동은 지금 완전히 달라졌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고, 한강을 따라 초고층 빌딩이 늘어섰다.


하지만 1912년의 삼전동을 상상해보면,

지금 이곳을 걷는 우리 발밑 어딘가에 여전히 그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새벽마다 밭을 일구었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사사지를 향해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가 쌓여 지금의 삼전동이 만들어졌다.


다시 한 번, 조용히 눈을 감고 삼전동의 과거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이 순간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100년 후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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